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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행 24: 19)

1. 성경 (행 24:1 ~23)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1)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2)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3)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4)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5)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8상반 없음) (6)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8)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9)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0)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1)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2)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3)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4)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5)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16)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7)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8)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19)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0)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21)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2)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3)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아나니아가 가이사랴에 내려왔다는 사실을 내가 전에 그의 제사장직(駐2)에 관해서 언급 했던 :::z. 추측을 보다 신빙성있게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원정은대 계사장의 위엄을 추락시키는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누군가가 당시 에 대제사장(summus)이었다. 그러나아나니아는 ‘첫번째 순위'(primarius) 의 제사장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배권율 갖고 있었고 활동적인 사람이었 으므로,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에게 합당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는 숭업한 장로들의 회 (會)로부터 (ex venerando seniorum cdlegio) 자기 를 따라 교육을 지키고 있다. 바로 그 광경을 동해 총독이 바울을 저주하도 록 마음을 움직이계 하려고 그들은 제시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는데 있어 서 기교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쨌든 바울에겐 우아한 말로 싸워줄 고용된 변사가 필요 없었다. 이외에도 그들은 권위로 보나, 숫자로 보나 우세했다. 그래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었던 한 비참한 사람을 그들이 덮쳐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따라서 여러일들을 통해 경험이 많아 유능 하고, 공적인 문제에 숙달되어 있고, 법정 사건에 유능한 사람들이 변사 롤 대동하였다는 것은 악한 양심의 표시였다. 웅변은 확실히 하나님의 선물 임을 나는 받아들인다. 이 경우에 그들은 단지 재판을 속이기 위해 거짓을 조작하고 싶어했다. 그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보댐이 될만한 것은 무엇이나 생략했음을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누가는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 듈은 바울의 순수성을 무시할 뿐 아니라, 그를 위협하고 혼란시킴으로 그의 방어를 흔들리게 하고 있다. 바울이 겁내지 않고 그와 같은 야만적인 모해 에 반대했던 것온 하나님의 놀타운 은혜에 의해 일어났음을 생각하도록 하 자 따라서 한 신자가 수 많은 적들을 홀로 맞서다가 넘어지게 되면 이 이 야기가 마음에 떠오르게 하자, 그리고 그로 하여금 그의 두려움 이후에 곧 새로운 용기를 취할 수 있게 하자. 비슷하게 다윗온 자기의 모법을 통해 우 리를 격려해 주고 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전칠지타도 내 마음이 두렵 지 아니하며… ....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 27 : 3).

 

