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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로마서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3:30)

1. 성경 (롬 3:21 ~ 3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1)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2)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4)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5)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6)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7)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8)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29)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0)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21 이제는 율법 외에" ;.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의를 바울 이 왜 ’하나님의 의’ 라고 칭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것온 그 의로 써만이 하나님 존전에 설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수님께서 그의 궁훌 로 그것을 우리에게 수신 까닭인지 확실치 않으나, 이 두 해석 모두 적합 할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를 지지하여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하냐께서 인간에세 교통하여 주시고, 그리고.그것만을 의로 받으시며 인정하시는 이 의가 '율법 의에' ( apart from the law ; 율법과는 별도로 ) 즉, 율법의 도웅 없이 계시되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여기서 율법은 행위 (works)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있으며, 교훈(teaching)을 가리키는 것 으로 보는 것은 적철하지 않다. 왜냐하면 바울이 하반절에서 곧장 율법을 믿음의 값 없는 의에 대한 중거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I율법’을 단지 의식(儀式)들에 국한시키는 것온 무의미하고 융통성이 없는 것이라는 점을 앞으로 곧 내가 밝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로 말미암온 공로 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바울이 행위를 하나님의 궁휼 과 혼동하지 않고 있으며, 행위에 대한 모든 신뢰를 제거하고 근절하여 궁 훌만을 확립해 놓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어거스탄이 다론 해석을 내린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생각 하기울 하나님 의 의는 중생의 온혜요, 그리고 아무런 자격 이 없는대도 우 리를 하나님께서 그의 성 령으로 새롭게 하신 까닭에 이 온혜는 값없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하나남의 의에서 율법의 행위를 배제한다. 즉, 거 듭납이 없이 스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 공로를 세워 잘 보이려고 노 력하는 그러한 행위들을 배제한 것이다. 어떤 현대 이론가들이 마치 이 교 리가 바로 지금 그들에게 계시되었기라도 한 것마냥 이 교리를 자랑하여 예증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 나 문맥상으로 보아 사도가 예외없 이 모든 행위들, 심지어는 주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서 열매 맺으 신 행위 일체를포함하고 있다는것이 분명하다.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령으 로 말미 암아 중생 되 었고 인도함을 받았었 다.

 

