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고린도후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2)

1. 성경 (고후 8:1 ~ 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1)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2)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3)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4)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5)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6)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7)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9)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0)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1)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2)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3)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4)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15)

2. 묵상 (Calvin선생주석)
만약에 고린도인들이 바울의 첫번째 서신에서 보여준 가혹성을 아칙도 불 쾌하계 여기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 대해서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장 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는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 주력 해 왔다. 그러나 이제 모든 불쾌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고 그의 사역이 그들 사이에 완전한 지지를 되찾게 되자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천거하 면서 그들로 하여금 궁핍한 형제를 돕게 하고 있다• 그가 이 편지의 처음 부분에서 이 일을 했더라면 결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 로 그가 여기에 대해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놓기까지 이 문제를 보류해 온 것은 아주 현명한 처사이다. 따라서 본장과 다음 장에서 그의 전 관십은 고 린도인들에게 예루살렘 형제들의 곤경을 해소하기 위해 보넬 돈을 모금함 에 있어서 적극적이고도 부지런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큰 기 근으로 고생하고 있었으며, 다른 교회로부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생명을 지 탱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바울에게 위임했고, 그는 그 일을 돌보기로 약속했으며, 첫째 서신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정도 이 일을 수행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이 문제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

 

"1. 형제들아…… " ;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그가 마게도냐인들을 칭찬하는 것은 물론 직접적으로 그가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본을 통해서 고린도인들을 격려하는데 있었다. 그러나 사실 고린도인들에게는 온갖 자극이 필요했지만, 마게도냐인들에게는 칭찬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고린도인들에게 더욱 더 시기심을 일으키는 뜻에서 그는 마게도냐인들이 자진해서 형제들을 돕는 자세를  “하나님의 은혜”의 덕으로 돌리고 있다. 비록 궁핍한 자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것이 칭찬할 만한 덕이라는 점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주는 것을 이득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덕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들은 자신들의 것의 일부가 상실되어 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들이 우리 형제들을 도울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의 덕으로 돌려야 하며, 그것을 진지하게 추구해야 할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게도냐인들에게 베풀어진 은혜는 두가지였다. 그 첫째는 그들이 고통을 침착하게,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견뎌 냈다는 점이요, 둘째는 그들의 작은 재물 가운데서 그들이 형제들에게 베푼 도움은 풍성한 재물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바울이 이 두 가지를 다 주님의 일로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인간이란 모든 위로의 주인공이신 주님의 영의 도움을 받지 않을 경우에는 곧 바로 넘어지고 말며, 확고한 신앙에 대한 뿌리 깊은 결핍은 그것이 동일한 영의 은혜에 의해서 압도되기 전에는 항상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어서 사랑의 모든 임무로부터 우리를 붙잡아 놓기 때문이다.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  다시 말해서 그들이 불행을 통해서 시련을 받을 때 주 안에서 계속 기뻐했으며, 그들의 기쁨온 슬픔을 삼킬 정도로 컸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마게도냐인들이 도움을 베풀지 않았을 경우, 계속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던 형제들에게 그처럼 후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그들 자신의 좌절에서 해방되었음에 틀림없었기 때 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기쁨’은 신자들로 하여금 역경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게 하는 영적 위로를 뜻한다. 불경건한자들은 재앙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거나, 몽롱한 것을 생각하는 데 마음을 돌림으로써 스스로를 헛된 위로로 기만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슬픔에 빠진 나머지 거기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지만, 신자들은 그들의 고통 그 자체를 기뻐하는 계기로 바라본다. 이것은 로마서 8장에서 알 수 있는 그대로이다.

