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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1. 성경 (요15:18 ~ 2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8)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19)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0)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1)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2)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3)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4)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5)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6)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27)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전투 무장을 시킨 다음에 인내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복음이 전파될 경우 세상이 왈칵 뒤집혀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교사들이 세상의 증오를 피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미리 예고하시는 것은 전투가 발생했을 경우 그들이 풋나기 신병들처럼 원수를 보기도 전에 겁을 집어 먹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뜻에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결코 새롭거나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경고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본을 통해서 그들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이것은 그가 세상의 미움을 받는데 그의 인격을 대표하는 우리는 세상의 총애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 ; 그들이 세상의 미움을 받는 것은 그들이 거기서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진정한 행복과 영광이요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파멸에서 구출을 받았다. “택하다”에는 “구별하다”는 뜻이 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그들이 이 새상의 일부였는데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 그들이 멸망받은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 나타난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는 세상이란  하나님의 영으로 중생되지 않은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제17장에 가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는 여기서 교회와 세상을 대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블어 화평하라(롬12:8)”는 바울의 권고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덧붙이는 말씀의 내용은 우리에게 올바르고 적합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는 가운데 아무도 세상을 기쁘게 하려 하거나 그것의 타락에 굴복하지 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20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것도 “너희들은 ~~~~기억하고 있다”하는 식의 직설법으로 읽을 수 있지만 의미상의 차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명령법이 더 나은것 같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증오를 사는 것은 그가 그의 제자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대한 확증이기도 하다. 종들의 상태가 그의 주인의 상태보다 더 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동시에 그의 가르침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에게 속하는 가르침이 인간들의 멸시를 받는 것을 보는 것보다 경건한 자들에게는 더 슬픔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끔찍한 것이요 제 아무리 건장한 마음이라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나님의 아들 자신도 그에 못지 않은 오만의 저항을 받으셨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가르침이 인간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볼 때 별로 놀랄 필요가 없다.

 

”21 그러나 사람들이 ~~~~하리니” ; 세상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그 복음 자체에 대하여 그렇게도 맹렬한 분노로 대적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그 이유를 사람들이 맹목적인 무지에 이끌려 파멸의 길을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에게 반기를 들려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세상이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이 무지와 어리석음이 세상에 가득차서 그리스도께 대적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행동의 이유를 항상 명심하는 가운데 멸망하고 말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빛을 허용하셨다는 점에서 우리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22 내가 와서 ~~~~ 아니하였더면” ; 그리스도가 선하고 신실한  교사의 직무를 수행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성공하지 못한것은 그들 자신들의  악으로 인하여 올바른 마음을 지닐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우기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자신들에게 제공될 때 그것을 배척하거나 또 그것이 알려지게 될때 거기에 자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고자 하셨다.

 

”죄가 없으려니와~~~~” ;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으로 그들에게 불신앙 이외에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뜻을 비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곧 그는 신앙은 모든 죄악을 용서하고 도말하는 만큼 정죄받는 유일한 죄는 불신앙이다. 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불신앙이 인간으로 하여금 사망의 정죄에서 구원받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을 뿐 아니라 모든 악의 샘과 원인이라는 점에서 볼 때 이 말은 옳다. 그러나 이 모든 추리는 본문과 아무러 관련이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타나 있는 ‘죄’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기서 문제 삼고 있는 주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무지를 결코 핑계로 내세울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악하게 배척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혐의 받아 오던 한가지 범죄를 용서 할 경우 그를 가리켜 정직하고 의롭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용서가 한가지 죄악에만 국한되는 것은 그것 때문에 복음을 멸시하고 증오하는 유대인들의 무지에 대한 핑계가 제거되기 때문이다. 

 

“23 나를 미워하는 자는 ~~~~~” ; 이 유명한 귀절에서 그는 누구든지 복음의 가르침을 증오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드러 내는 셈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에 대해서는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선한 예배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그들은 속으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자들인 만큼 쓸데 없는 짓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가르침의 빛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의 위선을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24 내가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 여기서 말하는 ‘일’속에는 그가 그의 거룩한 영광에 대해서 보여 주신 모든 실예가 포함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곧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많은 기적, 성령의 능력, 그리고 다른 실예를 통해서 보여주셧으며 그 결과 제 1 장에서 취급했듯이 독생자의 위엄이 그에게서 분명하게 들어났다. 

 

“지금은 ~~~~미워하였도다” ; 이것은 그의 원수들이 명백하게 신령한 것으로 드러난 그의 능력을 멸시하고 있는 만큼  여기서 발뺌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25 그러나 이는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보다 더 이치에 어긋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어찌나 큰 악의에 젖어 있었던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나님을 미워하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시편 35편 19절의 인용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이 지금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26 보혜사~~~~오실 때에” ;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아니 교회 자체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복음을 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당부하시고 나서 성령의 증거와 그런 사람들의 불경건한 광포를 대조시키고 있다. 그들의 양심이 이러한 사실의 지지를 받을 경우 그들은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27 너희도 ~~~증거하느니라” ; 그리스도의 의도는 성령의 증거란 사도들만 개별적으로 소유하가나 그들만 독자적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성령의 도구가 되어 그의 입노릇을 하면서 이것을 널리 퍼뜨리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