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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에베소서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4:32)

1. 성경 (엡4:25~32)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5)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6)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7)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8)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29)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0)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1)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32)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이 머리가 되는 교훈, 즉 새 사람의 의로움으로부터 모든 경건한 권면들이 마치 샘에서 물줄기가 터져나오둣 흘러 나온다. 왜냐하면 생활에 대한 모든 계명들이 모아지려면 이 원리가 없이는 조금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다른 방도를 구하고 있지만, 경건함에 이르는 교훈은 자신의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며 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일반적인 교훈에서 나오는 특별한 권면들을 계속 말한다. 바울은 먼저 참된 의와 거룩함은 복음의 진리 안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일반적인 것들에서 특별한 것들로 넘어가 교인들에게 피차 진실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거짓 이란 온갖 종류의 부정과 속임수 혹은 궤계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참된 것 은 단순성을 가리킨다. 바울은 서로간에 모든 행위에 있어서 신실한 교제를 나눌 것을 명하고 있다. 바울은 또 이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한다. 지체들이 서로간에 불화하고 심지어 서로 속이는 일은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26. 분을 내어도" ;  바울 사도가 시편 제 4편을 마음에 두고 이 말씀을 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그 이유는 이 말들이 헬라어 역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떨림 이라고 번역한다. 히브리어 동사 '라가즈'는 분함으로나 두려움으로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모두 의미하고 있다. 시편의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두려움이 없이 아무 방향으로나 돌진하는 미친 사람과 같이 되지 말고 죽은 자가 되어 무작정 너희 속에 두려움이 있게 하라 창세기 45장 24절에서는 이 단어가 '겨루다' 혹은 '다투다 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자기들 자신의 영과 더불어 싸움으로써 맹렬한 다툼을 그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귀절은 단순히 다음 귀절의 이유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분을 내면 세 가지로 하나님께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첫째는 우리가 사소한 이유나 아무것도 아닌 일로 종종 화를 내거나 사사로운 손해나 장애물로 인해서 동요를 받는 것이다.

 

둘째는 너무 과도하여 무절제한 지나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세째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죄에게 향해야 할 우리의 노가 형제들에게 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분노를 제재하고자 하는 말을 할 때에 가장 적절하게 이미 잘 알려진 말씀인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분노의 대상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본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어질 수 있다. 또 우리들 자신의 과오를 향해서 우리의 분을 쏟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마땅히 그들의 인격이 아니라 그들의 과오에 대해 분노하거나 사사로운 손해 때문에 분을 내고 흥분해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열심은 우리의 분을 불살라 버리고 만다. 끝으로 우리는 우리의 분을 가라앉히도록 하여 분노가 육체의 격렬한 성격과 뒤섞
이치 않도록 해야 한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이 때때로 그룻되고 죄악된 분을 품게 되면 사람의 마음의 경향이 죄악을 향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두번째 치료약을 제시했는데, 최소 한도로 빠른시간 내에 분을 풀어버리고 계속해서 분을 품음으로 마음을 굳게 하지말라고 한다. 처음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으나 사람의 본성은 대단히 연약하여 그렇게 되기가 힘들기 때문에 두번째 치료약은 너무 오래도록 분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말로 혹 우리가 분이 일어났을지라도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 나는 사람들이 이 귀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비방하는 자 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기가 이 귀절이 악한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바울이 우리에게 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마치 원수들이 마련해 놓은 요새와 같이 붙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도록 조심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오래 계속되고 있는 증오의 질병이 얼마나 고치기 어려운가를 매일매일 체험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우리가 마귀를 물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에게 우리의 마음이 붙잡히고 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증오의 독으로 분노가 가득 채워지기 전에 적당한 때에 풀어지도록 해야만 한다.

 

