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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사사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사사기10:7)

1. 성경 (사사기 10:1 ~ 9)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1)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 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2)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3)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4)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7)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8)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9)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삿 10:1,2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 (1절) 이렇게 사사의족보를    자세하게 말함은, 이부분 말씀이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에 관한 것이고 사색 본위(思索本位)의 문화적 작품이 아님을 알려 주기도 한다. "돌라"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여기
없으나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종사한 것만은 확실하다(1절 상반). 어떤 학설에 의하면, 여기에 기록된 이름들이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곧,"도도"는 벌레란 뜻인데 이 세 가지가 나타내는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감사의 말씀을 표현하며 벌레 같이 자기를 낯추고 헌신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특별히 여기 세째 이름 "돌라"는 예수님의 낮아지심, 곧 벌레처럼  낮아지셔서 고난 받으신(죽으신) 표상이라고 하고,   "야일"은  밝혀주는  자(enlightener)란 뜻인데,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빛과 같이 진리를 계시해    주시는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하였다(The Numerical Bible, Joshua  To  II  Samuel,  1932,pp.230-231).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사람의 이름들을 그렇게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는것을 받기는 어렵다.


  삿 10:3,4

 "야일"이란 사사가  "이십 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서 모두 다  "나귀"를 탔다고 한다.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문은 "그들에게 삼십 성읍이 있는데"라고 번역해야 옳다. 이것은 야일의  아들  30명이성읍을 각각 하나씩 차지 하였다는 말이다.


 하봇야일(야일의 동네)이라 칭하더라(4절 끝). 이것은, 이 때에  야일이 처음으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민 32:41; 신 3:14 참조.


  삿 10:6-9

  이스라엘이 또 다시 이방의 우상들을 섬겼으니 만큼 여호와께서 그들로 이방  민족의 압제를 받게 하셨다. 그들이 섬긴 신(神)들은,
   "바알들"(가나안 신)과   "아스다롯", "아람의 신들", "시돈의 신들"(왕상 11:5),  "모압의 신들"(그모스신=왕상 11:33), "암몬 자손의 신들"(왕상 11:33; 레 18:21)   "블레셋 사람의 신들"(16:23; 삼상  5:1-5)이었다.그들이 이렇게 이방 민족의 신들을 섬긴 결과는 언제나 그들에게 이방의 압제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말한 대를,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하였다(시 16:4).

 

3. 호크마주석

1. 부아의 아들 돌라 - '부아'는 '입', '말'이란 뜻이다. 그리고 '돌라'는 '곤충','벌레'란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소사사(小士師)인 '돌라'(tola)와 그의 아비 '부아'(Puah)의 행적에 대하여서는 성경에 달리 언급된 것이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사항은 '부아'와 '돌라'라는 이름은 '잇사갈'이 낳은 두 아들의 이름과 같다는 점이다(창46:13). 이와 같은 현상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이미족보에 실려 있는 선조의 이름을 따라 지어 주던 풍습에서 기인된 것이다(묵 1:61).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창 25:19-26 강해, '이름 짓기'를 참조하라.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 돌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어떤 대적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 본절에는 아무 언급이 없다. 아마 아비멜렉으로 인한 종족끼리의 분쟁이든지(Hervey) 아니면 사소한 국지전(局地戰)이었을 것이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사밀 - 돌라는 잇사갈 지파에 속해 있으면서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살았다. 돌라가 왜 자기의 기업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혹자는 미디안인들의 압제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지만(Goslinga) 확실치 않은 주장이다. 한편 '사밀'이 '사마레이아'(* )로 변역되어 잇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후대의 '사마리아'(Samaria)와 동일 지역이 아닌가 추정된다. 아무튼 본절에서 저자가 '에브라임 산지'란 말을 덧붙인 것은 '유다 산지 사밀'(수 15:48)과 구별하기 위함이며, 돌라가 자기 기업의 땅을 떠나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 우거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2. 사사가 된 지...죽으매 - 이처럼 돌라의 업적이 지극히 간략하게 소개된 후 곧바로 그의 죽음이 언급되고 잇는 까닭은 본서 기자가 구속사(救速史)의 흐름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는 사건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그 후에 -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아하라이우'(*)는 '그 사람 다음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돌라를 이어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한 단어만으로 돌라가 죽자 곧바로 야일이 사사가 되었는지의 여부를 파악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이 말이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기 보다는 계승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르앗 사람 야일 - '길르앗'(Gilead)은 요단 동편 지역의 영토, 혹은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시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되었다(수 32:33-42). 5:17 주석 참조. 그러나 성경에서 '길르앗 가족'(민 26:29)의 후손을 가리킨다. 따라서 돌라를 이은 사사'야일'은 길르앗 원주민이 아니라 므낫세 지파 출신이다. 한편 야일(Jair) 역시 돌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소사사'로 그의 행적에 대한 별다른 성경적 기록이없다.다만 그의 이름의 뜻은 '비추는 자', 깨우치는 자'이다.