그러 기에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로 말미암아 의몹다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러므로 바울은 인간이 받는 칭의(稱義)를 말할 때, 타고난 본능에 의해서 행하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 뿐만 아니 라 선자들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선 한 행위들까지도 일체 배제해 버 린다. It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 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 : 1 ) 라는 이 말씀이 만일 믿음의 의의 정의가 될 수 있다고 한다연, 행위의 종류는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 다. 그리고 행위가 갖는 공로가 페 기되고, 다만 죄가 사함 받는 것만이 의 의 원인이 될 수가 있다는 것 이 확실해진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through) 믿음으로 말미암아(by) 의 롭다 칭함을 받는 것과 그렇지만 그는 영적 중생에서 비롯되는 행위로 말 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이 두 명제는 완전하게 일치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값없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는그의 은사를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디다니그러 나4으바울은 아주~c_ 샘다릅 원리 를국장하고 있는데, 그것은-~즉」인갚의 양심온..하냔납의고궁훌탑을 ,의 저할때에라야비로소평화를 누릴3令 있게 된다는것이다ts바울운 다른 서신(고후 5 : 19)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의롭다칭하기 위해-서 그 리스도 안에 계셨다고 가르치고 나서,(그의 칭의의시방심율 밝힌무 있려다. 즉,: "저희 최를 저희에재 둘리지,J않으심"으로 해서 의롭다칭함 받게,,해 주신다는 것이다.-이와 갈은 식으로,스바울온 그의 갈라디야서에선 칭윈위 결과와 관련하여 율법을 믿음과 대립시켜 놓았다<왜냐하면 울1법온:~:9-짓 이 요규하는 바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약속하고(갈,,2 1)6~;·+립_ 고 의적으로 나타난 행위의 열매들 뿐만 아니 라 하나남에' 대한 전실합사 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위의 공로가 믿음의 의를잔걷는 데는 아무런 소용도없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리가‘ 그리 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성령 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기 때문이며,, I우리가 믿음으로 말미?냐야z혼의롭다』합 을받는 것은, 우리는 믿움으로 알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에:민할되-아있기때문이고,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는-우리에j 게서 죄 의에는 아무 것도 발견하자 못하시기 때문이라는켜흰 높법은나거 리석온반론임에분명한듯하다• • . r•.~;, '_ '" ‘ · 44 ' 1 I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우리가 자、신우루부터 : 밖 으로 나와 있는 까닭이요, 또한 ·우리가 "믿음 안에"있i는것:온,유우리간 하 나님의 궁훌만을 의지하고 그리고 그의 값없는 약속들을 짚뢰;하는_ 까닭 이며, 그리고 우리까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의 최들을 칫장사지냄으로써 우리를 그에게 화목시켜` 주시는:..'까닭이다 •. 이것은, 어떤 수석가들이 어리석계 주장하는대로, 청의의': 시작에 국 한될 수가 없다. 왜 냐하면, ."그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와 가리움을' 받은._자는볶이 있도다”는 말씀은 다윗이 오래도록 하나님을` 섭기고,그 리고 그에게서 산양의 연단을 받은 끝에 고백한 말씀이기 때문1이다. 그리 고 아브라합의 경우를 보면;' 비독 그는 성결 면에서 보기 1드문 모법이지만 그가 부르심을 받은지 30년이 되었어도,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만한 아무런행위가 없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그의, 믿읍으 로 말미암아'그에게 의가 전가되었던것이냐• 바울은·우우리에게, 하나님 께서는「사람들의 죄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그 최들을c·-사해 주심으로써 '사 람들을 의롭다 칭해 주신다고 가르칠 때:, 교회가 일상적으로 거듭 사용하는 성구를 인용하고 있다. 양심의 평화는 행위 때문에 방해들 받으나, 그 평화는 하루만 있다가 없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계속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결론지을 수 있는 것온,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 볼 때에만 의몹다함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 런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생을 두고 바라보아야 할 그리스도 안에서 우 리를 양자로 삼으셨고, 그리고 지금은 우리를 받아들여전 것으로 간주해 주신다. 배 타적 소사(小詞)인 "오직 ……만'(the exclusive particle "alone") 울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여, 우리가 성경대로 오직 믿음으 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하여 우리를 그릇되게 비난하는 사 람들에 대해서는 이와 같온 논증에 의해서 논박이 가능하다. 그러나 만일 칭의가 율법에게도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게도 달려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궁휼만으로 된 것이라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만일 그 칭 의가 궁휼만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으로만된 것이다. ’이제는'(now)이라는소사는 •. ,그러나"(but)대신에 혼히 사용되는 것 으로, 시간적인 개념 없이, 단지 반의적(反意的)으로만 사용되는 수가 있 다. 그러나 만일 시간적인 개념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된다고 한다면 (그 리고 나는 회피한다는 의심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 이 인정 하는 바이다), 의식들만이 폐 기된 것으로 이해되어져서는 안된다• 왜 냐하 면 사도가 의도하는 바는 우리가 구약의 선조들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는 온혜를 비교해서 설명하려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의미는, 믿음의 의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후 복음의 전파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었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강림이 전에는 그 믿음의 의가 감취었었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중으로 드러났던 것으로 여기서는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 첫째 것은 말씀과 성례(sacraments)로 되어 있던 구약에서요. 둘째 것은 의식 들과 약속들에 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전 그것들의 성취를 포함하 고 있는 신약에서이다. 여기에 더하여 복음으로 말미암아 보다 충분하게 명백하여전 것이다.

 

"율법파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  바울이 이 말씀을 부언하 고 있는 것은, 복음이 값없이 의를 주는 데 있어서 율법과 반대되는 것으 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의는 율법의 도움을 필 요로 한다는 것을 바울이 부인했던 것처럼. 이제는 믿음의 의가 율법의 증 거에 의해서 화츠되다는 것을 그7 }-주장한다. 그리고 만일 율법 이 값 없는 의를 중거하고 있는 것이라면,'하나님께서广율법을 주신것은:-:사람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자력(自力)으로 의를 얻는: 방법을 가르치가 위함이 아니 었다는 것아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목적에다 율법을 여지로 갖다 붙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곡해한다. 그러나, 만일 이·전리에 대한-~중거를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면, 모세의 굴의'수요한 요점들을 순서대로 검토해 봐야한 다. 그렇게 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발견케·된다. 먼저 사람은·하나님 의 나라에서 츄방당한 이후 오직 한 가지의 회복의 수단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케 된다. 그 수단은 복된 씨(the blessed seed)에 관한 복음 적인 약속들에 함축되어 있었다• 그런대 그 약속들에는, 그:복된씨로 말 미암아 뱀의 머리가 상하게-되며, 그리고 그'안에서 축복이 열국(列國)에 재,~'약속되었던 것으로 예언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계명들에서「우라가 부 정(不淨) 하다는 증거를 발견케 되며, 또한 희생제물들과 제물들에서, .. 속 상( 讀償; satisfactioJl)과 정 결 ( 淨潔; purification) 이 오직 그리 스도 안에 서만 발견된다는 것을-알게 될).것이다 •. 그리고 예언서에 .이르게 되면, 값 없는-~홀에 대한’ 가장 명백한 약속들을 발견케 될.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나의 一〈기독교 강요〉를 참고화·하라• .. , ' I ,' • !• , I : ,· .:: t , I • ' ' '· ' . ’ -. t' I

