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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4:33)

1. 성경 (행4:32~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2)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3)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4)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5)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6)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37)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32 믿는 무리가~ " ; 여기에 세 가지 사실이 찬양되고 있다. 첫째는 신도들이 모두 한 마음이었다는 사실이요, 둘째는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는 사실이요, 세째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일에 있어서 솔직하고 환기에 넘쳤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무리들이 ‘한 마음이 되었다'고 말한 다. 이것은 몇몇 사람들이 갈은 견해를 가졌었다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 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그는 교회의 신도 수가 약 5천명으로 증가하였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선언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그 처럼 큰 무리 가운데서 일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 신앙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인간들의 마음이 모두 동일한 일을 원하기도 하며 거부하기도 할 정도로 그렇게 결합되는 것이다. 불화라고 하는 것온 우리가 동일한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가 ‘마음’ 또는 ‘뜻,(영혼으로도 번역됨-역자 주)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그것온 의지를 표시하는 말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악한 자들온 가끔 합께 모여 나쁜 짓을 할 음모를 꾸미기 때문에 이 일치는 신도들 가운데 존재한 거룩하고 훌륭한 일이었다.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이것은 그들의 사랑을 대외적인 실천에서 표현한 둘째 부분이다. 우리는 조금 후에 이 런 소유물의 공유형태가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 이제 누가의 기록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 뿌리, 곧 심령의 내면적 일치가 먼처 있었고 그 다음에 결과는 따라온 것이라는 점이다. 확실히 우리도 그 순서를 지켜야만 한다. 즉 먼저 신실한 마음으로 피차 서로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사랑을 다론 사람들에게 적용함으로써 우리의 사랑이 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외적인 자선이라고 하더라도 만일 그것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적절한 애정을 가쳤다고 자만하지만 그러한 애정의 중거가 외적인 행위로 보여지지 않고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더구나 누가는 이야기가 나온 때에 다음의 사실을 지적한다· 즉 부자가 자기들의 재물을 자유롭게 분배함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실리를 생각하고 그 이상 더 나아간 것이 없었을 때 각자의 개인적 이익의 견지에서 그들은 한 마음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33  큰 권능으로" ; 이 세째 부분은 교리에 관계된다. 왜냐하면 누가는 사도들이 가졌던 복음전파의 열정이 약화되기는커녕 차라리 새로운 능력으로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에만 언급하는 것은 하나의 제유법 (synecdoche) 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전체 복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는 그것이 복음의 성취요 그리고 둘째로는 그들이 추후에 부활문제로 격렬한 논쟁을 벌렸었기 때문에 이 부활만을 말한 것이다. 또 당시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먼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 문제에 대해서 매우 상심하였기 때문이다.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그처럼 아낌없이 도와 줌으로써 낯모르는 사람들의 손에서도 호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그는 보여 준다. 또 그 일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는 일에 크게 봉사하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관대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라는 말 속에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듣의 성실과 자제, 그들의 겸손과 인내, 그리고 그밖의 더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게 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그 재물의 공유라는 것이 어떤 형식이었는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 왜냐하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빈궁을 구제해 주기 위해서 자기들의 토지와 가옥들을 팔았기 때문이다.

 

"34 밭과 집 있는 자는~~~~" ; 이 말은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는 하지만 사실온 불확정(不確定)한 사람에 대한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것은 본문의 문맥에서 추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즉시 바나바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이로서의 분명한 목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취해진 행동은 성경에서 사용된 일반적인 관용법에 따라서 그들이 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는 산도들이 자기들의 소유한 바를 전부 팔았다는 뜻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다만 빈궁한 자들의 요구되는 바에 따라서 그만큼 팔았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세부적으로 그는 다음의 사실을 첨가한다. 즉 부자들은 자기들의 토지에서 연간 수입되는 고정수입으로 형제들의 가난을 구제한 것만이 아니요 그 토지 자체까지도 아끼지 않을 만큼 그들은 관대하였다는 것이다. 그 일은 그들을 전적으로 아주 발가벗지 않고도 단지 그들의 고정수입을 얼마간 감소하는 것만으로 성취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누가의 말에서 우리가 역시 읽어내게 되는 일이다.  즉 그들이 그렇게 한 목적은 아무도 반증한자가 없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이렇게 지적한다. 즉 그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분배가 되도목 조심성있게 했다는 것이다. 재물은 평등하게 분배된 것이 아니었고 합리적인 배당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아무도 극단적인 일 때문에 괴롭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나바가 특히 이름을 들어 칭찬을 받은 것은· 그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토지를 팔았기 때문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을 능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도 모든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없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가 이로써 우리에게 분명히 지적된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의 소유를 다른 사람을 전혀 고려함이 없이 자기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사사롭게 소유하지 아니하였고 필요한 자의 요구를 따라 공동으로 소유하려는 준비가 그들에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만일 이 말씀을 읽고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철판보다도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징 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 신도들은 자기의 소유재산을 아낌없이 기증하였다· 오늘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노랭이 심정으로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요 잔인하게도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단순하게 그리고 성실하계 내놓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 취득하려고 천 가지의 간교한 술책을 고안해낸다. 그들은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왔다. 우리는 하나님께 봉헌된 물건을 신성모독적인 대담성을 가지고 횡령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 시질에 그들은 자기둘의 소유를 팔았다. 오늘에는 사들이려는 강한 욕망이 최고로 지배한다. 그 시절에 사랑이 각 사람의 개인 재산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한 공동재산으로 만들었다. 오늘에는 몰안정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땅 위에 사는것까지 시기하고 물이나 공기나 창공의 공동 이용까지 아까와하는 정도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들은 우리를 부끄럽게하고 책망하기 위하여 씌여진 것 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 사악의 일부의 책임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재산의 공동소유라는 것은 한 마음 한 뜻의 지휘 아래 신앙적인 일치가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교만이나 배은망덕이 있고 나태나 탐심이나 위선이 있어서 잘 하려는 욕망이나 잘 하려는 능력이 모두 방해를 받고 잃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갈 6 : 9) 라고 한 바울의 훈계를 우리는 기억 하여야 한다. 재세례파 사람들과 그밖의 광신자들이 이 귀절을 근거로 해서 마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재산을 사유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얼마전에 큰 소란을 피운 일에 대해서는 내가 일찌기 2장 44 절 주석에서 논박한 바 있다. 왜냐하면 누가는 하나님의 성령이 기이한 효험과 능력으로. 나타나신 그 사람들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법을 여기서 규정한 것이 아니다.  또는 자기의 재산을 전부 팔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도록 예외없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그가 말한 것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