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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에베소서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엡5:14)

1. 성경 (엡 5:1 ~ 14)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1)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2)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3)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4)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5)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6)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7)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9)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0)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1)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2)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3)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4)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  그러므로~~~~~ 본 받는 자가 되고" ; . 바울은 한 결음 더 나아가 앞에서말한 것과 똑같은 내용을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아야 된다는 사실로 확언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여 할 수 있는 한 은혜가운데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4장과 5 장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서로 장으로 나뉜 것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도록 하자.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자에게 자비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 44, 45). 이야기(C-C게이 금지비용증 중시간 금액:바울은 하나님을 본받은 자를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라고 한다.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참된 모범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고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참된 규범이 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사"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사 자기의 생명을 바쳐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 것은 사랑의 극치에 도달한사랑의 좋은 본보기였다. 만약 우리가 이 축복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와 같은 사랑의 행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중에는 아무도 이러한 완전에 도달한 사람이 없으나, 고리스도의 사랑을 목표로 하고 자기의 분량에 따라서 노력을 해야 한다. 

 

"향기로운 제물~~~" ; .이 말 속에서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은총을 높이고있다. 그리고 이것을 직접 오늘날의 문제로 나타내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열매와 효험을 충분히 표현할 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시켜 주는 유일한 속전())임을 믿고 있다. 믿음에 관한 이러한 교리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셨던 행적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그를 붙잡게 된다. 또한 우리는 바울의 말 족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고서는 우리의 행한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께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예측할 수가 있다. 사람의 화목이 그리스도께서향기로운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이루어졌다면, 이 거룩한 향기가 우리에게부어질 때 우리도 하나님께 향기로운 구원의 향기가 될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마 5: 24)라는 말씀으로 화목을 실천하도록 하셨다. 

 

"3~4절. 음행과~~~~" ;  현명한 독자들은 나의 도움이 없이도 본 장에는 골로새서와 비숫한 귀절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세 가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음행을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이름을 듣는 것조차도 멀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바울은'더러운 것 이라는 말로 모든 악하고 순수하지 못한 욕심들을 의미하고 있다. 이 말은 같은 유개념()에 속하는 '음행 과 구별된다. 세번째로바울은 '탐욕'이 절제하지 않는 욕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이 명령에서 오직 '성도의 마땅히 행할 바 를 행하라고 권위있는 말을 한다. 이 말을 통해서 바울은 성도들의 무리와 유대 관계에서 모든탐심과 욕심과 불순한 것을 배제시키고 있다. 사업자번호: 보 자 자 금 : 0 0 - 0이상의 세 가지 것들에 바울은 또 다른 세 가지를 덧붙인다. 

 

나는 '누추함'이라는 말을 경건한 사람의 절제와 더불어 함께 할 수 없거나 어울리지 않는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한다. '어리석은 말 도 적당하지 않고 목적이 없으며 열매없는 대화 또는 그들의 무지에서 오는 해롭고 불경건하기까지 한 대화라고 해석을 한다. 쓸데없는 이야기가 종종 '희롱하는 말' 속에위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울은 '어리석은 말 의 일부분이 되는 희롱을 단호하게 정죄한다. 그러나 재치있는 말은 칭찬을 받을 만한 미덕처럼유쾌한 것으로 보인다. 헬라어 corpanelia(유트라펠리아)를 이방인 작가들은 종종 좋은 의미로 사용했다. 능력이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야 예리하고 재치있는 농담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을 비꼬지 않고서는 재치를 발휘하기가 어렵고, 재치 그 자체 속에는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꾸민 태도가 있기 때문에, 바울은 매우적절하게 우리로 하여금 농담을 멀리하도록 하고 있다. 바울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성도들에게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것들은 모두그리도스인들의 의무와 불일치하고 있다.

