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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사사기

사사기 1장 11절로 36절

 1. 성경 (사사기 1:11 ~ 36)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1)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2)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3)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4)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5)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6)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7)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8)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19)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0)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21)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2)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3)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라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4)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5)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26) 므낫세는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7)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8) 에브라임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29)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0) 아셀은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1)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2)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 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 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3)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4)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5)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36)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11-14절 ;   이 부분에는    "드빌" (기럇 세벧)에 대한 갈렙의 정복 사건이 기록되었다.   "기럇세벧" 이란 말(*                )은 책의 도시란 뜻인데, 오늘날은 그곳이 그 이름과 같이 서적들이 많은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 기럇세벧("드빌")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12절)".; 이것은 갈렙의 맹세이다. 갈렙이 이와 같이 맹세한 것은 인류의 일반적  담력과 용기를 장려하거나 포상(褒賞)함이 아니고 신앙적 용기와 담력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때에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는 자의 그 전쟁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증거이기 때문이다. 갈렙은 그의 딸 "악사"를 출가시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신앙의 인물을 사위로 맞기를 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갈렙의 신앙 제일주의를 보여준다. 그런데 갈렙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 딸을 결혼시킨 것은,

(1)자식의 자유의사를 무시한 부모의 일방적인 처사 같이 보이며,

(2)또한 자식을 어떤 일의  댓가로 남에게 내어눈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고 갈렙이 그의 딸과 합의하고 실행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악사가 출가할  때에 아무런 불평도 한 바 없으며(14절), 도리어 그녀가 그 아버지에게  "복을 주소서" - 하며    "샘물" - 을 청구한 것(15절)을 보면 기쁨으로 출가한 것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신앙 제일주의로 행하는 갈렙이 자기의 귀한 딸을 괴롭혔을 리는  만무하다.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13절). 이 점에 있어서우리는 한 가지 난제를 만난다. 그것은,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란 문구이다. 즉"옷니엘"이 갈렙의 "아우"라면 어떻게 갈렙이 자기 딸을 동생에게 줄 수 있었겠는가 함이다. 그러나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곧, (1)갈렙의 부친은 "여분네"인데(민 13:6) 옷니엘의  부친은 "그나스"라고 하였으니, 옷니엘이 갈렙의 친 동생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본문(*    )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도 있다. 곧, "갈렙의 아우인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고. 그런 경우에는 옷니엘이 갈렙의 조카이다. (2)옷니엘이 갈렙의 이복 동생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옷니엘과 악사의 결혼은 그 당시의 혼인 법규를 위반함이 아니었다. (3) 여기 "아우"란 말(*      )은 동포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옷니엘은 갈렙의 동포란 뜻이다. "그나스"(*      )는 에서의 자손들 중에 속한 한 족속의 이름인데(창 36:1,11), 갈렙 자신이 그나스 족속에 속하였으니 만큼(수 14:6; 민 32:12), 그나스 족속에 속한 옷니엘은 그의 동포이다. 학자들의 추측은, 그나스 족속이 유다  지파에  귀하하였다고   한다(John   D.   Davis,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1994.pp.85,341). 대상 4:13, 15 참조.


   갈렙의 딸 악사가 그 아버지 갈렙에게 찾아와서 청원한 모습은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히 한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나귀에서 내려서 " - 아버지에게 말하였으니 그것은 윗사람을 존경하는 태도이다. 부모나 존장(尊長)을 존대함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고, 인간의 양심도 가르친다.  레19:32에 말하기를,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다.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15절 상반)" ; .    기럇세벧(드빌)은 남쪽 마른 땅인 만큼 악사가 그 아버지에게 "샘물"을 구한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또 정당하다.


"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여기 "윗샘과 아랫샘"이 있는 땅은  현재의 사일 에드 딜베(Seil ed-Dilbeh)란 지방일

것이다. 악사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 이 부분(11-15)에 삽입된 것은 문맥상으로 보아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그 사건이 기록된 목적은, 사일 에드 딜베(Seil ed-Dilbeh)란 비옥한 지방이  갈렙의 자손에게 속하지 않고 옷니엘 자손에게 속해 있는 유

래를 밝히기  위함이다(D.K. Budde, Das Buch Der Richter,1987, s.8). 이렇게 성경의 기록은 문학적 흥미를  중심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진리와 사실을 밝히는 데 치중한다.


  "16절"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 올라가서" - 일찌기 모세의 장인 호밥이 가나안으로 같이

들어가자는 모세의 초청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그 때에는 그가 사양하였으나(민 10:29-32) 결국에는 이스라엘 민족과  동행하였던 것이다.   "겐 사람" 은 겐 족속에 속한 사람을 의미한다(창 15:19). 후에 그  족속은 레갑자손으로 알려졌다(대상 2:55; 렘 35:2). 유

다 지파의 가나안 정복 기사(征服記事)에 모세의 처족(妻族)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듯하나,  그들이  이때(유다 지파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아랏 남방" 에 왔으므로 그 사실이 여기에 관설(關設)된것이다. 이렇게 사실  본위로 진실히 기록되었다.
   "종려나무성읍"은 여리고 성을 가리킨다(신 34:3; 대하 28:15).


