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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사도행전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행 23:19)

1. 성경 (행23:12 ~ 35)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2)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3)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4)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5)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6)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7)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8)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19)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0)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1)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2)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3)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4)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5)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6)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7)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8)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29)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0)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1)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2)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3)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4)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35)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2  날이 새매…… " ;누가는 이런 상황을 통해, 대단히 크고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바울이 자기의 확신을 새롭게 하고 다시 되살리고 있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가 자기의 적이 갖고 있던 그와 같은 필사적인 광포에 의해 경고되었을 때, 그는 이제 자기는 끝장났다고 철처히 확신했을런치도 모른다. 누가가 언급하고 있는 이 맹세 (devotio)는 하나의 저주와 갈은 종류였다. 그 맹세의 이유는 그들이 자기들의 계희올 바꾼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고, 그들이 합의했던 것을 철회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 심한 저주는 맹세와 붙어 다닌다. 어떤 사람이 거짓 맹세를 하거나, 스스로 위증할때 그러하다. 그러나 때때로 보다 큰 의무에 그들 스스로를 놓기 위해서 사람들은 저주의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끔찍한 공포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두려운 일들을 스스로 전지하계 맹세한다. 이것과는 다론 문제로, 이 사건은 위선자들이 그와같이 피에 굶주린 열심을 갖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무엇이 합법적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칙 자기들의 정열이 자기들을 충동질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성급히 돌진해 들어간다.

바울이 죽어 마땅한 불경건한 무뢰한 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누가 사사로운 개인들에게 그를 벌하도록 허가 해 주었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어째서 그들이 바울을 그토록 미워했는가 하고 물었다면, 그들은 확실히, 그가 배교자였고 ‘종파분리자'였다고 손쉽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은 공허한 풍문에  거하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성급히 점령한 어리석은· 판단에 불과했다. 오늘날도 똑같온 맹목적인 일과 똑같은 어리석은 태도가 교황들로 하여금 우리를 파멸시키는 데 있어서 금지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위선은 자기들을 그렇게 어둡게 만들고 하나님과 인간의 법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처럼 만든다. 그들은 그들의 열심 때문에 반역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제는 여러가지 기만을 하게 되고, 또. 무서운 잔인성올 취하게되고, 마지막으로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고자 한다. 더구나 이 사건 속에서 우리는 불신자의 성급함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볼 수 있다. 바울의 생명이 정말 자기들의 손아귀에 달려있다는 듯이, 그들은· 그를 죽일 때까지는 아무런 음식도 먹지 않겠노라고 저주하며 맹세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주님이 "자신이 그 창조하신 사람의 생명과 죽음의 주관자이다"(신 32 : 39)라고 당신 자신께만 권한을 주고 있는데 , .그  미친 사람들은 그 권한을 스스로 탈취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이런 미친 행동에 두세 명의 동맹자가 아니라 사십 여명이 넘는 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그들이 이같이 군중으로 연합할 때, 얼마나 큰 성향을 갖고, 사람들이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는가롤 배워야만 한다. 더구나 사단은 그들을 그들 자신의 파멸로 이끌기 위해 머리 끝까지 맹렬히 충동질하고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駐9)을 위한다고 하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우리의 게으름은 얼마나 은혜스럽지 못한가? 사실 절제가 보존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 이외의 다른 것을 아 무것도 시도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급히 우리룔 부르실 때, 행동하지 아니 하려는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

 

"14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가서……" ; 이와같은 불의하고 불경건한 음모를 승인함으로써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께 대한 어떤 두려움도 갖지 않았고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들은 복병을 사용해서 그롤 죽이려는 그 제안을 승인했을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파멸시키기를 원한 그 사람을 살인자들의 손에 넘겨 주기 위해서 그들은 기만적인 행위를 담당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 사람을 재판관의 손에서 격렬한 죽음으로 질질 끌고 가면서 그들은 바로 그 정의의 법정에서 산적갈이 날뛰는 것 외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제사장들은 만일 자기들에게 적절하고 거룩한 태도의 흔적이 있었다면, 또는 인간적인 동정심이 조금만 있었어도, 확실히 그와 같은 불합리한 계획을, 아마 결코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온 백성들과 그들 모두에게 보다 큰 재난을 끼치지 못했던 것은 그러한 경건이나 자비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소망없는 불경건성, 곧 그들이 직책상의 구실 아래서 숨기고 있었던 그 불경건성을 공공연히 드러내 보이셨다. 그분온 그것을 다음과 같은 방법 으로 하셨다.

