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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행7:42)

1. 성경(행7:37~43)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37)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38)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39)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40)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41)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42)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43)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37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스데반은 비록 그처럼 많은 말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그리스도는 율법의 종결이라는 사실을 이런 말로써 증명하려고 한 것이 튤림없다. 그리고 실상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누가는 그 당시에 스데반이 말한 것을 그대로 한 마디 한 마디 여기서 우리에게 말해 주려는 것이 아니요 그 주요 한 점에 유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이 장에서 말한 바이지만 이 증언은 그리스도에게 아주 꼭 맞는 일이기는 하나 다른 예언자들에게도 또한 해당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는 그 백성 들에게 대하여 이방인들의 부도덕한 미신으로 인하여 이리처리 끌려다며서는 안된다고 금지시킨 이후에 바로 뒤따라야할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마술사나 정장이들을 너희가 좋아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너희들을 충실하게 가르치는 예언자를 너희에게서 빼앗지 않으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실상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지혜의 완전한 성취를 가져오시게 될 때까지 언자들의 직무는 법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이제 확실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연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표시학는 것이다. 즉 모세가 또 한 사람의 교사를 그들 앞에 내세우고 그를 칭찬하계 될 때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만 계속 유념(留念)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연 예언자들온 윤법의 해석자였으며 그둘의 가르치는 일 전체는 모세로 말미암아 소개 되어 온 사항들에 대한 하나의 보충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모든 예언을 마무리 지으신 분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더욱 더 완전한 종류의 가르침을 가져 오셔야 했던 것이 잘 알려진 일이기 때문에 그가 최고의 지위에 앉으신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그리고 복음의 신뢰성 (fides) 이 조금도 의심받지 않게 되기 위하여 말하자면 최고의 주권직 (praecipuum magisterium)이 그에게 주장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스데반이 왜 여기서 모세의 증언을 포항시켰는가를 이해하계 된다. 즉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유일한 교사로 모세를 추켜 세우고 과장된 자랑을 하고 있는데 일찌기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악의적으로 또는 무분별하게 그를 거부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그에 못지 않게 모욕과 무례함으로 대접했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를 믿는 자들온 모세를 자기의 전령사로 하셨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다른 사항들은· 3장에서 설명된 것을 보는 것이 좋다• 

 

“38절” ;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많은 축복에 의하여 격려를 받고 있었지만 그러떤서도 악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거절하기를 멈춘 일이 없는 그러한 그들의 사악에 대해서 스데반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전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고 은해를 모르는 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놀라운 해방은 그둘로 하여금 보다 건전한 마음의 상태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제 모습 그대로 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그처럼 많은 기적이 그들의 마음에 꽂혔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눈 앞에 전개된 것은 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상 그러한 일들을 다 잊어버렸고 그래서 애굽의 미신으로 조급히 달려갔다. 그들이 바다를 건너 도망해 온 저 잔혹한 노예상태의 기억은 그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으나 그들은 자기들을 인간 이하로 잔인하게 학대하였던 저 폭군을 자기들의 해방자보다 더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완강한 불복종은 그처럼 많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도 깨뜨려지거나 극복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광적인 불신앙은 극도에 달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로 그들은 언제나 형식에 눈길을 돌렸다. 