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삿 3:12 ~ 3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12)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13)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열여덟 해 동안 섬기니라 (1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15)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16)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 (17)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18)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아뢰려 하나이다 하니 왕이 명령하여 조용히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19) 에훗이 그에게로 들어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이르되 내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왕에게 아뢸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의 좌석에서 일어나니 (20)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21)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 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22)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뒤에서 닫아 잠그니라 (23)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들어와서 다락문들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24)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들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가지고 열어 본즉 그들의 군주가 이미 땅에 엎드러져 죽었더라 (25)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26) 그가 이르러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27)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수들인 모압을 너희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 모압 맞은편 요단 강 나루를 장악하여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28)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29)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30)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31)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삿 3:12-14"
옷니엘의 별세 후 이스라엘이 다시 범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침략자의 손에 붙여서 압제를 받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자주 타락할 때마다 이방의 침략을 당했는데, 그런 사실이 사사기에 기록된 대로 모두 여섯 차례나 된다. 곧, 메소보다미아
, 모압, 가나안, 미디안, 암몬, 블레셋 등의 침략이다. 비록 이스라엘이 자주 타락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하여 그들을 깨우치며 끝까지 돌아보셨다. 옛날 이스라엘과 함께 역사상에 존재했던 많은 강대국들이 거의 다 패망했지
이스라엘만은 오늘날까지 계속 존재한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 민족을 영적 이스라엘(택한 백성)의 상징으
로세워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는 기독 신자들(영적 이스라엘)을 옛날 육적 이스라엘처럼 다스리신다. 곧,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기록 신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
"삿 3:15-17"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15절). "왼손잡이"란
말 ( )은 오른손은 갇히운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오른손은 전연 쓰지 못하는 것이 명백하다.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용사가 그 후대에도 많았으니 일시에 700명이 있었다(20:16). 그런데 "에훗"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심을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먼저 모압왕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그가 "모압 왕 에글론" - 을 죽인 방법은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20-22). 그와
같은 처사는 얼핏 보면 너무 잔인해 보인다. 18-21절 해석 참조.
"삿 3:18-21"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18-19 상반). "공물"이란 말(* )은 조공
(朝貢)을 위한 예물, 혹은 금전을 의미한다. "돌 뜨는 곳"이란 말(* )은 구약에 도합 21회 나오는데 모두 새긴 우상(graven images)을 의미하였다(C.F. Burney, The Book of Judges and Notes on The Hebrew Text of The Books of Kings, 1970, p.71).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 (19절 중간)라고 한 말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 라고
한 말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에훗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 그렇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학설을 받아 들일 수 없다. 에훗은 에글론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에게 가까이 가서 그 명령대로 실행하였으니, 그
것은 그 명령을 전달함과 마찬가지이다. 이 점에 있어서 메튜 헨리(Matthew Henry)는 말하기를, "그 멧세이지는 칼이었다."
(ThatMessage was a dagger.)라고 하였다.
에훗이 에글론을 죽인사건에 있어서 에훗이 취한 방법이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살펴보자.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먼저 전쟁의 윤리
를 비판하는 표준을 생각해야 된다. 한 국가가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은 정당하다. 이 때에 에훗은 이스라엘의 구
원자로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지도자였다(15절). 이제 에훗의 방법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는 다음 몇 가지를 고려할 때에 해결된
다.
(1) 에훗은 사사였으니 만큼 하나님의 심판 집행의 사자(使者)였다. 그러니만큼 그는 남을 암살하는 개인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대하는 모임의 우두머리 에글론은 심판 집행자의 손에 의하여 죽임이 되어야 마땅하다.
(2) 모압 왕 에글론은 우상주의의 화신(化身)이었다. 가나안 민족들을 정복하는 이스라엘은 우상주의자룰 아끼지 않고 죽이되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먼저 손을 대어 죽이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바 있었다(신 13:6-6-18). (3) 4:9에 있는 드보라의
예언을 읽어볼때에 어떤 악인의 암살 당함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실행되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17-21 참조.
"삿 3:22"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 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쁨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 에훗이 모압 왕 에게 찌른 칼을 그의 몸에서 빼어내지 않은 것도 의미 심장하다. 곧, 이 때에 에훗에게 내린 하나님의 명령(20절)
의 심판의 칼인 만큼 그것을 그에게 찔러준 대로 두고 도로 받지 않는다는 뜻 있는 행위이다. "기쁨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이것은
은근히 모압 왕의 평소 생활이 교만하여 쾌락만 일삼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극도로 압제하였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 17:10 하반,119:70참조. 이런 자는 하나님의 칼로 죽임이 된다고, 성경이 말한다(시 17:12). 히브리 원문에는 22절 끝에 짧은 문장 하나(* )가 붙어 있는데 그것이 영역(英譯) 성경에는 "오물이 나왔더라"(the dirt came out)라고 번역 되어 있다.
