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딤후1:16~18)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5)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6)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7)(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18)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5. 아시아에~~~~~네가 아나니" ; 그가 언급하고 있는 이 배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되고 여러가지 의심이 일어났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더 없이 흉측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율은 모든 선한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종이 혼자 의롭게 있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공동의 목적을 고수하고 있을때 그를 배척한 자 들의 배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를 깨닫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바울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동요하는 일이 없도록하는뜻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을 의연하게 대하고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중상 모략적인 공격에 제동을 거는뜻에서 변절 자 들 가운데 두 사람 --- 아마 가장 잘 알려졌던 사람들인 것 같다--- 을 지명하고 있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전투에서 이탈한 자들은 복음의 신실하고 정직한 사역자들에 대항해서 퍼 부을 수있는 온갖 비난을 고안해 냄으로써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동을 변명 하려들기 마련이다.
"부겔로와 허모게네~~~~~~" ; 그들은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당연히 신자들이 수치로 여긴 것이라는 점과 그들이 비천한 배신을 정죄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서슴없이 바율에게 거짓 된 비난을 퍼붓고 파렴치하게 그의 무고성을 해치려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의 거짓을 드러내는 뜻에서 그들을 특별히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곳제네바에서 사역하도록 용납되지 않았거나, 그들의 사악성 때문에 그들의 직분에서 쫓겨 났거나, 아니면 우리들이 자신의게으름을 지지 하지지 않거나, 아니면 도둑질, 또는 간음 때문에 도망할 수 밖에 없던 자들은 프랑스와 그외 지역을 배회하고 우리에게 그들의 모든 비난을 퍼부으면서 자신들의 무죄성을 입증하려 발버둥치고 있다. 우리 중에 누가 그런 자들을 그들의 참 모습 그대로 드러낼 경우 우리에게 잔인하다고 비난하는 형제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어리석은자들이다. 이런모든 사람들의 이마에 낙인이 찍혀 있어서 첫 눈에 알아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것이다.
"16~17. 주께서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 이 기도를 통해서우리는 성도들에게 행한 선한 직분이 비록그들은그것을우리에게 되갚을수 없다 하더라도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것을 기도 하는것은 일종의 약속이나 마찬가지이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스스로는 빛을 갚을수 없는 만큼, 하나님에게 보상의 임무를 양도 함으로써 자신의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다. 자신에게 보상 할 충분한 수단이 있었다면 어떠했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배은망덕하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증거 했을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비록 여기서는 너그러운 사람으로서 오네시보로 한 사람만 지목하고 있지만, 바울은 그를 생각하고 그의 전 가정을 위해 축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겠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란 의로운 사람 한 개인에게만 아니라, 그의 전 집안에 머문다는 점을 알게 된다 . 하나 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은 그들과 관련된 모두에게 퍼질 정도로 크다. 오네시보로가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라는 말이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그의 후한 마음 뿐 아니라 열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곧 그는 바울을 돕기 위해서 스스로의 위험은 물론 인간들의 조롱에 까지 자발적으로 내맡겼던 것이다.
"18.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하여 주옵소서~~~~" ;.혹 자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비를 발견하게 하옵시기를'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창19: 24) 라는 말씀을 성부께서 성자에게로부터 비를 내리셨다. 하는식으로설명하는 것보다는 약간 더 용납할 만한 것이다. 추측컨대, 바울은 감정의 강도 때문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자신의 의사를필요 이상으로 반복하고 있는것 같다. 이 기도는 지상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고 성도들에게 선을 행하는 자에게 그들이 당장 인간의 손에서 그 보상을 받는것 보다 훨씬 더 풍성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는것은 오네시보로가 긍휼을 받는 것이다. 자신의 이웃에게,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동일한 자비를 자신에게 베푸시는 것을 알게될 것이요? 우리가 이 약속을 통해서 친절한 행동을 보이도록 크게 격려 받지 않는다면 그 보다 바보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에 따라서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를 용서 하시고 자신을 엄격한 심판관이 아니라 인자하고 친절한 아버지로서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좋고 뛰어난 보상이라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