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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계시록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계8:4)

1. 성경 (계8:1 ~ 5)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1)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2)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3)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4)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5) 

 

2. 묵상(박윤선박사주석)

"1.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 .- "반시 동안쯤 고요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1) 빅토라이너스(Victorinus)는, "성도들이 장차 누리는 영원한 안식의 징조"라고 하였고(Semi hora nitium puictis aeternae),

(2)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이것이 "장차 화벌(나팔 재앙)의 두려움을 암시한다"고 했다(En dat wijst op het verschrikklijke van hetgeen te wachten staat)(습 1:7 참조).

(3) 스웨테(H. W. Swete)는 말하기를, "이것은 다만 잠간 동안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된 것을 가리킨다"하고,

(4) 촬스(Charles)는, 이것이 앞으로 나올(3, 4)기도를 위한 정숙(靜肅)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견해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다섯째 하늘에서 봉사하는 천사의 무리가 밤에는 찬송하지만 낮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찬송이 상달되게 하기 위하여 그들(천사의 무리)은 고요히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본문대로는,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기 위하여 천사들의 찬송이 중단되고 고요하다(I.C.C Commentary, Revelation, p. 223-224). 기도하는 시간에 모든 사람이 조용할 것은, 구약도 가르치고 있다(대하 29:29).

(5) 릭날다(Ringnalda)는 말하기를, "이것은, 이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을 앞에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최대의 긴장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은 종말의 시작이다. 지금은 마지막 날이 온다.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에 왕권 실행을 시작하려고 하신다"고 했다(Het Koningschap Van Christus, p. 157).

(6) 어떤 설에 의하며, 이 고요함은 죄인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인적(隱忍的) 긍휼(矜恤)의 상징이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겔 33:11). 그리하여 그는 회개치 않는 죄인들을 향하여 오래 동안 은인 침묵하신다. 그것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생명에 이를 좋은 기회가 되지만,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무서운 기간이 되고 만다. 위의 여러가지 의견들 중, 네째 것이나 여섯째 것이 옳은 것 같다.

 

"2.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 ; .- "천사"에 대한 말은 사 36:9에도 있으나 그들의 7수는 여기서 처음 나타난다. 모팟트(Moffatt)는 이것이 가경(假經)(Tobit 12:15)에서 유래된 듯이 말한다. 위의 토빗 가경에는 말하기를, "나는 성도들의 기도를 가지고 지극히 거룩한 자의 영광 앞에 들어가는 일곱 천사들 중의 하나인 라파엘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계시록에 있는 일곱 천사라는 문구가 반드시 가경에서 유래되었다고 함은 억측(臆測)이다. 여기 천사의 7수는 일곱 나팔과 관련되어 사용되었으며 또 상징적 의미를 가졌을 터이다. 그러나 가경 문학의 7수는 여자적 의미(如字的意味)를 가진다.

 

"3. 다른 천사" ; .- 이 천사의 하는 일이 중보자(仲保者)의 행위와 같은 고로 그를 그리스도로 보는 학자가 있다. 그러나 여기 이 천사는 자기의 공로를 가지고 사역하는 중보자에 미치지 못한다. 이 천사는   "많은 향을 받았"- 다고 했으니(*     ), 그 "향"이 자기의 것이 아니다. "향"(贖罪의 功勞)은 그리스도 뿐이시다. 그러므로 이 천사는 그리스도 앞에서 수종드는 자이다(계 1:1).


 "많은 향을...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 .-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기도 그것은 하나님에게로 오를 아무런 힘도 없다"라고 하였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이니, 소극적(消極的)으로는 죄와 및 천국의 공적(公敵)을 처분하여 버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구함이다(마 6:33; 눅 18:7; 계 6:10 참조). 옛날부터 성도들의 이런 기도들은, 하늘에 오르고 또 오르다가 이제 일곱 나팔 재앙으로 말미암아서 갚음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본문에 "많은 향"(뒤미아마타 폴라=* )이란 말을 보아서 성도들에게서 먼저 많은 기도가 올라가야 한다. 하늘은 성도들의 많은 기도가 오를 동안 고요하다가(계 8:1), 그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로써 크게 요란하게 될 터이니, 곧, 일곱 나팔 소리에 따라서 떨어지는 무서운 재앙들이다.