 

"돌이켜 은혜의 말을 하라" ; (한글 개역 성경에는 '감사하는 말을 하라' 했음-역자 주). 어떤 사람들은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번역하지만, 나는 제롬의 해석을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이 말들을 그 악한 성질과 더불어 일반적인 말들을 대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저희는 쓸데없고 사나운 이야기를 하지만 너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 고 번역한다면 그 의미가 너무 제한되어진다. 헬라어 coyaplotia(유카리스티아)는 '은혜 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모든 말은 참으로듣기 좋고 은혜로운 말이 되어져야 하며, 이것은 유익한 말을 듣기 좋게 할때에 그렇게 되어질 것이다 라는 의미이다.

 

"5. 넌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  바울은 자기가 꾸짖었던 악한 자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자기의 훈계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거나 조심성이없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엄하고도 신중한 말로 에베소 교인들을경고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악한 행위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대적이 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교인들 자신의 양심에 호소하여이 말씀 속에는 아무런 의심스러운 것이 없다고 한다. 음행이나 방탕함의 죄책을 지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기업에서 제외되거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어울리지 않거나 또 모순되게 보인다면 그 대답은 간단하다.사도 바울은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 임하는 용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죄 그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이와 같은 말을 한 후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 11)라고 말했다. 회개가 있고 따라서 하나님과 화목이있는 곳에서는 과거의 것들이 중지된다. 그러나 모든 음행과 더러운 것과탐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아무것도하나님에게서 얻지 못한다는 것과 모든 구원의 소망을 빼앗겼다는 사실을알도록 해야 한다.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얻지 못하리니." ;  탐심은 바울이 다른곳에서 말한 것처럼-성경에서 매우 빈번하게 정죄받은 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죄-우상 숭배를 가리키는 것이다(골3:5). 모든 탐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 대신 제물을 그 자리에 둘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들은 자기들의 졸렬한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이다. 그런데 바울은 왜 탐욕만을 유일하게 다른 육체적 성품에 못지않은 악한 것으로말하고 있는가? 야망이나 공허한 자기 신뢰보다는 탐욕이 왜 이렇게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져야 하는가? 나는 이 질병이 널리 퍼져 있고 마치 전염병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염시키고 있지만, 이것을 질병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칭찬을 받는 것으로 흔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답변한다. 바울은 우리의 마음에서 거짓된 사상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보다강력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자기 아들에게 주어 우리가 그를 통해서 그 나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셨기때문이다.

 

"6. 누구든지.....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선지자들의 경고를 거절하고 조롱하는 악한 개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오늘날도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실로 사단은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마술사들을 고용해서 어느 시대에든 사악한 조롱을 일삼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치닫게 하고 있으며, 마치 명안한 양심을 가진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과 같이 행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런 것은 하찮은실수에 불과하다 고 말한다. '음행은 단순히 하나님께로 향하는 놀이이며, 은혜의 법 아래서는 하나님께서 그렇케 잔인한 분이 아니시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 자신을 죽이는 사형 집행자로 만드시지는 않으셨다. 본성의연약함이 우리를 변호해 주고 있다. 등의 말로 합리화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와는 반대로 파멸로 빠뜨리는 어긋난 양심에 의한 그들의 궤변을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인하여~~~" ; 진주이 말씀을 히브리어의 관용구 형식처럼 현재 시제를 미래로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면,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임하나니 란 말씀을 '임하는 것에 익숙한 이란 의미와 동일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과 의견을 같이한다. 즉 그들의 눈앞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일상적인 심판을 기억하게 해주고 있다. 또 분명한 것은 만일 우리가 소경이나 나태한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범죄에 대해서 마땅한 보응의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수많은 실례들을 개개인들에게 사사로이 보여주셨고, 공채적으로는 어떤 도성이나 나라나 민족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토상이  등  소또 "불순종의 아들들에게"라는 말씀을 주의해 보자. 바울은 이제 신자들에게 위험으로 많은 두려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을 받은 자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마치 거울을 통해서 보듯이 배우도록 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그의 자녀들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도록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피하려 한다. 할지라도 할 수 있는 한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사람들을 돌보아주신다. 이귀절에서 바울은 결론내리기를, 하나님의 자녀들은 스스로 멸망할 것이 내다보이는 악한 사람들과의 해로운 교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있다.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   바울은 훈계를 명확히 하여 그 비중을 무겁게 한다. 불신자들과 또 그들의 범죄와 파멸에 에베소 교인들이가담하지 말 것을 말함으로써 바울은 교인들의 생활이나 행위면에서 불신자들과 크게 차이가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동시에 바울은 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자기들의 과거 생활에대한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있다. '너희는 지난날과는 아주 달라져야 한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어두움에서 빛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바울은 중생하기 이전 사람의 모든 성품을 가리켜 '어두움 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 비춰지지 아니한 곳에는 단지 공포에 싸인 어두움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빛이란 성령으로조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바로 이어져서 그와 같은의미가 나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들을 '빛의 자녀'라고 부르고,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어두움에서 건짐을 받았으므로 빛 가운데서 걸어가야 할 것을 생각해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빛이라"고하신 말씀을 명심하자.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들이우리가 어두움의 권세를 잡은 자로 알고 있는 사단의 지배 아래 놓이기 때문이다. 