 

"극한 가난 (그들의 극심한 가난)" ;  이 비유는 팅빈 그릇에서 따온 것으로, 마계도냐인들이 아주 밑바닥까지 팅팅비게 되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는 이러한 궁핍한 상황에서 일 망정 그들이 풍성하게 관용을 베풀었으며, 단순히 자족 할 정도가 아니라 남을 돕기까지 할 정도로 부요 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가 우리 금전의 부족을 우리 마음의 관용으로 보충할 경우, 제 아무리 극심하게 가난한 상황에서 일지라도 항상 너그러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풍성한 연보 (너그러움)……" ; 여기서 이 말은 인색의 반대말로 로마서 12장 8절에서 그는 집사들에게 이 너그러움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금전 문제에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인색하여 움켜쥐게 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서 너무 세심하고 너무 멀리 내다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너무 초조하게 된 나머지 우리 일생 동안에 얼마가 필요하다느니, 최소한의 푼돈이 나가도 그것이 얼마나 손해가 되는지 모른다느니 하는 식의 푸념을 늘어놓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님의 축복에 의존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러한 성가신 염려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그의 손은 혜택을 베푸는 데 자유롭다. 이 이론이 보다 적은 것에서부터 보다 더 큰 것에 적용되고 있다. 불운, 아니 빈곤 그 자체가 마게도냐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형제들에게 선율 베푸는 것을 가로막지를 않았다. 그런데 비교적 부요하고 풍성했던 고린도인들이 만약에 뒤로 물러섰다면·그들에게 무손 변명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3.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그들이 "자원하여" 바쳤다는 말에는 그들 스스로 그런 마음을 가졌으며, 자신의 간청이 필요 없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들의 능력에 맞게 노력하는 것도 큰 일이었을텐데 그들의 능력 이상으로 일을 했다는 것은 경탄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희귀한 탁월성의 증거였다.  그가 인간의 통상적인 습관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선을 행하는 일상적인 방법으로서 솔로몬의 말대로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생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잠5:15) 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게도냐인들은 자신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나 관심이 없이 대신 남들의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간단히 말해서 재물이 적은 자들이 그들의 형편없는 재산에서 남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 경우 그들은 그들의 능력이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셈이다.

 

"4.  이 은혜와……참여함에 대하여" ;  ‘은혜'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다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연보를 추천하는 뜻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이 가장 단순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값없는 은혜 가운데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만큼 우리 또한 남에게 선을 베푸는 데 있어서 은혜롭게 풍성하신 그를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재물을 내놓는 데 있어서 우리는 그의 선물의 배분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섬기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바울이 이 사역에 있어서 어떻게 마게도냐인둘울 도왔는가 하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들의 일은 성도들에게 돌아가도록 자신의 재물에서 얼마를 기부하는 것으로 끝나고, 바울이 그것을 모금하는 책임을 말기를 바랐던 것이다. 、

 

"우리에개간절히 구하니." ;  그는 그들이 간청을 기다리지 않을 분 아니라 그 들이 만약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미리 접근하지 않았다고 해도 간청했을 사 람들에게 스스로 접근했다는 점을 지적함으으로써 그들의 자발성을 더 강조하 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 이론을 보다1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적용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게도냐인들이 부락을 받지 않고도 먼처 나섰으며 도 웅을 베풀고자 먼처 청했을 때, 간청을 듣고도 고린도인들이 냉담하게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노릇이었겠는가? 마계도냐인들이 모든 사람의 앞에서 -7,J_을 인도하고 있는데도, 고린도인들이 최소한 그들의 본을 따라가 지 않는댜떤 얼마나 수치스러웠겠는가 ! 그리고 ~간청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간구 ‘간철했다'는 사실온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서 그들이 한낱 형식이 아니라 진지하게 요청했다는 점이 명백하계 된다• " . -·-[ ·, '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 ;••. 그는 그들에게서 보통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그런 정도의 평법한 자발성을 예상했지만,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 들의 재물을 바칠 분·아니라 자신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는 접에서 그문은 그의 예상을 능가했다. 그는 저희가 먼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다음에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과 바울에게 바친 것이_..,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남께서 어떤 사여자를 통해서 임무를 맡기거나 명령하실 때 명령하는 권위면에서나 순종을 받아들이는 면에 있어서 그 사역자와 하 나님 자신을 하나로 묶어 말씀하시는 것은 아주 혼한 일이다.