   "그 백성 중에 거한다" - 고 함은 유다 지파의 백성과 함께 거주하였다는  뜻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그 장인에게 "선대하리라"고 약속한(민 10:29) 그 말이 이제  성취되었다.


  17 ~ 18절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그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 "스밧"(*      )은 칠함을 의미하는데이 세상의 외식(外飾) 성격을  비유한다. 유다 지파가 공격한 적군의 그 성 이름이 마침내 그 죄악의 진상(眞相)대로  받아 마땅한 "호르마"(*        ), 곧 멸망으로 끝났다.    "진멸함"(*      )은 멸망시킴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심판성을 띤것으로서 남김 없이 다

죽임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운동은, 가나안의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엄슥한 행위였다. 그러므로 그 때에 가나안 족속을 진멸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었다. 그 때에 "스밧에 거한 가나안 사람"의 죄악은  심히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멸 행위는 잔인한 것이 아니고 도리어 정당하였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큰 심판을 보게 될 때마다  그 이면에 있었던 죄악의 심각함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 은 유다의 남쪽 도시들이다. "가사"(*      )는  강하다는  뜻이고,  "아스글론"(*             )은  훼방의 

이란  뜻이고,  "에그론"(*  )은 뿌리 뽑는다는 뜻이다. 이 세 도시는 그 이름들의 뜻과 같이 강하고 또  악독하였는데 유다 지파가 그 도시들을 멸망시켰다. 이와 같이 신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악한 죄와 마귀를 이길 수 있다(요일 5:4).


 19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 - 유다 지파가 산악 지대의 족속들을 축출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골짜기"(*      -평야지대)에 사는 족속은 축출하지 못하였다. 이 때 그들의  실패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보다 적군의 "철병거"들을

더 무서워한 데 있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그것을  무서워하다가  물에빠져

들어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 14:26-31참조.


 20절

  "무리가 모세의 명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 수 14:6-15, 15:13-14

참조. 갈렙의 사건이 여기에 또 기록된 것은 문맥상 자연스럽다. 그의 조상이 그나스 족속이었는데(수 14:6) 유다 지파에 귀화(歸化)

했으므로 선민(選民)과 함께 기업도 얻었으며, 유다 지파의 승리 기사(勝利記事)에 그의 전승(戰勝)사건이 포함된 것이다. 그는 시

종일관 신앙으로만 전쟁에 승리할 수  있음을 믿었다. 그는 말하기를,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하였다(수 14:12 하반).


   21-36절

이 부분에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축출함에  있어서 완전치 못했던 사실을 밝혔다. 곧, 베냐민, 요셉(므낫세,에브라임),  스블론,  아셀, 납달리, 단 지파들이 이스라엘에 화근(禍根)을 남겼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의 우상주의와 타협한 증거이다. 오늘날 신자들도 죄를 이기려고 힘쓰면서도 부분적으로는 타협한다. 그타협의 원인은,

(1) 성결의 높은 수준을 목표하지 않음이고,

(2) 신앙 생활 중에 당하게 되는 난관들을 지나치게 두려워 함이고,
(3) 실행에 너무 태만함이고,

(4) 이 세상을 사랑함이다.   

 

그들이 죄와 타협하기 때문에

(1) 신앙 생활에 기쁨이 없고,

(2)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데 무력하고,

(3) 하나님의 능력을 참으로 체험하지 못한다. 따라서 

(4) 그들이 모인 교회는 속화(俗化)된다.

 

 

21절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  "베냐민" 은 전쟁 잘 할 지파로(창 49:27), 또 하나님의사랑 받는  지파로  예언되어  있다(신33: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파는 여부스족을 축출하지 않았으니  이는  하나님의 약속, 곧

주시마 하신 그 땅에 대하여 그들의 열심이 적었던 까닭이다.


  23-26절

  "루스" (*      )는 분리(separation)를 의미한다. 신자가 영적으로 세상과 분리함이 곧 하나님을 모심이다. 그렇게 하면   "벧엘" (*            ), 곧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다. "루스"를 벧엘이라고 이름 지은 첫사람은  야곱이다(창 28:19).   요셉 지파가 벧엘을 공격

할 때에 한 사람이 이스라엘 편에 가담했으므로 그 사람과 그 가족은 구원 받았다. 헷사람의 땅에 가서성읍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루스"라고하였으니 이것도 의미 심장하다. 즉 그것은  세상과 갈라짐을 의미한 것이니 회개를 가리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헷 사람의 땅" - 은 확정하기 어렵다. 아브라함 때에는 그 족속이 헤브론에  있었고(창 23 장), 그 후에는 가나안과 수리아 접경에 있었다(왕상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