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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로마서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1:11)

1. 성경 (롬1:8 ~13)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8)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9)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0)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1)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2)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3)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8. 첫째는……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 본문의 도입 부분은 바울이 말 하고자 하는 문제에 가장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 뿐 아니라 자신과도 관련된 이유들을 들어서, 그들이 그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키는 기회를 여기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 대해서 그가 알 고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논증을 전개 한다. 그는 그들의 신앙이 널리 알려져 분명하게 된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들이 여러 교회들로부터 공개적으로 인정을 받아 존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의 사도인 바울을 거절하게 되면 그들이 일반적으로 누린 명성을 실추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 주고 있다. 사도를 거절하는 그러한 행위는 무례하며, 다소간 신뢰를 저버리는 짓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 같은 명성 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여 그들의 믿음에 순종을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었던 사도로 하여금 그의 직책을 따라 로마 사람들을 가르치며 교훈하게 하였던 것처럼, 그들도 이에 보답하여 그의 권위를 멸시하지 말아야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애정을 증거함으로써, 그의 사람됨을 고려하여 그들이 수용적인 태도를 취할 마음을 갖게 한다. 상담자가 우리를 진실되게 염려해 주고 우리의 관심사를 깊이 살피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큼, 상담자에게 있어서 신뢰를 확보하는데 가장 효과적인것도 없다.

우선, 로마사람들의 신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식으로 그들의 신앙을 바울이 칭찬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감사하는 것이 유익을 얻은 것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든지 신앙을 주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신앙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정 하는 것이 된다.  사도가 그의 축하 인사말을 항상 감사로 시작하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는 때에, 우리가 여기서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우리의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이다. 우리 또한 이러한 표현 방식에 익숙해져야 하겠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을 보다 민감하게 일깨워 하나님을 모든 선한 것들의 수여자로 인정케 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일깨워 우리와 갈은 태도를 갖도록 해야한다. 만일 사소한 축복들의 경우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면, 믿음에 관하여는 더욱 더 많이 그렇게 우리가 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흔해 빠지거나 무분별한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히브리서 13장 15절에서 사도가 명령한 바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한 한 실례가 여기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다.

그런대 히브리 서 13장 15절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궁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고 찾아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 " 으로 일컫고 있다. 이것은 신자의 특별한 권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특권을 신자에게만 부여하셨다. 이 내 하나님이라는 말에는,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렘 30:22)는 약속 가운데 표현되어 있는 상호관계가 함의되어 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데서 바울이 드린 순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징표로써 그가 지닌 인품에 나는 그 구문의 말씀을 한정시키고 싶다. 이에 대한 예로, 히스기야는 이사야가 참되고 충성스런 선지자이었다는 것을 선언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을 이사야의 하나님으로 불렀다(사37: 4). 또한 다니엘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순결을 지켰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 다니엘의 하나님으로 일컬어졌 다 (단 6 : 20 ).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 존경 할 만한 사람들, 즉 신자들이 해 준 인정(認定)은 로마 사람들의 믿음을 평가함에 있어서 바울에게는 전 세계가 인정해 준 것과 같았다. 왜냐하면 신앙을 혐오하던 불신자들의 증거는 참되거나 믿을만한 것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 사람들의 믿음이 그 믿음에 대해 바르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리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면 모든 신자들에 의해서 온 세계에 알려졌던 것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 이 소수의 멸시 받은 사람들은 로마에서 마저도 불신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판단을 바울이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버렸기 때문이다.

“9.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바울온 자기의 사랑을 그 사랑의 결과들을 가지고 보여준다. 그가 만일 그들에게 크게 애착심을 느끼지 않았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주님께 천거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특히 바울은 자기 자신이 애써 그들의 구원을 도모 하기를 그처럼 간절하게 원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관심과 소원은 그들에 대한 그의 애착심의 분명한 증거들이다.  왜냐하면 그 관심과 소원이 그것들의 근원을 사랑에 두지 않고서는 결코 존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그의 설교에 대한 신뢰를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그의 진실성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의 맹세를 덧붙였다. 이 맹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주장이 의문시될 때에는 언제든지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과정인 것이다.