"3  우리가……태평을 누리고......" ; 더 둘로(Tertullus)의 서 론은 그 사건 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떤 그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해 벨릭스 의 신중한 태도와 덕성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론은한마디의 꾸민 아침에 불과하다. 나는 더둘로가 재판관을 달래고 아첨해서 그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더둘로를 비판하는 자들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적절하고 합법적인 탄원의 방법올 가지고 재판관을 칭송하는 것이 늘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곧 보통 이야기되고 있듯이 이 문제는 찬반으로 나뉘어야 토론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려나 냐 는 분명히 사악한 것만을 저주한다. 왜냐하면 이 변사는 문제에 걸려 있는 실제적인 당면과제를 혼란시키기 위해서, 거짓 칭찬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마음에 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릭스가 유대의 안전이 바울에 대한 저 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도록 해서 그 사건을 잘 조사하지 않게 하려는 의 도가 아니타민 어째서 그가 그 국가의 태평성세에 관해 이야기하겠는가? 이 외 에 도 요세 푸스(Josephus) 에 따르면, 벨 리 스가 그 지방에서 매우 악람 그의 방탕과 폭정을 하고, 잔인하고 변덕스러웠던 것은 분명하다. 요나단이 감히 반대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인 그를 부끄럽고 비참하게 죽인 것은 이보 다 먼저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때에 굴라우디오 가이사는 온 국 민의 성가신 불평들 때문에, 베스도(Festus)를 그의 자리에 대치시키라고 강요되었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 라서 우리는 이 변사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뻔맨스럽게 거짓말을 했는가 하 는 것을 보게된다. 그러나 바울의 적들이 일치해 있기 때문에, 증오와 사악 에 의해 어두워진 나머지 그들은 기만스럽계도 그듄 국가의 상식적인 상태 를 속이고, 바울을 죽이타는 것 외에 국가의 형편에도 무관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에타스므스가 ‘여러 일들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읍니다’로 번역하고 있는데 비해 벌게이트역은 누가의 의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들이 성공적으로 성취되어가고 있읍니다' (,ca1:opOwµa:1:a ; 카토르도-마타 ; fieri)로 되 어 있 는데 , · 이 는 ‘개 혁 ' 이 나 ‘개선'(駐3)과 같은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둘로는 벨릭스가 유 대를 많은 부패에서부터 건졌고, 다론 나타는 파국으로 달려가는데 여기서 는 많은 일들이 보다 좋은 상태로 변화되었다고 그롤 칭찬하고 있다. 머둘 로는 벨릭스가 그렇지 않다면 벨릭스 자기에게 적대감정을 풍었을 한 국민 의 호의를 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더욱 열렬한 마음을 풍도록 분 명히 그렇게 했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 ;더둘로는 이중의 목적을 갖고 있다• 첫 째로 그는 바울을 유대인들에게 넘겨주도록 하기 위해 애쓴다. 왜냐하면 유 대인들은 하나님께 예배와 모세의 율법에 관한 문제들을 법률적으로 조사 할 권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z..가 가장 큰 죄로 들고 있는 이것, 곧 바울이 사람들율 선동했다는 이것은 부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로마에 대해서 보다 더 공격적인 범죄는 없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따 타서 그들은 특별히 선동했다는 불명예를 바울에게 집지워 주려했다. 더둘 로가 바울이 온 세계에 걸쳐서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 점을 안중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그가 바울이 나사렛 이단 (Nazaraeorum;타)의 괴수라고 덧붙이고 있는지 이상스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대인들이 그것을 욕하기보다는 칭찬할 만한 것으로 간주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더둘로가 하나의 합법적이고 율법의 전 래되어온 의식에 마타 하나님께 자신들을 봉헌하곤 했던 자들을 의미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이 열심당원들이었음을 자랑했고 또 칭찬받을 만한 명칭을 취했던 그와 같은 소란을 피우는 자객 (刺客)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 당파는 그때쯤 나타났고, 사실 그들이 이미 거기서 활동 율 전개하고 있었음을 요세푸스의 역사서를 통해 침작할 수 있다. 다른 사 람들은 나사렛 사람들이란 말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란 말 대신 사용되었다 고 생각하는데, 나도 이것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처음 실명이 인정 받을만 하기 에 , 그는 바울이 로마인들에 게 는 미 움을 받는 종파에 속하고 있음을 날카롭게 주장한다. 그 열심당원들온 율법을 고수하는데는 타의 추 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열심이탄 구실 아래,. 말하자면, 평민들의 마음에 불 길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들이 나사렛 종파에 대한 중오 속에 바울을 포함 시키는 한, 선한 사람들, 곧 자기들의 자유를 위한 열심당원들은 그것의 주 된 옹호자들을 아끼 지 않는다. 이 사건 이 아니 라면 그들은 그 나사렛 종파 를 율법의 영적인 옹호자들로, 이미 내가 언급한 바와 같이 칭찬했을 것이 다. 마치 그들의 전염병적인 감화력이 온 세,,I.J-올 더럽히고 있는 것처럼, 1 들은 바울을 그들과 연결시킴으로써 바울을 완전히 욕되게 하떤서 더럽히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바울에 대해 거짓 송....t}를 불미스럽게 행하고 있다. 왜 냐하면 그와 같은 종류의 일로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 다. 따라서, 마치 길거리에서 아무 정당한 이유없이 생겨난 것같은 시비를 그에게 거는 것이 악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릇된 것이다. 그러나 우 리가 도처에서 이미 본 것처럼, 위선자들은 열심을 가장하는 한, 이같이 성 급하고 무분별하계,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길을 난폭하게 걸어 간다. ’ `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  이것은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 기 원하는 로마 총독의 눈에는, 사소한 일이었고 거의 보잘것 없는 송 사였다. 그러나 성경 모독보다 더 소란을 일으키기에 적당한 것은 아무것 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교묘하계 바울을 그것으로 비난하고 있다. 마치 그 의 잘못이 아니라면 그 도시는 분노로 격망되지 않았으리타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를 막지 못한다면 가장 심각한 대재난의 선동자가 될 것이 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동시에 그는 바울이 종교를 모독했었 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건을 조사한다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유대인들에 대 해 관심을 갖는 것이 된다는 다론 문제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겁 에서 그는 천부장인 루시아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들 의 권리를 강제로 빼앗아 갔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그 송 _.,. 독에게 천부장이 빼앗아 갔던 것을 자기들에게 회수시켜 주도록 애쓰고 있다. 이것은 간교가 별로 없이 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디둘로는 제사장이 원했던 것 보다도 더 바울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그 천부장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그는 감히 그를 꽁개적으로 송사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해 간접적으로 또 다시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형을 포 함한 사건들에 관해서는 로마 통치자들만이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 게 많은 것을 그 총독이 자기들에게 허락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하 는'문제가 일어난다. 여기서 그들은 마치.'..그들이 바울을 그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더 부드럽게 대하고 있었다는 듯이, 공평을 가장하고 있었다고 나는 대답하겠나 비록 그들이 사람을 사형에 처하도록 선고할 힘은 없었다 해도 막대기로 때리는 것과 같은 평범한 벌은 가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동시 에 더둘로는 그 총독 앞에서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계속 송사하고 있다.

