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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에베소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1. 성경 (엡5:22 ~ 3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2)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3)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4)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5)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6)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7)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8)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29)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0)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1)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2)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33)

2. 묵상 (Calvin선생주석)
"22. 아내들이여~~~~" ; 바울은 이제 여러가지 그룹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복종의 보편적인 범위 이외에 있는 어떤 그룹들은 그들의 받은바 소명에 의해 볼 때 좀더 밀접하게 피차가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서로 비숫한 멍에를 메고 있는 여러 그룹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서로 책임을 분담하고 있다. 첫째의 멍에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결혼이요, 둘째의멍에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매임이요, 세째의 멍에는 주인과 종과의 관계이다. 이처럼 사회는 각기 다른 여섯 집단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바울은이들에게 각기 독특한 의무들을 부과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내들에게부터시작하기를, 자기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 하둣이 복종하라고 명령하고 있다.권위가 같다는 것이 아니고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그 이유는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질서와 똑같은 질서를 자기와 자기의 교회를 주장하는 것으로 정하셨다. 이러한 비교는 단순히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주관하도록 하셨고, 이 머리 됨(praefectura)의 형상을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과 같이 그리스도께서그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사실 속에 반영사키셨다. (

 

"23. 이는~~~~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어떤 사람들은 이 대명사가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남편을 가리킨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지금 말하고 있는 주제와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이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교회를 주관하고 계시는 것인만큼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 이상으로 D더 유익하고 좋은 것은 없다는 유사점이 강조되고 있다. 자기들이 구원받는 것에 복종하기를 거절하는것은 곧 멸망을 택하는 것과 같다.  뒤따라 나오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다고 해석될수 있다. 분명하게 아내들은자기 남편이 그리스도와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실례대로 자기들을 주관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자. 그러나 바울은 접속사 daa(알라)를 '더우기 (caeterum 캐테룸)라는 의미로사용했다고 보는 해석이 더 옳은 것 같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  한편 남편들에게는 사랑이 요구되고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예로 들어 말함으로써 이 사랑이 평범한 사랑이아니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만약 남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는영광을 소유했다면,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나타내는 자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 의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닮아야 할 것이다.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 말씀은 남편들이 자기 아내에게 베풀어야 할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바울에게는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도 들어 있었다.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를 위하여 죽기를 주저하시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교회를 구원하신 것은 오직 그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권세였고 사람에게주신 것이 아니다.그러나 바울은 이제 "이는................ 하시고",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그것과 구별하셨다고 말한다. 나는 '거룩하게 하다 라는 말을취한다. 이것은 죄의 용서와 성령의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6. 물로 씻어......깨끗하게 하사...." ; 바울은 이제 내적이고 은밀한 성화()를 외부적 상징으로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성화의 가시적()인확증이기 때문에 성화의 보증은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말하는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흔히 일어나는 것처럼 사람들이 자기의 왜곡된생각으로 성례를 우상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올바른 해석이 있어야 하겠다. 바울은 우리가 세례로 씻음을 받는다고 말했을 매, 하나님께서 우리가 씻음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곳에는 그와 동시에 세례의 표시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실체(rei veritas) 혹은 동일한 존재로 나타나는 것(exhibitio)이 세례와 연관되어 있지 아니하면 세례를 영혼을 씻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동시에 우리는 세례의 의식 혹은목사를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것과 대치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목사가 씻음의 주인이 된다든가 혹은 물이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씻을 수 있는 영혼의 더러움을 깨꿋하게 한다든가 하는 생각을 조심해야한다. 요컨대 우리는 성례에 사용되는 물건이나 사람에게 우리의 신뢰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성례의 참되고 올바른 사용이라야 우리를직접적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거하도록해주기 때문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세례의 찬사를 약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이러한경우에는 영혼을 씻는 것이라고 불려지는 의식(sign)에다가 너무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로,사도 바울이 세례라는 의식이 깨꿋하게 해준다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이 깨끗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꿋게 하시는 것은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찬송이나 의식, 심지어는 세례의 의식 속에들어 있는 것과도 대치될수 없다. 하나님께서 세례의식을 수단으로 사용하신다는 말 속에는 조금도 애매한 점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세례의식을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능력이 연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견해를 반대하면서 세례는 특별히 성령께만 속한 것이며, 다른 성경 귀절들도세례의 의식은 모두 성령께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사상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의식을 사용하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것의 모든 효험은 성령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세례의 의식은

 

그 힘을 다른 곳에서부터 이끌어내지 않는 한 그 자체만으로는 무익하기 때문에 내적인 도구 이상의 것이 될수가 없다.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시키는 것이라고 염려하는 사상도 '역시 근거가 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권세 있는 은혜는 세례의 의식을 제한하지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하시고자 하시기만 하면 세례의식의 도움없이도 자유톱게 은혜를 베푸실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세례의식을 은혜에 참여하는 방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의식은 누구에게나, 즉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똑같이 공통적인 것이다. 그러나성령은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부여되어지고, 우리가 말한 바와 같이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는 세례의 의식이 효험을 가지지 못한다. 헬라어 분사capioas(카다리사스)는 과거시제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씻어진 후에 라는 뜻이다. 그러나 라틴어에서는 과거시제로 된 능동형의 분사가 없기 때문에 나는 시제를 무시하고 '씻기어짐으로써 (mundatam)라고 번역하지 않겠다. 이것은 보다더 중요한 것, 즉 깨끗하게 해주는 직분은 오직 하나닙께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수식해 주고자 한 것이다.

