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살전5:23~28)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3)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4)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5)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6)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23. 평강의 하나님" ; 그는 여러가지 훈계를 하고나서 마침내 기원을 덧 붙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가르침이 뿌리를 내리게 하시지 않을 경우 그 가르침을 전파해봤자 아무런 의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측량하는 자들의 그들 어리석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으로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새겨주시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가르침도 무용지물에 지나지는 않는다는 점을 파악했기에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인들을 거룩하게 해 주실 것을 바란다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여기서 그가 왜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명백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이것이 형제적 일치, 인내 .및 정의를 언급한 바 있는 .앞 귀절과 관련이 되는 것으로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이는 대로 성화라는 말에는 인간의 전적인 중생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데살로니가인들이 어느 정도 갱신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남은 일을 완성해 주실 것을 기원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일생에 걸쳐서 거룩을 추구하는데 발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완전히 재조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전혀 남겨지지 않는 셈이다. 우리의 책임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 없다면 바울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성화를 돕거나 발전 시켜 주시기를 바라노라' 하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하는 말로써 하나님을 이 전체 일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또 너희 영과 혼과 몸이" ; .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전인의 성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알게 하는 뜻에서 설명 형식으로 덧붙여지고 있다. 성화란 그리스도의 날까지 영과 혼과 몸에 있어서 흠없고' 순결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온전성(wholeness)은 이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날마다 우리의 순결이 어느 정도 증대되고 우리의 불결이 청결하게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이 세 가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은 단순히 '몸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혼이란 인간의 몸 속에 거하는 불멸의 영혼을 지칭한다. 그러나 혼에는 이해와 의지라는 두 가지 특수한 기능이 있으므로 성경은 혼의 능력과 특성을 표현하고자 할 때 이 두가지 면을 따로 따로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soul)이란 정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이요 따라서 영혼(spirit)과 반대되는 면이다. 그러므로 영혼은 이성 내지는 지력을, 혼은 의지와 모든 정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물론 나는 바울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력을, 영혼은 인간의 갱신된 면을 뜻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바울의 기도는 우스꽝스럽게 되고 말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면, 앞에서 지적한 대로 성경 상의 용법이 달라지게 된다. 제 혼을 다해 제가 당신을 빛 가운데서 앙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영혼을 다해 제가 당신을 일찍 찾겠읍니다"(사 26: 9)하는 말로 이사야는 이해와 정을 두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혼의 두 가지 면을 열거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두 용어가 시편에서도 동일한 의미에서 하나로 묶여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바울의 말에서는 더 잘 어울리게 사용되고 있다. 인간이 온전하다 (entire)는 것은 그의 생각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그의 정이 모두 고결하고 한결같으며, 그의 몸이 선한 일에 몰두하는 경우를 두고 이야기하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철학자들은 이해의 기능을 지녀와 같은것으로 보면서 정은 명령을 수행하는 수단으로, 몸은 '순종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것이 얼마나 서로 잘 일치하는지 모른다. 다만 인간이 지성(mind)에 있어서 망상을 품지 않고 몸으로 하나님의 인준을 받지 않는 일을 전부 하지 않기만 한다면 그는 순결하고 온전한 것이다. 바울은 이런 공식으로 인간의 모든 부분과 함께 하나님께 위임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의 보호 아래 있지 않을 경우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만다는 점을 여기서 배워야겠다.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의 안녕에 대한 자신의 관심도를 표명한 뒤에 여기서 그들에게 신의 은총의 보장을 그 들에게 확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약속 하는 논거에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일단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경우 우리는 그의 은혜가 우리에게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마땅히 소망해야 한다. 그는 단 하루만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후로 영원히 우리를 소중하게 여겨주신다는 조건 하에서 우리를 입양하신다. 그러 므로 우리의 부름이 우리에게 영원한 은혜에 대해 증거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손의 일을 불완전하게 내버려두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바울은 외적인 복음전파에 의해서만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아버지께 인도되었기에 마땅히 그의 자녀로 계산될 수 있는 신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26.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 여기서 말하는 '입맞춤'은 다른 곳에서 말 한대로 통상적인 인사법이다. 이 말로 그는 모든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 올 밝히 드러내고 있다.
"27, 내가~~~~~너희를 명하노니~~~~" ; 여기서 그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악의 적이요 질투심 많은 자들이 자신의 서신을 숨기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는지,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잘못된 분별력과 조바심에 이끌린 나머지 이 서신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시키는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는지에 대 해서는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다른 면에 있어서는 더없이 중대한 것이지만 그것을 굳이 발표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자들은 어디 나 있기 마련이다. 최소한, 당시 이 서신이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하도록 하 는데 있어서 사단이 취한 계략이 무엇이었든간에, 우리는 바울의 말에서 그 가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알 수 없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의 사역을 통해서 서신 속에허락하신 가르침이 모든 교회 를 통해서 확대되는 것이 성령의!,뜻이었다는 .점을 주장하는 바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울의 글을 읽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이 :'있는데 와 같은 엄명 (adjuration)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한||:이들이야말로 :마귀보다 더 악독한 자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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