모세가 그 시절에 그들과 함께 광야에 있었다고 말한 스데반의 선언은 그들의 범죄의 흉악함을 크게 더해 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희귀하고도 헤아릴 수 없는 자비가 그들을 참아 주시는 것이 여기에 분명하다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그처럼 많은 고난에 둘러싸이고 그처럼 많은 위급한 경우에 빠져 있었을 때에 모세를 자기들의 행로의 지도자로 또는 생명의 충실한 수호자로 갖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 자신에게서 불신앙적으로 도망쳤다는 것은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그들은 들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그처럼 많은 쇠사슬로도 맘대로 다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려므로 모세가 천사의 지도와 보호 밑에서 전체 광야시절을 통해서 그들을 동어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 때의 이런 특정한 상황에서 그들의 악함이 얼마나 끈덕지고 불치의 것이었던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처럼 많온 재난으로도 또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들은 겸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온 참으로 그들의 비상하게 완강한 불복종에 기인된 것이었다. 모세는 천사와 함께 또는 그 조상들과 함께 있었다고 스데반은 말한다  그러나 그 양자와의 관계는 각각 달랐다. 왜냐하면 그가 조상들과 함께 있었던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된 그들의 인도자였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요 그가 천사와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함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둘(천사와 조상들―역자 주)에 대한 경의로도 불명예스러운 반역으로 달려가는 그 백성들을 막을수가없었을 때에 그 손상은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지휘에 가해진다는 사실이 거기서 생겨난다. 나는 이미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한 일이 있다. 그러나 ‘라룬토스’ 라 는 분사(分詞)는 뜻이 모호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모세가 그 백성을 해방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던 그 첫 환상으로도 이해될 수 있고 혹은 홍해롤 건넌 뒤에 하나님께서 모세와 가지셨던 그 말씀으로도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해방의 창시자라는 것이 양면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 어느쪽을 택하느냐 하는것은 그리 대단한일이 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그 양쪽에 손을 펴는것을 방해할것이 아무것도없다. 왜냐하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멘 처음에 그에게 말씀을 시작하셨던 그분이 나중에 그 일이 완성되기까지 자신이 말씀하신 뜻을 그대로 지속 하셨기 때문이다.


“생명의 도를 받아” ; 에라스므스(Erasmus)는 이것을 ‘산 말씀'(sermonem;訪10)으로 번역했다. 그리냐 헬라어에 능동한 사람들은 내가 한 번역이 스데반의 한말을 더 잘 옳게 표현한 것임을 인정할것이다. 왜냐하면 ‘신탁' (oracle)이라는 말이  ‘말씀'(word)이라는 말보다 더 큰 존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씀(voce; 託11)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신탁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백성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에 의하여 모세의 가르침에 권위를 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따른다. 즉 유대인들은 모세 자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실상 모세의 인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항하여 그 처럼 많이 반역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완악하고 횡포한 행동이 더욱 더 폭로된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명령받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때에 비로소 가르침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이 만 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문고 싶다. 도대체 누가 감히 자기를 모세보다 낫다고 할자가 있겠는가? 성령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신다. 즉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교훈을 충실히 백성들에게 설명해 준 그 단순한 이유로 인하여 그가 옳다는 신용이 그에게 주어져 야만 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 그는 왜 율법을 산 말씀 (sermo nem) 이라고 불렀는 가?" 를 묻게 된다. 왜냐하면 이 귀절은 바울이 말한, 율법은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 (고 후 3 : 7) 이라는 말이나, “진노를 이루게 한다" (몸 4 : 15) 는 말이나 또는 "죄의 권능" (고전 15 : 56; 証12) 이라는 말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럽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에 ‘산 말씀'이라는 것을 유효한 것 또는 인간의 경멸로써 무효화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아무런 모순도 생겨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적극적인 의미로 그것을 ‘생명을 주 는 말씀'으로 번역한다. 