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
말씀: 로마서 1:1 ~ 7
찬양: 102장
오늘 새벽에 은혜를 나누고져 하는 말씀의 제목은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라는 제목으로 정하였습니다.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님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인지한 상태에서 끝나 버리면 결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역사 하는 바가 없다고 믿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종은 스스로 할 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하는데 ‘노예’라는 의미입니다 어원은 ‘속박하다’ ‘가두어두다’의 의미인 “데오”라는 말에서 유래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벤허”라는 영화를 보면 배의 밑 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노예는 오직 그배의 함장이 시키는데로 노를 젓기만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서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씀은 “하나님 말씀앞에 절대 순종하여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씀을 골라서 적용 하려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저 집사님에게, 저말씀은 이 집사님에게 자기 좋을대로 적용하는 우를 범할 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 소유의 모든것을 잃는다 할 지라도 “주신것도 여호와 이시니 거두어가시는이도 여호와 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욥처럼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기에 사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파 하였습니다. 이 로마서를 쓸 무렵 바울은 에배소에서 2년여를 회당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시면 아데미라는 신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던 도시이고 마술을 행하는 사람이 도처에 넘처났습니다 바로 그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 함므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 오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데메드리오라는 은으로 우상을 파는 은장색이 동업자들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에 피신해 있는 동안 본 로마서를 썼습니다. 더욱 은혜로운점은 무엇인가 자기의 생명의 안위를 위하여 방책을 강구 하여야 할 아주 귀중한 순간에 로마의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본 로마서를 기록하였다는 것 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경 학자들은 말합니다 로마서가 아니면 4복음서를 제대로 이해 하기가 힘들었을것이라고.....우리는 모두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 말씀 앞에 지극히 작은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을 시작할 무렵에 서기오 바울을 만난후(사도행전13장) 사도행전에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그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이 사도행전에 등장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히브리식 이름으로 ‘사울로스’입니다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사울의 부모는 배냐민 지파의 자랑인 이스라엘 최초의 왕인 ‘사울’처럼 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저는 저의 종명이의 이름을 지을때 한참 생각 했습니다 무슨 의미의 한자 이름을 붙여 줄까 하고 망설였습니다 처가에서는 사주를 보고 지어야 한다고 복채를 주고 이름을 지었는데 저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적이 아니라고 생각 했기에 집안의 학렬 돌림자인 쇠북종(鍾) 밝을명(明) 즉 ‘밝음을 알리는 사람’ 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장성하여서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 하여 생각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가 ‘바울로스’라는 헬라식 이름으로 사도행전에 13장 후반부부터 등장 합니다 바울로스라는 말은 ‘작은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의 종으로 지극히 작은자로 살았음이 분명하다고 판단 됩니다 이것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 모두 믿는자는 하나님 말씀앞에 지극히 작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말씀앞에 교만하면 그 말씀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 모두 말씀앞에 지극히 작은자가 됩시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90%이상이 유대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는 주후 57년경으로 헬라문화가 아주 찬란하게 꽃 피우던 시절입니다. 어떻게 생각 하면 갈릴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찮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이란 성경에 미리 약속된 사건임을 마치 자기의 신앙 고백하듯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한 당대의 석학이었다라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 수 잇습니다
넷째로 부활신앙을 믿는 자 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어령 선생을 아시죠 그분은 그분의 가족이 다 믿는데 그분은 부처보다는 예수를 믿는 것이 낫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문학을 하시는 분이되셔서 성경의 박식하구요 주석도 할 수 잇지만 정작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인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자는
첫째로 하나님 말씀 앞에 둘로스적인 삶을
둘째로 하나님 말씀앞에 바울로스적인 삶을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 하는
넷째로 부활 신앙을 믿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찬송가 453장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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