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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데살로니가전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살전2:7)

1. 성경 (살전 2:1 ~ 20)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1)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2)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3)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4)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5)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6)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7)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8)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9)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0)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1)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2)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3)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4)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5)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6)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7)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8)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19)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20)
 
2. 묵상 (Calvin선생주석)
"1. 형제들아~~~~~너희가~~~~~" ; :바울은 다른: 교회들이 이야기하는 증거를 제 쳐 놓고 이제 』자신들의 체험을 제험을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주고 있다. 그는 자신과 두 동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때 행한 행동을 상세하게〔;말하고 있 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을 확증시켜 주는데 큰[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자신 의 정직성을 '선언하는 것은 데살로니가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신앙으로 부름 을 받은 그것은 .유한한 인간에 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일이라는 점을 깨만도록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실제로 자랑할 만한 본질은 없으면서 겉치레에만 급급한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그들에게로의 '들어감 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헛된'이란 말은 효과적 인의 반대 말이다. ||의거리히 그는 이 점을 두 가지로 변론하고 있다.

 

그 하나는 그가 빌립보에서 박해 와 수모를 당했다는 점이요, 다른 하나는 상당한 혼란이 데살로니가에 일어 났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수모와 ,박해는 인간의 마음을 연약하게, 아니 완전히 파괴시킨다. 그려므로 {바울이다. 여러가지 어려움과 수모를` 당 했지만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가운데 이 큰 :상업도시의 사람들을 그리 스도에게 사로 잡으려는 목적으로 그곳에 서슴없이 ¡공격을 개시한 것은 하 나님의 일이었다. 그들의. 도시 입성에서 우리는 헛된 자랑같은 것은 전혀 찾 아 볼 수 없다. 둘째 절에서 우리는 동일한 신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데 이 것은 바울이 칭찬이나 호의를 일반으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그것이, 아니라 격렬한 투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내 그는 요지부 동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손길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바로 :힘입어 라는 말 뜻이다. 물론 이 모든 상 황을 저울질해 볼 경우 하나님께서 거기서 자신의 능력을 탁월하게 '보여 주 셨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16장 17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з. 우리의 권면은~~~~~:간사에서나~~~~~난 것도 아니요." ;  바울은 인들이 받아들인 신앙을 확증하는 뜻에서 다른 변론을 구사하고 있다. 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순수하고 진실한 교훈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자신의 교의()에 흠이나 속임수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모든 의심을 제거하는 뜻으로 그는 그들의 양심을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가 사용하고 있는 세 단어는 다음과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곧 간사' (impostura)는 그의 가르침의 내용을, '부정'은 마 음의 생각을, 그리고 궤 그의 행동 양식올리두고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먼저 자기가 그들에게 전해준 교의에는 결코 오류가 없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그는 자신의 결백성을 선언함으로써 자기를 그들 에게 가게 한 것은 결코 지저분한 야심이 아니라 진지한 마음이었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 세째 그는 '그의 행동에 어떠한 속임수나 ]악의가 없었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어울리는 순진성을 그대로:보여 주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데살로니가인들이 모두 알고 있던 내용인 만큼 그들의 믿음을 확증하기에 충분했다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 신의 사도직의 저자로서¡하나님을 주민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의 변론은 하 나님께서는 나에게 이 직무를 맡겨 :주시면서 '내가?그의 신실한 '종이라는 점 을 증거해 주셨다. 그려므로하나님의 재가를 받은 [나의 신뢰성을:사람들 이 의심할 이유가 없다' 하는 [식이다.[하지만 바울의 {자랑은 자기 스스로 그 런 사람이 되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여기서 자신의 천 부적인 재능을 두고 왈가왈부하거나 자신의 고등력을 하나님의 은혜와 대치사 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i복음이 '충성되고 인정받은 종인 그에게 위임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선한 뜻에 따라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자들만을 인정해 주신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한 의미 는 갈라디아서에서 설명되고 있다(갈 1%10). 이 귀절 역시 그 의미를 명백 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과 인간을 기쁘게 하 는 것을 대조적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 나님이라는 말로 그는 사람의 호의를 조사려 하는 자들은 올바른 양심의 있지도 를 받거나 성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참된 일꾼들은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의 최선을 다 바치는 것을 각자의 목표로 삼고 사용하였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물론 이것은 세상에 대한 외형적인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양심이 그들이 옳고 합당 한 것으로 일러주기 때문이다.
 