 

"4절" ; . 이 말씀에 있어서 기도(祈禱)보다 향연(香煙)이 그 주동 역할을 하면서 기도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해 준다. 5:8에서는 성도의 기도를 향이라고 했으니, 그 만큼 기도의 성립 요소는 향(그리스도의 공로)이기 때문이다.

 

"5.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 .- 제단의 불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음"은, 땅 위에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을 멸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림을 상징한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기도와 향을 담았던 금화로(金火爐)가 이제는 진노의 불을 담는데 사용된 사실이다. 이 화로는, 한편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호의(好意)를 끄는 그릇이고, 다른 한편 천국의 공적(公敵)에게는 진노를 담아 붓는 그릇이 된다. 이것은 이상한 대조이다.  성도에게 생명의 냄새가 되는 것이, 멸망 받을 자에게는 사망의 냄새가 된다(고후 2:14-16).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 ; .- 이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 여기 "음성"은 인간이 지각(知覺)할 수 있게 부르짖는 회개의 재촉인 듯하니, 그것만은 아직도 하나님의 자비의 표시인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확실성 있는 결정은 못짓는다. 그 이유는, "음성"도 역시 무서운 심판의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시 29편). 4:5 해석 참조.

 

[호크마주석]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 .- 재앙을 동반한 여섯 가지 인(印)과는 달리(6장) 본문에 나타난 일곱째 인 은 직접적인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동반하는 일곱 나팔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은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묘사된 것이라 주장한다(Hendriksen, Davis, Ladd, Mounce,Plummer). 그리고 그 근거로 두 재 앙이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연관된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환난을 견디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의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6:12ff. ;11:15).

(2) 혹자는 두 재앙이 단지 시간적으 로 연속적인 사건일 뿐 별개의 것이라 주장한다(Beckwith, Tenney, Blanchar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 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일곱 나팔의 재앙들은 일곱 인의 재앙보다 심판의 정도가 더 격렬하고 광 범위하며 두 재앙 사이에 순서와 내용상 차이점이 많으며 또한 여섯째 인의 재앙까지는 성도들이 하나 님의 인을 받지 않은데 반해 일곱 나팡의 재앙은 인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7:1-8;9:4).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라" ; .- '반시 동안즘'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헤미오론'(*)은 '반'을 나 타내는 헬라어 '헤미'(*)와 '시간'을 나타내는 '호라'(*)의 합성어로서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사용된 다. '반시동안'이라 함은 비교적 짧은 시간의 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통해서 재앙의 긴박감과 극 적인 면을 강조하고자 한 듯하다(Mounce). 한편 '고요하더니'에 대한 견해는 다섯 가지이다.

(1) 혹자는 평안과 안식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Victorinus).

(2) 혹자는 안식일의 휴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Bede, Scroggie).

(3) 혹자는 이스라엘 즉 고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찬양을 듣기 위한 침묵이라고 주장한다(Charles, Rist).

(4) 혹자는 핍박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와 절규를 듣기 위한 침묵이 라고 주장한다(6:10, Beckwith, Barclay).