 

"7. 그롤 심문하시면." ;  재판관은 사건윤 자제히 알아보기 전에는 판결 올 내릴 수 없으며 법적으로 확증될 경우에만 바울을 그를 정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공정한 청탁이다. 그러나왜 그들은자신들이 나쁘다는것을그처럼 단히 알면서도 이러한 조건으로 소송하려 드는 것인가? 그들에게는 증인도 있었으며 이들을 심문의 대상으로 제공할 결정권도 그들에게 있지 않았는 가?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 곧 그처럼 장황한 말을 늘어놓 음으로써 쉽게 벨릭스로 하여금 피고인을 마치 정최받은 것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어 그들 멋대로 처단하계 하려는데 그 속샘이 있었다. 한 마디로 그 돌이 자신들에 대한 자화자찬을 늘어 놓으면서 신랄하게 피고인을 꽁격하 고 더욱 자신만만해 하며 기고만장할수록 자기들에게 더 승산이 있는 것으 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된 경우 피고인으로서 변명을 제기할 길이 온동 봉쇄되고 말것이기 때문이다. 법을의곡시키는자들의 뻔뻔스런 허풍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곧 그들은 자신들이 확증된 사건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 럽 떠들어 대는데 이것은 재판관의 눈을 속이려는 속셈에서 나온 짓이다.

 

"10 그가 대답하되… •••"  ; 바울의 변명의 특성은 질(quality)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는 그에 대한 협의를 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복 음을 수치로 여겼거나 십자가를 회피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 신앙을 상 세하계 고백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소자가 복음 의 명분을 들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생략하고 그에 대한 거 짓 비난에 대해서만 응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말하기 전에 먼 저 벨리스에게 자신의 문제를 번호하계 된 것을 더욱 더 기쁘게' 여기는 것 은 그가 유대 지방에서 장기간에 걸쳐 통치해 왔으며 새로운 총독 같으면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지나친 고소에 압도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말에 대해서는 사실(rem)로 반박하’는 것이 전지하고 솔 직한 변호 방법이다. 하지만 바울은 벨릭스가 이미 수 년간에 걸쳐 이곳의 총독으로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도착 시간을 알아 볼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 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추측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그 가 이 말을 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보다 더 온건한 행동과 일치하기 때문이 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마치, ‘귀하가 이제는 그들의 습관에 장기간에 걸쳐 이숙하게 되었으므로 저로서는 그들이 귀하를 속일 염려가 없는 것으로 봅 니다'라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해서 경험은 재판관으로 하여금 너무 경신(輕 信)에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에게 터무니 없는 경솔을 범하게 몰 아 불인다• `