 

"말씀으로" ;  이 말씀은 공연히 불필요하게 덧붙여 놓은 것이 아니다. 만약 말씀이 떠난다면 모든 성례의 능력은 상실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성례가말씀을 인쳐주는 것 이외에 또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많은사색들을 멀리하게 해줄 것이다. 세례의 의식에 정신이 팔려버린 미신적인사람은 왜 생기는가? 그들의 마음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는 말씀에 향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씀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바라보게 된다면 거기에는 건전하고 순전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친 사람들은 마침내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권위가 집중되어진 세례의 의식들을 모독하고 하찮은 우상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있다.그러므로 경건한 자의 성례와 불신자들의 생각 사이에 있는 유일한 차이점은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여기서는 말씀이 의식의 능력과 사용을 설명하고 있는 약속들을 의미하고있다. 따라서 교황주의자에게는 의식들을 정당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실제로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으나 일종의주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치 죽은 물건을 말하는 것처럼말씀을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며 사람에게 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교인들에게는 그 신비적인 의미를 설명해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성례를 마치 죽은 질료로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말씀으로 는 '말씀에 의해서' 라는 의미와 같다.

 

"27. 자기 앞에 .....세우사" ;  바울은 세례, 즉 우리의 씻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하고 홈이 없이 살려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씻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죄악으로 다시 물들지 않고 한 번 받은 순결함을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지탱해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바울의 논조()와 잘 어울리는 비유적인 말로 묘사되고 있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 ;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랑을 받는 요인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신부인 교회를 거룩하게 하여 자기의 선한 뜻의 증거로 삼으신다. 이 비유는 결혼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곧 비유를 버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교회와 화목하게 하여 교회가 거룩하고 홈이 없도록 하셨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교회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러한 부부간의 미덕, 즉 거룩함과 순결함에 있다. [할 도바울은 '세우사 라는 말을 사용해서 교회는 사람의 생각에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하게 되어야 할 것을 함축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그가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라고 말한 것이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스러운 교회를 나타내 보이사'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은밀한 성결의 열매들은 외부적인 행위로 나타나게 되어진다.

 

펠라기우스파들은 이 귀절을 사용해서 이 세상에서의 의()의 완전함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이들은 어거스틴에 의해서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바울이 무엇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깨꿋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또 다른 일이 뒤따라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할 때 이미행해지기 전에 어떤 일이 뒤따라 일어난다고 급히 추론하는 것은 공연히실수만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거룩함이 이미 지작되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매일매일 진보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 완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28. 이와 같이....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    바울은 이제 본성 그 자체에서 논증을 취해서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괴물과 같다. 바울은 보다 사소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 연합이 보다 거룩하게 되어지도록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관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사랑의 개요로서 그 논증은 모든 인간 사회에 효력을 미치고 있다울이사야는 사람은 타인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 :7)고 말했다.그렇지만 이것은 우리의 공통적인 본성을 가리킨 것이다. 남편과 그의 아내사이에는 훨씬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성의 유사성으로 하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혼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으로 연합되어졌기 때문이다. 결혼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60 RM

 