왜냐하면 율법이란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지도하는 완전한 기준이요 또 하나님의 의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것은 정당하게 생명과 구원의 가르침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생명과 사망의 길을 그 백성들 앞에 제시했다고(신30:19) 모세가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했을 때에 그가 한 이 엄숙한 중거는 바로 이것과 합치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20장에서 이와 유사한 기분으 로 탄식하신다. “이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로 인하여 살 것이라" (겔 20 : 13, 레 18장 5절,눅10:28)고 그가 말씀하신 그의 훌륭한 계율이 손상되고 하나님의 선한 율법이 더럽혀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자체 안에 생명을 간직하고 그러나 만일 아무라도 이 '산 말씀'이 라는 말을 효과 또는 능력이 충만한 것이라고 풀이하기를 좋아한다면 거기 대해서 나는 별로 반대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 이라는 설명에 대해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 때문에 그것에 대한 우발적인 무엇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율법이 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요, 우리 안에서 죄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 율법은 생명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타락으 로 인하여 거기서 죽음 밖에는 다른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은 오직 인간에 관해서만 죽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귀절에서 스데반은 좀 더 깊온 무엇을 마음에 지니고 있었 다.  그는 단순한 계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모세의 가르침 전체률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르침 가운데는 은혜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 실로 인간의 유일한 생명이요 구원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데반이 상대해야 했던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는 가를 상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터무니없이 율법에 열중해 있었고 또 죽은 그리고 죽음을 지닌 문자에만 애착을 갖고 있었으며 그래서 동시에 그들은 스데반에 대해서는 그가 율법 안에서 실로 그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그를 대항하여 격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던 자가~~~~” ; 이것은 그가 잘못되어 비난받아왔던 증상을 제거하는 일에 유용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율법의 멍에 아래 복종시키고 또 공공연하게 자기가 모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이상 그는 다론 사람들 가운데서 신용을 받지 못하는 일은없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그 허위 중상의 장본인들에게 자기가 받아왔던 오명(汚名)을 반려해 던져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조상들이 율법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았던 일에 대한 비난은 어느 정도로 그 민족 전체에제 공동적으로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와 동시에 모세는 자기 당대만이 아니고 그가 죽은 후에라도 후대 자손들 가운데서 그의 권위가 존속되기 위하여 예언자로 임명되었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타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이란 그 가르침의 선교자들과 함께 그들이 사라질 때 따라서 멸절된 것이요 혹은 제거될 것이라는 말은 결코 옳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불멸을 주는 바로 그 자체가 사멸할 수밖에 없다는 일보다 더 모순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이 자기들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실제로 말한 것처럼 그들은 그것을 우리를 위하여 기록으로 남겼으며 또 그 들의 가르침은 그 가르침의 선교자인 사람들에게 보다는 하나님에게 그 가르침의 창시자 되심을 돌리기 때문에 영속적으로 든든하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만일 그들에게 전해진 말씀에 대하여 어떤 반발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거부하는 일이라는 점을 그는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39 우리 조상들이 ~~~복종치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 그는 모세가 조상들에게 거절 당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왜 그들이 애굽의 미신에 스스로 몸 바치기를 좋아했는가 하는 이유를 지적한다. 그러나 그들이 최근까지 그처럼 심하게 고통을 겪 었던 땅인 애굽의 풍속과 생활을 열열히 동경 했다는 것은 하나의 무서운 현상이요, 맹목적인 광태보다도 나쁜 상태였다. 그는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요, 그들이 자기들의 마음을 그러한 타락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 타락의 회상은 그들의 기억에서 소멸되어야만 하였다. 최대의 증오와 혐오를 제외하고 말이다. 한 때 유대인 가운데서(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있었던 것은 과연 사실이지만 스데반은 여기서 그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그가 ‘그들이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들의 반역을 강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 아래 바론 길로 들어와서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고집 센 말이 주인의 기수(騎手)를 견뎌 내지 못하고 제 멋대로 진로를 바꿔서 달려가는 것과 같다.