 

"11. 예배하러 올라간자 •••.•"  ; 물론 그에게는 예루살램에 온 다른 여러가 지 이유가 있었음에 튤립 없다. 후에 그가 제일가는 이유로서 궁핍한 형제 둘을 돕는 구호금 전달을 꼽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이 점은 명백하다. 그러 나 그의 말을 쉽게 변호할 수 있는 것은 그로서는 올라온 이유를 하나도 밝 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지나가는 말로 자신에게 성전 모독 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비록 이 여 행의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그가 여기에 온 것은 다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 예배를· 통해서 이 성전의 성스러움을 확증하기 위해서였다는 그의 주장 온 어디로 보나 사실이다. 그러나 더 난처한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 온, 성전의 종교가 이미 철폐되었고 성전의 모든 목성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는 자신이 예배하러 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여기에 대 해서도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곧 그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 지만 그렇다고 그는 결코 무슨 거짓 핑계를 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의 경우 성전 예배가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특별히 그 장소만을 성스럽게 여간 것이 아니타 어 디서고 자유롭게 깨끗한 손을 들어 기도했다(딤전 2 : 8). 바울이 예루살렘 에 도착했을 때 그가 자유롭게 성건에 들어가서 자신의 신앙율 증거하며 일 반적인 하나님 예배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복음에 위배되는 속죄 의식을 지행하지 않는 한 그는 미신의 오염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율법온 성소가 하나님의 얼굴oJ_ 것처럼 규정한 적이 있지만 그가 예 루살렘에 온 것은 그런 종교적인 강요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달시 사람들이 신앙의 증거로 보는 외형적인 에매를 무시하지 않았다.

 