 

"22 하나님의 의나~" ; ' •. :.마출은 이 창의가 어떤 것과 갈은나엇인가를 간략하게 밝히고있다. 즉, 이 칭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하 고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라나 바울 온 하나님의어름을 재소개(再紹介) 함으로써’ 하나님을 자기가1말하고 있 는의의 장본인일 뿐 아니라 입증자(立證者)로 삼고 있는 듯하게 3보인다. 이는 마치 그 의가 하나님에게서만 흘러나오고·,'~두 그것의 기원이 하늘에 있으되,-그러 나 그 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 보여진 것으로 말한 것과도 같다.I. , I \...그러므로 본 질의주제를 논함에서 따라야 할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 째로, 우리의 칭의의 원인을인간들의 판단에 돌려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법정에로 들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율법에 대한 완전하고 철대 적인순종만이 의로 간주된다.'이는 율법의 약속들과 경고들에 분명하게 드러 나'있忠 만일 이처럽 완전무결한 성결에 이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고 한다만 모든 사람들온 고들 자신들에게는 의가 없다는 결론이I나온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우러오실 필요가 있다• 이는 의로우신 그 분만아 우리에게 그 자신의 의를 전가시켜 주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해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믿음의 의가 그리스도의 의 (義)로 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 는 때에, 동력인(動力因)은 하나님의 궁휼이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칭의의 질료인(質料因 ; materia)이시며, 말씀은 민음과 더불어 도구이다. 그러므 로 민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믿음 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의 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par takers)이 되게 되는 때, 우리 자신들이 의로와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 위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것으로 간주되게 된다. 왜냐하면 그 행 위들 안에 있는 어떠한 홈점들이라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제거되기 때문이다. 또한 조건적이었던 약속들 역시 동일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에게 성취되어진 것은, 우리의 행위들의 홈점들이 그의 값없는 용서로 말 미암아 가리워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들을 완전한 것으로보 상해 주시기 때문이다.

 

"모든 믿는 자에게." ; (모든 믿는 자에게와 그들 위에 ; 칼빈이 사용한 성 경 )• 바울은 부연(敷衍)할 목적으로 갈온 전리를 표현만 달리 하여 거듭 말 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미 들어 본 것을 보다 충분하게 밝히기 위함이 다. 즉, 믿음만이 여기서는 요구된다는 것과, 신자들은 외적 표시들에 의 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것 온, 중요치 않다는 것 이다•

 

"차별이 없느니라" ; •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구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마치 그가 말하기를, ”의를 얻는 대는 다른 길온 없다. 갑(甲)이라는 사람들을 의롭다 해주는 대는 이 방 법이· 그리고 울(乙)이라는 사람들을 의롭다 해주는 데는 또 다론 방법이 있는 것 이 아니 라, 모든 사람은 다같이 믿음으로 말미 암아 의롭다 함을 받 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죄인들이고· 그래서 하나님 앞 에서 자랑할 아무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한 것이나 같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울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정으로 나아올 때, 최의식을 느끼며, 그리고 수치감으로 인하여 쩔쩔 매며 당황하게 되어, 우리가 아담의 경우 에서 보는 대로, 아무 죄인도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되어 버 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바울은 반대 쪽으로,-디 터 논증을 시작하여 재 차 공격한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인하여 우리는 그의 다음과 갈은요점들 울 주목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의를 전혀 내세울 만 한 것 이 그들에 게는 없다는 것 을 바울이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교 훈에 따르만 완전하고 질대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의도 없다. 만일 반쪽짜리 의(half righteousness)와 같온 것 이 있었다고 한다면, 인간이 죄 인이었다는 이유로 그에게서 모든 영광을 완전히 박탈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소위 반쪽짜리 의에 대한 허구(虛構)는 이로써 충분히 논박이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부분적으로는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으며, 또 일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온혜로: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사실 이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박 탈 당한다고 하는 바울의 이 논증은 아무런 섣득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 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저주들 말소(妹消)하시기까지는, 죄가 있는 곳에는 아무 의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바로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말하고있는 것과 갈은 것으로 율법 아래 있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으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자비를 통하여 우리가 그 저주로부터 겉 집을 받는다 •• 하나님의 영광은:그들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의 영광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되어 있는 요한복음 12장 43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존 전에 있는 영광을 뜻한다. 이렇게 해서 바울온 우리가 갈채를 받았던 인 간의 법정으로부터 하나님 의 법정에 로 우리를 소환한다.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구속으로 말미암아." ;  말씀은 질료인이다. 이것온 곧, 그리스도께서 그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의 심판을 만족시키셨으며, 우리의 소송사유( 訴松事由)를 떠맡으심으로 해서 우리 를 포로로삼고 있던 사망의 횡포로부터 우리물자유케 하셨다는사실을말 한다. 우리의 죄책은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화목 제물에 의해서 제거된다.