 

“40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  유대인돌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역 행하는 계단을 밟았더라도 스네만은 여기서 그둘의 더럽고 가중스러운 반역 행위 중에서 다론어느것보다더욱현저한한예를 택했다. 즉 그들은그 때에 자신들을 위해 한 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 대신으로 그것울 예배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이러한 배은망덕보다 더 괘썸한일울상상할수 없 기 때문이다. 그둘은 자기들이 애굽에서 구출되었음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모세의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전 것이라는 사실 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와 동시에 냉담하게도 그들은 이러한 큰 축복의 창조자를 그의 사자(使者; His minister)와 함께 배척하는 것 이다. 무슨 구실로 그렇게 한 것인가? 그들이 자기들은 모세가 어떻게 되 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모세가 산 위에 울라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할 까닭은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리운 구름 속에서 모세를 자기 겉으로 데려가셨을 때까지 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직 접 모제의 뒤를 따라 보았던 것이다. 더우기 또 모세가 그들 가운데 부재하 는 것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요. 그래서 때가 오면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을 그들에게 가져오기 위하여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그들은 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칙 참시동안 조용히 기다릴 것을 모세는 그들에게 명령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런 정당한 사유도 없이 그들은 갑자기 포악한 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광란이 무슨 그 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꾸미고착색(著色)하기 위하여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하는 신들을 모시고 싶다고 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는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임재하신 표적을 전혀 주시지 않았던 것처럼 말 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날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에서 분명히 나 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악의에 찬 경멸로써 우상숭배로 달려갔는가를 알게 된다. 그 많은 기저들에 대한 회상은 제상 뭉날까지라도. 찬양을 받을 만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그처럼 짧은 시일 안에 재빨리 잊어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볼 때 그들의 배은망덕이 얼마나 창피 스럽고 사악하였는가 하는 것은 말할 여지도 없다고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한 가지 번철 사건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완악하고 다루기 힘든 백성들이 었는가를 충분히 알게 된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다론 반역의 이야기보다도 이것이 스데반의 경우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에 넣지 않으면 안된 다. 왜냐하면 그 백성들이 공공연하게 하나님 예배를 파괴하고 율법의 가르침을 거부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이방 종교를 이입하였기 때문이다. 이와는 별도로 이 귀절은 매우주목할만한귀절이다. 그것은· 모든 종류의 미신이 처음부터 거기서 홀러 나온그원천이요, 특히 우상을만들어 낸 실질적인 주요한 기원이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육체를 쓰고 있는 인간은 그 육체가 능히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방식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모든 시대에 컬쳐서 사람들이 우상윤 만드는 일에 그처럼 열광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어 느 정도 우리의 무지에 자신을 적응시키셔서 스스로 여러가지 모습의 형상 으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시대에 있어서는 하 나님의 임재를 증거하기 위하여 대단히 많은 상징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리고 오늘에는 하나님께서 제례를 통하여 또는 성찬운 통하여, 그리고 말씀 의 외적 설교를 통해서까지 우리에게 내려 오시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여기서 이중으로 죄를 범한다. 첫째로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전 수단(ordinatisaDeomediis)으로만족하지 아니하고그둘은뻔뻔스럽게도 새로운 수단들을 추구하는 일이다. 현재 그것은적지 않은과오이다· 인간들은 수단의 계 한이 없 음 (nullum modum tenentes) 을 알고서 언 제 나 새로운 발명을 하려고 종이 쑤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 신 한계를 뛰어 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정해 놓으신 그런 것율 제외하고 하나님의 참된 형상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뜻윤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社13) 어긋나게 고안된 것들은 위조된 것이다. 둘째로는 또 하나의 용납할 수 없는 과오가 거기에 따른다. 죽 인간의 마음이란 하나님에 관해서 고체적(固體的)이고 지상적인 것 이외 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의 모든 표적을 모두 동일한 실물주의 (crassitiem)로 변경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처럼 잘못되어 자기가 만든 우상에게서 즐거움을 찾고자 할 뿐 아니요, 또한 하나님께서 만 드신 것을 무엇이든지 타락시키고 망쳐서 다론 목적을 위해 사용되도록 뒤 틀어 놓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로 내 려오시는데 그러나 그가 우리를 하늘로 울리시려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 땅에 얽매어 있는 우리는 그도 역시 마찬가지로 땅에 얽매어지기 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해서 그의 하늘 영광은 더럽혀지고 또 ‘‘우 리를 위하여 신들을 만들라"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 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영적으로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러면서도그전체 사건을좀더 면밀히 고 칠하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큰 수고와 함께 만든 하나님 (Deum) 을 소유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그와는 반대로 금송아지의 형상 밑에서 참되 고 영원한 하나님윤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들은 진심으로 일치한 마음을 가지고 희생제물을드렸으며 또그들은 아론이 말한 바, ”이것은 애굽에서 그들을구해 낸 신이다" 라고한말을만장일치로 등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러한 천박한 환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시고 다만 사람들이 그의 말씀으로부터 비록 조금이라도 떨어지계 되자 마자 이방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대치되 었다는 사실을 탄식하신 것이다. 

