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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로마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

1. 성경 (롬 10: 1 ~ 4 )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1)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2)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3)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4)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 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의 사람인 바울 사도가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얼마 나 걱정하며 조심했는가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버림받은 것에 대한 그 의 해석은 그들의 귀에 거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귀에 거스르는 것이 덜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앞에서처럽 그들에 대한 자기의 선의를 확연하 고 있다. 바울은 이갈은 자기의 선의를 입증함에 있어서, 그들의 구원이 주 님 앞에서 자기의 지대한 관심사이었다고 하는 점을 들고 있다• 그갈은 마 음은 가식없는 사랑에서 만 일어날 수가 있는 것 이다• 그가 동족에 대한 자 기의 사랑을 아마도 다른 이유 때문에, 확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은, 만일 그들이 자기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을 경우는 그의 교훈이 유대인들에 의해서 결코 용납될 것 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변철은 유대인 들에 의해서도 의심을 받았을 것 이다. 왜 냐하면 우리가 앞장에서 언급한 대로, 그가 율법을 버린 것이 사람들을 미워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방인 들이 생각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십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 이 아니라·" ;  이 귀절의 말씀의 목적은 그의 마음을 유대인들이 신뢰해 주 도록 하려는데 있었다• 바울이 미움보다는 동정심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대 한 대 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타락한 것은 다만 무식한 때 문이었고, 마음이 사악한 때문이 아니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었다. 또한 특히 하나님께 대한 열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왕국을 유대인들이 핍박하게 되었었다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 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선의를 좇을 경우,· 그 선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향하게 될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책망을 들을 때, 자 기에게 악의가 없었던 것으로 그가 말할 것 갈으면, -대개 가장 적절한 변 명으로 간주해 준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갈은 구실을 내세워 하나님 의 전리를 찾아내는 대 전심전력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고의적인 악 의가 없이, 다만 알지 못한 까닭에 선의로 저지론 과실온 어떤 것이나 용 서 받을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중에 아무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잔인무도하게 사도들을 학대하고, 그리고 복음을 파괴하여 없애버리려 했던 것을 용서 할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나그들도 우리가 자랑삼아 내세우는 것과 똑 갈은 구실-'악의는 없었다’ 또는 '몰라서 그랬다’ 라고 말하는 것 따위 -울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의에 대하여 적 당히 얼버무리 려 하는· 그갈 은 빈 말들은 다 집어치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중심에서 찾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에게 가는 정도(正道)를 좇아가야 할 것 이다. 어거스탄이 말한 _대로' 탈선하여 전력질주하는 것보다는 정도로 느릿느릿 가는 것이 더 낫다. 만일 참으로 경건하고자 할 것 같으면, 락 란티우스(Lactantius)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전리―유일하고 갑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를 기여하기 바란다. 그러 나 다론 한편으로,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하는 자들이, 비록 그들이 선의로 그렇게 방황한다고 할지라도, 멸망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가 영두에 두 어야 할 것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우침을 받온 후에 , 알 면서도 고의적으로 하나님 의 정도에서 벗어 나 방황할 것 갈으면 수 천번을 죽어 마땅하다는 점이다.

 

"3. 하나님의 의틀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틀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 유대인들이 맹목적인 열심 때문에 어떻게 결길로 나아가게 되었는가를 유의하라.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를 세우기를 원했 다• 그들의 어리석온 자만은 하나님의 의를그들이 알지 못한대서 비롯되 었다•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가 대조되어 있는 점에 또한 유의하라. 우 삼 이 둘이 서로 상반되는 까닭에 함께 양립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는 때에는 즉시로 하나님의 의가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 유형의 의를 대웅시키기 위해서, 바울온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의를 ‘하나님의 의’라 칭하는 한편,l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거 나 또는 그들이 하나님께 로 가지고 가는 것으로 믿는 것을 인간의 의라고 창하고있다 • 그러므로 스스로 의롭다 합 을 받고자 하는 자들아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 를 얻는 첫 단계가 우리 자신의 의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데 에서 의를 구해 야 하는 이유는, 우리 에게는 · 의가 없음으로. 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인 것 이다. '"'{ 우리는 앞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마암아 하나님의 의를입게 되는가에 대해서 전술한 바 있다.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에게 전가되는 것 이다. 바울은 선지자들을 우쑬대게 하는 자만을, 비록 그들이 열십을 가 장하여 그것을 숨기고있지만'통통렬하게 비난한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의 멍에를 벗어버립으로 해서 그들모두가하나님의 의를대적하며 반항하 고 있다고 말한다. , I· 1 11 I I I I I훈~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 . 에 라스무스가 번역한J t.Jl 로~ .마침 ’ 또는 '완성 ’ 이 라는 단어 가 본문에는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이문(異文)도 거의 보편 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또한 아주 적합한 것 이므로, 독자들이 그것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서 사도 바울온 그를 반대하여 제기될 가능성이 있었던 반론을 반 박한다• 유대인들온 정도를 추구해 온 것으로 보였을 가능성이 있었다.왜 냐하면 그들이 율법의 의에 전십전력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로 서는 이갈은 유대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논박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여기 서 이갈은 논박을 함에 있어서, 그들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합 율 받으려고 힘쓰는 자들이 율법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자들인 것은, 율법 이 우리를 다른 의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주어졌기 때문이라는·것을 밝 힌다. 사실, 율법의 모든 교훈과, 모든 명령,' 모든 약속온 연재나 그리스 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1 율법의 모든 부분율 그리스도에게 ·적용 시켜야하는것이다•그러나우리가이렇게 할수있으려면, 먼저우리자 신의 모든 의를 벗어I 던져버리고,I 우리가 지온 최악들을 깨닫고서 굴복 되어야 하고, 또한 공로 없이 거저 주시는 의를 오칙 그에게서만 구하게 되는 때 에 가능하게 된다. 유대인들온 율법을 크게 악용하였다 그리고 그들온 악을 행합으로 해서 그들에게 도움을 수도록 되어 있었던 것들을 오히려 거침들이 되게 하였 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비난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감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부끄럽게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이 분명한 것은, 그들 이 율법의 핵십과 정신은 거부하고서 죽온 문자만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 이다. 율법온 그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상급을 약속한다. 그러 나 율법에 의 하여 모든 사람들이 최있는 것으로 입증된 까닭에, 그것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의를 대신해 왔다. 그 의는 우리의 행위의 공로에 의하여 얻 어지는 것이 아니고, 값없이 주어지는 까닭에 믿음으로 얻어지는것아다.이갈이 믿음의 의fl장에서 우리가살핀 대로n=-율법에의하여 증거된다. 본문의 말씀에 의하면, 율법의 모든 부분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꾸준하게 노력하여 율법이 목표로 하는― 그리스도에게 이르지 못하 는 자는 아무도 율법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