 

여기서그 다시급.의를'하나의' 질(質)루玉생각,하는;J산람들의) 허규가 ... -.-!1서운~ 찰~~박되는것이다. 만일 우리가lie으로노산 바:되{었pl 때문에t.하나님.,앞 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이르라면,.'.우리는r✓우린가:‘간저지,-~한 것을f어떤 다른 곳으로부터 댑라온 것 임에、불림없rh ,바울은 곧 이어서 이 구속의 가천와 뭉적,"-:~~이,,T•속으로'말미암아 우리가4화나님께 화목되었다는 것 을설보다 분명하계 절영한다. 이는바울인기그린스도를:화목 제물 또는 시_ 온좌(施恩座)로 일컫고 있기 때문이나.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도 께서 성부-~하나님을 우라에세 -호화목시켜 중1실 때에 한해서만'우리가 의 롭다는 것이다•..'..그러난이재』바울이,말한 바를 검토해,보아야겠다 •.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_의롭다 하십율 얻은 자 되었느니라 ...." ; . ,·.여기서 1rpo-rJJlvo.&_가5헬라어:거법에 따라二동사 대신으로 사용되어 있다. 그 의 미는, 사람들은 하나님의_l의로운\,t심판에 의하여 크게 가책을 받음으로해 서, 그들 자신으로서는'-멸망하는것V밖에는 아무 것도 남은 것아 없는 -까 닭에, 그들은’ 값없이 그의 ... 궁홀로나-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다.t이는 그라스도께저 인간의 곤고합을'·도우러 오셨고i 그리고 자신을신 자들에재 교통하여 주심으로, 그들이 그들에게:부족한寸모든?것들을 그 분 안에서만 찾도록i하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성경을 동불어서 의의 효력을 이만큼잘 설명한:귀절은 없는二듯하다. 왜냐하면 본 절은, 하나님의 궁휼 이 동력인(動力'.~)이요, 피를 훌리신 그리스도께서 질료인(質料因)이며, 말씀으로 잉태된 믿음이 형4상인(形象因),또는 도구인(道貝因)이며, 하나 님의 .... 공의와수선하심에 '.의한 영망이 목적인(目的因)임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력인에 관해서, 바울온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며, 며 우처나, 그의 온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받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처럽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하며, 우리 자신들에게서는 아무 것도 나오는것이 없다는표현을두번이나사용하였다. 은혜를공로에 대립시 키는 것으로 충분하였겠으나, 바울은 불완전한 반쪽짜라 의에 대한 개 념을 우리가 갖지 않도록、하기 위해서 반복해서 그가 의미하는 바를 보 다 분명하게 천명하였고, 그리고 궤변가들이 그들 자신의 영적 궁핍울 어 쩔수없이인정하계 되어버리지나않을까해서,그들이여러 부분으로 조각내고 절단해 버 린 우리 의 의의 전 효력을 하나님의 궁홀에 만 돌렸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나…" ; …헬라어 동사인 TTpon0/.va나프로티데냐이沖 어떤 때는 '미리 확정하다’ 는 뜻으로, 그리고 어떤 때는 `나타내 보이다'(set forth)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 가 전자의 의미를 취하는 경우에는,-그리스도의 죽음의서 희생으로 말미암 바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가'화목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1중보자로-그 리스도를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값없는 궁휼울 가리켜 말하고'있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우리의 저주를 재거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 고 말하는 것온 하나님의\은혜를 크게 찬양한 것이 된다. 본문의 말씀은 요한복음 ,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과 일치해 보인다. 그러 나 우리가 그 동사의 다른 뜻 ’나타내 보이다’를 취택한다고 하더라도, 그 개념은Z갈은 것이 된 것 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가 중보자로 정해 놓으셨던 그리스도를 자기 자신의-정하신 때에 ’나타내 보이선’ 것이 된다. 내가 앞서 말한 대로, lAaa-r7]ptov (힐라스테 .:.... 리온) 이 라는 난어에는 옛 날의 시온좌에 대한 암 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연 유대인들에게 예표적으로(figura tively) 주어졌던 것이 실제로\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바울이 우 리에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후자의 주견해도 물리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독자가 보다 간단한 개념을 얻고 싶어한다면》 、나는 이 문제를 미결의 상태로 남겨 두겠다. 바울이 여기서 특별히 의미하고자 한 것은 그가 말하고 있는 것, 즉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나 우리에게 분노하시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용납 되는 때에는 우리가 그에게 화목된다고 말한 것으로미루어 보아 아주 명 백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그 자신의 솜씨, 즉 그가 우리를 생 령(生盛)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증오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그는 우 리의 더러워진 것을 증오하신다. 우리의 더러워진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 님의 형상의 빛이 꺼져버렸다. 