 

사도들이 명 령에 의해서 계시되고 명령된 것을 선언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을 때 ‘그 것이 성령과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보였다,.타는 말을 하고 있다(행15 :28). 그리고 "~식성들이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다,,(출14 : 31)는 말씀도 마 찬가지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런 권위가 없던 사람이다. 이것이 곧이어 따르는 "하나님의뜻을:쫓아"라는 귀철의 의미이기도하 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종의 충-고에 스스로 단순종했던반큼 .... 마치 바울이 하나님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그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 온 것은 바로 이 순종과 일치했다. 二j1'·· I • 단 으 •J `

 

"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 : .• 이 간청이 더 큰 효력을 발휘하 는 것은 그들이 이처럼 거기에 응하라는 부탁을 명백하게一들을 경우이다. 그 는 고린도인들이 이 혜택을 베푸는 일에 참여하기를,·바라고 있는데, 여기에 는 결코 마계도냐인들에 대한멸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디도가 고린도 인들에게 마치 그들의 선의를 의십한다는 식으로 너무 다그치지 말라는 당 부를 받은 것은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마계도냐인들의.격청에 따라 서 그것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7.  풍성한 것같이 .. :…" ; 그는 디도가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가 아니라 마 계도냐인문의 '부락홀 받고 그들에게 ·간청했다는 말로써 그들의 비위문 거스 르지 않으려고 아주 세십하게 l 나온 바 있다. 그라나 이제-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마게도냐 교회로부터 소식을 거다리지 ' 말 것을1 당부하 면서 동시에 그들의 다른 뛰어난 특성들을 칭찬하고있는데,’、이것은 ‘너희 들은 단지 마게도냐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으로 그칠 분 아니라 다른’ 일에 있어서처럼 이 일에 있어서도 그들을 능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가,‘말'과 ‘믿음’을 구별짓고있는데, 이것은사람이란 믿음을, 아니 크나 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의 말씀을 실천함에 있어서는 크계 전전 올 보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식'을 체험이나 분별의 뜻으 로 보고싶다. 그는 자신에 대한 그들의 관십을z격려하는 뜻에서 자신에 대 한 그들의. '사랑'을 언급하고, 동시에 형제들의 공적 유익을 위해서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사적으로 품고 있는 애정에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모 든 말에 있어서 그는,자신의 간청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비난의 근거가 되 는 일이 t없도록 하는:뜻에서 스스로 자제하고 있다.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다시 한 번 그는 그들에계 아 무런 강제성을 부여하고 싶은 의도가 추호도 없다는 점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간청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명령 형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특정한 행동을 명령하면서 그것이 실천되기를 엄격하계 요청하는 것이 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주님으로부터 명령받은 것에 대해서 요 청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에 대한 대답 은 간단하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우리의 형제들의 곤경을 덜어 줄 것을 항상 명령하시지만, 그러나 아무데서도 그는 우리가 얼마를 내 야 하는가에 대한 규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므로 계산을 하고 우리 자신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몫을i구별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좌우간 바울은 여기서 그에게 허용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마치 그들이 강압을 받을 필요가 있으 며, 그렇지 않을 경우그들의 업무를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식으로 명 령을 내리고 있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그 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격려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는 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 느끼는 관십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요, 둘째는 자신이 고린도인들의 사 랑이 모두에게 드러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내가 바울 자신이 그들의 사랑 을 확신하고자 했다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은 그가 이미 그것에 대해서 확 신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나는 모두가 그것에 대한 증거를 가지길 그가 바랐던 것으로 본다. 하지만 그가 남들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언급하고 있는 첫째 소철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 하나는 그가 그들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고 있어 서 안십할 수 없었다는 것으로보는 것이요, 다른하나는 그가 이 문제를 마 음에 두고 있던 사람들의 간청에 굴복했으며, 따라서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는 그들의 재언에 따라서 말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9.  우리 주·…”은혜틀 너희가 알거니와……" ; 그는 사랑에 대해서 언급한 다음에 여기서는 그리스도를 그것의 완전하고 유일한 귀갑으로 언급하고 있 다. '그리 스도께 서 는 부요하셨지 만 그의 빈곤으로 우리 를 부유하게 하려 고 그의 모든 축복의 소유를 포기하셨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그가그리스 도를 언급한 이유를 생략하고 그들 스스로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우리 가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서 자극을 받아 혜택을 베풀며, 그 결과 우리 형재 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 자신을 아끼 지 말아야 한다는 접 은 누구에 게나 명백한 사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셨던 것은 그가 만물을 그의 능력과 권위 아태 두시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이요, 사도의 말대로 그가 우리의 인성을 덧입은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상속 자’이셨던 것은 그가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 모든 피조물 위에 놓여졌으며, 만물이 그의 발 아태 굴복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난 하게 되신 것은 그의 소유를 포기하셨으며, 당분간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모태에서부터 얼마만한 빈곤과 모든 것의 부족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가 하는 접을 찰 알고 있으며, 그리스도 께서도 친히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 : 58)라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 따라서 그가 몸소 가난 을 거룩하게 하신 것온 신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움츠러들지 않도록 하려는 뜻에서요, 그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풍요합에서 메어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I II I I 서 I I