 

만일 맹세가 우리가 말 하고 있는 것을 확정 짓기 위해서 하는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호소라면, 우리는 바울 사도의 맹세에 대한 지혜를 인정해야 한다.  바울은 그 맹세로 말미암아 하등의 그리스도의 계명을 위배함이 없이 그 지혜를 사용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맹세들을 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재세례파들이 미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럽) 그리스도의 의도가 아니었고, 오히려 울법의 참된 준행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의 의도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율법은 맹세를 허용하되, 위증이나 맹세에 관한 무익한 서약만을 정죄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맹세를 합당하게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사도들이 보여 준 전지하고 경건한 태도를 본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식의 맹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이해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때에는, 우리가 만일 거짓되게 맹세하는 경우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그를 호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이에 대해 다른곳에서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고 후 1 : Z3 ) 라고 말하고 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 .. “ ; 하나님을 불경건하게 조소하는 사람들은 뻔뻔스러운 만큼이나 확신있게 한낱 구실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위하여 로마 사람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 자신의 신심(信心)을 천거하고 있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감히 거짓 맹세를 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그의 심령을 외형적인 경건의 모양과 대조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인 체하고 겉으로만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는 그가 심령으로부터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증거한다. 그는 여기서 유대인들의 고대 예식들을 언급하고 있었는지도 모론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이 예식들에 의해서만 드려질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는 이러한 예식들로 훈련받지 못했지만, 그가 빌립보서 3장 3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하나님의 신실한 예배자이었다는 것을 그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서 그는 그가 하나님을 신실하고 경건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신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섭기는 것이 참 종교 요바론예배인것이다. 내가 이미 언급하였던 바 대로, 바울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심(信心)을 말하여, 로마 사람들이 그의 맹세를 보다 잘 믿을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였다. 위증(僞證)은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천번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할일이지만, 불경건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두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그의 이름에 대한 참된 존경심도 또한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는 마치 바울이 그는 맹세를 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신성과 경외감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불경건한 자들의 경우처럼 그가 경거 망동하게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고 있는것으로 그가 말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울 자신의 모범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맹세를 할 때마다 우리의 일상 대화에서 우리가 사 용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것에 합당한 영광을 보유할 수 있도록 우리는 경외하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섬김이 단순한 걸치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 라는 것을 그 자신의 직무에서 한 중거를 보여 준다. 그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킴에 있어서 비난과 궁핍과 죽음과 증오 등, 모든 역경들을 모두 그가 주저하지 않고 감내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의 헌신의 가장 완전한 증거였다. 어떤 사람들은 본 귀절의 다음과 갈은 것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즉 영적 예배를 우리에게 명하고 있는 복음서의 명령과 그 예배가 일치했기 때문에 바울은 그가 하나님께 바쳐드린 것으로 말한 바 있었던 그 예배를 천거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 해석이 훨씬 더 나은 것으로써, 즉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중에 하나님을 섬겨 헌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하나님을 섬겨 예배하는 것 외에 다른 동기들을 가지고 있었던 외식자들과 자신을 구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이 야심이나 그와 같은 종류의 것에 의하여 마지 못해 예배하게 된 까닭에 그들의 직무를 충성스럽게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진실되게 수행할 수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바울이 그의 가르치는 직분에 성실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그 자신의 신심(信心)에 대해서 말한 사실이 본문의 이 특정한 경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복음을 전파 하는 중에 복음의 사역자들이 하나님께 합당하고 귀중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들을 때, 그들에계 적지않게 격려를 중에 틀림이 없는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일 복음의 사역자들이 수고가 최고의 예배 행위로 고려될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그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아 그렇게 섬기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바울은 복음을 "그의 아들의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자신의 영화롭게 된 것이 보답하여 성부께 영광을 들리도록 성부에 의해서 택정된 것이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그가 기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들어서 그의 보다 뜨거운 사랑을 계속하여 말한다. 그가 수님과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언급하였다 는 사실온 그의 애정의 위대한 증거이었다. 본문의 뜻을보다 더 분명하게 하기 위 해서, 나는 -'ITO.V'TOTE(판토테 ; 항상)라는 단어가 "내 모든 기도에" 또는, “내가 하 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내가 너희를 말한다”를 의미하는 것으로해석하고 싶다. 뱌울은 여기서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기원(invocation)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드리는 기도( prayers )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바울 사 도는 로마 사람들을 기여함이 없이 어떤 종류의 철규하는 기도(ejac.ulatory.pra yer)를 혼히 소리쳐 드렸을것이다. '.그러나그가 미리 신중하게 생각하고서(~th deliberate,.premeditation)기도했을'.all~ 언제 나, 교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 라 그둘을 기억하였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기도(prayers)에 대하여 하고 있는 것이 다. 주님 자신이 기도할 목적으로 한적한 곳을 찾으셨던 것을 우리가 아 는 대로• 성도들은 의식적으로 신중하계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동시에, 바 울은 그가 Ct쉬 지 않고’’ 기도드린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기도의 습관의 빈 도(顔度), 죽 계 속성 을 밝히고 있다•

