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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베드로전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1:23)

1. 성경 (벧전1:21~25)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1)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2)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3)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4)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25)

 

2. 묵상 (Calvin선생주석)

"21. 너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사도가 이 오말을 덧붙인 것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된 것이 아니라 오 직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비추어주신 자들에게만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 다. 우리는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라는 :말에 .유의해야 만 한다. 이 말로써 사도는 간결하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있다: 하 나님은 우리의 지식이 미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믿음이 그 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 결코 이를 수가 없 다.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개입하지 아니하실 경 우,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 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의 위대성이 고려되어야만 하고, 그와 동시에 두 번째는 우리의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음이 고려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너무 나 무디고 빈약해서 그처럼 높은 위치에 서서 감히 하나님을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에 대해서 파고드는 모든 생각은 당장 에 우리의 사고들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하나의 거대한 구덩이라 하겠다, 하 나님의 이름 아래 자기들 나름대로 만들어 낸 망령을 숭배하는 회교도들과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또한 천주교도들에게서도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찾 아볼 수 있다.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objectum fidei)이라는 것은 여러 학 파들의 공통된 원리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하나님의 숨겨진 위엄에 대해서만 광범위하고 면밀하게 파고든다면 도대체 그들이 감 당할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사람을 현혹시키는 망상들에 스스로 얽매어 있어서 끝없이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믿음이란 상상적인 이 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밖에는 우리에게 알려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이같은 명 칭이 붙여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두번째 이유, 곧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시켜야만 하기 '때문에 만약 우리를 두려움에서 구하여 주실 중보자가 오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 나님께로 나아가는 일을 피하고 또 그때마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사이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미워하게 하고, 또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미워하시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관하여 언급하는 순간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 틀림없다. 만일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나아간다면 그의 공의는 마치 불과 같아서 우리를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이해에 적응시키시기 위하여 (ut se ad captum nostrum submittat)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축소시키셨다(quodammodo parvum facit).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양심을 평안케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확신을 가지고 당당히 .하나님께로 나 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이다.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 사도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든든한 기초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산리심을 받았다 덧붙인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시금 하나님을 보편적으로 [무분별하 는 말을 게 믿는 믿음을 반박하고 있다. 이는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하 나님께서는 아직도 여전히 하늘에 머물러 계실 것아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 드로는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아나하셨다면 그를 :믿는 믿음이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하나님의 뚜렷한 위엄을 보는 것 이상의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베드로는 이와같이 올바르게 말하고 있다. 이는 하늘로 들어가 그곳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발견하는 것은 믿음에 속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지도자로 모시지 제아니한다 면 어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 안 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입3:12)고 하였다.

 