그리스도께서 씻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더러움이 제거된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 자신의 순전 ,(純全)한 작품으로 인정 하여 우리 를 품어 주신다.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 ; 나는 바울의 표현을 여자적(如字的)으로 살려 두고 싶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신뢰하 자마자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되신다는 것을 선언하려고 한 것이 그의 의 도이었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화목에의 은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 피'만을 언급했다고 해서 구속 의 다론 요소들을 바울이 전적으로 배제하려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속의 전 요소들을·그 한 마디의 단어 안에 포함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를 언급했으며, 그 피로 우리는 씻음을 받는다. 이와 같이 우리의 속죄 전체는 전체를 함축하는 한 마디의 단어로 표현되어 있야 바 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되셨다는 것을 방금 전술하고서는, 이제 이 화목이 믿 ° 言으로 말미암아 성립된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신앙의 주요 목표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 …이 말씀은 첨가된 문구로서, 이 죄 사함이 '하나님께서 길이 갑으심’으로 인하여 되어졌다고 하는 것은 단 순히 은유하심'음 뜻한다. 하나님께서 온유하신 까닭에 그의 전노가 억제 되었고, 그리고 그 전노를 거두시어 인간들을 파멸당하지 않게 한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은 우리를 용납하시어 그의 은총을 누리게 하셨다. 바울은 여기서 미리 선수(先手)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하나 님의 이 온혜가 후대(後代)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났다고 하는 반론을 막기 위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신 증거였다고 우리에제 가르친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원인을 나타내는 전치사 'because of' 의 뜻은 격 사함음 위 하여 ' ( for the sake of remission ), 또는 `그가 죄들 을 덮 어 가 리 울 목 적 으 로 ' ( to_ this end, that he might blot out . sins ) 에 해당된다. 이 정의 또는 섣명의 말씀은 내가 이미 종종 암시해 왔던 것, 즉 사람들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그처럼 의로운 까닭 이 아니라, 의의 전가(fi隊)로 말미암는다는 것음 거듭 확증해 준다• 다 만 바울은 이 의를 얻는데 있어서 우리의 공로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보 다 분명하재 할 목적으로 여러 가지 형식의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 다. 만일 우리가 죄의 용서로 말미암아 이 의를 얻는다고 할 경우, 그 의 는 우리의 한계 밖에 있는 것으로 결론 짓는다. 한 절음 더 나가서, 만일 자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의 관용의 행위라고 할·경우, 모든 인간 공로들온 실패로 들아가는 것이다. 그러 나 어째서 바울이 사죄룹 과거에 있었던 죄들에 만 국한하느냐 질문이 제기된 수 있다. 비록 본문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울은 율법의 속죄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 율법의 속 죄는 장차 있으 소상(satisfaction)에 대한 증거둘이었으나, 결코 하나님 근~ -, 을 달랠 수는 없었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도 이와 비슷한 귀절이 있다. 거기에는 옛 언약 아래에서 법한 죄에서의 구속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전술되어 있다. 그러나전에 지온'범최들-만이.~리스두의 〈두 음으로말미암아 속0貴)함 받은(;것으로 이`해하여서는'안된다. 이것은 일~ 부 국단론자들이 이 문구의 말씀에 '대한1 의곡된;전해에서軒묻어내;온·、완전히 터무니:없는 개념이다. 바울이『가르치고 있는것은,구그리스도의 · 죽음 이전까지는 하나남을 달랠 수 있음 만한 아무런 대가(代師)간없었다는仁것 과그리고 이것온 율법의 예표들(types)에 의해서는 수행되거나성취뒤지 못했었다는 것 이다. 그런 까닭에 때가 차기까지 전리가 연기 되었던` 것이 다. 또한 우리가 매일 범하는 법죄들도 갈은 관점에서 고려되어야.하는것 으로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화목제물은 오직 하 나 뿐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모순음 피하기 위해서, 어떤 학자들온 미래에는 죄를 마-음대 로 지어도 좋다고 인정해 준 듯한 인상울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1 이전 의 죄들이 용서받는다고 주장했다 •. 저질러진 죄들의 경우를 재외하고는 용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확실하다. 이는 노바투스(Novatus)와 그의 분파가 생각했던 것처럼, 만일 우리가 후에 가서 타락하면, 규속의 은혜가무효되기때문이아니라, 죄지울작정을하는고의성었는 J최인 (the intending sinner)에 게 는 하나님 의 심 판과 전노를, 그리 고 죄 인(the smner)에게는 하나님의 궁홀을 베푸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미 '앞에서 소개한 해석이 참된 것 이다•