“10. 좋은길 얻기를 구하노라·…·” ;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도와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의 복리(福利)믈 -중전시키 기 위해서 간절 하게 우리는 노력할 것 갈자 ‘않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복리를 그가 간절히 열망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나서, 이제 다론 방면으로, 즉 그가 그 들에게 유익될 수 있기를 간구하더, 하나남 면전에서 그들에게 차기의 사 랑을 입 증하고 있다고 바울은 엇 붙인다 •• 또한' (also)이 라는 말을 넣 어 가 지고 다음과 갈이 읽으면, 즉, "어떠하든지 이재 하나님 의 뜻;,.안에서 너희 에게 르 나아갈 좋은 길 얻기물 또한 구하노라”고 할 때 본문의 뜻이 충 분히 드러나게 된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의~은혜로·말미암아그 의 여행이 성공할것으로그가 기대-하고 있을뿐만아니라, 하나님의기쁘 신 재가(裁可)로 말미암아 또한 그의 여행이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 을 밝히고 있다. ---I -•

“11. 내가 너희 보기를 십히 원하는 것은……” ; 그가 비록 그곳에 없었 으나, 그는 그의 교훈을 빌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케 할 수도 있었다. 그 러나 권면의 말이란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에게서 직접 들어야 언제 나 더 효과가 있는 법 이기 때문에, 바울온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그는 그 자신의 유익 근 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유익 을 위해서 여행의 수고로움을 그가 감수하기물 원하였다는 것 을 말해 수기 위해서, 그는 그의 권면의 목 적을 섣명한다. 본문의 ’‘신령한 은사”는, 그가 복음 전하는 것과 권하는 것과 예언에 대하여 소유하였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가 얻었던 것으로 알고 있던 그 능력들을 의미한다. 그는 여기서 “나눠 수어"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이 온사들의 합법적인 용도를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여러가지 온사들이 각 개인에게 주어진 것은. 모두가 그들의 공 동 이익에 아낌 없이 공헌하며. 그리고 서로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은사들 을 동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기 때운이다(롬 12 : 3 나고전 12 : 11 ).