 

"9. 빛의 열매~~~~" ; 바울은 이 삽입구를 통해서 빛의 자녀들이 걸어야 할길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묘사는 하지 않고 단지 몇몇 거룩하고경건한 생활의 부분들만을 그 실례로 다루고 있다. 하나의 주제 아래서 모든 것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누구든지바르게 살고 실수하지나 않을까 하는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케 하고 하나님의 뜻을 규범으로 삼도록 하라 는 것이다.바울은 로마서 12 장 1절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라고 말했다. 다른 성경은 말하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고 했다. '영 (rvebuatos : 프뉴마토스)이라는 단어가 많은 헬라어 사본들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매우 의아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빛의 열매 라고 하는 것이 보다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그의미는 꾸며낸 것이 아니다. 여전히 '신자들은 빛 가운데서 결어가야 한다.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빛의생활은 자기 자신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함으로 바칠 때에 이루어진다. 즉 오직 하나님의 명령만을 따를 때인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순종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등과 같은 열매들에 의해서 증명되어진다. -0.000-07-7700차가 마 돌리 말가는 바라고 한국 비속증'

 

"11. 너희는~~~ 참예하지 말고" ;  빛의 자녀들은 이 어두움의 세상, 즉 패역하고 어그러진 세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사악한 행위에 참여하지 않도록 경고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사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는 그룻된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합하는 일이나 도와주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요컨대 우리는 모든 우정관계나, 동의()나, 충고나, 찬동이나, 어떤 종류의 도움이라 할자라도 거절할 것은 거절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방법들은 우리를 어두움에 참여토록 하기 때문이다. 또 바울은 누구든지 자기의 의무를 간과하지 않고 다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명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위선을 대적하는길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대적하시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을 죄책에서 옹호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칭찬 듣기를 주의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허물을 숨기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리가 확고하게 서지 않는 것이라면 수백마디의 말을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책망하라." ;  이 말은 어두움의 비유와 연결되어 있다. (엘렝케인)은 엄격하게 말해서 본래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악한 차들은 자기들이 범한 죄악을 숨기려 하거나공인된 미덕이 되기를 원하면서 그 죄악에 아첨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라고 명한 것이다. 바울이 이것들을라고 말한 이유는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열매 없는' 행위다.사업자명: 주시비드 14.00 -수정부인 사업자 : 수상자 : 수상

 

"12.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 ; .바울은 악한 자들을 책망해야 할프라  14이유를 지적해 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만 않는다.면 그처럼 비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려고 할 것이다. 마치 "밤은 수치를 모른다"는 속된 격언을 말하는 것과도 같다. 신자들을 제외한 이들은 왜 무지의 어두움 속에 빠져 자기의 악함을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과천사들이 보여준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들의 눈은 마치 횃불을 비취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려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얼굴을 붉히고 수치를 느끼기 시작한다. 성도들은 자기들의 교훈으로 불신자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고 무지() 속에 가라앉은 자들을 그들의 감춘것을 가지고 낮의 빛으로 나아오게 해준다.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불신자들이 자기의 집 문을 닫아 잠고고 인간의 목적으로부터 돌아서면 그들은 얼마나 무가치하고 악한 모든 방탕한행위로 치닫게 되는지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는 것이다. 