"5. 우리가 아무 때에도." ;  바울이 자기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점을 데살로니가인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과 반복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다분히 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확실한 체험이란 우리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자들에 대한 체험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더 없이 큰 의의를 지녔던 것은 바 행동의 결백성을 언급하는 단 한 가지 의도가 자신의 가르침에 울이 자신의 , 대한 보다 더 큰 존경을 얻음으로써 그들의 신앙을 세우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 문장에 대한 확증인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자들은 아첨에 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각자의 임무 하는 수치스런 진심으로 집착하는 자들은 모든 형식적인 아첨으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에 유지할 것이다.
 
탐심의 탈 (직역; 호기)이란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는 자기가 그들을 가 е치면서 어떠한 개인적인 ,이득도 노리지 않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Пρбоασιs(프로파시스)라는 헬라어에서는 기호와 '구실',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지만 전자의 의미가 이이 문단에는 더 잘 어울린다. 따라서, '탐욕의 호기' 란 그들을 잡으려고 놓는 올무를분 뜻한다...그의ι이야기는,σ'나는어떠한 이득 올 얻어낼 목적으로 부복음을 (남용한 :일이 지금까지 없었다 하는 뜻이다. 하 지만 인간의 간사함에는 너무도 깊은 심연이 많기 때문에 그 속에 탐심과 야 망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식 잘못을 언급하 고 있다. 자기에게는 그러한 잘못이 없었다는 점을 밝힘으로써그는 그리스 도의 종들은 모름지기 그러한 것과:관계를∞갖지'않는 그것이 옳다는[점을 우 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진실한 종들과 거짓되 고 자칭 종으로 행세하는 자들을 구별하고자 한다면 로바로 이러한 원칙으로 그들을 검토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올바로[섬기려 하는 [자들 또한 모두 동일 한 원칙에 따라 자신의 일과 행동을 조정하지 않으면]:안된다. 탐욕과 아심 이 판을 치는 곳에는 부지기수의 타락이 :따르기 마련이며 사람이 '완전히 허망한 일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것이.모든 일을{ 타락시키는 :두가지 원천 이다
 
"6. 우리가~~~~~폐를 끼칠 터이나" ; 어떤 ,사람은 이것을 우리 가 짐이 될 수도 있었으나 곧 너희들에게 .폐를 η끼칠 수도 있었으나 로 주석 한다. 하지만 문맥은 τσ βαρ를 권위의 의미로 취할 것을 요구한다. 바울의 의도는 자기가 헛된 자랑, 허풍, 내지는 교만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위에 관한 권리마저 사양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도의 한 사 도였던 만큼 크게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했지만 자기는 마치 무명의 일꾼이 라는 듯이 어떠한 위엄도 내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너희 가운데서 보잘 것 없는 으로 번역하는 것을 벌게이트 역에는 유순한 으로 번역하고 있다. 내가 사용한 번역이 헬라어 여러 사본에서 보 다 더 광범위하게 채택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바울이 그들에 대한 자신의 자발적인 굴종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
 
"7. 유모가~~~~같이 하였으니" ;  이 비유를 통해 그는 자신이 데살로니가인 들 사이에서 영광이나 이득을 도무지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백히 표현하 고 있다. 자식을 코 없다. ,바울은 자기의 몫인 영예를 ,기르는 어머니는 권위를 .주장하거나 위엄을 뽑내는 일이 결 이것이, 자신의 태도였노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자발적으로 사양했을 뿐 '아니라 이마에 주름살을 그리거 나 내세우는 ,일이 없이 무슨 일이든 수행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는 어떠한 고통이나 수고도 불사하며 그 어떠한 '노코도 피하지 않으며, 그들이 오나가나 지겨워 하지 않으며 |자기 [생명의 j피마저 기꺼이 .다 뽑아 주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한 자신이 바 로 그러한 것이었기에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마저 내놓을 각 오가 되어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결코 인색하거나 옹졸스러 운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편견없는 애정을 '품은 사람의 특징이다. 그는 이 점을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참 목사 취급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울과 같은 정 을 품고 자신들의 생명보다 교회의 안녕을 더-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혜택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이 얽 매어 있으며 관련을 맺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 진지한 사랑을 품고서 자신들 의 임무를 수행해야 마땅하다.
 
