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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행22:30)

1. 성경 (행22:17 ~ 30)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7)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8)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19)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 (20)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1)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22)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23)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고 그들이 무슨 일로 그에 대하여 떠드는지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심문하라 한대 (24)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25)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이르되 어찌하려 하느냐 이는 로마 시민이라 하니 (26)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시민이냐 내게 말하라 이르되 그러하다 (27)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이르되 나는 나면서부터라 하니 (28)심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시민인 줄 알고 또 그 결박한 것 때문에 두려워하니라 (29)이튿날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진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우니라 (30)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17 후에 내가~~~~~~~ 돌아와서” ; 만일 바울의 연설이 그들의 맹 렬한 외 침 에 의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이것은 결론의 부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문맥으로 보아 그가 무엇을마음 속에 품었는지를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마치 분풀이로 유대인들에 대하여 바울이 복음의 봉사를 하지 않은 것처럼, 그가 자발적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멀리 떠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 자신의 선교의 직분을 언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그 자신의 마음의 기대와 목적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방으로 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예루살램에 온 것은 자기를 위탁하산 은혜를 그 자신의 동족과 나누려는 의도에서였기 때문이다. 그려나 주께서는 성공의 희망을 잘라 버리시고, 그를 그곳에서 나가게 하신다. 그러나 바울이 수정하려 했던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왜냐하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만일 이방인들을 무차별하게 교회로 들어가게 한다면 하나님의 언약(the covenant of God)은 머럽혀진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사랑을 받고 심지어 그들과 동동하게 된다는 것보다 이 자만스러운 민족을 더 괴롭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바울의 방어는 여기에 있다. 곧 그에 관한 한, 그는 스 스로를 그들에게 헌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후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이방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음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소극적 으로 그리고 쓸모없이 남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 밖으로 추방되었다' (莊9)는 에라스므스의 번역 은 ‘내가 황홍지경에 있었다’는 헬라어를 문자적으로 옮긴 것이다. 그 표현을 통해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확신을 발견하고 싶어했다.  시간과 장소의 정황이 모두 똑같은 일을 만들어 놓고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가 성전에서 기도할 때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환상의 방법에 관해서는 7장의 마지막 부 분(7:56)에서 우리가 살펴 본 것을 참조하라.

 

“18 저희는 네가~~~~~~중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 하리라.” ;  하나님의 간단한 명령이라도 우리가 복종하기에 충분한 것 이상이 되고 있으나, 바울을 보다 쉽게 따르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어째서 자신이 그를 예루살렘에서 떠나게 하기를· 원하고 계신가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계신다. 곧 왜냐하떤 바울은 거기서 가치있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가르침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거나, 게으르게 누워 있도록 정해지지 않았었다. 이것은· 엄격한 하나의 시험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그 거룩한 사람의 마음을 강열한 놀람으로 채웠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바울온 복음을 선포하는 과제를 일찌기 말아 왔었다. 그래서 그의 음성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 게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첫 시작부터 그는 방해받고 있다. 그렇다. 더욱 심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바, 그의 증거가 개인적인 증오때문에 거절될 때 그 노력은 특별한 불명예에 의해 정죄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거룩한 종이 이처럼 비천해쳐야 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모든 복음의 교사들이 이런 모범으로 자신들을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복종에 헌신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한 장소로부터 배척받을 때 다른 장소로 곧 떠날 준비롤 갖추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원기를 잃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의무 수행을 그치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 하면 그들은 부당하게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9 주여 내가~~~~”  ;  바울은 이런 말씀들을 통해 그가 정신적으로 의곡 되거나 혼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확신을 얻었음을 알게 하고 있다. 의심의 그림자 없이, 그는 ‘주’라는 이름으로 말한 그 그리스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 속에서 그들이 발견한 갑작스러운 변화의 광경에 의해 그들이 혼선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이 실패하지 않을 것 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모든 사건들에 있어서 그것은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그를 또 다론 봉사의 장소로 보내기 위해 선택하셨다는 구체적인 대답을 하신다. 그리고 바울이 유대인들에 관해 품었던 근거없는 소망을 거두어 가신다. 그러나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반대들을 밀고 나가는 것이 정당했는가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말씀하셨던 것이 일어나지 않았고, 아마도 일어 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가 불평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이 그들의 느낌을 친밀한 모양으로 그분의 가슴에 호소하도록 허락하셨다고 나는 대답하겠다. 특별히 그들이 찾고 있는 모든 것이 그들 신앙의 확인일 때 그러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자신의 지혜만 믿고, 완고하게,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거절한다면, 그의 오만함온 당연히 정죄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신자들이 독특한 특권을 얻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신다. 그들이 자신들을 돌이키게 하고,, 붙잡아 두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모두 그분 앞에 겸손히 놓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이 보다 자유롭고 더욱 더 준비를 갖추어 전적으로 하나님께 그들 스스로를 위탁하기 위해 열심히 복종할 때 그러하다. 우리는 여기서 그것의 한 예를 발견한다. 바울이 이런 식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도록 지시받은 후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더 이상 어떤 주장도 하지 않았다. 자기에 대한 그 반대에 만족하고. 자기 것을 거부하면서, 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유대인들의 고칠 수 없는 완고성온,` 그들이 그토록 많은 기적들을 보고도 감동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잘 드려난다.