"29.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 바울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휘를 기초로 결혼의 권리를 세우는 데로 나아간다. 이것보다 더 힘있는 실례는 어느 것에서도 이끌어낼 수 없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를 모범적으로보여줌으로써 자기 아내를 향한 남편의 유일한 사랑을 설명한다. 결혼에 속한 연합의 실례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 귀절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신비적인 교제를 지원해 주는 두드러진 성구이다.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바울은 말하고 있다. 첫째, 이 말씀은 과장이 없는 순수한 진리이다. 둘째, 바울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것을 의미하지 않고 보다 깊은 의미, 즉 cal Eubatical-tepov(카이 엠파티코-테론)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바울은 창세기 2장 24절에 나오는 모세의 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창세기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와는 그의 남편 아담의몸에서 취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아담의 한 부분이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되었다면,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의 실체와 교통함에 이르러야 한다. 말하자면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사실을 성만찬에서 우리에게 주신 바 상징이요, 보증이라고 말하고 있다.어떤 사람들은 이 귀절을 곡해하고 있다. 성만찬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만결혼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만찬을 가리키고 있는것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은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성만찬 속에서 기념되고 있다고 가르치면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과 같은 교통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이러한 자들에게 이 귀절을 근거로 제시한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그리스도께서 성만찬에서 자기 몸을 우리가 즐길 수 있도록 내주신다면 우리를 영생에로 양육하시는 것이 이상하겠는가? 우리는 성만찬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울이 가르친 바 그의 진리와 효험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31. 이러므로 " ;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서로 연결시킨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간의 영적 연합을 취급함과 동시에 이것을 일반적인 결혼 법칙에 적용시킨다. 모세의 글에서 인용한 말씀은 일반적인 결혼 법칙을 가리킨다. 바울은 곧이어서 이것은 '교회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재빨리 그리스도의 은사들을 선포할 모든 기회를 포착하여지금 취급하고 있는 문제에 그의 교훈을 집중시킨다. 모세가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해서 아담을 소개했는지, 아니면 창조기사()에서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리를 추론해 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이것은 우리가 크게 취급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경우가 모두 자기 아내들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말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3 0 0 0 0 주시시간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  이 말씀은 '그 아내에게 결합한다기보다는 차라리 부모를 뗘나게 하라 는 의미와 같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인류의 또 하나의 의무로서 하나님의 충실한 자녀가 다른 하나의 선하고 신실한 남편이 되어야 -할 의무를 저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매우 (의심되는 문제이다. 모세는 남편과 아내와의 을바르고 거룩한 연합을 훌륭하게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근본 법칙이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에 대한 남편의 책임을 여기에다 비유할 때 그 결혼은 잘 이해할 수 있다. 좋은 남편이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기 부모의 자식임을 분명히 나타내려고 할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결합 중에 결혼을 가장 거룩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이 말은 둘이 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흔히 사용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둘이 한 인격을 이룰 것을 의미한다.다른 관계로써는 진실을 유지할 수가 없다. 아내가 자기 남편의 육체와 몸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모두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신다는 의미로서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의 연합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과 같은 사람이시라고 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며중의 뼈요, 그의 살 중의 살이 아니다든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그의 몸에 접붙이시고 자기에게서 생명을 얻게 하셨다.

 

"32. 이 비밀이 크도다...." ;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영적 연합에대한 놀람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바울은 이것이 큰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 말로 결혼을 판단할 만한 언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사람들이 육체를 이해함으로 이 비밀의 방법과 특성을 파악하려고 하지만자신을 혼란시키는 것은 헛된 일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하나님은 성령의무한하신 능력을 행사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자기들의이해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사람들은 매우어리석은 자들이다. 이들은 성만찬에서 우리에게 주신(exhibert)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부인할 때 그렇게 말한다. '그 신비한 방법을 정의하라면 우리는 확신 있는 대답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깊은 비밀로 말미암아압도를 당하여 바울처럼 나의 무식함을 깨닫게 된 데 대해 조금도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나의 육체적인 감각을 가지고 바울이 심오한 (비밀이라고 말한 것을 경솔히 하는 것보다 이것이 얼마나 더욱 만족스러운 생각인가? 그것은 이성 자체가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초자연적인 것은 우리의 이성의 판단을 초월한 것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결합의 본질을 알아내려 하지 말고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자그는 '비밀 이라는 말로 말미암아 결혼을 일곱 성례 중의 하나로 결론지으면서 마치 자기들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여기는 교황주의자들의 어리석음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둘만을 제정해 놓으셨음에도 성례를 일곱 가지로 보고, 그 중의 하나로 열거하고 있는 결혼 성사에 대한 증거를 이 귀절에서 찾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그근거는 무엇인가? 벌게이트는 '성화 (sacramentum)라는 말을 사용해서사도 바울이 사용한 '비밀 이라는 말을 번역했다. 그들은 이 말이 라틴어저작에서 '비밀 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지 않은 것처럼, 혹은 바울이동일한 서신에서 이 말을 이방인의 소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취급하고 있는 문제는 '결혼이 하나님의은혜의 유일한 상징으로 정해졌는가, 또는 세례나 성찬처럼 어면 영적인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려고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 단어의애매한 의미로 기만을 당하였거나 헬라어에 무식하지 아니하고서는 이러한주장을 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혹 사도 바울이 사용한 단어가'비밀 이라고 할지라도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우   그들이 이러한 성례를 애써서 꾸며내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그들은 곧이어 나오는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고 하신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바울은 자기가결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려고 할 경우에 특별한 주의를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무런 예외 없이 자기의 논조를 더욱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큰 비밀은 그리스도께서 교회 속에 자기가 가진 생명과 권세를 넣어주신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이 귀절에서 성례를만들어 냈는가? 우리는 이 실수가 가장 큰 무지에서 나왔음을 알고 있다.-  16  11 우릉모부 1         교  *

 

"33. 그러나 너희도~~~~경외하라." ;  바울은 비록 자기가 뜻하고 있는 바에 도움을 가져다주는 탈선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약간 이탈해서 짤막한 훈계를 하고 교인들에게 자기가 보기를 원하는 것을 요약하는방법으로 혼히 사용하고 있다. 즉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할 것과, 아내들이 남편에게 존경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고 있다. 남편을 존경하지 않고는 기꺼이 복종할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