"12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  ; 바울이 이런 일들율 했다 하머라도 그 것을 부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은 그란 일들율 하는 것이 당시의 유행 이었다는 겁을 그는 충분히 주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은 날마 다 토론을 벌였는데 그도 과거에는 그런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으며 가르 치는 목적으로 모이는 것은 사실 율법이나 관습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타 바로 이 목적으로 그 도시의 이곳처곳에 회당이 흩어져 있었 으며 여기서 그들은 모임율 가졌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와 사도들도 이런 일을 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일상적인 만행이었으므로 자기에 대한 고발을 그의 상대편에게 뒤집어 씌우기란 아주 간단했다. 그러 나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온 그의 원수들의 허위 진술율 부정하고 아누 이유 없이 제멋대로 이 고집센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하는 공격을 반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실만 을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그는 자신이 군중을 선동했다는 거짓 협의를 퇴치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원수들은 자기들이 조사하타고 제시한 것들을 결코 입증할 수 없으므로 자기가 무고하고 부당 하계 고소당하고 있다는 결론율 내리고 있다. 자신에게는 도무지 미심적은 점이 없는 국악한 거짓말이 뒤집어 씌워지고 있다는 변론은 그를 무죄 석방 하는데 큰 역할을 했어야 마땅했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댜"  ;  그들이 바울에게 뒤집어 씌 운 최목은 불신앙과 성전 모독이 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기서 이 두 가지 협 의를 청산함으로써 벨릭스로 하여금 그의 원수들이 오로지 악의에 이끌리고 있을 뿐이라는 접을 이해하계 만들고 있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이 핑계삼아 내세우는 종교라는 것도 허무맹랑한 것이지만 거기에 득별한 관심이 없는 자들의 사회에서는 그것에 대한 열성이 후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벨릭스가 정말 바울에게 무슨 흉죽한 것이라도 있 는 것으로 의심한다면 그는 제사장들의 열성을 간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들의 청탁을 들어 줄 크나큰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이 방면의 고소 에 대해서도 종지부를 찍으면서 복음 신앙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아직 그것을 고백할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그는 자신이 소위 그들이 이단이타 하는 도를 좇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온 이것이 여기에 일 종의 양보형식으로 덧붙여지고 있는 것은 그의 원수들이 올바론 결정과 선 택으로 보아야 마땅한 것을 악의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내가 따르고 있는 종교를가리켜 이단이타고들 부르지만근 거없는 소리울시다' 하는 식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려 나 당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은 이 명칭을 불쾌하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바울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모두들 비난하기보다는 칭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이야기하는 이단이라면 하나님의 영은 이단자들을 증오하도록 지도하며 이단에 대해서 경계를 피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교회를 파괴 하고 붕괴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동일된 신앙 속에 있을 경우에라야 안전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용납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당파(sects)를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있었 으므로 바로 앞에서 우리가 언급한 변명은 불필요했다. 그러므로 남은 해결 온 자기가 바리새인이라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그가 유대교나 복음의 고백이 이방인들의 모든 관행과 습관과 구별되었으므로, 결코 나쁜 의미 없이, 그 것을 이단으로 부르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는 앞에서 자신이 바리새 인이타는 접을 고백한 바 있으므로 그가 여기서와 특별히 조금 뒤에서 죽 온 자들의 부활을 두고 언급하면서 동일한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보아도 전 혀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첫째 요점은 조상들의 하나님을 섭간다는 고백을 뜻하므로 내 생각에는 오히려 일반적인 면에서 말하는 유대교나(誌8) 거기서 파생된 기독교 신앙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로마시민이 었 다. 하지만 그는 유대민족의 혈통이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조상들에게서 배 워 익힌 종교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고백하고 있다. 비교 정속사는 바로 이 점을 설명해 주고 있다. 곧 그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다시 말해서 유대 인들이 전념하던 예배 형태를 지적하고 있다. 그가 일부러 조상들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혈통이 유대인이 아닌 로마 시민으로서 율법 의 가르침에 개종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 시에 그는 자기를 신랄하계 공박하는원수들을꾸 짖고 있는데 그것은 쌍방아 모두 유일신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 는 바로 그들과 마찬가지 로 우리 조상들이 전해준 관습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가 율법의 의식을 떠나 영적인 하나 님을 예배함으로 만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여기에 방해가 되 왜 냐하면 바울은· 자기 에 게 무고하계 (false! 코 수는 없었다. 낙인을 제거하 y)찍힌 불신앙의 는것으로충분하계 여기고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여 l 7 서 바울이 무슨구제 도 같은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L 실히 드러난다. 그들은, ‘우리는대대로 亡로마 가톨릭의 황당무계가 여 우리에게 전해전 습관에 과 함께 조상의 하나님을 예배한다’라고 떠들어 따라서 바울 낸다. 이거 ° 도 터어키족과 유대민족이 그리스도의 신앙에 대항해서 동일한 방패를 제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야키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실 사도에게는 조상들 의 권위에 신앙의 근거를 두거나, 이방인들의 모든 미신에 공통져인 그러한 방패로 자신의 신앙올 보존하려는의도가 추호도 없었다. 그는 다만그의 상 대편의 말문을 막고자 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유대교의 조상들은정 칙하고 전실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었으며 마라서 순수한유대인들만이 그들이 예배하는 조상들의 하나님이 천지의 유일한 조물주타는 점을 자랑할 수 있으며 나머지 모든 세상의 민족적인 신들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율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것을 다 믿으며," ;  이것은 앞 문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말하자면 그는 단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는 간단한 말로 그친 것이 아니타 ‘그와같 이, (ourwS'; S'o)라는 부사를 덧붙였으므로 여기서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섭 기고 있는가 하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유대인들 사회에 만연 하고 있던 고질적인 미신과 자신이 무관하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는 접 이 드러 난다. 우리 는 여 기 서 종교성 (piety)의 유일무이 한 기 초인 신앙에 의해서만 하나님은 올바르게 예배를 받으시며 그렇게 필 때만이 우리의 헌 신적인 행위는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겠다. 다시 말해서 바 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타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단순한 의식을 구 실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타 그가 믿고 있다는 접을 명백히 밝히고 있 다. 그 외에도 이 구1절에는 또 다론 유익한 교의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을 바르고 정통적인 신앙의 유일무이한 근거는 성경에 굴복하는 것이요. 거기 에 있는 가르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정이다. 뿐만 아니타 바움은 여기서 성경율 율법과 선지자로 구분함으로써 자신이 교회의 보편적인 견해와 동떨어진 것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타는 접을 입증해 보여 주고 있다.