(5) 혹자는 보다 격렬하고 광범위한 재앙을 가져다 주는 일곱 나팔의 진노가 임하기 이전의 긴장감과 경외심을 나타내기 위한 침묵이라고 주장한다(Ladd, Johnson, Morris, Mounce, Greijdanus). 다섯가지 견해 중 마지막 두 가지 견해가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본 문은 7:3절에서 하나님의 종들이 인을 받기까지 심판이 연기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백성의 신원(神寃)의 기도를 들으시고 권능의 심판을 행하실 것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고 있다(합 2:20;습 1:7;슥 2;13, Morris, Mounce, Ladd).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 .- '시위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헤스테카신'(*)은 ' 히스테미'(*,'서다')의 완료 능동태로서 '서있는'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봉사할 채비 를 갖추어 하명(下命)을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왕상 17:1;18:15;왕하 3:14;5:16). 한편 '일곱 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혀타 앙겔루스'(*)는 정관사 '투스'가 사용되어 일곱 나팔을 받는 본절의 천사들 이 특정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위경에 보면 일곱 천사장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다(Tobit 12:15; I Enock 20:2-8). 그 이름은 우리엘(Uriel), 라피엘(Raphael), 라구엘(Raguel), 미카엘(Michael), 사 라카엘(Saraqael), 가브리엘(Gabriel), 레미엘(Remiel)이다. 그러나 일곱 천사장이 본문에 나타난 일곱 천 사와 동일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위경에 따르면 이 '일곱 천사장'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께 나아가는 일'을 하나 본문에 나타난 천사들은 일곱 재앙을 담은 대접과 연관된 천사들로서 종말을 예고하기 위해 부름받은 천사들이다(Morris, Mounce).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 .- '나팔'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만들도록 지시하신 것으로 백성을 소집하고, 모든 지파를 진행하게 하며, 전쟁을 알리고 절기를 표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민 10:3-10). 또한 이스 라엘 군대를 인도할 때와 왕들의 대관식에도 사용 되었다(레 23:24;민 29:1;수 6장;왕상 1:34, 39;왕하 9:13). 신약성경에서 '나팔'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마 24:31;고전 15:52;살전 4:16) 특 히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7-12절;9:1-21). 이런 것으로 보아 일곱 나팔 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이며,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주권적인 임재를 나타낸다(창 19:16;, 19;사 27:13;욜 2:1;습 1:16;마 24:31;살전 4:16).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 .- '다른 천사'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 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alvoord, Hendriksen, Bede, Ellicott, Ladd).

(2) 혹자는 '천사'라고 주장한 다(Mounce). 두 가지 견해중 전자가 타당하다. 후자의 견해에 따르는 자는 다니엘에게 기도의 응답을 전해주는 가브리엘 천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천사가 중재 사역을 행한다고 주장하나(단 9:20;10:10;히 1:14) 본절에서는 중재의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외의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천사의 중재 사역은 나 타나지 않으며 7:2에서 인치는 '다른 천사'역시 그리스도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아 본문은 그리스도의 중 재 사역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 하다.

 

"제단 곁에 서서" ; .- 본문의 '제단'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시아테리우'(*)는 '향단'을 가리킨다 (6:9;14:18;레 16:12). 본절에 나타난 천사의 행동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 제단에서 숯불을 취하는 동작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본문의 향단은 '성소 안의 향단'을 의미하는 듯하다(출 30:1-10;녹 1:9;히 9:4, Mounce).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 .- '금향로' 의 헬라어 '리바노톤 크리순'(*)에서 '리바노톤'은 두 가지 의미 즉, '향로'와 '유향' 이라는 의미를 지니나 '금'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향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막의 향로는 금으로 되어 있다(왕상 7:50). 한편 '향'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 는 단순히 '향'을 의미한다고 본다(Kraft).

(2) 혹자는 '향'이 성도들의 기도로된 것이기 때문에 '기도'라 고 주장한다(Bruce, Swete). 이 두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5:8에서 '향을 담은 대접들'을 '성도들의 기도'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 .- '천사의 손으로부 터'라는 표현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들이라는 사실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천사는 위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재적 기능을 의미하기보다는(Tobit 12:15; I Enoch 9:3)성도를 위해 봉사하는 기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Morris, Mounce). 한편 '하나님 앞 으로 올라가는 지라'는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가 공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열납하시는 것 임을 시사한다(Morris). 여기서의 기도는 아마도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성도들을 핍박하던 사단의 세력 들을 응징해 줄 것에 대한 기도인 듯하다(6:10, Ladd).

 

"5절" ;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본절은 세마포를 입은 사람이 그룹들 사이에서 숯불을 그의 손에 움켜쥐고 그 성에 쏟아 붓는 에스겔의 환상과 유사하다(겔 10:2-7). 향로에 담긴 이 '불'은 성도들의 기도가 드려진 그 제단에서 담아온 것이므 로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순교 자들의 신원(6:10)의 기도에 대한 부분적인 응답으로 (Mounce, Ladd, Morris) 일곱째 나팔을 불때 (11:15)와 일곱째 대접을 쏟을 때(16:17)같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심을 시사한 다. 그러한 응답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 즉 하나님의 임재로 이루 어져 하나님께서 곧 심판하실 것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