 

"26. 곧 이 때에" ; . 바울이 여태껏 되어졌었던 것을 그리수도께서 계시된 시 기에다 적용시킨 것온 당연하다. 왜냐하면 전에는 불분명하게 그리고 모형으로 (inshadow) 알려졌었던 것을 그의 아들 안에서 하나님이 숨김없이 나타 냈기 때문이다. 이처럽 그리스도의 강림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때 요, 子원의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대에서 자기의 공의에 대한 약 간의 증거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의의 태양이 떠올랐을 때, 그의 의는 훨 씬 더 밝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과 구약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 울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1만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기의 의로우십을 나타내사……" ;  0 I l 귀절을 반복한 것은 강조하기 위함이 고, 바울이 의도적으로 한 것 이다. 왜 냐하면 그렇게 반복하는 것이 매우 팔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설득하여 자신에게서 모든 존귀를 박탈하여 그것을 돌리거I-하는 것처럽 어려운 일은 없다. 그러나 바울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언급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자기도 의로우시다… ." ;. 바울이 말한 대로,그리스도께서 강립하셨을 때 계 시되었고, 그리고 그가 제 1장에서 가르쳐 준대로, 복음에서 알려진 바 된 의에 대한 정의가 본 절의 이 말씀이다. 바울은 그 의의 정의가 두 부 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의롭다는 것 이다. 그는 여러 많은 의로운 자들 중에 한 분이 아니라, 그분 혼자서만 모든 충만한 의를 가지고 계시는 분으로서 의로우시다는 것이다. 온 인류 는 불의하기 때문에정죄를 받으나, 하나님께서는 홀로 의로우시다는 이 름과 존귀를 얻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마땅히 받으셔야 할 충분하 고 완전한 찬양을 받으신다. 다론 또 하나의 부분은 의의 전달(communi cation of righteousness)에 관한 것 이 다. 이는 문이 다. 이 로부터 우리 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 구제책이 제공되기까지는, 모든 사람은 그 들 자신들로서는 불의하고 그리고 버림받온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27 그런측 자랑할 데가 어디뇨" ; . 사도 바울온 충분하게 결정적인 이 유들을 들어서 행위에 대한 모든 신뢰를 사람들에게서 박탈하고나서, 이 제는 그들의 허영을 책망한다. 여기서 바울이 절규하여 외찬 것온 팔요하 였다. 왜냐하면 만일 성령께서 우리의 교만을 꺾어 낮추기 위해서, 우리의 교만을 벼락치돗 맹렬하게 후려치지 않으신다고 하면. 이 경우에 바울이 그 의 가르침을 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 기를, 자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배제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 님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 다. 그러 나 만일 공로가 '적합한 공로' (congruous merit)이돈 또는 ’ 당연 한 공로' (condign merit ; 託1)이든,― 이 공로에 의하여 어떤 사람온 하나님을 회유하여 자신에게 화목케 하,련 하는 수도:갔다-공로가 자랑할 만. 한 것이라고.한다면, 이 공로들은 둘 모두 여기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은, 공로의 감소 냐 경 감을 다루고 있지L 않고,:코눈곱5만큼의 공로도 남겨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우기 모든 것윷:하나남위" 궁 휼에 돌립으로써、사람들에게서 모든 칭찬을 전적으로 박탈하지. 않고서는C 신양이 온전하계 가르쳐질 수 없을 정도로 신앙이 행위들을 자랑하는 것 을 배제한다고 하면, 의를 얻는 데 있어서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행위로냐…" ;~··바울은 앞서 우리가 율법으로·'알미암?卜 정죄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그렇다면 사도는 우리의 공로가 율법으로 말미암아-배제된다. 는 것울 여기서 어떤 의미로,·부인하고 있는 것인각,?- 저만일 율법이 .. 우리를 죽음에 내어 준다고 하면, 무슨 자랑을 우리가 율법제서 얻어넬 수 있겠 는가?·오히려 우리에게서 모토-자랑을 박탈하고, 그리고우-리어h?!J.수치를 안겨다 주는 것 이 아니겠는가? 바울은 우리 모두간 .율법을 ,준행하놉대 실 패했기 때문에, 율법의 심판에 의해 우리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보여 주었나· 그는 여기석 만일 의가 행위의 율법1으로`구성되어 있 다고 한다면, 우리의 자랑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 하고 있다. 그러 나 의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 암아서 만이 ,얻어지는 것 이기 때문에, 우리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믿 음에 의해 하나님에게서-모든 것을 받으며,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어 궁핍하다는 겸허한 고백 의에는 아무 자랑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 다. 믿음과 행위 간의 이 대조는 상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 냐하면 여기 서는 행위라는 단어가 아무런 수식하는 단어 없이 일반적인 것으로 언급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의 의식적(儀式的) 준수만을 말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외형적인 행위를 특별하게 지목히여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가능한 대로 모든 행위의 공로들을 포합하여 말하고 있 는 것이다. '법’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믿음에 적용되어 있는 것은 적합치 못하다.그 러 나 이것온 조금치도 바울 사도가 의미하는 바를 호리게 하지 않는다. 그 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법(rule)에 이르게 되는 때는 행위에 대한 모든 자랑이 무너지고 만다는것이다. 이는 마치 행위의 의가 율법에 서는 제일이지 만, 그러 나 믿음의 의는 어떤 종류의 행위에도 아무 의를 허락하지 않는 그 자체의 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십을 얻는 것은……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바울은 그의 주요 명제(命題)가 이제는 논란의 여지 가 없는 것으로 전술하고,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왜냐하떤 행위를 명백하계 배제하고 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칭의가 보다더 잘·드 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대적자들은 믿음을 행위의 공로 가 운대 포함시키려고 갖은 애를 쓴다. 실제로· 그들은 사랑에다 칭의의 능 력을 부여한다. 그러 나 그들의 말로는 그 칭의의 능력을 믿음에 둘리고 있 다. 본문에서 바울온 아무 행위의 공로도 칭의와 전혀 관계 없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하여 칭의가 값없이 된다는 것을 단언한다. 나는 이미 왜 바울이 행위들을 율법의 행위들이라고 칭하고 있는가를 설명했다• 그리고 아울러 그것들을 의식의 준행에 국한시키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는 것도증 명하였다. 또한 율법의 행위들을 그리스도의 영이 없이 되어전 의문(儀文) 의 행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찰못된 곡해인 것이다. 반대로. 그가 덧붙여 놓온 ’율법’이라는 단어는 그가 그것들을 공로적(meritorious) 이라고 칭한 것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다. 왜 냐하연 언급된 내용이 율법에 약속된 상급이기 때문이다. 사람온 오직 믿음으로만 의몹계 되지 않고 또한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야고보가 말한 것은 결코 위의 견해와 반대되지 않는다• 이 두 견 해를 조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고보가 사용한 논증의 성격을 고려 해 보는 것이다. 야고보의 경우 문제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어떻게 의 를 얻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의롭다 하심 받온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 에게 입증할 수 있느냐 하는 것 이다. 야고보는 자기 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헛 되이 자랑하는 위선자들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몹다 하심을 얻는다. ' justify ' 라는 단어 가 야고보의 경 우는 바울과 다론 개 념 으로 받아들여져 .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온 아주 비논리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 면 그들은 서로 다른 주제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 이라는 단 어도 여러가지 의미들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온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리고 정확한 판단을 내 리자면 이 모호성 이 고려 되어야만 하는 것 이다. 야 고보는, 우리가 문맥을 동해서 알 수 있는 대로. 사람이 거짓되거나 죽 믿음에 의해서는 의롭게 될 수가 없다는 것만을 의미했을 뿐이다-. :1이 주 제에 관하여서는, 나의 〈기독교 강요〉를『참고하기 바란다; 