 

"15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 여기서 우리는 이 말의 관 겨]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민 그는 자신이 성경을 믿고 있다는 점을 밝 히고 나서 여기서는 장차 부활 소망을 덧붙임으로싸 그의 신앙이 인간의 육 신적인 이해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명백히 보 여 주고 있다. 그러므는 그는 성경에 대한 존경심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 하계 하는 가운데 우리로 하여금 그 권위에 굴복하고 그것을 신잃벽 시작으 로 삼도록 하고 있다. 둘째, 여기에 하나닙께서 二속에서 계시하시는 내용 들에 대한 지식이 나오고 그 지식에 확실한 소망이 관련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데는 보다 더 건전한 동기가 들어 있다. 물론 그도 역시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핑계를 벗겨 버리고 벨 릭스 앞에 적나라하게 그들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 주려 하고 있는 것은 사 실이다‘ 이점을 우리는 그의 변명의 결론 부분에서 머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부활을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만 국한시키는 광신자들에 대항해서 일반적인 부활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이 이 귀 철에서 모두가 부활할 것이타는 점을 밝히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더러 는 생명의 부활로 더 러는 심판의 부활로"(요 5 : 29) 라는 말씀으로 구별 없 이 모두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다. 16절 이것을 인하여 나도 •. -~.힘쓰노라. 정직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도록 하는데 있어서 최후 부활에 대한 소망보다 더 예리한 자극제도 없다. 성경 은 여러 곳에서 이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신실 한 자들에게 효과적인 격려를 베풀고자 할 때마다 그들에게 이점을 지적해 보여 주고 있다(빌 3 : 20). 이렇게 볼 때 그는 이 신앙을 의지하떤서 하나 닙 앞에 순결하게 사는 것과 인간 사회에서 정칙을 실천하는 것을 위해 힘 쓰고 있다는 말을 할만도 하다. 그리고 나쁜 양십 역시 인간의 우매성을 확 증하는 수천 중인 노릇을 하는 셈이요. 그러기에 그들이 거기에 미치려고 ~ 력하지 않는다는 것온 그들이 영생의 진실성을 전지하게 믿지 않는다는 점 을 확실하게 결론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둘의 일생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려 고 몸부림치는 것을 가리켜 &따pO!COlC砂 (아프로코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양심'으로묘사하고있다. 그러나그는 ‘양심'의 두 가지 떤울 여기서 제시 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만관련된 복정한 내적이요정신적인 자각이 따 로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우리들이 인간사회에서 가꾸고닦는신실성과 정직성이 다음에 나오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과 인 간 사회에서의 장칙성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말로서 그는 최후 부활을 소망 하는 자들은 선을 베푸는데 있어사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항상’이라는 부사는 일관된 노정을 꿀까지 밟아가 는 인내를 암시하고 있다.

 