"9. 형제들아~~~~:너희가 기억하리니~~~~ " ; 이것은 그들을 아끼는 뜻에서 자 신을 아끼지 않았다는 윗 말을 입증하기 위한 말이다. 복음전파와 함께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까지 마다 하지 수않는 것을 볼 때 그는 놀라운 정도의 초인간적인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이면에 :있어서도 그는 자신의 권리 주장을 삼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그가 가르치고 있듯이 (고전9 : 14) 각 교회가 일꾼들에게 양식과. 기타 필수품을 제공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려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직무 이상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더우기 ,그는 공 적인 부담을 끼치는 것을 사양할 뿐 아니라 어떠한 개인에게도 폐가 되는 일 을 피하고 있다. ,그가 다른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돌아오는 특권을 .누렸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기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사양한 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가 고린도인들에게 서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은 거짓 조사도들로 하여금 이 면에 있어서 고소해하는 구실을 잡지 못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그와 동시에 다른 교회로부터는 필요한 것을 서슴없이 요청했는데 그는 이것을, 자기가 섬기지 않는 교회 를 탈취해서 고린도인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자신의 수고를 확대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자신의 이유 길(the way of the Gospel)에 방해 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고후 11:8) 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바울은 복음의 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데살로니가 인들 자신의 필요 사항을 조달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훌륭한 목사들 의 관심사여야 한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목회의 길을 열심히 달려가야 할 뿐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가는 길에 (가로놓인 장애물을 모두 제거해 야 한다.
 
"10. 너희가 증인이요~~~~~" ; 그는 자신의 정직성을 확증하는 뜻에서 하나님 과과 데 살 로니 가 인들을 증인으로, 곧 하나님을 자신의 양심의 증인으로, 데살 로니가인들을 이 사실을 인정하는 중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우리는 거룩하고 옳게', 곧 하나님에 대해서는 순수한 ,경외심을 가지고 인간에 대해서는 성 실성과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행동했노라, 하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흠 없이 행동했다는 이야기는 불평을 살만한 행동이나 모순 된 행동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중상모략이나 허위 진 술을 피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그들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는 만큼 악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을 리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말을 정직하고 올바 르게 판단할 뿐 남의 평판을 근거없이 무작정 깎아내리지 않는 신자들에게 국한시키고 있다.
 
"11.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자신 의 임무에 속했던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는 자신을 유모에게 비교 했는데 여기서는 아버지에게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듯이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친 아버지처럼 그 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느 누구도 먼저 자기에게 맡겨진 교회의 아버지 노릇을 하기 전에는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없다. |바울은 자기가 다만 전체 교회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개별적인 교인에 게까지 아버지 [노릇을 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목사가 강단에서 전체 교 인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일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못한 만큼 그는 필요할 때 마다, 또는 기회가 올 때마다, 개별적인 훈계를 더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러기에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6절에서 자기는 모두를 상대로 하는 공적인 권면과 각 개인의 집에서 행하는 사적인 훈계를 중단하지 않았던 만큼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모두를 상대로하는 훈계 는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 사람에 게 특수한 처방이 아니고서는 치료되거나 교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  그는 자기가 그들의 안녕에 대해서 얼마나 순 수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가 하는 점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하나님 경외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의 여러 임무를 가르칠 때 결코 빈 마음에서 한 것이 아 니라 진지하게 권하고 간청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복음전파가 생명력을 지니는 것은 인간들이 올바른 것에 대해서 들을 뿐 아니라 권면을 통해서 심판대에 소환당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류 속에 잠들어 자극을 받고 하나님의 있지 못하게 될 때이디하나. 이것이 분기시키는것' (encouraging)의 의미이다. 바울이 그처럼 칭찬하는 적극성을 지닌 경건한 사람들이 이처럼 권면과 분 발를 필요로 했다면 게으른 육신의 지배를 더 강력하게 받고 있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와 동시에 교정 불가능한 오만의 소유자인 악인 들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에 대한 경고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에게 성공 할 소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변명의 여지 를 남겨 두지 않으려는 뜻에서이다. 어떤 사람들은 분사 παραμυυθουμενοι(파라위쑤메노이)를 위로 하는 것 함으 로 번역한다. 이 번역을 따른다면 그 의미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지탱되 어야 마땅한 눌림받는 자들을 위로했으며 하늘의 축복에 대한 맛으로 생기 를 돋구어 그들로 하여금 낙심하거나 초조해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것이 다. 하지만 다른 의미, 곧 그가 그들을 권면했다 (admonished)는 것이 본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 여기에 나오는 세 단어는 모두 동일한 것을 두고 에이 야기된 것이다
 