 

"22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  여기에서 누가는 바울의· 말씀이 소동으로 방해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자기들의 고함 소리로 그를 압도하려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죽음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의 자만심이 얼마나 격노를 일으켰는가 하는 것이 확실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그런 자만심을 갖고, 자기들과 비교해서 전 제계를 경멸했을 뿐 아니라, 그들온 율법 자체보다도 그들 자신의 위엄성을 지키기 위해 보다 열심히 싸웠다. 마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다른 모든 인간들을 능가했다는 이 점에 따라서 종교 전체가 결정된다는 듯이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지금 맹렬히 바울에 대항해서 싸우려는 충동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보내졌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불겅건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그분의 거룩함에 대한 평을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통해 그분으로 하여금 참으시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불경한 자들을 바울은 다른 모든 사람들 보다도, 비상한 은사로 존중했다. 당시에 유대인들에게 사나운 기질이 농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 그들이 극단적으로 짓밟히고(attriti) 지독한 모해에 처하게 되어도, 아직도 그들은 끈질긴 자존심을 그치지 않고 지속해 나간다. 그러나 바울의 예언(롬 11 : 5)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 남은 자들을 함께 모으실 때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거절당할 것이다. 

 

"24  천부장이~~~~~~ 명하고~~"  ; 천부장은 신중하고 올바르게 행동한 결과로, 바울을 사람들의 시야에서 떼어 놓았다. 왜냐하면 그의 모습이 이미 열화가 극에 달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아직도 더 자극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이 거룩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주고,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노호를 잠잠케 해 준다. 그러나 그는 무엇이 잘못된 것 인지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들어 보지도 못한 채 바울을 채찍질하라고 명령할 때, 부당하게 행동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불의에는 다소 변명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선한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한 사람의 생명을 요구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공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편에서는, 강력한 가정 (假定)이 그와같은 가혹한 신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들 자신의 이익에 관계되면, 훌륭한 재판관이 되는 것이 교활한(politicis) 사람들의 습관임을 주목해야 한다. 만일 그들에게 이로운 것이 있다면 그들은 어느 방향으로나 전환한다. 동시에 이런 약삭빠른 행동을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런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의를 보여주지 않으면 세상이 지배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원칙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적 원칙이 개인적인 경우에 적용될 때는 내가 이에 언급한 교활한 것이 우선권을 가지계 되고, 따라서 무엇이 정당하고 옳은가보다는 무엇이 이득이 되는 것인가에 더 비중을 두게 된다.