"28. 도적질하는 자는~~~  수고하여" ;  이 말씀은 법에 의해 형벌을 받아야할 큰 도적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으로 정죄할 수 없는사소한 도적질까지 의미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의 재산을 대앗으려고 하는온갖 종류의 약탈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부당하고 부정하게 물건을 대앗는 행위만을 금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지 않고 가능한 한 우리의성품 속에 형제 우애를 가지라고 한다.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사람은 합법적으로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수고를 들여 차기 쟁활의 필요한 것을 받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라. 바울은 먼저 이규율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구결하지말고 정직한 노력을 하여 생활을 유지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다. 모든 사람은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게을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그렇다면 왜 바울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일을 하도록 하게 했을까하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다. 나는 그 의미를 충분히 생각해 보면 단순하다고 본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도적질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가난을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에게 자기들의 손을 가지고 일을 하라고 말함으로써 그런핑계를 미연에 방자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미는 '아무리 힘들거나 불화하는 처지라 할지라도 이것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구실이나 자기 형제들의 궁핍함을 도와주지 못하는 굉계가 될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바울은 이 사실을 하반절에서 확대시켜 주고 있다. 이 말씀은 큰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적은 문제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선한 일을 하라:" ;  사람들의 고상한 기쁨을 조금씩 가져다주는 데는 여러가지 일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이웃의 유익을 가져다주는 일을 택하라고 교인들에게 권면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놀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시세로(Cicero)와 같은 이방인들에 의해서 수치스러운 것으로 비난을 받았던 타락을 가져을 수밖에 없는 육에 속한 일들을 그리스도의 사도가 하나님께 합당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 속에 있는 것으로 여겼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29.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 바울은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욕심으로 오염시키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모든 정욕을 일으키는 유혹들을 가리켜 이 말씀을 사용함으로써 신자들의 입에서는 모든 더러운 말을 버리도록 하고 있다. 바울은 악을 제거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명하고 있다. 골로새서에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말했지만(골 6), 여기서는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하라 고 했는데 그 의미는 단순하다. 즉 '만일 그것이 유익하면 이라는 뜻이다. '소용되는 대로 가 소유격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에서는 형용사로 해석하는 관습이 있어 애매한 점이 없다. 따라서 '유용한 덕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
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 덕을 세우는 데 대한 비유가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는가 또는 얼마나 포괄적으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전자의 입장을 택하고 싶다.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라는 말씀을 나는 우리의 덕을 세우는 일이 진보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해석한다. 왜냐하면 덕을 세우는 것은 앞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는 말을 사용해서 어떻게 덕을 세울 수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은혜 란 위로와 권면과 구원에 도움을 주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영혼과 육체의 모든 부분들은 그에게 드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부정한 일을 행한다면 성령을 그 거하시는 곳에서 내어쫓는 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바울은 이것을 .좀더 친밀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성령에게 인간적인 감정인 기쁨과 슬픔이란 말을 적용시키고 있다. 바울은 '성령께서 너회 안에서 편안하고 즐거운 거처를 삼아 기쁘게 거하시도록 하고 그가 근심을 일으키시지 않도록 힘쓰라 고 말한다. 어면 사람들은 달리 해석하기를, 우리가 더러운 말이나 기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고 있는 (경건한 사람들을 대적할 때 그 사람 속에 있는 성령이 근심하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경건한 사람의 귀는 경건한 것과 반대되는 것을 듣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것을 들으면 깊은 슬픔으로 상처를 입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말씀들은 이 해석이 바울이 말하는 의미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울관 그 안에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으로 우리를 인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악한 감정을 가짐으로써 우리들 자신을 더럽게 하면 우리가 그를 근심케 만드는 것이 된다. 우리가 매사에 하나님께 순종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기뻐하시며, 우리가 순전하고 거룩한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면 그가 즐거워하시지만,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한 것들을 쫓아갈 때는 성령께서 근심하신다는 말을 이보다 더 이상 적절하게 표현할 말이 없다. 이제 사람들이 불의한 것에 자극을 받는 것은 억지로라도 우리를 다시 자기에게로 돌이키게 하려는 성령을 근심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사야 63 장 10 절에 이와 비숫한 형태의 말씀이 있는데, 그 의미는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의사야 선지자는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성나게 만드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이 고들이 하나님의 영을 근심케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너회가....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은 인치심과 같으시다. 그래서 우리를 버림받은 자들과 구분되게 하고, 우리 마음에 인을 쳐서 우리가 택함의 은총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다. "구속의 날까지"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된 기업을 주실 때까지란 의미이다. 이 때를 흔히 구속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가 되면 마침내 우리가 우리의 모든 고난에서 벗어남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여러 귀절들에서, 특별히 로마서 8장 23절 하반절과 고린도 전서 1장 30 절 하반절에서 자세하게 말한 바가 있다. 여기에서는 '인침 이란 단어가 달리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자기의 증표로 우리에게 찍어 주시고, 이 증표가 있는 사람을 자기의 자녀로 여겨주신다.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 ; 바울은 앞에서 분냄을 정죄한 것과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것을 특별히 시끄럽게 뗘드는 것이나 훼방하는 것과 같이 흔히 있을 수 있는 악독들(accidentia)과 연관시키고 있다. '오르겐'과  '뒤몬'이란 말은 전자가 때때로 권력을 가리키고 후자가 행위를 가리키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전자가 보다 갑작스런 격분이라는 것을 대고는 차이가 없다. 바울은 '악의 를 제하고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살면 그밖의 모든 것이 바르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부패함이 공의에 대립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점과 이것이 흔히 악의라고 불리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고 있다.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  바울은 용모나 말과 행위에 있어서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악독과 대조시키고 있다. 인자함은 oupradera(쉽파데이아)가 고조되지 아니하고는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미덕이기 때문에 바울은 우리에게 긍휼을 명하고 있다. 이 미덕은 우리로 하여금 형제들의 괴로움을 마치 자기 자신의 것인 양 동정심을 갖게 해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정을 갖게 해서 형제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그런 위치에 있는 것 못지않게 느끼도록 해준다. 이것과 반대되는 것은 잔인함으로, 쇠같은 마음과 야만적인 마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아무런 관심도 없이 바라볼 때를 기다린다.

 

"서로 용서하기를 ...." ;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자선을 베푸는 것으로 해석 한다. 에라스무스도 이 방법을 따라서 이 말씀을 '관대한 이라고 번역했다. (largientes). 이 단어 속에는 그러한 의미가 들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맥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즉 우리가 용서를 쉽게 베풀어야 할 것을 의미 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부당하게 손해를 입을 경우에는 그 손해에 대해서 쉽게 용서하려 들지 않는다. 마음이 온유한 자는 언제나 그 마음을 겸손으로 채워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나 다른 사람들의 배은망덕함에도 실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피차간에 용서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라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이 권면을 더욱 힘있게 하기 위해서 유한한 인간이 자기 형제를 용서하는 것보다 훨씬 능가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그 본보기로 내세우고 있다. 골로새서 3장 5절 이하를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