"합당히 행하게 하려 사람이니라." ;  그는 자신의 권면의 핵심, 곧 하나님의 자비 를 극찬하면서 자신들의 소명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여기서 간략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사는 너회를 그의 나라로 부 르시는(칼빈 ;부르신)분이라는 귀절 속에 담겨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 의 우리에 대한 값없는 입양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 오시는 모든 축복은 이 간단한 귀절에 포함되어 있다. 이제 남은 문제 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곧 그가 우리에게 아버지이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그에게 그러한 자녀라는 점을 보여드리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활을 하는 자는 마땅히 하나님 의 권속에서 축출당할 수 밖에 없다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감사함은~~~~~" ;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이야기한 다음에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가 앞에서 언급한 상호간의 조화를 추 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 되 그것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그 말씀을 존귀하게 받아들였으며 거기에 어울리는 순종을 드렸다는 뜻이다. 이러한 확신이 자 리를 굳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싶은 욕망으로 채워 지기 마련이다. 하나님에게 대항해서 싸우는 자가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을 가증스럽게 여기지 않을 사람은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숱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양 그 것을 무시하며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생각에 기인한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어떠한 신뢰를 지녀야 마땅한가 하는 점을 배우게 된다. 그것 은 인간적인 권위에 의존하는 신뢰가 아니라, 알려져 있으며 확실한 하나님 의 진리에 기초하며 세상을 초월하는 신뢰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마치 하늘이 땅에서 멀듯이 추측과 거리가 먼 것이다. 다음으로 이것은 경외심과 순송을 낳는 신뢰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일단 신의 위엄을 의식할 경우 그것을 가볍 게 여기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교사들은 순수한 하나님 말씀 이외의 다른 것은 그 어느 것도 감히 소개하지 나말라는 경고를 여기서 받고 있는 셈이다.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는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 런 일을 허용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전해 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점을 결과를 통해서 입증하고 있는데, 이것이 선지자들이 칭찬하는 하늘의 가르침의 열매가 그들의 생활을 새롭게 하는 면 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가르침으로서는 그러한 결과를 이상을 수 없다. 여기에 나오는 관계 :대명사는 하나님에게 관련될 수도, 그의 말씀에 관 련될 수도 있다. 어느 폭을 택하든 의미는 동일하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인들은 그들 스스를 신앙으로부터 오는 신의 능력을 의식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이 들은 바가 인간의 지나치는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동적이요 효 과적인 가르침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란, 나의 번역대로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 께서 자신의 가르침의 저자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것을 멸시하거나 것이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데살로니가인들이 일꾼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고 그의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점에서 그들을 칭찬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그 의미를 보다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at' 이라는 단어를 삽입하는 것을 주처하지 않는다. 에라스므스는 이 귀절을 하 나님을 듣는 말씀' (the word of the hearing of God)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바바 되었다라는 뜻으로 이야기했다는 식 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히브리어의 소어라는 점을 깨닫고서 나중에 이것을 다시 너희들이 하나님을 배우게 된 그 말씀'으로 바꾸었다.
 
