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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요15:2)

1. 성경 (요15:1 ~ 8)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1)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2)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3)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6)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7)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 이 비유의 핵심은 이것이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져 그에게서 새롭고 다른 힘을 끌어 들이기 전에는 우리는 본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른나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모든 비유에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특성을 낱낱이 조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에 적용하시는 목적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마땅하다. 여기에는 세 가지 주요 부분이 있다.

 

첫째, 우리에게는 그에게서 오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

둘째, 우리가 그에게서 우리의 뿌리를 박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전지하시며 키우신다.
셋째, 그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제거하셔서 그것을 불에 던지며 태워 버리신다.

 

모든 선한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점을 뻔뻔스럽게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들에게 허락되는 보편적인 은혜가 마치 그들에게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중요한 수액을 자신에게서만 흘러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 본성에는 열매가 없으며 모든 선이 결핍되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인간이 그 안에 접붙여지기 전에는 그에게 포도나무의 본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것은 특별한 은혜를 통해서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허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를 그의 손으로 심어 주시며 모든 축복을 주시는 주이신 아버지이시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볼 때 생명의 시작은 그리스도 안에서 비롯된다.

 

”2 무릇 ~~~~가지는” ;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모든 나무에서 제거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불안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럽히는 사람들이 있느가 하면 그것을 악의적으로 억제하거나 태만으로 그것을 질식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보기에는 포도나무 안에 잇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포도나무에 뿌리를 박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무룻 과실을 맺는 가지는” ; 이 말씀으로 그는 신자들이 타락하지 않으려면 계속적인 재배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항상 같이 계셔서 일하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 은혜를 베풀지 않을 경우에는 우리가 입양의 참여자가 되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하다. 전지 하는 문제가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육신은 필요 없는 것들 해악스러운 것들로 가득할 뿐 아니라 그 분야에 있어서는 비옥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한없이 뻗어 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기 위해서는 포도나무들이 전지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으로써 그는 경건한 사람들의 경건한 생활에 있어서 어떠한 진전이 필요한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다.

 

”3 너희는 ~~~~이미 깨끗하였으니” ; 이것은 그들이 이미 그의 말씀하신 바를 체험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분 안에 심겼으며 또한 깨끗하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청결한 방법으로써 가르침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서 우리 마음에 작용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의도는 사도들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그들의 체험을 그들에게 제시함으로써 거기서 은혜의 지속이 얼마나 필요한가 하는 점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은혜의 열매로서의 복음의 가르침을 강조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이 은혜를 계속적으로 생각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은혜는 마치 불결한 것을 청결케 하는 정원사의 칼과 같기 때문이다.

 

”4 내 안에 거하라~~~~~” ; 그리스도는 다시 제자들에게 그들이 부여받은 은혜를 지키는 데 정성과 열심을 품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이것은 육신에 대한 격려에 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의도는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우리를 보호해서 우리가 무관심에 이끌려 가거나 파멸의 길로 덤벼드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가 도중에서 그만두려고 우리의 구원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뜻에서 우리가 성령을 훼방하지 않는 한 이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서 감화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약속하고 있다. “내 안에 머물라 나도 너희들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하겠다”라고 그는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는 “저가 내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하는 말씀을 계속하고 있다. 이 말씀으로 그는 그에게 산 뿌리를 박고 있는 사람은 모두 열매가 풍성한 자들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

 

”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이것이 전체 비유의 결론과 응용이다. 우리가 그에게서 떠나 있는 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은 우리에게는 도무지 선한 일을 할 자질이 없기 때문이다.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 그는 또 배은망덕의 처벌에 그들의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인내할 것을 자극하며 격려하고 있다. 이 인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선물이지만 여기에 두려워하라는 권고가 필요한 것은 우리의 반역적인 육신은 우리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말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잠시 동안은 그럴듯하게 잎이 무성하며 또 풀잎이 만발하지만 후에 정작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에 가서는 주님의 소망을 꺾고 마는 위선자들이 많다.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 신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풍성한 열매를 내는 풍부한 자양분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빈곤한 것처럼 여길 때가 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든 그들이 그것을 하나님에게서 구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빈곤에 대한 대비책은 언제고 마련되어 있다”하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열성을 훈련시키시려고 종종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아주 유익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 ; 이 말씀은 우리가 신앙으로 그의 안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하는 뜻이다. 우리는 복음의 가르침에서 떠나는 순간 그리스도를 다른 곳에서 찾는 셈이다. 우리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은 우리의 무절제한 요청을 다 들어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욕망에 빠지고 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구사항을 그처럼 풍성하게 양보하신다면 그는 우리의 구원을 잘못 관리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올바른 기도의 원칙에 제한하고 있다. 그의 백성은 육신이 어리석게 열망하는 부와 영광,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을 원하지 않고 열매를 내는 성령의 진액을 원한다는 것이 본문의 의도이므로 앞서의 주장은 문맥의 확증을 받고 있다.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 이것은 앞의 문장의 확증이다. 곧 그는 여기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기도는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하는 것임으로 들어주시고 만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목적 내지는 결과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속에 선을 행하려는 욕망을 불어넣어주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서 영화롭게 되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우리에게 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곧 그의 양무리 가운데는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다는 점을 그는 밝히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