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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8)

1. 성경  (요 14: 15 ~ 20)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5)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6)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7)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8)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19)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0)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 ; 제자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참되고 진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흔히 그럴듯이 이들의 사랑에는 어딘가 미신적인 것이 있었다. 곧 그들은 그를 이 세상에 붙잡아 두고자 했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잘못을 교정하는 뜻에서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사랑을 재 정립할 것을 곧 그가 그들에게 주신 계명을 준수하는 일에 집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올바르게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참으로 유용한 가르침이었다. 아니 시시한 짓거리를 해놓고 자화자찬하며 기만에 빠지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참사랑은 그의 가르침을 유일한 척도로 지킬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인 순수한 순종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에는 흠투성이이므로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죄악스러운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경고를 받고 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 그는 그들이 그의 부재중에 느낄  슬픔을 달래는 뜻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권고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 ㄴ당장 비록 그가 몸으로는 떠나 있겠지만 그의 영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도움이 없이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성령을 가리켜 “아버지의 선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의 기도를 통해서 얻을 선물이었다. 다른 곳에 보면 그가 손수 성령을 주시마고 약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가 하면 그는 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은혜를 직접 베푸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두 말씀은 참되고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의미는 “아버지께서는 나를 너희들에게 보혜사로 주셨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나의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다른 보혜사를 그것도 잠깐 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너희들과 함께 있을 보혜사를 주십사 하고 기도할 것이다”하는 내용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이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백성에 대한 보호자였으나 그 후에는 그들을 성령의 보호와 지배에 위탁하셨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지 않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리스도는 계속적인 보호자이지만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방법을 이용하지는 않고있다. 그가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는 그는 자신을 그들의 보호자로 공공연하게 드러내셨다. 이제 그는 그의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

 

“17 진리의 영이라” ;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진리의 스승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가 그를 통해서 내면적으로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마음은 허영과 거짓에 휘말려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그의 의도는 세상이 빼앗기고 있는 은사가 보통 은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대조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받은 백성들에게만 베푸시는 은혜의 탁월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도 60장 2절에서 “보라 이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나타나리니”하는 말을 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특권을통해서 교회를 온 세상보다 뛰어나게 하실 때 그의 교회에 대한 자비는 더욱 더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 주시는 분은 우리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 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는 알려지지 않은 그대로요 이해 할 수 없는 그대로 남아 있다.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 이 귀절은 성령의 보호를 받지 않는 인간의 상태와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한 인간은 온갖 종류의 시기와 불공평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스스로는 자신을 지배할 수 없는 한 마디로 말해서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없는 고아인 것이다. 그와 같은 엄청난 연약성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제자들이 그들의 연약성에 대해서 지적받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불신하고 그리스도의 보호를 의존하게 하려는 뜻에서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대비책을 약속하는 것이요 그들에게 그에 대한 소망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너희에게로 오리라”하는 말씀으로 그는 그가 그의 백성들 속에 거하시며 만물을 충만케 하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명백하게 된 것은 성령의 은혜가 그의 신성에 대한 뛰어난 증거라는 점이다.

 

”19 조금 있으면” ; “내가 세상이 보기에는 물러 가지만 그러나 너희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하는 말씀으로써 그는 앞에서 말한 특별한 은혜를 계속 추천하고 있는데 이것으로 제자들의 슬픔이 누구러지거나 아니면 완전히 제거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비밀한 모습을 향유하려면 우리는 그의 임재나 부재를 육적인 안목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신앙의 눈으로 그의 능력을 계속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은 비록 그들이 육체적으로는 그와 멀리 있지만 항상 그의 영을 통해서그리스도의 임제를 누리며 그를 바라보게 된다.

 

”이는 내가 살았고”  ; 이것은 우리가 두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곧 이것은 앞절의 확증으로 볼 수도 있다. 나는 전자의 의미로 생각한다.

 

“20 그날에는 ~~~~” ;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오순절날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적 능력을 제시하는 시간부터 최종적인 부활까지를 하루로 계산 할때 그동안의 끊임없는 과정을 지시한다. 이 귀절의의도는 우리가 쓸데 없는 사변을 통해서 우리와 그와의 성스럽고 신비한 연합 그리고 그와 아비지와의 연합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가 성령의 은밀한 효력을 통해서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쏟아 주실 때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서 말한대로 신앙의 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