4. 어린 나귀 삼십 - 고대 근동 지방에서 어떤 사람이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5:10; 12:14). 따라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각기 자기 소유의 어린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은 당시 야일이 사사로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부와 명예를 얻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성읍 삼십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더욱 입증된다.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과거 모세 당시 므낫세의 아들 '야일'이 길르앗의 촌락들을 점령한 뒤 그곳 성읍들에 붙인 새로운 이름이다(민32:41; 신 3:14). 따라서 사사 야일은 자기 선조 '야일'이 취하여 '하봇야일'이라 부른 그 성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 결코 '하봇야일'이라는 이름이 사사 야일 당시에붙여진 새로운 지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5. 가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phus)의 주장에 따르먼 '가몬'(Camon)은 길르앗의 한 성읍일 것이다(Hervey). 뿐만 아니라 이성읍은 야일이 소유하고 있는 30성읍(4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Lange, Keil & Delitzsch). 그러나 이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갈릴리 호수 동남쪽의 '캄'(Qamm)이나 동북쪽의 '쿠메임'(Qumeim)이 바로 이 '가몬'일 것으로도 추정한다.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다시'에 해당하는 '야사프'(* )는 '증가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악순환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패역해져 갔음을 의미한다. 아무튼 본절은 사사 시대의 시대적 정황(情況)이 어떠하였는지를 여실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사사 야일이 죽은 후 그의 뒤를잇는 사사가 나오지 않으므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종교적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도 보여 준다(2:18,19).


바알들과 아스다롯 - 가나안 지방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즉 '바알'들은 가나안 당의 남성 신을 가르키며, '아스다롯'은 여성 신을 대표적으로 가리킨다. 혹자는 '아스다롯'을 '아세라'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구분된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3과 3:7 주석을 참조하라.


아람의 신들 - '아람'(Aram)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의 영토 전역에 결쳐 살고있었던 셈족의 한 부류인 아람족과 그들의 영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는 좁은 의미로 시리아 지역과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가리키는 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이를 '시리아'(Syria)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 아람 사람들은 대체로 가나안의 헷족속이 섬기던 신들을 섬기었다. 그 대표적인 신들로는 폭풍신 '아닷'과 '테슛, 그리고태양여신 '아린나' 등이 있다.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 참조.


시돈의 신들 - '시돈'(Zidon)dms enfh(Tyre) 북쪽 3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아스다롯'과 '에쉬문'(Eshmun)을 섬겼었다.그런데 이중 '에쉬문'은 두로의 '멜카르트'(Melqart)와 더불어 근동 지방에서 많이 숭배되던 '풍요의 신'이었다.


모압의 신들 - 모압의 신으로는 전쟁의 신인 '그모스'가 유명하다(민 21:29; 왕상11:7; 렘 48:7).
암몬 자손의 신들 - 암몬의 국가 신은 '몰록'(Moloch)으로, 일명 '말감'(Malcam)또는 '밀곰'(Milcom)으로도 불리웠다(왕상 11:5,7,33; 습 1:5; 렘 49:1).


블레셋 사람의 신들 - 블레셋의 국가신으로 성경에 언급된 것은 '다곤'(Dagon)이다(16:23; 삼상 5:2-7). 이상과 관련된 보다 자세한 내용은 2:11-23 강해, '고대 근동의 신들'을 참조하라.

7.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 여기에서 '손에 팔다'는 말은 '손에 붙이다'는 표현과 더불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통한 '심판의 형벌'을 나타내는말이다. 2:14 주석 참조. 한편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들어 쓰신 열국은 주로 팔레스틴 북방 지역의 민족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이스라엘 백성 중 북쪽 지역 사람들이, 곧 납달리, 아셀, 스불론, 잇사갈, 므낫세 지파가고통을 당했었다(3:8; 4:2; 6:33). 그러나 이제는 블레셋과 암몬 같은 팔레스틴 남방지역의 민족들을 들어 쓰고 계시는데, 이로 인해 이제는 주로 남쪽 지역에 사는 지파곧 유다와 베냐민 그리고 에브라임 자파가 압제를 당하게 되었다(9절). 특히 암몬 사람들은 이전에 모압 왕 에글론 및 아말렉 사람들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압제한 적이 있었다(3:13). 그리고 블레셋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한다(13:1).

