1. 성경 (살후2:13~17)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3)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4)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6)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7)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3. 우리가 마땅히~~~~~~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 . 그는 여기서 데살로니가인들과 악인들을 보다 더 명백하게 구별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다가오는 배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의도는 단지 이 세대 뿐 아니라 다가오는 장차 세대의 문제를 생각하는데 있었다. 그는 그들이 세상이 받는 것과 같은 내리막길을 체험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그들을 확고부동하게 할뿐 아니라 이 비교를 이용해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장차 은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곧 그들 보기에 거의 온 세상이 마치 거친 폭풍우 속에서처럼 파멸되더라도 그들의 생명의 상태는 하나님의 손길에 따라서 계속 평화롭고 안전하게 될 것이 라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우리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는 가운데 그들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곰곰이 생각하는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비참한 종말을 당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들을 '주의 사랑하시는' 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세상의 거의 전반적인 파멸에서 구출받은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점을 더욱 더 자세하게 생각하도록 하려는 뜻에서나 마찬가지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너희들 그처럼 높여 주신 것은 "너희들이 남보다 강력하거나 숫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가 너희 조상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하고 있다(신 7 7이하).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곧장 "우리가 사랑 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하는 말씀을 명심해야겠다(요일 4 : 19). 간단히 말하자면,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일을 해내고 있다. 그는 경건한 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상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그들의 신앙을 보강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권함으로써 그들 이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이~~~~~너희를 택하사." ; 그는 왜 모두가 동일한 재앙에 빠져서 박살나지 않는가 하는 이유를 여기서 밝혀주고 있다. 그것은 천지가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가운데 한 명도 사단이 구원받지 못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귀절에 대한 주석은 참 많다. '벌게이트 역은 이것을 '첫 열매'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헬라어 단어가 απαρχν (아파르켄)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모든 헬라어 사본에는 &π' αρxs로 되어 있는만큼 나는 이 독법을 따르기로 :했다. 전자를 취할 경우 그 의미는 신자들이 거룩한 제물 용으로 구별되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비유는 옛날 율법의식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독법, 곧 데살로니가인들이 처음부터 '선택받았다는 '번역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자.
혹 어떤 자들은 이것을 그들이 처음 부름 '받기로 된 자들의 부류에 속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데 이것은 바울의 의도와 생소할 뿐 아니라 문맥상으로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단지 복음전파의 맨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믿게 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공포를 제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위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 한 사람도 빼놓지 않은, 모두와 관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라는 말에는 사단이 일으키는 폭동이 제 아무리 혼란스럽다 해도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에 근거하고 있는 그들의 구원을 뒤집어 엎을 수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곧, 사단이 이 세상에서 일으키는 무질서가 제 아무리 광범위할 망정 너희들의 구원은 창세 전부터 보장된 것이다'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옛적부터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구출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안전의 항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로 선택받은 사람들이요. 따라서 파멸로부터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밀한 경륜 속에 서 우리의 구원에 대한 보장을 찾는답시고 그 경륜을 꼬치꼬치 캐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 아니므로 그는 우리의 선택에 대한 징조 내지는 표적을 보여 주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 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것은 성화와 함께나 또는 '성화에 의해서', 두 가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어느 것을 택하든 의미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는데 그것은 아직 그 자체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선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을 보여 주는 더 잘 감지할 수 있는 징조를 선택과 연관시키는 것이 틀림없이 바울의 유일 한 의도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있는가를 알아 보려고 그가 창세 전부터 작정하신 것이 무엇인가 하고 질문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서 그가 그의 영에 의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으며 그의 복음에 대한 신앙으로 일깨워 주셨는가? 그렇지 않았는 가? 에 대한 만족스런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복음은 우리에게 우리의 입양을 증거할 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그것을 화증하시며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롬 8:14)이요,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요일 55:12):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족하고 있으라고 당부하는 그의 계시를 무시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명하시는 그의 은밀한 경륜의 뜻을 캐보려는 욕구에 이끌려 밑없는 수렁에 빠지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신앙과 우리를 중생시키는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성령의 은혜로 만족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핑계로 갖가지, 죄악을 일삼는 자들의 타락을 반박할 수 있다. 요컨대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그 어떤 다른 표준에 따라 측량하도록 하는 뜻에서 '그것을 믿음 또는 중생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 그의 말씨는 약간 다르지만 그 의미는 동일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진리에 대한 신앙으로 부름받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바울의 의도는 여기서 자신이 자기가 몸 담고 일하는 사역을 확증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자격있는 증인인가 하는 점을 보여 주는데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보장을 통해서 그들이 자기에게 배운 복음이 사실은 그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불러 일으켜 세우고 사단의 독재에서 자유롭게 풀어 준 하나님이 구원하는 음성이었다는 점을 추호도 의심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믿음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그것의 선포를 위임받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는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공통적인 영광을 소유하도록 하는 뜻에서 부름 받고 있다는 뜻에서 부름 받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들을 자신에게 받아들이셨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을 '마치 자신의 상속인인 양 방어할 것이요; 그들의 구원을 확증함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비호할 것이 라는 이야기는 그의 요점을 확증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내 견해로는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해 보인다.