 

"25 로마 사람된 자를~~~~~" ;  우선 바울은 시민권에 대한 권리를 들고 나서고, 다음으로 일반적인 권리에 자기 방어를 탄원한다. 그러나 두번째 것, 곧 죄도 알아보지 않고 채찍질 맞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해도, 백부장이 로마 제국의 영예에 관해 더 방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로마 시민의 자유를 ' 모독하는 것보다 더 콘 범죄는 없었기 때문이다. 발레리우스(Valerius), 포르시우스 (Porcius) , 셈프로니우스 (Sempronius) 그리고 그것들과 유사한 황제들의 법를들은 어느 누구도 그 시민의 명령없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벌을 가할 수 없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특권은 매우 신성해서 그들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만이 아니라 속죄할 수 없는 범죄로 생각했다. 따라서 바울은 일반적인 정의 때문이라기 보다는 특권 때문에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한 이유로, 자기가 당하게 될 해를 제거하기 위해 시민권이라는 이러한 방패를 주저없이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그가 시민권의 권리를 주장해서, 천부장이 확인하도록 한 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즉 천부장은 그렇게 될 때, 조사해 보지 않고 그가 말했던 것을 성급하게 믿어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주 발이 넓은 사람이 증거를 제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째서 지금은 그 자신의 입으로 미리 막았으면서, 빌립보에서는 바울이 어째서 채찍의 벌을 받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했는가 하는 이유를 16장에서 주었다. 사람들이 소동했을 때는 잘 알아듣지 못할 것 이기 때문이었다(16 : 37). 이제 그는 기회를 얻는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들을 보다 큰 절제의 위엄으로 조절하고 있었던 로마 병사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6 이는 로마 사람이라 히니."  ;  어떤 사람은 신문하는 일을 책임 맡은 사람이 마치 자기가 다소 알고 있는 일인 것처럼 이 말(이는 로마 사람이라역자 주)을 확인할 정도로 매우 경솔하다고 의아해 할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가 바울의 전술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어떤 범죄라도 이렇게 책략을 써서 벌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행동하는 방법이었다. 죽 자기가 로마시민이었음을 주장하고 있었던 사람은, 그가 자기를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을 찾아 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기가 한 시민임을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한, 벌받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시민하면 시민권에 대한 거짓 주장을 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백부장은 이 문제를, 마치 의십스럽다는· 태도로 천부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했던 것과 갈이 천부장은 곧 서둘러 조사한다. 그러나 누가가 바울이 스스로 로마 시민임을 입증하기 위해 사용 했던 중거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는다 해도, 천부장이 그를 풀어주기 전에 그가 사실에 대한 충분한 실증을 얻었으리타는 것은 확실하다.

 

"28  나는 돈을 많이 들여~~~~~~~얻었노라~~~~" ; 천부장은 그를 반박하기 위해 이런 의견을 내놓는다. 마치 시민권은 평범한 일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것도아니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너와같온 길리기아 사람(Cilician)의 미천한 녀석아 이런 영예를 얻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 내가 굉 장히 많은 돈을 주고 산 이 영예 를 말이다’ 라고 말한다. 바울이 자기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이)라고 대답할 때, 곧 그 도시를 가 본 일 도 없고, 더구나 그의 부친이 그곳 가까이에 간 적도없는 곳을그가 그렇게 대답할 때, 거기에는 다른 사람을 속일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로마의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온 그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들이 시민권을 허락받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쟁이나 다론 중요한 일 들을 동해 국가로부터 상받을 가치가 있을 때에는 스스로가 지방 총독으로 부터 이 상을 요구했다. 따라서, 먼 지방 태생이고, 그가 먼 지방의 태생이기 때문에 아직 어대리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런지 모르고, 로마 시민으로 태어난 이 사람에 관해 불합리한 점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천부장이 바울을 로마 시민으로써 결박했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다음 날에 가서야 겨우 그 결박을 풀어주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일치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두려워 했다는 어떤 표시도 보이지 않기 위해 그 다음날 풀어주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천부장이 두려워 한 이유는, 자기의 명령에 의하여 바울이 체찍질 맞기 위해 결박당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로마 시민의 몸 에나 일반 자유인의 몸에 대해서도 모두 권리 침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 나 나는 감옥에 가두는 것온 역시 허락되어 서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