 

“41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 왜 이 특정한 형상이 다른것들 보다 더 그들에게 즐거움이 되었는가 하는것은그 다음 귀절들에서 쉽게 추 론할 수 있다. 애굽에는 무수한 우상들이 우굴거리고 있었지만 그러면서 도가장크계 숭앙윤받은것이 소였다는것은잘알려진일이다. 그러나스 데만이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였다"는 사실 울 제외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상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일으켜 주었겠는 가? 그러나 우리는 그가 저들이  “그우상 앞에 제사하며” 라고 말한 그 연설에서의 이 부분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론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 함께 모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언명한다. 자기들은 송아지를 예배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 예배를 바꿔치기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기들은 송아지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윤 예배하려고 생각한 것이타고 말했을 것이나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만듦으로써 참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후에 뒤따르는일들은무엇이거나다우상에게 드 려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반칙적인 의식은 배격하신다 는 관겁에서 볼 때 그렇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하나 님의것인양뒤집어씌우려고하는것은헌신에있어서옳지 않은일이기 테문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이라도 하나님을 위해 세 위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금지하셨기 때문에 나중에 아무리 그의 영예를 위 해 시도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일이다.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  이 귀철은 이사야서에서 온말인데 어 떤 사람은 예언자들에게서 온 말이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모두 비슷하계 유 대 인돌에 대 하여 자기 들이 스스로 만든 것 들을 가지 고 좋아하고 있 다고 책 망하 는것이다. 그리고사람들이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특권(in rebus divinis)에 속하는 것을 자신돋이 가로첼 때에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광기 (狂氣)이다. 나는 이 ‘기뻐한다’는 것을 모세가 충애굽기 32장에서 예시해 주고 있는 의식적인 종교의 충이라고 이해한다. 어 쨌든 스데만은 우상숭배자들이 행사 하고 있는 공통된 과오룔 바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하나님 께서 규정해 놓으신 것 이외에는 종교에서 무엇이든지를 기회할 권리가 주 어지지 않았는대 그런데도 그돌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없이 만들어 내며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율 제쳐놓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스데반은 그들이 이러한 방종에서 스스로 좋아 하면 할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기분상하게 하는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의 예배가 인정받게 되기를 우리가 원한다면 우 리는 우리의 손으로 한 일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의 조작을 포기하지 않 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모두가 신성모독이요, 남용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우상이라는 말은 마치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이 비난의 대상으로 사용되는 것이 적절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조건으로도 인간이 하나님을 날조하도록 허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42~43절총론” ; 스데반은 여기서 유대인들이 범죄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고집센 과오의 킬로 멀리 방황하였으며 따라서 이 처음 내디단 발걸음이 그 들로 하여금 미로에 빠져들게 하는 전입로와 같이 되었다는 점을 가르쳐 주 고있다. 그러나그는이 때로부터 그들의 광태가중대되어 그때문에 하나 의 우상 대신에 그들이 무수한 우상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예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록 근소한 방향이라도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 즉시로 반드시 갖가지의 광태로 인하여 이리저리로 끌려다니게 되며 굉장히 많은 미신에 휘말려서 마침내는 거대한 죄의 구덩이에 몽땅 빠져 버릴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형벌을 공정하게 부과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데반은 하나님께서 “돌이키셨다”고 말했는데 이 말의 표현은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동을 둘리셨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서 그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일에 특이한 관심을 보이셨을 때에는 이를데떤 그의 눈길을 그 백성들에게 맞추셨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들의 변절을 슬퍼하시고 그의 얼굴을 다론 방향으로 돌리시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동시에 다음과같은생각을하게 된다. 즉우리는주 께서 우리률 인도하시기 위하여 지켜 보고 계실 때에 한하여 울바론 길을 따 물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 얼굴을 둘이키시면 그 즉시로 우리 는과오속으로끌려 가계되는것이다. 실상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송아지 상을 만들었을 그 시기에 하나님께 버립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스 데반은 다치 그들이 완전히 마음의 타락된 상태로 떨어졌었다고 말한 것 hI 처럼(참고몸1:28)그형벌의동렬함을지적하려고했던것이다· 그리고 바울도 이와 비슷하계 가르치고 있다. 죽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 타내실 때에 자기에게 돌려야 할 영광을 둘리지 않은 자에게는 눈이 멀고 얼이 빠지게 하며 또는부끄러운욕정으로달려가도록버려두신다는 사실이다(롬1:21 이하). 그것은 이러한 결과로 생겨난 일이다. 즉 종교가 부패하기 시작한 그 시각부터 얼마간의 미신의 자리에 무수한 협오할 만한 것들이 뒤를 이어 발생하고 얼마간의 사소한 부패의 뒤에 굉장한 우상숭배의 괴물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밝혀 주는 빛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공정한심판에 의하여 울바론 지각의 능려울 상실하였고 마타서 그들의 판단이란 야수들의 그것보다 나을 것이 없게된것이냐 실상우상숭배란새끼를많이 친다. 하나의거짓신에서백의 신이 생겨나고 또. 단일한 미신으로부터 수천의 큰 데거리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편의 무분별이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중으로써 보복하시는 그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티를지배하시는권한을잡으신그때로부터 그의 역할에는아무번동이 없고 다만 우리 자신의 무모와 변덕스러운 성질 때문에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멀리 떨어지계 한 것뿐이다.