[우리의 불굴의 인내에 대한 결단력은 오직 신의 은혜에 대한 보장에 의존 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바울이 그의 앞 이야기에서 이러한 위로 의 말을 이끌어 내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 로 부르시면서 그의 손길을 우리에게 내미지고, 그리스도께서 공복음의 가르 침을 통해서 우리에게 향유하도록 자신을 제공하며, 성령께서 :영생에 대한 날인과 보증으로서 우리에게 허락될 때,' 이우리는 설령 전지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낙심하는 일이 없어야겠다.¡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남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좀 더억척스러운 구결단력으로 확고부동하 게 자리를 지킴으로써 신앙으로부터의 배도가 거의 이전에,우주적인 {경지까지 가더라도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그리 .사실 하나님 의 |부르심은 온 세상이 전멸되더라도 [우리의 자지조가 파괴되기는 고사하고 흔들릴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모든 그걸려 넘어지는 계기를 족히 막아준다.]
"15.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 주석가에 따라서는 이것을 우리의 외형적인 통치에 대한 규례로 중국한시키기도 한다.5그러나 바울은 여기서!그 들이 어떻게 확고하게 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을 말해 주고 있으므로 나는 이 러한 주석에 찬동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바울은 이 단어 속에모든 가르 침을 내포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 그들이 그가 그들에게 가르쳐-준 건전한 가르침을 계속 견지할 경우 그들에게는 그들이 확고히 '설 튼튼한 기반이 마 련된 셈이라는 식으로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나는 παpadboecs(파라도 세이스)라는 단어를 교회가 평화 증진과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정하는 규례 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으며 사람의유전이라는 주제도 이러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마 15 [6).' 그러나 다음 장 에 [보면 비바울은 그가 그들에게 전해 준 규칙에 대한 의미로 '유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일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미 지적한 대로, 문맥을 볼 경우 우리는 이 단어를 그들이 전체적으로 받은 가 르침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곧 교회에 '제 .아무리에서 몸서리치는 환난이 일어나더라도 그들의 신앙은 지조를 보지켜야
한다는 점을 여기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미련하게도 여기서 그들의 유전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 을 추론해 낸다. 그들의 이론은 이런 식이다. 곧, 바울이 유전을 지키라고 명할 수 있었다면 다른 교사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요, 전자를 지키 는 것이 헌신의 표적이라면 후자에 대한 준수 역시 소홀히 할 수 없어야 한 다는 것이다. 바울의 교회의 외적인 통치에 관계되는 규례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해도 나는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그에게 전달될 것인 지 그가 고안해 낼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는 다른 곳에서(고전 7 : 35) 인간의 마음에 덫을 놓는다는 것은 결코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 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밖에 어떤 사도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자신들의 구린내나는 미신 무덩어리를 그것이 마치 바울의 유전인양 팔아먹으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더욱 더 터무니없는 수작이 아 닐 수 없다. 바울의 진의를 파악하게 될 때 이러한 쓸데 없는 소리는 끝이 나고 만다.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해서 그가 추천하고 있는 유전의 일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말로나' 곧 연설을 통해서나, 편지로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편지에는 전체 로마 가톨릭과 순수한 복음에 '위배되는 모든 조작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순수한 가르침 이외에 또 무엇이 담겨 있는가'?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 바울은 전적으로 신적인 일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돌리며 그를 아버지와 함께 최상의 축복의 원천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명백하게 증거해 보여 주듯이 여기서는 우리가 무엇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기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받을 수 없다는 점 올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처방해 놓은 것을 하나님 께서 허락하실 것을 간구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작용하시며 내면 으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권면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 고 마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로와." ; 라는 대목은 우리가 요청하는 것을 우리 가 받을 것으로 여미기는 확신과 관련되는 말이다. 그의 소원은 그가 기도 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이라는 점을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확산시 켜 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입증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뛰어난 친절을 보임으로써 그들이 자신에게 귀중하다는 점을 .입증 한 바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장래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을 그들과 연관시키시고 있다. 이것이 영원한 위로'의 의미이다. '소망'이라는 말 역시 같은 것을 지칭하고 있다. 곧 그들은 그들의 축복이 중단치 않고 계속될 것이라 는 점을 확실히 기대하고 있어야 옳았다. 그가 기도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위로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고양()시 켜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들이 불안이나 신뢰 부족으로 낙심하는 일 이 없도록 하며 그들이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과 건전한 가르침에 있어서 견 인불발 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내 생각에 그는 그의 일상적 인 연설보다는 이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으며 이것은 그의 앞 말 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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