“너희볼 견고케 하려 합이니……” ;바울은 나눠 주기에 대한‘그의 말을 수 식하고(rmdify)있다. 이는 그들을 아직도 복음의 초보적인 원리들로 가르 침 받아야 될 자들로. 그리 고 아직,도 그리 스도에게 완전히 접 붙입 받지 못 한 자들로 여기는 것처럽 보일까 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크게 전 보한 사람들 역시 옆에서 수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매우 도와 수고 싶 어 한다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 이 다. 왜 냐하면 우리 모두는 "그 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옙 4 : 13 ) 견고케 되어야 할 필요 가 있기 때운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가장 겸하한 주장의 .말씀으로 만족 하지 않으시고· 마치 그가 말하기를 ... 나는 내게 부여된 은혜 의 분량을 따라서 너희를 견고케 하고싶다. 그리하여 너희의 모법이 나의 신양의 열 십에 보탬이 되며. 그리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피차 모두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되기들 바란다”고 하기나 한 것처럽, 바울은 그들에게 또한 배우고 자 하는 소원이 없이는 그들의 교사로 자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힘으로 써 나눠 수기에 대한 그의 말을 수식한다. 미숙한 초신자들에게서 견고케 되는 것을 구하기물 거부하지 않음으로 써 그가 느끼고 있는 바를 얼마나 겸허하게 그가 표현하고 있는가를 주의 하라. 또한 그는 전심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 전 보에 아우런 도움도 출 수 없을 만큼 온사들을 받지 못하여 결여한 사람 온 아무도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의와 자만으로 인하여 우리는 이러한 유익을 서로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우월감은 지나치고’ 그리고 우리의 얼빠진 자랑과 자기 도취는 대단한 것 이어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무시하며, 그리고 자기는 풍 부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뷰우처와 견해를 갈이하여, 그 헬라어 동사를 "안위하다”는 뜻보다는 오히려 “전면한다”는 뜻으로 번역하고 싶다. 왜냐 하면 그 번역이 문맥에 며 찰 맞기 때문이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바울은 이제 그 가 여 기까지 미 루어 왔던, 언젠가는 그들을 방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수 님께 드린 그의 끊임없는 간구에 대한 말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그가 이 렇게 미룬 것은, 만일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하는 것 을 그가 게을리하계 되면, 그의 고백들이 헛된 것으로 보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기를, 그가 로마를 방문하려고 여러번 계획을 세웠으나 길이 막 혔었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었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서, 주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을 겸손케 하시고, 그리고 그러한 겸손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의존해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그들에 게 믿도독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의 계획들을 자주 꺾으신다는 것을배우게 된다• 그러나 업격하게 말해서, 그들의 계희들은 좌철된 것이 아니다. 왜 냐하면 그들에게는 주님의 뜻이 아닌 계획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 이다. 우리의 장래의 계획들이 마치 우리의 세력권내에 있어 우리 마음대 로 할 수 있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서 그러한 계획들을 절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짓이다• 이것은 야고보가 날카롭게 책망 하는 점 이 다( 4 : 13 ). 바울은 그가 결이 막혔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말이 주님께서 그를 며 긴급한 일에 사용하셨다는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있겠다. 만일 그가 그 긴급한 일들을 소홀히 했었더라면 교회가 크게 손해를 당했었을 것이다• 신자와 불신자를 가로막는 일들은 그래서 그 경우가 다르다. 왜냐하면 불 신자들온 주님 의 누그러뜨릴 수 없는 손길에서 그들이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는 때에만 가로막혔다고 느끼는 대 반해서, 신자들은 어떤 전정한 이유로 말미암아 방해받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그리고 그들의 본분을 넘어서 거나 교회의 덕 세우는 것에 밭대되는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려고 하지 않 기 때문이다.

“너희 증에서도·… ..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 바울이 여 기서 사도들이 수님께 보냄 을 받아 거두도록 되어 있었던 그 열매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온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 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이니라"(요 15: 16). 바울은 열매를 그 자신의 것으로 일컫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위혜서가 아니라 수님을 위해서 그 열대를 거두었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 내야 하는 것은 신자들의 가장 감된 특칭이다. 그들의 온갖 행복은 수님 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고는 이 일이 다른 이방인들 중에서 그 에게 일어났었던 것을 회상한다. 이는 그가 로마 사람들에게 가는것이 무 익 하지 않으리 라는 소망을 그들에게 갖도록 하기 위합이다. 왜 냐하면 그 의 전도 여행이 아주 많은 이방인들에게 유익이 되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