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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데살로니가전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살전5:9)

1. 성경 (살전5:1 ~ 1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1)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2)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3)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4)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5)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6)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7)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8)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9)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0)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1)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 형제들아 때와~~~~~" :세번째 그는 그들에게 '무익하고 호기심에: '때' 에 대한 탐구를 그만 둘 것을 '요청하면서 항상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마음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호기심 많은 자들이 알고자하는 사항 에 대해서 더 이상 쏠 필요가 없다는 말로써 반론을 미리 방지하고 있다.1주 님께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과 함께 그 '날을 지적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그것을 가리켜 보이시기 전에는, 그의 예언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는 과도한 불신의 징조이다. 시기의 구별이 정해져 있다면 그와 비슷한 암시에 근거해 서 날짜를 계산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의 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확실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경건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논의가 필요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신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장(school)에서 배우도록 허용된 바 이 상의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오시는 날이 우 리에게 감춰지기를 바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대망하는 가운데 경성하도록 하려는 뜻에서이다.
 
"2.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앓이라." ; 그는 캐보려고 덤비는 초조한 마음과 정확한 지식을 대조하고 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인들이 잘 알고 있다는 이 야기는 무슨 말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날이 예상 밖으로 갑자기 올 것이 요, 그 결과 마치 도둑이 잠들어 있는 여자들을 놀라게 하듯이, 불신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의 세상에 임하심을 멀 리서부터 알려주는 눈에 보이는 징조와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간 을 징조와 불길한 전조에 따라 판단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 이것은 주의 날이밤에 도 적같이을 것이 라는 비유에 대한설명이다.: 왜 이런 설명을 그덧붙이는가¡? 그것은 불신자들이 추호도 예상하지 않고 있을 그 순간에 마치<그들이 잠들 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잠의 원인 은 무엇인가? 물론 하나님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다. 이 경솔한 무관심은 최 후의 심판을 기다리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심판도 우습게 여 겨버리는 불경건한 자들에 확대해서 선지자들이 오래 전부터 지적한 바로 그것 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파멸로 위협하지만 그들은 서슴없이[ 스 스로에게 평화와 온갖 행운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치명적인 무감각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은 그들이 주님께서 일어날 것으로 말 씀하시는 내용이 당장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기들 눈 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신화로 돌리는 그들이다. 바로 이런 이유 에서 주님께서는 오만으로 가득한 이 경솔을 처벌하시는 수단으로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오시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불경건한 자들을 그들의 행 복의 절정에서 내던지시는 것이다그는 그의 조갑작스런 도래 ()에 대해서 이런 [식의 증거를 종종 허용하고 있다."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증거는 그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날을 노아의 시대에 비유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있 다(마 24:2 37) 그가 이 날을 노아의 날에 비유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 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제 멋대로 방탕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잉태된 여자에게 대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 맨처음부터 이처럼 갑작스 럽고 위태롭게 압박해 오는 고통도 없다는 점을 조생각할 때 이것은 아주 적 절한 비유이다. 그 외에 잉태된 여자 ,는 자기 배안에 신체적 고통을 주는 아기를 안고 다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재미있게 놀거나 웃거 나 (또는 잠들어 있을 때 갑자기 해산의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4: 형제들아 너희는~~~~~~" ; 이제 그는 그들에게 신자들의 임무의 성격을제 시하고 있는데 그 임무란 그 날이 멀리 있다 해도 소망 중에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이 '날과 빛 을 비유로 구택하는 의도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쾌락에 빠진 불경건한 자들에게 갑작스레 닥치는 것은 그들이 흑암에 덮여 있어서 아 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보다 더 지독한 흑암도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복음의 신앙으로 비취기 시작한 우리들 과 그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흑암이 땅을 덮지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솟아 오르시며 그의 영광이 우리에게 비취다"는 이사야 의 예언이 우리에게서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다(사 60: 2). "그러므로 그는 빛 이 사방에서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데 '우리가 잠들어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 께서 덮치시거나 우리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들을 히브리 표현법에 따라 '빛의 아들'로 부르고있 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빛이 제공되어 있다는 이뜻이요 "낮의 아들'이란 낮의 혜택을 입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하는 말로써 이 점을 확증하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우리를 여기서 구출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빛을 받은 것은 어둠 속 에서 걸어 다니도록 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자지 말고~~~~" ;그는 앞의 비유와 비슷한 것을 여기 에 덧붙이고 있다. "그는 그들이 대낮에 눈뜬 장님 고행세를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앞에서 보여 주고 여기서는 백주에 잠들어 있거나 술 취하는 것 이 형편없이 창피한 노릇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는 의의 '태양인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폐계시해 보여주는 복음의 가르침을 '가리켜 사'으로 말하 고 있으므로 그가 말하는 잠이나 ()는 자연적인 수면이나 술로 인한 취기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망각하고 경솔하게 악한 행동에 탐닉하도록 하는 마음의 무감각이다. '자지 말자 는 세상에서 무감각 에 빠진 나머지 냉용하게 되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뜻이요 '다른 사람들'이란 하나님에 대한 캄캄한 밤과 같은 무지 때문에 이성과 감각을 박탈당하고 마는 불신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깨어있자 는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자는 뜻이요 근신하자 는 우리에게 육중한 짐을 지우는 이 세상의근심을 벗어 버리고 우리의 못된 욕심을 지워버리며 아무에게도 [엉키지 |말고 재빨리인 하 늘로 올라가자, 하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유혹에-얽매이지 정도로 중용과 자제하는 가운데 이 세상을 이용하는 영적 근신이다. 
 