8.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 - 이는 요단 강 동편에서 르우벤, 갓, 므낫세반 지파가 그 곳 거민을 쫓아내고 기업으로 취한 땅을 가리킨다. 3절 주석 참조. 한편여기서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창 15:16).


학대를 당하였고 - 이 말에 해당하는 원문의 표현은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을)흩어 압제했다' 라는 의미이다. 즉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으 힘을분산시키기 위해 혹독한 압제를 가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를 피해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것을 가리킨다.

9. 암몬 자손이 또...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 이처럼 암몬족이 아모리 사람의 땅에거하던 이스라엘 지파들을 졈령한 후 다시금 요단 강을 건너와 팔레스틴 남부를 점령한 것은 당시 저들의 세력이 한참 흥왕하던 때였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본래 이들 암몬족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자손들로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서로 화평할 수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나라는 역사상 계속적으로 심한 반목(反目)과 적대 관계를 이루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서편에서는 블레셋에 의해, 동편에서는 암몬 자손에 의해 공격받아 압제를 당했으므로 더욱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한편 '곤고가 심하였더라'에 해당하는 '야차르'(* )는 '짓누르다', '쥐어 짜다'라는 의미로 적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학대받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과거 한일 합방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압제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4. 메튜헨리목사 주석

되찾은 평화(사사기 10:1-5)

평화롭고 조용한시대가 가장 살기 좋은 때이긴 하나, 이 때는 별로 큰 일이 없어 역사가들은 별로 쓸 것이 없기 때문에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두 사사들, 돌라와 야일이 다스리던 때에도 별 큰 사건이 없었으므로, 역사의 기록에 있어서 극히 작은 부분 밖에는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물론 그들은 사사의 직분을 다하여 그 나라를 위해 일함으로써, "하나님을 영광되게 했으며" 아비멜렉과 같이 왕위 권세를 자랑한다든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그들이 차지한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1. 돌리는 아비멜렉 후에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했다고 한다(1절). 아비멜렉이 끊임없는 야망으로 백성들을 교란시키고 재앙을 초래케 하여 이스라엘을 타락시켰으나, 그 후 하나님은 이 어진 사람을 들어 쓰시어서 우상 숭배를 파괴하게 하고 폭동을 진압시키며, 또 아비멜렉의 횡포로 해서 받은 상처를 낫게 함으로써 그 백성들의 잘못을 고치게 하셨다. 이렇게 돌라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했고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는 잇사갈 지파의 자손이었으며, 그 지파 사람들은 "어깨를 내려 짐을 메는 자들로서" (창 49:14, 15) 섬기는 일을 즐겨했다. 그러나 이제 이 지파의 한 사람이 통치자가 되었다.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임을 받기 때문이다. 잇사갈의 첫 아들의 이름은 돌라였는데 (창 46:13, 민 26:23). 이 사사도 바로 그 조상의 이름을 따라갔다. 이 이름은 벌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은 선조의 이름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잇사갈 출신이었으나, 그가 다스리는 직권을 맡게 되었을 때는 에브라임 산지로 와서 거하였으며, 그곳은 그 나라의 중심부에 있어서 다스리기 편리했다. 그는 23년간 이스라엘을 평온히 다르셨으나(2절) 별로 특기할 만한 업적은 남기지 아니하였다.

2. 야일은 길르앗 사람이었으며 그 후의 계승자인 입다도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모두 요단 건너편에 있는 므낫세 반(半) 지파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은 형제들과 서로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통치권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겨가는 동안 또 그 지파가 유다에 정착하기 전까지 이렇게 서로 떨어져 있는 지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어 "부족한 지역에 더 풍성한 영예를 허락해 주셨다." 야일은 모세의 시대에 그 나라를 평정시키기에 매우 열심이었던 바로 그 지파의 유명한 사람(민 32:41; 수 13:30)과 같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야일의 중요한 업적은 그가 많은 자손을 갖고 있어 가문을 영예롭게 해 놓았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었다. "(4절)

(1) 그리고 그들은 높은 직위에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다." 즉 그들은 아버지의 대리역으로 각 곳을 돌아 다니면서 백성들을 살피는 순회 사사들이었다. 우리는 이 후에 가면 사무엘이 자기의 아들들을 사사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훌륭한 사사기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삼상 8:1-3).

(2) 그들은 각자 한 성읍을 맡고 있었으며, 그곳을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선조의 이름인 하봇야일 즉 야일의 동네라 불렀었으나, 그것들은 후에는 도성들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은 마음을 도시로 확장시켰거나 아니면 그들이 작은 몫에고 극히만족하여 서로 밀집해 있는 그곳을 성읍처럼 울타리로 쳐서 문을 해닫은 때문이었다. 작은 마을에라도 만족하는 자에겐 큰 도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