"14. 형제들아 너희가~~~~~~본받은 자 되었으니~~~~~~" ; 이 귀절을 다음 귀절에 국한시킨다면 그 의미는 그들이 박해를 용감하고 낙관적으로 견디어내는 그 들의 인내에서 하나님이나 그의 말씀의 능력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 될 것 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것을 앞 문장 전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데살 로니가인들이 복음을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제공된 것으로 전지하게 받아 들였다는 그의 말을 바울이 여기서 확증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사단의 공격을 용감하게 이겨내는 가운데 어떠한 고난에도 움츠리지 않고 계속 복음 을 순종하기 때문이다. 사단이 자신의 온갖 계략을 동원하지만 우리를 하나 님 경외로부터 떨어져 가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신앙에 대한 큰 연단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바울은 그들을 엄습할지도 모를 위험한 시험을 방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온 세상에서 자기들만 하나님. 의 이름을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족들의 무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 문이다. 우리의 종교가 참이라면 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인 유대인들은 이것을 그처럼 적대시하는가?하는위하는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도 있 었다. 이러한 과오의 평가능성을 배제하는 뜻에서 그는 먼저 데살로니가인들 에게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유대에 있던 첫번 교회들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모든 건전한 가르침의 단호한 원수들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_그들이 동족의 손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일 수는 없다.: 그 러나 그는 그들의 오만과 불경건을 핵심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만큼 그가 처 음부터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라는 점점이 명백해졌다. 추 측한데는 데살로니가인들 가운데 이미 그리스도에게 개종한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도 행전의 이야기를 종합할 경우 유대에서 못지 않게 거기서도 유대인들이 복음의 박해자들이었다는 점을 명약관화하게 알 수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으 로 보는데 그것은 양자가 모두 각자의 동족으로부터 많은 반대와 신랄한 공 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5. 유대인은 주 예수를~~~~~~죽이고~~~~~" ; 이 민족은 하나님의 은총을너무 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많은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들 의 명성에 따라 높게 봐 주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러한 외형적인 것에 현혹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그는 유대인들에게서 모든 명예를 박탈하며 그 들에게 남은 것은 증오와 악평 뿐이라는 점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의 이야기 는 그들이 경건하고 선한 사람들 사회에서 칭찬받는 덕이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지자들을,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그 들은 그의 종인 나를 박해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항한 싸움을 벌이 고 있으며 온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구원에 .반대하 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영원한 파멸을 반기로 운명지어진 자들이다'라 는 식이다. 여기서, 왜 그는 바로 이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을 죽인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나는이것을 전체를 두고 언급하는 것으로 본다. 바울의 의도는 그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데는 전 혀 이상한 점이 없으며 그들은 하나님을 반대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신들의 조상들의 양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마 23: 32)
 
"16. 저희가 금하여." ;  앞에서 언급한 대로 바울이 이처럼 유대인들의 악 의를 공격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세계 방 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들의 복음에 대한 격렬한 반대는 .엄청난 방해 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복음을 이방인 사회에서 전파하는 바울을 가리켜 복음을 속되게 하는 자라고 지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 한 허위진술을 통해서 그들은 교회를 분열하고 있었다. 곧 그들은 이방인들 에게서 구원의 소망을 박탈할 뿐 아니라 복음의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 므로 바울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구원을 질투하고 있다는 말과 통합께,-그들의 경건에 대한 모든 평판을 제거하는 뜻에서 이것이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죄 악이 '가득차게' (채우매)하려는 뜻에서라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다' 는 말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하나님의 예배자 축에 끼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표현에는 주목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 계속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마침내 절정에 '달할 때까지 계속 자신들의 심판의 양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불경건한 자들의 심판이 연기되고 있 는이유이다. 곧 경건한 자들의 행위가 말하자면 아직 덜 익었기 때문이다. 이 것은 우리에게 경고를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들이 만약 계속해서 죄에 죄 를 더할 경우 [우리는 우리의 축적된 죄악이 흔히 일어나듯이, 마침내 하늘 에까지 닿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하심이~~~~~~임하였느니라." ;  이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진노의 그릇인 만큼 그들에게는 결코 소망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발하자면 그는 하나님의 정 당한 재앙이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계속 괴롭힐 것이요, 그냥 놔두지 않을 것 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운명은 고고 곤두박질해가며 자신들의 예정된 죽 음을 향해 치단는 버림받은 자들 모두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사도는 전체 ,백 성을 두고 이 이야기를 하지만 선민에게서는 소망을 박탈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전 민족을 상대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 는 것은 그들의 대다수가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 리는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얼마간의 씨앗을 남겨두신다는 (롬 11 5) 예외 조항을 명심해야겠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것 은 신자들은 곧 하나님의 (정당한 재앙을 받아 마침내 완전히 눈먼 상태에 빠지게 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노'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경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로마 서 4장 15절의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와 로마서 12장 19절의 진 노하심에 '맡기라"에서 엿볼 수 있는 그대로이다
 
"17. 형제들아 :우리가~~~~~~" ; 바울은 테살로니가인들이 그가 위기상황에서 그들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뜻에서 이 변명을 여기에 덧 붙이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적합한 일이다. 그는 앞에서 그들이 동족으로부 터 당한 박해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을 돕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 의 임무였지만 그때 그는 그들과 함께 있지 못했다. 그는 앞에서 자신을 아 버지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역경 속에 있는 자식들을 버리는 것 은 아버지로서 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의욕이 없었던 것 이 아니라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멸시나 소홀에 대한 의 구심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내가 너희들에게 가고 싶었지 만 나의 길이 막혔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 를 잃은(bereaved) 것은하는 식의 특별한 표현을 써서 자신의 열렬한 애정 을 나타내고 있다.