 

"29.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 뿐이시뇨…" ; '.·.·듀번째 명제(命題) 는 이 의가 이방인들의 경우보다 유대인들에게 더 특별하게 수어진 것이 아 나라는 점이다.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여 그리스도의 나라가 온 세계에 자 유돕게 퍼져 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것온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는 단순히 하나님께 서 이방인들의 창조주이신가 아닌가를 묻고 있는 것 이 아니 라―이 점은 -논란 없이 인정되었다-하나님께서, 자신을二그들의 구 세주로 또한 선포하실 것인지의 여부를.묻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 온 인류를 평등하게 창조하셨고, 그리고 평등한 상태에 있도록하셨기 때문에 인류 간에 어떤 구별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온것이지 사 람들로 말미 암은 것 이 아니 었 다. 사람들온 공동의 수준에 있 었 다. 그런대 판암하나님께서'지상의 온 인류가 그의 궁휼에 참여하는 자들로 만드시려 한 것저 사실이라고 한다면, 구원(그리고 이 구원에 필수적인 의)은 모든 서람들에게 베풀어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에 의하여 성 경에 자주 언급되어 있는 상호 관계, 즉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녀 회 하나님 이 되 리 라" (렘 l) : 2'2 )는 관계 가 시사(示~)되어 있다. 하나 님께서 어떤 특정한 때에 스스로 특정한 민족을 선택하셨다는 사실로 인 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온 바 되었고 그리고 세상에서 훈련을 받아 복된 영원(永遠)을 소망하도록 되어 있다고 하는 창조의 원리 가 무효되지는 않았다.