"17. 여러 해 만에·····•"  ; 그 의미는 그가 예루살렘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 었먼 것이 아니라 다른 먼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상당한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구호금을 전달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치기 위해 이재 풀 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또한 처 사람들의 비인도적이요배은망덕한처 사롤 백일하에 드러내는 셈이다. 왜냐하면 어느 모로 보나 온 민족적인 답례 를 받아야 할 그에게 그들은 부당한 보상으로 되갚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귀철은 예배에 대한 언급이 나온 앞 귀결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처음에 성전에서 예배드릴 뚜렷한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었을 것으 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렇게 하려는 계희은 그의 도착 뒤에야 구체화괴 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성전에서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말해서 결례 의식을 엄숙하계 마친 다음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과 아무런 소동을 일으키 지 않는 것 을 그들이 보았다는 말을 지 적 함으로써 그 는 다시 한번 이 두 협의를 그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 결예식이란 그가 성전율 모독하지 않았다는 중거요 그가 군중이 없이 조용 히 행동했다는 것은 거기에 소동의 소지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19-22절 (社9)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이 문장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이 자리에 없는 아시아인들이 이유없이 소란을 피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은 ‘나에게 술한 협의를 제기하는 너희들은 사건의 전 상을 확증할 수 없으떤서 너희들이 아무렇게나 믿어 버린 뜬 소문을 총독의 재판석에 제시하고 있구나'하는 식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불이 나도록 부채질한 자들은 자리에 없다. 바울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린 다음에, 마치 자신을 얻온사 람처럼, 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상대편에게 그들이 자기에 대한명확한정보 를 가지고 있으며 제시할 것을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q-r-(1.J.Jt'OS (스탄토스 ; 섰을 때에)를 현재 시제로(駐10) 보는 에라스므스와 벌계이트 역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uuveopcolJ (쉬네드리온)을 총독의 재판 정으로실명하는데 이것은바울의 의도와 다른 것 같다. 왜냐하면 내 견해로 는 그는 그들의 공회 (uvveptQ>)에서 모든 것을 실명할 각오를 하고 있었으 나 그 때 그들은 자기가 죽은 자들을 부활을 두고 심판을 받고 있다는 그의 말에 대해서 모두들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에 대해서 고소할 건더지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뜻으로이야기하고있기 때문이다. 다지 말해서 그가 이 모든 고통을 당한 것은 그에게 부활의 신앙이 있었기 때 문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그들은 아무런 근거없이 그에게 새로운 비난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만일에 그가 무슨 범최 라도 저질렀다면 그것에 대해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앉아 있을 그들이 아니 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후에 쌍방간에 다른 논쟁이 제기되었으면 마치 멘 주먹으로 싸우듯 더욱 더 열떤 논쟁을 벌였던 것 같다. 우리는 여 점을 그리 스도에 대해서 논쟁이 있었다는 다른 곳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許11). 그 러나 여기서 누가의 의도는 바울이 자신의 고소자들의 허위 증상을 말끔히 청산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22 벨릭스가 ..•.."  ;  펠릭스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도내리지 않았 지만 그는 바울이 자신의 죄 때문에 고소받고 있는 것이 아니타 제사장들의 악의 때문이타는 것을 감지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누가는 이 사건이 루시 아가 오기까지 연기되었다는 말을 기록하면서 그와 동시에 그 이유 대신에 총독이 이 도에 관한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을 삽입하고 있기 때 문이다. 내 생각에 이 말은 오랫동안의 체험을 통해서 그가 제사장들의 행 데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쌍방의 이야기를듣고보니 고소 내 웅이 얼마나 시시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인것 같다. 그리고 이정은 그가 바울에게 베푼 보다 분별력있고 관용적인 대우로 확증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그를 천부장에게 위임함으로써 그가 연행 중에서나마 머 큰 자유를 누리게 하고 있다. 다론 사람들은 이것을 벨릭스의 말로 연관시켜,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루시아가 오면그때 나는 판단을 내리 겠다'하는 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근거가 박약한 이유에서 억 지 해석을 짜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도'라는 말이 율법의 가르침으로 쓰이는 경우가 없는 것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율법이 아니라 어느 외국인이건 만히 알고 있던 당파(the sects)로 설명하고 싶다. 바리새 인들이 영혼의 불멸설을 주장했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 므로 이것은 건반적으로 알려져 있었으므로 벨릭스가 바울에게서 1 비난 을 면제하는 것도 견코 이상한 노릇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도'를 이미 일 어났던 것에 대한 지식으로 보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총독이 율법에 대 한 더 풍부한 지식을 루시아에게 둘리는 것이 어떻서 해서 온당한 것인지 그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바울의 결백성은 불신자가 그것을 미리 판단하고 친구들이 찾아와서, 마치 착고에 매인 최수가 아닌 것처럼, 그를돕는 것을 허용했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여가 서 바울의 동료들과 나머지 교회가 그롤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 다. 다시 말해서 친구들의 접근을 허용했다는 말은· 그들이 가까이에 있어서 관심을 보이며 그에게 친절한 행동을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무엇이겠는 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우리에게 기 회가 허용되고 있는 한. 그리스도의 순교자들이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어떠한 형태의 위로든 사취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정을 배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