그는 역시 히브리저 4장 14~16절에서도 우리가 우리 의 대제사장을 힘입어 긍훌하심을 얻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소망은 성소의 내부로 들어가는 영혼의 닻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앞서 그리 로 들어가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도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히6: 19~20). 우리의 믿음은 곧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치도와 보호하 이김이다(요일5:4). 하늘과 땅의 주이신 심 아래 두시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존되어 있는 우 리의 구원은 믿음과 소망을 입증해 줄 수 있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사망을 이기시고 이제 그의 권능으로 우 리를 보호하실 최고 주권을 갖고 계시지 않다면, 원수들의 그처럼 큰 권세와 맹렬한 공격에 우리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 리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아서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믿음을 소유하라는 말이다.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  에라스무스는 그 말을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서너희는******* 등으로 서투르게 번역 하고 있다. 스베드로는 그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곧 그들의 현재 상태나 신분 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인가를 상기시키고 있다. 원문의 분사는 분명히 '과거시제이나 말은 동명 사로서 깨끗하게 하여 혹은 깨끗하게 함으로써'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없 그 의미는 곧 우리의 영혼이 깨끗하게 되기 전에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가 없으며 이로써 우리의 깨끗함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능력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사도 는 바로 뒤에 영을 통해서` 라는 수식어를 덧붙인다. 그는 마치 너희 영혼이 깨끗하게 되어야 할 것이로되 너희로서는 이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께 맡기라. 그리하면 그 영으로써 '너희 부정을. 없이 하시리라' 하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비록 우리가 육체의 부정에서도 깨끗하게 되어야 할 필 요가 있으나 사도는 단지 영혼만을 언급한다. 바울도 역시 그린도 교회에 그와 같이 말하고 있다(고후7:1). 그러나 근본적인 부정은 내부에 있고 외 부적인 :부정은 그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베드로는 단지 내적인 부정 만 언급해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마치 그는 우리의 외부적인 행위만 바로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자체가 완전히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도는 그 방법을 지적한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하나 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진리 는 하나님께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정해 주신 역할의 의미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에서 세 서는 행위에만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서 주된 위치를 독점하고 있는 믿음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비바울은 로마서 제1.장과 마지막 장에서 특별히 우리의 믿음은 곧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가르 치고 있다. 또 베드로는 사도행전 제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  사도는 간략히 하나님께 서 특히 우리의 삶에서 요구하시는 것과 또 우리의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할 목표를 상기시킨다. 바울도 역시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홈이 없게 하시려고"라는 말로써 그 목적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보다 신중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이는 세상이 온갖 하찮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이 중요한 일은 간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황주의자들이 하나 님께서 특히 권하고 계신 궁극목표는 언제나 사랑인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날 정도로 날조된 미신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바른 생활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의 주목 을 그것에 끌고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사도는 이미 육체의 금욕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순종에 관 하여 언급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이루어 .나아가야 할 것, 곧 상호간의 사랑을 상기시킨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입증하게 되고, 또한 이 증거로써 하나님이 누가 그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 들인가를 아시게 되기 때문이다. 사도는 디모데 전서 1장 5절에서 바울이 그리하듯이 거짓이 없이었다. (dwπбкριоν[f:아뉘포크리온)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는 진실로 우리의 온 마음을 기울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 랑은 위선으로 가득차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얻을 유익으로써 그가 1남에게 보여주는 사랑 을 평가한다. 사도는 또 뜨겁게 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는 본래 우리가 나 태하면 나태할수록 더욱더 열심을 내야 하고, 또 단 한 번이 아니라 매일매 일 분발해야 되기 때문이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 여기에 권면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곧 신 자들은 하나님께로서 거듭난 새 사람이므로 그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 님께 합당한 생활을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 장에 나오는 말씀에서 젖을 사모하라는 내용의 귀절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자들은 영적으로 거듭난 어린 아이로서 이제부터 발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나야 한 다. 그러나 이 귀절은 더 나아가서 이미 앞서 다룬 내용에 대해서도 관련을 갖고 있다. 이는 베드로가 우리를 바르고 거룩한 삶으로」이끌어줄 수 있는 것들을 한 범주 안에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드로의 목적은 중생이 없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데에 있다. 이는 복 음이 단순히 우리로 듣는 데서 그치도록 전파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생명의 씨로서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도록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썩어질 씨"는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와같이 한 사도의 의도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마땅히 고예성품을 버리고 』새 사람이 사됨으로 써 단지 사람으로 세상에 태어난 아담의 자손들과 하늘의 새 !생명으로 거듭 난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가를 더욱 분명히 드러 내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헬라어 본문의 구조가 미 심쩍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또는 살아계신 하나 님의 말씀'으로 읽을 수가 있으나 .후자의 의미가 보다 무난하기 때문에 나 는 후자를 택한다. 하지만 그 용어가 이 귀절의 성격으로 보아 하나님께 적 용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만 한다. 히브리서 4장 12~13절에 하나님의 말 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도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성이 하나의 살아 있는 거울과도 같이 빛을 발하는 말씀으로 언급하고 있다.

 

"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  사도는 적절하게 앞서 한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사야 선지의 글을 (인용한다: 그 는 이 인용귀절로써 인간의 첫번째 탄생은 얼마나 :덧없고 비참한 것인가를 분명히 해줌과 동시에 또한 중생의 은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이사야 선지는 당시 교회의 회복에 관하여 말하고 그것을 예 비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교만하여질 것에 대 비하여 . 들에 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였다. 말씀이 어떤 이 해서 왜곡되고 있음을 잘 안다.어떤 이들은 그 말씀을 앗수르인들 에 관한 것으로 설명한다. 그들은 마치 이사야가 유대인들이 :시들어가는 꽃 과 같은 육체로 인하여 그처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라도 한듯이 해석한다. 또 다른 이들은 유대인들이 인간의 도움을헛되이 의지한 것에 대한 책망으로 해석을 또한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그 백성이 풀과 같다 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이 두 가지 견해를 다 반박하고 있다.