 

"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여기에 내 판단을 재시하노니)" ;  여기 서 말하는 ‘판단'은 그가 방금 말한 ‘명령’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내가 예 상되고 있는 것을 너희들에게 보여주되 오칙 충고나 권면을 통해서 그렇게 하노라' 타고 하는 말이 나 다름없다• 육신의 판단에 ‘그것 이 유익 하다’ 는 접 이 그럴듯하게 보일 수 없는 것은 자기 것을 빼앗아 남을 돕는 것이 자신에 게 유익한 것으로동의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방 속담에 는 ‘그대가 나누어준 재물은 언제라도 반드시 그대가 가질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이유는 친구둘에게 준 것은 의십없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보상에 대한 소망이나 우리의 구재에 대한 보수 대문 에 영향을 받는 것을 원치 않고, 오직 인간들이 설령 배은망더할지라도, 그 리고 우리들이 그들에게 준 것이 상실되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우 리가 끈질기게 선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에 대한 혜택은 솔로몬의 말대로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 아주시리라"(참19 : 17) 하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그대로이다. 그의 축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상의 모든 보화보다 수백 배 귀중한 것으로 취급되어야 마땅하다. 여기에 나오는 ‘유익하다’는 표현은 종종 ‘촌귀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아니, 바울은 촌귀한 것과 관련해서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를 결정 짓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 까닭은 고린도인들이 ·이미 그와 갈은 진전 올 보고 있으면서 도중에 뒤로 돌아서거나중단한다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라고 그것이 무익했던 것은 시도된 모든 것이 하 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행하기틀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 ‘행하는 것'이 뜻하는 것보 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의 말두는 부적철한 것으로 보일는지 모 론다. 그러나 여기서 뜻한다는 말에는 그것의 단순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간청을 가다리지 않는 즉각적인 열성에 대한 개념이 덧 붙여쳐 있다.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는 말하자면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우 리는 때때로 수치나 공포십에 못이겨 우리의 뜻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수 가 있다. 둘째, 우리는 자발적으로 행동하지만 우리 자신 밖에서 유태하는 영향력 밀에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세째, 우리는 자유몹게 우리가 마땅 히 행할 바를 정할 때 우리 마음의 자극에 따라서 행동하는 수가 있다. 이 처럼 외적인 자극과 무관하게 행동하는 신속성은 어떠한 행실의 단순한 수 행보다 훨씬 더 낫다•

 

