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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데살로니가전서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5:13)

1. 성경 (살전5:12~15)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2)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3)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4)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5)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  이 권면은 아주 필요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 권위에 따라서 높이 평가하기는 커녕 그것을 무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경건한 자들에 대한 멸시의 원인이다. 경건한 자들 가운데 이 배은망덕을 보고 열심이 식어가는 자들이 대다수인데 그것은 그들이 멸시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서 그들의 주인이 모독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배은망덕하게 여기는 좋은 일꾼들을 ,철수시켜버림으로써 세상을 처벌하시는데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충실하게 다스리는 자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전체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알라' 는 말은 존경을 표하라는 뜻이다. 이 말로써 바울은 교사들에게 마땅한 존경이 바쳐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체적으로 그들의 노력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데서 야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목사들을 귀하게 여기는 나머지 부르는 경칭을 여기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는 그들이 '수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무의도식자들(bellies)은 모두 목사의 숫자에서 제외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는 다음으로 그 수고의 특징으로서 너희를 권면하거나' .훈계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려므로 훈계하는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 자들은 목사의 이름을 헛되이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교황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기꺼이 받아 들이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들을 당신의 편에서 후려쳐 내쫓으신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이, 이 교사들이 세상에서 멸시를 당하고 있으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권위가 있다는 점을 들어 그들을 높여 주고 있다:
 
그는 오직 교회를 '섬기는 뜻에서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다스리는 자들에게 평범한 존경 이상의 것을 표할 그것을 당부하고 있다: 아니, 그는 '가장 귀히' 존경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데도 이것은 당연한 말이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일 때문이다, '일'(역사)이란 교회의  을바른 지도, 사람들의 영원한 구원, 세상의 회복, 그리고 한 마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이 일의 탁월성과 장려함은 값을 매길 수 없다. 그려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처럼 위대한 사명의 일꾼으로 사용하는 자들을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는 바울의 이 말에서 심판이  교회에서 위임되어 있으며 따라서 교회가 목사들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의 의도가 신자들로  하여금 목사들의 특징에 유의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면 굳이 이것을 구별해서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충실하게 가르침을 통해서 수고하고 지배하는 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말 속에는 게으르고 악한 자들에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으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 이것은 영적 지배를 지칭하는 뜻으로 덧붙여진 말 같다. 비록 왕들과 관리들이 하나님의 조정하심에 따라 공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백성들에게 교회의 통치가 인정 받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과 명령에 따라서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이 주 안에서 다스리는 자들로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배치되는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자들은 목사와 감독(praesulum)의 반열에서 거리가 먼 자들이다. 합법적인 목사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주 .안에서 다스리고 있으며 그와 전혀 다 른 면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순수한 가르 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당신 자신의 위치에 모시며 그 결과 그분만이 홀 로 주와 지도자(Lord and Master)가 되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3. 사랑 안에서(cum caritate)." ;  이것을 사랑으로 ,말미암아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은 '사랑안에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랑으 로 말미암아'나 '사랑으로'와 똑같은 히브리어 문귀이다. 나로서는 이것을 바울이 그들에게 자기들을 다스리는 자들을 존경할 뿐 아니라 애정을 가진 고대할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보고 싶다. 말하자면 복음의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것의 일꾼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은 어울리지만, '사랑으로 말미암아 존경한다' 는 말은 좀 거북한 표현이 될 것이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  이 [귀절은 헬라어 사본에서마저 여러가지로 진입혀지고 있지만 나는 벌게이트역과 에라스므스역을 따라 그들과 평화를 유지하거라, 또는 개발하거라 로 본다. 내 생각에 바울의 의도는 교인들과 목사 사이에서 쉴새 없이 (분쟁과 불화를 일삼는 사단의 간계를 저지하는데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목사들이 그들의 교회에 의해서 날마다 사소한 문제로 아니 조전혀 이유가 없는 국제도 절대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바울이 그처럼 고강력하게 추천하는 화평에 대한 욕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14.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  우리 형제들의 안녕이 우리의 공동 관심사여야 한다는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이 러한 관심을 가르침, 1권고, 교정 및 각성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은 전차만별이므로 사도가 신자들에게 이 차이점을 생각하도록 권하는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무질서한 자들, 곧 제 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권고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권고란 그들을 바로 잡는데 사 용하는 징계를 뜻하는데 그것은 그들은 더욱 더 .가혹한 대우를 받지 않고서 는 결코 회개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연약한 자들을." ;  여기서는 다른 일치방이 보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들에 게 필요한 것은 위로이기 때문이다. 역시 부추켜 줄 필요가 있다. 마음이 연약한 자들이란 상심하고 낙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요 연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은 무질서한 자들을 가혹하게 바로 잡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과 같 은 것이다. 곧 그가 무질서한 자들에게 가혹하게 나오도록 명하는 것은 연 약한 자들을 공손하게 대하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는 것과 같은 원리에서 그러므로 포악한 자들의 얼려주고 달래 달라는 요구가 허무맹랑한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이러한 병에는 이러한 처방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을 것 을 추천하는 것은 제 아무리 무질서한 자들을 다루는 경우라 하더라도 가혹성에 어느 정도 부드러운 면이 가미되어 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오래 참음은 우리가 싫어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는 셈 이다. 곧 우리는 우리 형제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지겨워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상심한 사람을 두번씩이나 위로했는데 또 다시 똑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경우에 처한다면 그는 일종의 역겨운 아니 분노를 느낄 것이요, 이것이 자신의 임무수행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권고하는 일이나 비난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즉각적인 발전을 보지 못할 경우 더 이상의 성공을 포기하고 만다. 바울의 의도는 우리가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인내할 것을 추천함으로써 바로 이러한 조바심을 제지하는 데 있었다.
 
"15.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  우리의 복수심에 대 한 강력한 성향때문에 이 훈계를 지키기가 어려우므로 그는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크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있어서 경쟁하는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해를 끼치려는 온갖 성향을 저주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다시 말해서 악으로 악을 갚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면 상처를 입히려는 모든 욕망은 나쁜 것이라는 말이다. 손해를 손해로 갚지 말고 그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라는 가 르침은 그리스도인에게 특유한 것이다. 데살로니가인들이 오직 자신들의 형제들에 대해서만 복수하는 것이 금지된 것으로 오해하는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그는 그들이 아무에게 대해서도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가끔, '뭐라고? 내가 왜 그따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짐승 같은 악당 인간에게 복수할 수수 없단 말인가 ?1하는 그럴 .듯한 별명이 들려오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복수금지 규정에는 예외가 없으므로 .우리는 우리 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누구이든 그에게 해를:끼치는 일이 없도록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항상 선을 쫓으라" ; 이것은 어느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경우 보복하 는 일을 금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다하라는 가르침이다. 물론 그는 먼저 :신자들 사회에서 친절이 오고 갈 것을 원하지만 후에는 이 것이 모두에게, 제 아무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도, 확대될 것을 권하므로 우리들이 결국 악을 선으로 갚는 일에 힘쓰게 하고 있다(롬 12: 21). :그러므 로 첫 단계는 참을성 있게 악을 복수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 ,단계는 우리의 원수들마저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