 

"16 바울의 생질이……" ;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치 측면공격과 같온 방법을 통해서 불신자들의 그 계획에 대항하심을 보게 된다. 사실 그분은 그들로 하여금 많은 계획을 짜게 하시고, 심지어 악한 사업들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꼭 알맞는 때에 결국 인간들이 지상의 것에 관해 분주해 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듈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서 웃고 계심을 보여주신다. 솔로몬은 "지혜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잠 21 : 30)고 말한다. 그것에 대해서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사 8 : 10)라는 이사야의 말씀이 잘 부합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키려고, 마치 거울처럼, 지금의 이야기속에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 바울이 회생 제단에 바쳐진 제물처럼, 그 다음날 살해되도록 되어 있음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생이 충실하계 지켜지고 보호되고 있음을 보여주신다. 따라서 그렇게 하려는 인간들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다. 우리 자신도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그때 보여주셨던 자신의 주권과 확증을 지금까지 연장하시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너희의 머리털 하나도-상치 아니 하리라……"(눅 21 : 18)라는 약속은 흔들리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이 우리의 신앙을 보다 훌륭하게 단련시키기 위해, 상상치 못한 방법들로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곤 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음모자들이 그 음모를 자기들만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을때, 그 잠복해 있었던 한 소년에게 발각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따라서 구원율 획득하는 정상적인 방법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불가능한 장소를 통해 어떤 길을 발견하실 수 있는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자.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 ;. 바울온 생명에 대한 애착은 확실히 없었다. 그러나 주께서 그가 그렇게 하도록 원하셨다면, 서둘러서 막 죽으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죽어도 그분 것이요, 살아도 그분 것이라는 태도로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자기에게 알려졌었던 그 위험을 무시하지 않았다. 사실 어쨌든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생명의 보호자이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손을 펼쳐 기적을 행사하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그 구제책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는 그것이 자기를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즉, 자기들의 소명이 요구하고 있는 한, 꺾이지 않는 인내로써,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성급한 만용으로  죽음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고난의 한 가운 데서 조용히 주님을 부르게 하자. 그들로 하여금 나타나는 도움을 경멸하지 않도록 하자.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분의 약속에 귀머거리가 됨으로써만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그들 앞에 놓여진 자유의 수단들을 거 부항으로씨 하나님을 욕되게 할 것이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 우리는 그 천부장이 그 청년에게 그처럼 공손하고 친절을 베푼 사실을 하나님의 은해에 돌려야 한다. 그는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그의 말울 기꺼이 그리고 참을성 있게 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인들의 눈들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에 호의를 베푸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출 3 : 21). 그분은 강철로 된 심장을 녹이시고, 맹렬한 분노의 영들을 달래시고 또 자신이 자신의 백성을 도우려고 사용하기로 작정하셨던 자들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려깊게 대하시는 데 익숙하시다. 왜냐하면 그 군인온 마치 자기가 바울 자신의 탄원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잘 모르는 그 청년을 밀어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의 권능 속에 두고 계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적인 사람(profanum hominem)의 마음을 움직여 그의 말을 듣게 하셨다. 그들이 바울에 대해 얼마나 맹렬하게 격노했는가를 그가 미리 알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이득이었다. 그가 그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그를 보다 더 기꺼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통치하는 권위의 위치에 있는 자들로 하여금, 동정심이 얼마나 큰 덕인가를 이 모범으로 부터 배우도독 하자. 만일 그가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었다면, 그는 사태를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바울을 죽이도록 유대인들에게 넘겨 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동치자들은, 단지 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자만심 때문에, 가끔 여려가지 치명적인 권리 침해를 하계 된다.

 

"23 백부장 둘을 불러 ...." ;. 여기서 실제로 하나님의 섭리는 보다 분명하계 보여진다. 천부장의 계획이 비록 공중의 소란을 제거하려는 것이긴 해도, 또 통치자 앞에서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해야 했으며, 그러나 그는 바울울 구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군사들이 모아져야 하고, 그 도시는 경계병 없이 방치되어야 하고 그 원정에는 얼마간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부장의 신중함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신앙심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고 하나님께서 비밀스러운 영감을 통해 세상적인 인간의 마음을 지시하심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역시 바울과 그 군사들의 여정을 위한 인도자이신 것이다. 바울이 가이사랴 (Caesarea)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하기 위 함이 다. ‘방 제 삼시’는 첫 경계가 끝날 때였다. 따라서 천부장이 두번째 경계시 에 군사들이 준비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에 해당된다. 누가는 창을 들고 있는 군사들을 창군(lanciarios)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둘은 보다 가볍게 무장을 한채, 좌우익 (左右翼)에 배치되곤 했다. 반면 레기온(행 21 : 31의 計:를 참조할 것)에 속하고 있는 군사들은 지키고 싸우 기 에 보다 적 절 했 다 (statariae militiae) .