"8.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 우리의 무기력을 철저히 타파 하는 뜻에서 우리에게 무장을 갖출 것을 요청하며 그렇게함으로써 잠자고 있 을 때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흉배와 투구로 우리를 무장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싸워야할 전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원수에게 포위되지 않으려 는 자는 누구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서 항상 경계를 펴지 않으면 안된 다. 그는 앞에서 복음의 가르침이 낮의 빛과 같다는 근거에서 우리에게 경 성할 것을 당부했듯이 여기서는 우리가 우리 원수와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경각시켜주고 있다. 꾸물거림에는 위험이 는 또 다른 이론을 내세워 우리를 도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군인들은 다른 경우에는 제 멋대로 놀지만 적 군이 다가 올 경우에는 술주정과 모든 육체적 환락을 중단하고 경계를 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에게 끈질기게 '압박해 오고 있으며 우리에 게수천 가지의 위험으로 위협해 오고 있으므로 우리는 최소한 근면하게 경 계를 펴고 있을 필요가 있다.
 
어떤 학자들처럼 갑옷의 부분 부분에 대한 명칭을 더 교묘하게 설명할 필 요가 없는 것은 여기서 바울의 언어는 에베소서 6장14절과 다르기 때문이 거기서는 의를 흉배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단이 끈질기게 우 다. 리를 괴롭히는 나머지 우리에 대한 적개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쉴틈 없는 전쟁과 같다는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여기에 대해 .우리가 .항상 저지할 준비 태세를 갖추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우리에게 무장이 필요하다는 점 고 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무장을 잘 갖추고 있지 않을 경우 그처 럼 강력한 원수를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체 무장' (πανο πliav)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우리의 무장의 일부인[ '흉배?와 '투구'만 언 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적 방어에 관계되는 것은 아무것도 생략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신앙, 사랑, 소망을 갖춘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고 비무장인 채로 붙들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 그는 구원의 소망에 대해서 언급한 일 이 있으므로 여기서 이 이론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획득하는 것이 하나님의 결정하심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귀절을 단순히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써야한다는 뜻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바울의 의도이지만 내 판단으로는 이것을 더 넓 게 적용할 수 있을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그리스도의 날을 무섭게 여기고 있는 만큼 그는 우리가 구원 받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의도는 이것을 언급함으로써 본장을 맺는데 있다. πeptroinacs(페리포이 에시스)라는 헬라어에서는 취득이외에 '향유'라는 뜻이 있다. 보나마나 바울의 의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 니라 우리가 그것을 붙잡고 있도록 하려는 뜻에서라는 이야기이다. 왜냐하 면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미 그것을 획득해 놓으셨기 때문이 다. 바울은 신자들 앞에 승리의 보장을 제시하면서 온 정력을 다해 전투에 입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정 속에서 싸우는 자는 이미 패배 한 자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의 부족에서 야기되는 불안을 제 거하는 뜻에서 이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발견되는 구원에 대 한 보장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이 귀절에 나오는 진노는 다른 귀절에서 와 마찬가지로 버림 받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내지는 재앙을 뜻한다.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의를 들어 자신의 이야기를 확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우리로 하여금 그 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는 뜻에서 돌아가셨다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깨든지, 자 든지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것이 생명과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렇게 보 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일상적인 수면으로 설명한다해도 부적당하지는 않다.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원하고 끝이 없는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부여하려는 뜻에서 돌아가셨다 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간 뒤로 우 리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다는 그의 선언에도 전혀 모순점이 없다: 비우리를 정당신의 이몸에 접붙여 놓으신 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우리를 '소생시키며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 령께서는 의를 인하여' 생명이 되신다(롬 8 :10).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 이것은 우리가 앞 장의 맨 마지막에서 문맥에 따라 '위로'로 번역한 바로 그[단어이다. 바로 이것을ⅲ이 귀절에 적 용해도 그 의미가 잘 통한다. 그가 앞에서 .말한 [주제에는 권면과 위로에 대 한 모든 자료가 다 담겨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주님께서그들에게 부여해 주신 것을 서로 나뉘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피차 세우라'는 말은 서로 이 가르침을 확증하자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그들의 경솔함을 들어 징계하고 있다는 인상을 피하는 뜻에서 자기의 당부를 그들의 자발적 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운행하는 데 있어서 너무 지체하기 마련이므로 제 아무리 모든 면에 있어서 자발적인 사 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자극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