"11. 이제는 행하기틀 성취할지니… ••" ; . 아마도 고린도인들의 열성이 쉽사 리 식어버렸던 것 갈은데, 그 까닭은 그렇지 않을 경우라면 그들은 자신의 의도를 지체없이 수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는 무슨 찰못이 저 질러졌다는 말을 하는 대신 부드럽계 그들에게 그들이 찰 시작했던 것을 완 성할 것을 간청하고 있다. "있는 대로 하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그는 있을 지도 모를 반론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육신은 언제나구실을고안해 내는 데 있어서 재치를 부리며, 더러는 딸린 가족이 있으므로 그들을 소홀히 하 는 것이 불친철하지 않느냐고 항변하는가 하면, 또 아무것도 내지 않으면 서 ‘어떻게 내가 그렇게 조금 넬 수 있나?' 하는 말로 얼버무리기도 한 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 각자의 역량에 맞게 바쳐야 한다는 말로써 이 모 든 핑계를 제거하고 있으며, 이어서 그 이유로서 하나님께서는 양(量)이 아 니라 마음을 보신다는 접을 덧붙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발적인 마음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하나님께 ·용납된다는 말속에는 ‘설령 너희가 얼마 안 되는 재물에서 적은 부분을 바친다 하더라도 부자가 그의 풍요함에서 많은 것을 바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귀한 것이다'타는 의미가 담겨 있 다. 주고자-하는 적극성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l에 의해서 판단되 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라가 우리 재물이 허용 하는 법위 이상으로 바치는 것을 요구하시고 있지 않다. 이런 방식으로, 곧 부자는 하나님 께 큰 몫을 바쳐 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바치 는 것 이 작다 하더라도 수치스럽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어 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 이것은 그가 방금 이야기한 내용, 곧 하나님께서는 남들이 우리의 너그러움을 통해서 편안하게 되도록 하는 뜻에서 우리들이 꼭 궁지에 몰리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빈곤하거나 부요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자발적인 마음이라는 점에 대한 확 증이다. 물론 우리는 일부가 아니타 우리의 가전 것과 우리의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빛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철 가운데 바울이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실 정도로 우리를 아껴 주시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의 그의 가르침은 율법의 업격한 문자에 대한 임의적인:포기라고 아해될 수 있다 •.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가 때때로 너 그러운 마음을 갖는 일에 있어서 스스로를 자국할 팔요가 있는 것은 우리는 과도하계 호르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팔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위험 온 우리가 너무 적게 주려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우리가 완전 히 없어지기까지 모든 것을 꽁동기금에 넣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으로 생 각하는 광신자들을 반박하는 데 팔요한 것 이 다• 그들이 이 광기를 통해서 얻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선한 양십으로 구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분 이 다. 그러 므로 우리 는 바울의 irrtel!Cua(에 피 에 이 케 이 아), 곧 우리 형 재 들이 편하계 되고 대신 우리가 궁핍하게 될 정도로 우리의 풍요한 것에서 그들 의 팔요를 달래는 것이\아니라,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재물에 비례해서 그들 에게 주고 그것도 자발적인 마음으로 줄 때 우리의 구제가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한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의 온유성과 온건성을 주목할 팔요가 있다.

 

"14.. 너희의 유여한 것(그들의 풍성함)" ; 여기서 말하는 풍성함이 무엇을 뜻하논가 하는 접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십이 있다. 혹자는 이것을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고린도인들에게 왔던만큼 그곳 교회의 영적 재물이 고 린도인들의 빈곤을 돕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 온 바울의 의 도는 아니 다. 그보다 이 것 은 성 도들의 공유(公有, communion) 와 관련되 어 야 하는데 , 이 말은 한 지 체 에 게 어 떤 임 무가 부과될 경 우 그것 이 전체 몸에 유익을 끼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너희들이 너희들 의 형제를 아무런 궁극적인 가치가 없는 재물로 돕는 것이 싫다면 더 큰 가치가 있는 축복이 얼마나 너희들에게 부족한가 하는 점과 너희들에게 세 상적인 물건을 풍성하게 베풀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걷 핍되고 있다는 점을 명십하라.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의 지체들 가운데 세 워 놓으신 이 공동분담(communal sharing)을 생 각하고서 너 희 들은 더 적 극적이요, 열성적으로 선을 행하도록 해야 마땅하다'타는 말과 같다. 아니 떤 그 의미는 ‘이제 그들이 궁핍한 때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들을 구제 하라. 그러나 다론 때는 그들에게 너희들을 보답할 기회가 허용될 것이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보다 일반적으로 인용되고 있는 첫째 해석을 머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그가 다시 평균에 대해서 말하는 내 용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적당한 평균 의 원칙이란 지체들끼리 자신의 선물과 필요에 비례해서 서로 나누어 쓰 며, 설령 어떤 사람은 많이 갖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적게 갖게 되며 선 물들이 불공평 하게 분배된다 하더 라도 이 상호간의 분담에 잘 직 응하는 것 이다.