봉크(C. Vonk)에 의하면, 여기 "오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는 아카디야말과 관계되었는데 화장실을 의미 한다고 하며,
이 문구의 의미는 에훗이 화장실을 통하여 도망해 나갔다는 뜻이라고 한다(Lange tijd heeft men dit woordniet kunnen
thuisbrengen, maar nu weten we, dat het verwante woord in het Akkadisch "parasjdinun" is en toilet
betekent. Ehud vluchtte dus vis het toilet.-De Voorzeide Leer Id, De Heilige Schrift, Richteren, 1973, p.439).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하나님의 원수를 죽이는 일이 있었다(왕상 18:40).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교회,
또는 하나님의 종이 징계를 실시함에 있어서 폭력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영적(靈的)으로 실시한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에훗이 모압 왕을 죽인 방법은 선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까지 그가 성령의 인도대로 하였다고 할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에훗의 자의(自意)대로 그런 행동을 취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 섭리적 관할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모압으로부터 해방
시키는 일에 그 사건을 사용하신 것이라고 한다.
"삿 3:23-26"
"발을 가리우신다" - (24절 끝). 이것은 모압 왕의 잠든것을 표현하는 그 신하들의 말이다. 사실은 이 때에는 에글론이 이미 죽은
뒤였다. 다락에 갇히운 에글론의 시체를 그 신하들이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지난 듯한데 그 사이에 에훗은 멀리 도망할 수 있었다.
"돌 뜨는 곳" - 이란 말(* )은 새긴 우상들을 의미한다. 19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을 참조하라. "스이라(* )는 나무
많은 숲을 가리킨다. 에훗이 멀리 피신할 기회를 얻은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간섭으로 된 것이었다. 모압 왕의 신하
들이 그렇게 오래 동안 왕의 잠 깨기를 기다린 것이 상례(常例)는 아니었을 것이다. 잠 16:9에 말하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 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다.
"삿 3:27-28"
에홋은 "에브라임 산지"에 와서 군대를 소집 하였다. (1) 이 때에 그는 용기를 가졌으니, 그것은 그가 그 군대의 선두에 선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그용기는, 이스라엘 해방의 성업(聖業)을 위한 그의 헌신에서 생긴 것이었다.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자는 두려움이 없다. (2)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의 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 고 한(28절) 그의 주장이 이 확신을 증명해 준다. 그가 무리를
향하여 "나를 따르라" - 고 한 것은 승리를 내다보는 강한 신념을 표시함이다. 그가 신념을 하나님께 둔 것은 참된 지도자의 자격이
다. 그는 언제 어디서 이 확신을 얻었을까?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15절). 확신은 하나님께 참되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가 얻는 법이다. 하
나님께서 보통으로는 구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 약 4:2 하반-3에 말하기를,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였다.
"모압 맞은 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 (28절하반). 이렇게 그 나루를 지킨 목적은, 요단
서쪽에 와 있던 모압 사람들을 진멸하기 위함이며, 또 요단 동쪽에서 올 수 있는 모압 군대를 막기 위함이다. 에훗은 여호와의
도우심을 확신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인각 편에서 해야 할 작전 계획을 세워나갔으며, 또한 전투에 있어서도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신앙은 인간의 계획과 노력을 초월하지만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도리어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인간을 개입시키지
않고 전적으로 그의 기적에 의하여 역사하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보통으로는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
"삿 3:29,30"
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 (29절). 비록 모압 군인이 용사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 간섭하시는 때에는 그들도 산산히 실패한다. 잡 21:30-31에 말하기를,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
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다. 모압을 이긴 이후
이스라엘은 "팔십 년 동안 태평" - 을 누렸다(30 절).
"삿 3:31"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의 침략군을 물리친 것은 역시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준다. 약한 것을 들어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방법이다(고전 1:27-29). 고후12:9-10 참조. 어떤 학설에, "삼갈"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이방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즉 버네이(Burney)는 말하기를, 삼갈의 부친의 이름 "아낫"이 바벧론 사람들의 이름과도
유사하다고 하면서, 삼갈이 외국인이었을 것이라고 하였다(The Book of Judges, 1970, p.76). 그는 랑케(Ranke)의 저서
(Early Babylonian Personal Names, p.66)에 의해 "아나툼"이란 이름이 바벧론 사람들 중에 세 번이나 나온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논증은 성립될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의 이름과 유사한 이름이 바벧론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