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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행 4:14)

1. 성경 (행 4:13~2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13)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4)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5)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6)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7)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8)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19)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0)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1)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2)

2. 묵상 (Cakvin선생 주석 요약본)

"13 :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악한 생각을 보게 된다. 왜냐하며 그들의 공정성과 이성을 잃고 공공연한 횡포 속으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내색온 피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우선 그들은 옛날의 거인들처럼 고의로 또는 자기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을 거스려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 밝혀지도록 자기들의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고 그는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병나음을 받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으면서도 악한 생각을 가지고 그들은 그를 거스려 대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배우지 못했고 무식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만큼 그들의 대담성 안에는 인간 이상의 무슨 힘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처럼 파렴치한 짓을 시작하여 진리를 압박하는 무슨 잔인한 수단을 찾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표적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인정할 때 그것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악한생각을 가졌다는 죄책감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들이 그 표적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진 일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실을 부정할 무슨 구실만 있다면 태연히 등을 돌리는 일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을 만큼 자기들의 칠면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7 저희를 위협하여 ~~~말하지 말게 하자"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도 두려하지 않는 권력의 무서운 악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종교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게 될 때 인간이 잡고 있는 지위가 신성하면 할수루 그는 더욱 더 대담하게 발광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악한 자들이 교회의 지배적인 자리에 세워지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유의하여야 하는 까닭인 것이다. 그리고 이 직책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해를 주기 우해서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경건하게 그리고 조심성 있게 행동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자기들 의 직위를 악용하는 일이 생겨난다면 그들이 명령하거나 판결하는 것이 무었이든 공허한 것으로 받아 들여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거울에 비치시는 것처럼 분명하게 해 주신다. 특히 목사들의 권유라는 것은 제한성을 갖고 있어서 거기서 넘어져서는 안된다. 만일에 그들이 지나치게 과감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합법적으로 그들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복종하는 일은 큰 악을 범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 하나님 앞에서 ~~~~옳은가 판단하라" ; 그들이 이러한 대답을 한 상대방을 우리는 기억하자. 왜냐하면 이 회의가 교회를 대표한 것이 틀림 없는일이었지만 그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악용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들에게 복종할 까닭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항에 대하여 흔히 생겨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적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답신(答申)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도들은 그들의 법령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웠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 일은 다른 면으로 보면 교회의 정규적인 목사였던 그들이 동시에 하나님의 적척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사도들의 불복종은 합당치 않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사도들은 또한 악하고 불성실한 목사들에게 재공하는 복종이란 비록 그들이 교회에서의 합법적인 권위를 행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교황은 가볍게 이 문제를 처리한다. 아무렇게 지껄이는 말이라도 그것이 자기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로써 어떠한 반대의 위험도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의 주교들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제사(祭司) 계급에게 주신 것 이상의 것을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어린애 갈이 유치한 일로써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치하는 일이 아니고는 무엇 하나도 명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온 차라리 다음의 것을 분명하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발로 짓밟고 그것을 필요없는 것으로 여기며 자기들의 헛되고 방종한 열망을 제멋대로 헤매도록 허용함으로써 충돌은 간단하계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무슨 착함을 가지고 있든지 그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복종하는 일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인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서만 우리가 그들의 말을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모든 관례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비추어 검토하여야 한다. 우리는 군왕이나 그 밖의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돌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최고의 왕이시요 아버지시요 주되신 하나님에게서 그에게 속한 권위를 부정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복종해야 한다. 이러한 제한이 정치적인 지배에서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교회의 영적 통치 안에서는 그 일들이 더욱 큰 중요성을 가지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들 위에 높여지심을 밭으시기 때문에 자기들의 권위가 최소한도로 적어진다고 그들이 언제나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는 그러한 사항은 하나님의 심판자리에서 정해져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계 경고함으로써 그들의 그러한 자기만족의 생각에서 그들을 돌이켜 놓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라고 분명히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사람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결코 자기 앞에서는 우선권을 가지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성령께서는 이 대답은 사도들의 입에 주신 것이다. 그것은 사도들의 적은 흉포성을 억압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요 또한 우리의 의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멍에를 벗겨버리고 그들 자신의 명에를 우리에게 씌우려고 할 만큼 그렇게 거만해질 때마다 우리의 의무가 무엇안지를 성령온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권위를 상기하도록 하자. 그것은 인간의 모든 우월성이라는 헛된 연기를 날려 보내는 것이다.

 

"20 우리는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 평화가 이루어져야 할 때에는 보고 들음으로써 알게 된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사항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키는 일은 하나의 심술궂은 고집을 나타내는 일이요 무례한 짓인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이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주장했을 때 그것은 일반적인 말투로 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이 모두 있는 것이다. 복음이 인간들의 금지로 인하여 억압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꼴사납고 불신앙적인 하나의 범죄이다. 왜냐하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시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또는 전파자로 택함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입을 열어주셨음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침묵을 지키도록 명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하고 인간의 구원을 파괴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자들인 것이다.  만일에 이러한 불경스러운 금지가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한다면 우리의 비겁함을 인하여 우리에게 화가 있울진저! 이제 그들이 사람들의 일을 생각하고 침묵을 지킬 때에 그리스도의 입에서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무서운 음성이 들려오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고백을 그들에게 요구하시는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해 주자. 특히 가르치는 직책 (ad docendi munus) 에 부르심을 받온 사람들은 어떠한 인간의 협박으로나 어떠한 권위의 형대로 인하여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겨주셨다고 알고 있는 그 칙책을 자유롭게 수행하도록 해야한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타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울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 전 9 : 16) 라고 바울울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하나님의 계명을 단지 인간들의 압제적인 명령을 저항해서만이 아니라 사단이 복음의 진행을 끊거나 방해하려고 가끔 설치해 놓는 모든 장애물에 대항해서 조절하여야 한다.

 

"21 관원들이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 여기에 선동의 결말이 있다. 즉 악한 자들은 걱정의 숨결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숨온 능력에 억제되어 그로 인하여 그들은 해를 가해줄 만한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사슬에 매이고 결박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이 위협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들의 몸에 폭행을 가하지 않는 일이 생겨날 수가 있는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제지한 것은 민중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비록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끈으로 그들을 묶으신 것이다. 누가는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그 섭리를 우리에게 권한다. 그것이 악한자돌에게는 숨겨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의 가장 두려운 적들에 의하여 촉진되었다는 하나님의 신기한 의도가 나타난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의 모임은 널리 알려짐이 없이 개최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둘은 무슨 놀랄만한 사건을 기대하면서 기다렸으며 사도들은 무죄방면되어 자유의 사람들로 석방되었다. 그래서 그 적은 패배했을 뿐 아니요 자기들의 의사에 반대로 복음을 굳게 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시 유의하여야 할 것은 신도들이 승리를 획득하게 될 때 그것은 언제나 십자가의 겸비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