 

이사야는 분명 히 유대인들을 헛된 백성으로 정죄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유대인들에게 여 호와의 이름으로 회복을 약속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가 바로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자기 자신을 비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포로생활이 사유대인들에게는 마치 죽음과도 같은 것 이었으므로 이사야는 그들에게 하나의 새롭고 신선한 위로, 곧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명령(사40 : 2, 3)과 함께 선지자들을 보내시리라는 것을 약속하였 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고 하실 것이며 광야와 사 막에서 그리스도를 예비하도록 선지자들의 음성이 들릴 것을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 가득차 있는 끈질긴 교만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마음에서 제하여 지고 하나님을 향해 열려져야만 하므로 이사야는 베드로가 육체의 스러질 영광에 관하여 인용한 말씀을 덧붙인다. 인생이 무엇인가?  베드로는 풀이 라고 대답한다. 인생의 영광은 무엇인가? 그는 답하기를 풀의 꽃이라고 한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 풀과 같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므로 이사 야는 일종의 양보절 형식을 취한다. 그는 마치 육체가 어떤 영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 눈을 현혹시킬 것에 대비하여 그 꽃은 이내 시들 어버린다는 사실을 정녕 알라 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음에 그는 인생에게 기쁨을 주는 모든 것들의 위에 여호와의 기운이 불 때에는 그것들 이 얼마나 갑자기 스러져버리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이로써 그는 사람이 하 나님께 나오기 전에는 어떠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보이나 하나님의 면전 에서는 그의 모든 탁월함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 마 디로 말해서 인생의 영광은 이 '세상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 하늘 나라에서 는 그 설 곳이 없다는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많은 사람들은 이왕 말씀이 -다만-인간의 외 모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잘못이다. 율이는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 의 말씀과 인생과의 대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가 육체와 세 상에 속한 것만을 의미하고 있다면 그는 마땅히 하반절에서는 영혼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말을 했어야만 못했다.[2] 그러나 그가 풀과 그 꽃에 대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헛된 것밖에 :찾아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이사야가 육체와-그 영광에 ,관해서(말할 때 그는 자기 자 신과 같은 인간의 전 인격체를 지적하고 있다.이는 그의]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속하는 것을 인생에게는 돌리지아니하려는 음데에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여기서 선지자가 다루고 있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3 장 3절에서 다루고 있는 진리와 동일한 점이다. 곧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세상적이며, 쓰러질 수밖에 없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  이사야 선지는 하나 님의 말씀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 씀을 마땅히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고-있다. 인생은 그 자체 가 헛된 것이므로 그는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사야 선지의 글을 근거로 우리에게 견고하고 ,영원한 것을 가져다 ,주는것 을 말씀의 권능과 효력으로 돌린다. 이사야 선지자가 『마음에두고 있었던 것은, 곧 오직 하나님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이 생명은 말씀을 통해 서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문제아무리 연약하다 할지 라도 그는 말씀에 의해서 영원한 존재로 변화된다. 이는3.그가 새로운 피조 물로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었느니라." ; 사도는먼저 우리에게 하 나님의 말씀이 언급될 때 우리가 만일 그것이 공중이나 하늘에 있어!우리에 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게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준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것 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곧 율법이고 선지자들의 :복음이다.이 계 시의 한계를 .벗어나 방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말씀으로 대신에 속임수 와 미혹을 당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이 점을 보다 주의깊게'살펴보아야 한 다. 이는 사단에 속한 불경건한 자들이 '교활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존귀를 돌리는 동시에 아그립바와 같이 부도덕한 인간처럼 우리를 성경에서 스페어: 놓는다.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원성을 극진히 찬양하나 선지자들을 모 욕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비난한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이미 상기시킨 바와 같이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안에 숨겨진 말씀에 관하여 언급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입술에서나와 위 리에게 전달된 말씀에 관하여 언급되고 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 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셨으므로 그들의 입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대변인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베드로가 "너희에게 전한"이라고 .말할 때 그는 그 말씀은 다른 곳이 아닌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 안에서만 찾아야 하며, 또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서 2우리가 참으로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복음이 우리를 위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한다면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된다.

 

신명기 30장 12~14절에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말한 것도 같은 목적에서였다. 이 말이 베드로가 한 말과 일치된다는 사실이 로마서 10장 8절에 나오는 바울 의 .말에 의해서 밝혀지고 있다. 에 보면 바울이 우리에게 그가 전파한 것은 바로 믿음의 말씀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는 그것이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고 선언하는 외적인 전도에 대단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 시다.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사역을 사용하신다. 이 때문에 바울은 그가 복음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을 낳았다고 기뻐하고 있다 (고전4: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하나님께서 그들 의 수고에 복 주시기를 기뻐하실 때에는 언제나 그의 영적 권능으로써 그들 이 전파하는 복음이 효력을 나타내게 ,하시며, 사라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음 성 자체는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하나의 불멸의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