 

은밀하게 행한 일이마치 형벌을 받지 않을 것처럼 어두움이 불신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지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이 모든 부끄러움을 밀쳐놓고 스스로를 고삐로 얽어맬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꾸짖는다면 이것은 마치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과 같아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서 수치를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치는 자기들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되는 회개의 첫번째 단계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14.장 23 절 이하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울은 마땅히 비유를 사용했을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꾸짖다 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바꿈으로써 전체 의미를 바꾸어 놓았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신자들의 행위가 책망을받게 되면, 이것은 무익한 일이 아님을 보여주게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니타나니니~~~~" ;  여기서 중간태()로 사용된 분사는 수동형으로 해석될수 있고, 능동형으로도 해석될수가 있다. 벌게이트 역본은 수동적인 의미를 택했다. 이처럼 수동적인의미로 본다면, 빛이라는 말은 앞에서처럼 '빛의 충만 (lucidus)과 같은 의미가 되며, 따라서 이 귀절의 뜻은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악한 행위들은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밝히 드러나게 될때에 백일하()에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 될것이다. 또 능동적인 의미로 해석할 때는 역시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무엇이든지 나타난 것은 빛이라는 뜻이고, 둘째는 무엇이든지 흑은 모든 것을 나타나게 하는 것은 빛이라는 뜻이 된다. 이때는 복수 대신 단수를 취한다. 관사에 대해서는 에라스무스가 겁냈던 것 같은 문제는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모든 관사들을 아주 제한된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제련된 작가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용법()을 허용하고 있다. 나는 이 문맥을 따라서 이 의미가 바울의 말하는 바라고 판단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불신자의악한 행위들을 꾸짖으라고 권면하면서, 이것이 그들을 어두움에서 건지는것이라고 한다. 바울이 이제 에베소 교인들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은 빛의고유한 사명은 '나타나게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모든 것들을나타나게 하는 것은 빛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빛으로 나오지 않고어두움 속에 머물러 있는 신자들은 그 이름에 합당치가 못하다는 사실은당연하다.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  성경 해석가들은 바울이 인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성경 귀절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낼 수가 없다는 점에 큰 고충을 겪고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말하고자 한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 전파자들에게서 매일매일 들어야 할 일상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이다.에베소 교인들에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보다 더 큰 관심거리로 생각하는것이 있었을까? 그러프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이렇다. "죽은 자들이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25). 이제 문맥을 살펴보도록 하자. 바울은 불신자들이 마땅히 책망을 받아 빛으로 나아옴으로써 자기들의 사악함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라고말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음성, 즉 '일어나라, 잠자고 있는 자들이여 라는 음성이 복음의 선포 속에서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말씀하신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울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60 : 1)라고 말씀한 이사야처럼 그리스도의나라를 예언했던 선지자들에게서 인용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따라서 우리는우리 가운데 잠자고 있거나 죽은 자가 숨어 있다면 그들을 일으켜서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힘쓰자는 데 의의가 있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막은 것처럼 우리가 죽음에서 일어날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기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단순히 그리스도께서우리에게 빛을 비추실 때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앞에서 말한 것,드죽즉 불신자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자기들의 소경 된 자리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다. 어떤 사본들에는 exconse(에피파우세이) 대신 eddberaz(에파페타이), 즉 '그가 만지실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실수임이 확실하므로 나는 이 논란을 배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