 

"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 니라." ;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by),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믿 음 때문에'(through) 의몹다함을 받는다고 말함으로써, 같은 전리를 강 조함에 있어서 다양한 표현들을 즐겨 사용한 것은, 바울이 자신들과 이방 인들 간에 구별이 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말이 났을 때 에 다루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의의 주제에 관하여는 차이가 조금도 없다. 만일 사람들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이 온혜에 갑여하 는 자들이 될 수 있고, 그리고 믿음온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갈은 것이라 고 한다면, 그처럼 유사한 경우에 구별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일 이다• 그러나 나는 바울의 말씀들이 반어적(反語的)이라고 생각한다• 이 는 마치 그가 말하기를, "만일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코자 하면, 이렇게 할 것 인즉, 유대 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by) 의를 얻고, 이방인온 믿음 때문에'(through) 얻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한 것과도 같다. 그러 나 다음과 같이 구별하는 것 이 좋을 것 같다. 죽, 유대 인들이 ·믿음으로 알 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그들이 온혜의 상속자로 태어나는 한편 그 들의 양자권(養子權)이 조상들로부터 그들에게 전수된 때문이고, 이방인 들이 믿음 때문에 의몹다함을 받는 것은, 언약이 밖으로부터 그들에게 오 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  율법 이 믿 음에 대립되어 있는 경우에, 육신의 사람온 곧 바로 의심하기를, 마치 그 들이 서로 대립되기나 한 것처럼, 이 둘 사이에 어떤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오해는 색안경을 끼고서 율법을그릇되게 보 는 사람들 가운대서와, 그리고 율법 가운대 있는 약속들을 무시한 채 율법 에서 행위의 의만을 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온 바울을 심하게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율법의 페기를 목표로 하여 가르침을 전하기라도 한 것처럽 그 를 심하계 공져했다. 이런 까닭에 주님께서는, “내가(율법을) 폐하러 온것 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 : 17)라는 항의를 제출했던 것 이다. 이같은 의심온 의식법(儀式法) 뿐만 아니라 도덕법(道德法)에까지 확대되 었다. 이는 복음이 모세의 의식에 종지부를 찍고 있기 때문에, 복음의 의 도하는 바가 모세의 사역을 타파하는 대 있는 것으로 생각된 까닭이다. 또 한 더구나 복음이 행위의 모든 의를 말살하고 있는 까닭에 그것이 율법의 모든 증거들에 반대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런데 수님께서는그가율 법에 의와 구원의 길을 규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율법으로 확증하신다. 그러므로 냐는 바울의 이 변호를 소위 도덕적 교훈들이 아닌, 의식(儀式)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전 율법과 관계된 것으로 해석한다. 도덕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감되게 확증되고확립된다. 왜냐하연 율법온적인간에게 그의 죄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즈그리고一그를그 리스도에게로 인도할 목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없 이는 율법온 성취되지 않는다. 율법이 옳온 것을 선포하나 그것온 헛되다. 율법은 무절제한 정욕을」중가시키는-~ 외에는 .아무 것도-성취하는것이 없 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인간이 더 큰 정죄를 받게 ,만들어버린다 •.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되면-' 먼저 그 안에서 율법의 정확한 의(the exact righteousness of the law)를 발견한다. 그러 나 이 의는 우리 에 게 전가(轉隊; imputation)됨으로써 -유리 의 것 이 된다. 둘째 로 우리는 그 안 에서 성화(聖化)를 발견한다. 이 성화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마음 가침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는 못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의식들의-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때 이. 의식들은-중단되고: 사라진다. 그 러 나 그것들은 그로 말미 암아 참되게 확증되는 것 이다. 그 의식들온 그것 들 자체 로서는 헛되고 공허한 표상들에 지 나지 않는다. 그것들온 보다 나 온 목적과 관련하여서 만 실재(夷在)를 갖게 되는 것 이다. 그러므로 그것들 의 최상의 확증온 그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들의 전리를_,성취하였다 는 사실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온,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 가 율 법 을 우리 의 교훈으로 삼아 확증하는 방향으로 '해 야 한다(그러 나 우 리가 전파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근거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것이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