“42 너희가 회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이 귀절은 예언자 아모스의 말에서 인용한것이다 (5:25). 스데반이 사용하고 있는어법은모든 예언이 단 한 권의 책에 집약되어 있다는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모스가 그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그 밖의 각종 범죄를 봉렬하게 책망한 다음에 유대 인들이 하나님을 거스려 반역한 일이 새로운 죄악이 아니타는 사설을 그는 첨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듈의 조상들이 이미 광야에 있었을 시절에 참된 신앙십에서 떠났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희생제물이 드터전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온 광야에서 전혀 회생제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타락한 예배를 거절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이와 똑같이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그백성들이 아무회생제물도자 기에게 드리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타이르신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타. 나는 애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눌 너는 나를 위하 여 돈으로 향풍을 사지 아니하며 회생의 기름으로 나를 홉족케 아니하고 네 죄집으로 냐를 수고케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봅계 하였느니라"(사 43 : 22-24) 하신 것이다. 확실히 유대인들은 이러한 모든 일들을 날마다 시행 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불신앙의 인간들로부터 아무런 감응도 받지 아니하셨고 혹은 인정도 하지 아니하셨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외지 에서 오느 혼잡물로 더럽혀전 것은 무엇이나 매우 중오하였다. 아모스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조상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다음에 첨 부된 말이 그들에게 혹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관계된 말일 수 있다.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 어떤 이는 반대되는 의미의 접속사 대신에 이를 연사t連辭)로 생각하기도 한다. 마치 그가 ‘‘그 러나 그 반대로 너희는 우상에게 존경의 뜻을 표시하였다"타고 말한 것처럽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사역적(使役的)인 의미로 이해될 수 도 있을 것이다. 즉 "너희가 몽록의 장막을 세웠기 때문에 내게는 희생제물 을 드리지 아니하였다”라는 뜻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그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더욱 크계 강조하시기 위하여 그 조상들을 경책하시고 그리고 나서 그들의 자손들이 각종 새로운 우상을 만들 어 냈기 때문에 여러가지 미신에 말려들어 더 많은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고자 하신 것이다. 마치 그것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한 것 과홉사하다. 즉 ‘‘오 야곱의 집이여, 만일 내가 먼 옛날 일로 다시 거슬러 울타가 너희 족속들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행동하였는가를 '말한다면 이미 너 희 조상들이 광야에 있었을 바로 그 때에 벌써 타락하기 시작하였으며 내가 명령한 예배를 파멸시킨 것이다. 그려나 너희는 무수한 신들의 무리를 불러 들여왔기 때문에 불신앙에 있어서 너희는 훨씬 조상들을 능가한 것이다" 그 리고 이러한 순서가 스데반이 말하려는 목적에 더 일치한다· 페냐하면 아미 말해 온 바와 같이 그는 다음의 사실을 증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죽이스 라엘 백성듄이 타락하여 생소하고 낮선 의식속에 빠져버린 이후에 그들의 범죄에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눈 먼 자들이 되어 거 듭거듭 새로운 우상숭배로써 자신들을 더럽혔고 마침내 그들은 불신앙의 절 정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스데만은 그 예언자의 증언을 동하여 적철하 게도 불신앙과 불복종의 조상들에게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더욱 악해지는 방향으로 급속하계 나아가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을 얻은 것이다. 결국 예언자의 말들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의미는 동일하다. 유대인둘을 향하여 이야기하였던 스데만온 실지로 예언자가 말한 바를 그들 자신 의 용어로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반복했었고 헬라어로기록한누가는헬라 거 번역을 따랐다고하는것이 가능한이야기 같다. 예언자는말한다. "너희가 너희 왕 식굿(許14)과 너희 우상 기윤(Chiun) 곧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 들어서 신으로 삼온 별 형상을 가지고 가리라"(암 5 : 26). ' nn,q(식쿨一)'_ 이라는 말은 '장막'을 의미하는 말인데 그 유사성 (類似性) 때문에 헬라어 번여온 그 특유한 의미에서 이를 보통명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나는 헬라어 역자가 멤판' (Remphan)이타는 말을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더 많 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있음직한 일이었다고 여겨진다떤 모르거니와 어다서 인용했는지 는 모론다.