 

"25 편지하니……" ; 우선 역사적 이야기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둘은 이 벨릭스(Felix)는펠라스(Pallas)의 형제였음을 간단히 알아 두어야 한다. 벨릭스는 가이사의 자유인이었기 때문에, 그 도시에서 부와 권력에 있어서 가장 높은 사람, 그리고 유력한 사람과 동동했다. 그렇다. 그리고 원로회는 부끄러운 자기들의 아침의 구실로, 집정관의 훈장율 그에게 주었다고 기목 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자유인이 굴라디오의 어리석음보다 그들이 좋을 대로 로마제국을 통치하는 데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록히 나르시수스 (Narcissus)와 펜타스가 그러했는데, 따라서 펠라스가 자기 동생을 유대 지 방에 임명한다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편지의 핵심은 대체로 이 목적을 갖고 있다. 곧 천부장이 자기가 이미 갖고 있었던 판단으로 미루 어 바울을 도와주기 위함이고, 그 반대파들의 부당한 행위에 관해 벨릭스에 게 미리 권고하기 위함(誌12)이고, 그들을 믿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그를 해 칠 수 있는 어떤 힘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한이다.

 

"27 이 사람이……잡혀…… " ;로마인이었던 이 사람이 크게 매맞고 유대 인들에 의해 거의 죽게 되었다고 그가 말할 때 그는 유대인들에게논 증오륭 바울에게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 둘째로 그는 바울이 보다 관대히 취급되도 록 자기의 권리로 로마 시민의 특권을 받게 해주고 있다. 더구나 그 추천은 탄원이나 아침에 의해 유도된 것이 아니었고, 또는 돈에 의해 획득된 것도 아니었다. 그 천부장이 모든 사람에게 미움율 당하는 자, 곧 신원도 잘 모 르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친전을 아무 기대없이 보여주었던 일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그를 자기 종 바울의 옹호자로 임명하셨던 것이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불신자들의 말과 손을 조정 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29 .. …·발견하였나이다 "  ;여기서 그는 그의 판단이 가능한 범위에서 바을 송사에서 풀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자는 덜 계몽된 (profanum) 사람임을 주목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는, 의곡되고 불경건한 교리들로 거룩한 가르침을 부패시키는 범최는, 어떤 해(害)나잘못을 가해서 정당하고 정의로운것을위반하는 것과 같은· 심각한 범죄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확실히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미신이나 자기들의 참신에 대한·사람이 만든 제사가 무시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으나 하나님의 율법이 자기들에게 아무런 뜻도 없었고, 더구나 자기들이 그것을 페지시키 키를 원했기 때문에, 모세와 선지자의 신앙을 제거시킨다는 것, 또는 거 짓 교리로 교회를 혼란시킨다는 것은 로마 사람들의 눈에는 범최 행위가 아니었다. 따라서 총독이 이 문제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합법적이었다. 그러나 지방민들은· 자기들 자신의 종교를 계속해서 가질 수 있었다. 만일 어떤 것이 그 종교에 거슬려 잘못을 범했다 해도, 로마 통치자들은 벌할 책 임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율법에 관하여 취조한 것을 그 천부장이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의 법조문처럼 잘못· 사용하면서, 무지한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나 다론 사람들이 분쟁을 일으킬 자유를 허락받았으면 하고 원한다. 주께서는 아주 다론 그 무엇을 갖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사람을 괴롭히는 것보다 더 엄격하계 그분에 대한 예배를 모독하는 일을 더 벌하시기 때문이다. 도둑들이 벌을 받고 있을 때, 신성모독자들이 벌을 받지 않고 벗어난다는 것 보다 더 불합리한 일은 확실히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그 천부장이 유 대인들의 종교에 아무런 홍미도 갖지 않온 것처럼, 그들이 즐겁게 바울에게 가했던 거짓 비난도 제거되고 있다.

 

"30.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  ; 그 펀지의 두번째 부분에서 천부장은 바울의 적들의 나쁜 평판을 물리쳐 버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병으로 그를 죽이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바울에 대해 싸움을 만든 것과 그의 생명에 대한 그와같은 커다란 적대갑을 보여준 것이 유대인들의 잡못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계 된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송사가 선한 것임을 믿고 있으면서, 그를 정당하게 대항해 나갔다 턴, 그들은 바울을 재판에 맡겼어야 했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인하고 자 하는 의지롤 갖고 있을 때, 그들의 주장이 성립될 수 없음이 분명한 일 이 다(注13).

 

"32 이튿날 ......"  ; 비록 누가가 군사들이 여행에서 되돌아 오도록 명령받 았다고 그 전에 언급하지는 않았다 해도, 천부장이 안전건하다고 물색해 둔 곳으로만 호송되었음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가 거의 한 밤중에 떠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친부장은 여행이 다소 성취되었율 때, 더 이상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공격할 가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시 그는 그 성 (城)의 경계병을 너무 멀리 보낸다는 것이 안건하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