 

'잃다'는 1말에는 그가 그들과 떨어져 있던 것이 몹시 괴 롭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다음에 그들을 보 고 싶어하는 자신의 열망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이 뒤에 따르고 있는 데, 잠깐 사이였지만 그들과 떨어져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경우 권태감이나 슬픔에 [잠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시간의 이별도 견딜 수 없어 한다면 그 애정은 강렬한 것임에 틀림없다. 잠시(RV 주난한 시간 사이)란 짧은 시간의 간격을 뜻한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그가 그들과 헤어진 것은 얼굴이지 마음은 아니라' 는 점을 덧붙임으로써 거리 때문에 그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약화되지 않 는다는 점을 그들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것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곧 그들이 몸으로 떨어져 있는 동안 바울과 한 마음이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신에 대한 애정의 정 도가 드러나는 것은 그에게 큰 의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열정으 로 더욱 힘썼노라"하는 말로서 자신의 감정을 더욱 더 자세하게 나타내고 있 다. 이것은 그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의 정이 감소된 것이 아니라 더욱 더 불타오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 바울은 여러 번 너희에게 기꺼이 [가고자 하였으나"하는 말로서 그는 자신의 열정이 흔히 볼 수 있는 '당장 식어 버리 는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여기에 대한 의도가 학고부동했기 때문에 여러 기회를 노렸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18 사단이 '우리를 막았노라." ;  누가는 유대인들이 바울의 여정에 '매복을 기도했기 때문에 그가 방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는 점을 발한 바 있는데 (행 20: 3) 우리는 이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으 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이 이 모든 것을 사단의 일로 돌리는 것은 아주 옳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오곳에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듯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이 어두움의 세 상 주관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업 66 : 12). .불경건한 자들이 우리를 괴롭힐 경우 그들은 사단의 깃발 아래서 싸우고 있는 것이요 우리를 괴롭히는 그의 입장에 불과하다. 특별히 우리의 노력이 주님의 일에 쏟아지 고 있을 경우 거기에 닥치는 방해는 물어 볼 것 없이 사단에게서 오는 것이다.

 

사단은 자나깨나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교회 건설을 방해하거나 저지하 고 있다는 이 사실이 모든 경건한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는 더욱 더 열심히 그를 물리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저 원수가 그처럼 적극적으로 우리에게서 탈취해 가려고 노리는 올바른 가르침을 더욱 더 관심을 가지고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또한 복음의 진로가 지연될 때마다 그 방해의 근원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 는 다른 곳에서(롬 1: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두 이야기는 다 사실이다. 비록 사단이 제몫의 일을 한다 해도 사단 의 뜻이나 반대에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길을 열어보여 주시 는 분은 최상의 권위를 쥐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방해를 놓는 측 은 사단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이야기는 옳다
 
"19. 우리의 소망이~~~~~무엇이냐." ;  그가 앞에서 언급한 그들에 대한자신의 열정을 여기서 확증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은 어떤 말에서 그들에게 담 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정신이 올바른 이상 여러분들을 보고 싶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여러분들은 나의 영광이자 기쁨이기 때문이지요 하는 식 으로 말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소망'이요: 자랑의 면류관 이라는 말 은 그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무엇을 두고 자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의 목표의 핵심이 되시는 방향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모 든 :축복을 두고 자랑하는 것이 옳다는 뜻이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고린도 전서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각 자가 그의 나라를 확장한 정도에 따라서 마지막 날 그의 영광과 개선에 참 여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자신들의 노 력에 따라서 .증대되는 경우 그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수고의 -성과를 두고 기뻐하며 자랑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교회에 대한 본연의 ,정 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너희 까지도 (even)라는 단어에는 바울이 자랑으로 로 여기는 사람들이 데살로니가인들 뿐 아니라 그 밖에도 다른 사람들이 많은 으 않 [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뒤이어 나오는 원인 접속사, 왜냐하면 (T&p)는 여 [기서 본래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연코 너희들은~~~~~이니라 하는 강조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