 

“이것은 너희가~~~만든 형상이로다” :  예언자가 사용한 ‘형상'이라는 말온 그자체안에무슨나쁜뜻을찾을만한아무것도없나. 왜냐하면헬라어의 건7r:0~(뒤포스) 곧 형상'이타는 말도 좋온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 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모든 의례는 1:un:o,(튀포이 ; 형상)로 불리 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는 분명하계 유대인들이 만든 형상 들을 비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그리고 외적인 형식에 의하여 예배 드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율 제외하고 무슨 이유가 있겠 는가? 혹자가 만일 여기에는 별들이 언급되고 있다고 항변한다면 나는 그­ 것이 사실이타고 인정한다. 그러나 비록 예언자가 우상들에게 존경할만한 이름을 허여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타락한 예배에 대해서 날카롭고 엄 격한 비난을 하고 있음을 나는 여기서 강조할 따름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황제도주의자들의 우스광스럽고 유치한 궤변도 논박되 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숭배하고 있는 초상이나 조상(影像)들은 · 우상 이 아니타고 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미천 사람처럼 열중하는 그예배는 E&JCO- vooovAEta(에 이 코노둘—레 이 아) 곧 화상에 대 한 승앙이지  (에이코노둘-레이아) 곧 우상예배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온 자기 들의 궤변으로 하나님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평범한 상식을 가 지고 있는 사람으로는 누구나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이 그들을 극단적으로 웃 음거리가 되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계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과 말을가지고논쟁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1:un:os-c튀포스:초상)라는 말이 €CK(VlJ(에이콘 ; 형상) 이라는 말보다 더 존경할 만한 풍채가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자신윤 위하여 만들어 놓은. (1:un:o,(뒤포 이 ; 초상)는 여기서 분명히 비난되고 있는데 그것은 숭배 때문 (n:po!;' 1:7J)) JarPctav) 만이 아니 요, 어 떤 종류의 경 배 의 표시 때 문 (n:po!;' 1:1J)) n:poaJCIJlJ'Y)a,l,I)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제도주의자들이 거기에 교묘한 도피의 수단을 71- 지고 있는 줄로 생각하고 있는 그 구별이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바벨론 밖에~~~~” ; 예언자는 다메색'이타고 말했고 헬라어여에도 마찬가지이 다. 그러므로결국에는 별로 다름이 없기는 하지만 이 바벨론’이타는 말 온 착오로 여기에 끼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으 로 멀리 꿀려가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메색이 그 수도였던 수리아 왕 국에서 그들이 확실하고도 견고한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그러한 사고(思考) 의 습성 때문에 이 예언자는 다메색도 하나님이 그들을 머 멀리로 쫓아내시는 일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테면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즉 너희는 다메섹을 적을 방비하는 요새로 가지고 있는 동안 특히 잘 방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를 훨씬 더 멀리 앗수르나 갈대아로 옮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