 

"평균하게 하려 합이라." ;  평균이라는 말은 각자가 똑같은 양을 줄 때의 상 호간의 보상을 뜻할 수도 있고, 아니면 공정한 분배를 뜻할 수도 있다. 나는 la6,'Y)'f'a(이 소테 -타)를 각자가 자신의 가진 것 가운데 서 공정 한 몫을 주어 야 한다는 의미로 택하고 싶다. 그는 골로새서 4장 1철에서 이 단어를 이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거기서 그는 주인들에계 평동한 것을 종에게 줄 것을 권면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상태와 신분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들이 종에 대해서 친철과 온유한 용납을 품어야 옳다는 뜻이냐 따라서 주께서 우리들에게 우리의 재물을 공정하게 할당하도록 추 천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자금이 허용되는 한 난관에 봉착해 있 는 사람들을 돕고, 그렇게 함으로써 풍요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이 나누이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뜻에서이다. 그는 ‘이제'타는 말을덧붙이고 있는데, 이 것은 당시 예루살렘 성도들이 쪼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혜 택을 베푸는 데 있어서 우리가 공평의 원칙을 준수하고자 한다면, 당면한 팔요성을 살펴야 한다는 점을 여기서 배우는 샘이다. I :' ! 11

 

"15. 기록한 것같이……" ; 바울이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말씀은 만나와 관 련되는 것이지만, 우리가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는 이것이 인간이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타 하나님 의 부양을 받으며 만물을 창조하신 그의 뜻(His Will)의 은밀한 능력 에 의해서 안전하게 지켜지고 보촌된다는 영원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기를 바 타시 기 때 문이 다. 다론 곳에 서 (신 8 : 3) 모세 는 백 성 들에 게 그들이 당분간 만나를 먹고 지내게 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인간이 자신의 근면이나 수고 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에 의해서 먹게 된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 려는 뜻에서라는 접을 권면하고 있다. 이제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말씀을 겁토해 보도록 하자. 만나가 내려졌을 때 그들은 그것을 각자가 모을 수 있 는 한 모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적극적이요,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의 하루 사용량보다 더 많이 모으고 어떤 사람은 더 적게 모았지만 아무도 자신의 개인용으로 한 호멜 이상은 가져가 지 않았다• 이것이 주께서 규정하신 양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팔요한 만큼씩 가졌으며, 아무도 궁핍하지 않았다. 이것은 출애굽기 16장 18 철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제 여기서 이 이야기를 바울의 관십에 적용시켜 보자. 주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가지는 양식에 대해서 호멜이나 다론 단위를 규정하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겁약과 절제를 요구하셨으며 누구든 자신의 풍요 때문에 과도하계 되는 것을 금하셨다• 따라서 재물을 가전 자들은 그 것이 상속된 것이든 자신의 근면이나 수고로 얻은 것이돈, 쓰고 남은 것은 낭비나 사치용이 아니라 형제들의 궁핍을 덜어주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십할 팔요가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의 근원이 무엇이돈 만나와 같다. 물론 여기에는그것이 정말로우리들의 것이어야한 다는 조건이 따른다. 기만이나 불법적인 수단으로 얻어전 재물은 만나의 명 칭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 가운데 보내시는 메추라기 이 다. 그리 고 탐욕이 나 신앙의 부족 때 문에 과도하게 굵어 모았던 만 나가 당장에 썩어버렸던 것과마찬가지로 우리는우리 형제들을 회생시켜 가 면서 산적된 재물은 저주받은 것으로서 곧 없어질 것이요, 그것의 소유자도 그것과 함께 패망할 것이타는 점을 의심할 팔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 리 자신의 먼 장래를 위해서 비축하며, 우리의 가련한 형제들에게 그들의 몫 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이 부자가 되는 데 있어서 올바론 방법인 것으로 생 각하지 말아야겠다.

 

물론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보다 더 우아하게 사는 것이 나쁠 정도로 우리가 평등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굶어 죽는 사 람이 없고 아무도 남을 회생시켜 가면서 자신의 풍요를 축적하는 사람이 없 을 정도의 평동은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 가난한 사람의 호벨은 거칠거 칠한 음식에 간소한 식사가 될 것이요, 부자의 것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더 풍성하겠지만, 여기에는 각자가 절제하며 남을 실족시키지 않는 면을 따 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