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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요2:16)

1. 성경 (요2:13~2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3)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4)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5)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6)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7)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8)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19)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0)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1)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2)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23)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24)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25)

 

2. 묵상
13절로 17절까지는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성전을 정화하신 말씀이며, 18절에서 22절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에 대한 말씀이고 23절로 25절은 예수님의 사람에게 의탁하지 않으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새벽예배를 이렇게 긴 본문으로 끊어서 강론되었다. 새벽에는 주제별로 끊어서 강론하는 것이 더 은혜가 될 것 같은데 오늘은 긴 본문으로 말씀을 읽고 강론은 13절로 17절까지만 강론했다.

 

성전 정화는 십자가의 성역을 감당하시기 직전에 한번 있었고 여기 요한복음에서 공생애를 시작되기 전에 성전 정화를 하셨다. 당시의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예배자들이 성전에서 드려지는 제물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고 또 로마의 화폐로는 성전세를 드릴 수도 없었기에 환전상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교역자들인 제사장들은 상행위를 하는 자들과 환전산들과 결탁하고 있었으며 이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인 것이고 또 하나는 성전에서 상행위를 하고 환전상의 필요성에 대한 핑계가 있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날 때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도 우리의 지상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많은 것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도 무지한 회중들은 무감각하게 지나친다. 교회당이 예전처럼 성전은 아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처소이고 성경을 가르치는 처소이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성도가 교제하는 처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음이 현실임을 많은 지상교회에 존재함을 본다. 필자는 오함마를 가지고 예배당의 한편에 설치된 카폐를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 정화는 공생애를 시작하는 주님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고 Calvin선생은 그의 주석에 기록하고 있다. 18절로 22절의 말씀은 주님이 홀로 성전을 정화하는 동안 상인들이 쫓겨나고 환전상이 쫓겨났다.

 

그런데 당시 지도자들이 제지하지 못한 채로 주님에게 묻는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주님은 자신을 의미하는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부활을 말씀하심이고 하나님의 권능을 말씀하심이다.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주님의 권능 앞에 성전 정화를 하시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음이 드러내어 보이는 표적이었다. 23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고 증거함은 완악하여 믿지 못하는 당시의 교회의 지도층을 본다. 어두워진 마음의 눈으로 인하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본다.

 

끝으로 23절로 25절의 단락은 사람을 의탁하시지 않는 주님을 통하여 오늘의 신자가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고 신뢰를 하는 관계를 넘어서서 믿음의 대상은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