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계10:1 ~ 11)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1)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그 오른 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2) 사자가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그가 외칠 때에 일곱 우레가 그 소리를 내어 말하더라 (3) 일곱 우레가 말을 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5)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6)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7)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가지라 하기로 (8)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9)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0)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1)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1. 힘센 다른 천사" ; .- 이 "천사"는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하나,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이것을 고급 천사(高級天使)라 하였다(In elk geval is het een zeer hooge engel, zoo als uit geheel zijne verschijning, en uit zijn doen blijkt.-Openbaring, p. 214).
"구름을 입고" ; .- "구름"은 주님과 상관되어 있는데(시 104:3; 단 7:13; 계 1:7, 14:14), 천적(天敵) 장엄(莊嚴)과 화려(華麗)를 상징한다. 이 "천사"는 중대한 사역을 가지고 오니 만큼, 이런 천적 장엄 가운데 나타난다.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 .- 여기 "무지개"란 말은 과사(* )를 가졌음으로 이 말을 정역하면, "그 무지개"이다. 왜 "그 무지개"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4:3의 보좌에 둘린 그것과 다른 일반 자연계의 무지개 곧,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 무지개라는 말이다(Greijdanus). 4:3의 "무지개"란 말은 관사 없이 씌었으니, 그것은 이상한 혹종의 무지개라는 의미를 가지어 하나님과만 관련되어 있다. 이 천사에게 나타난 무지개는, 그의 광채가 그의 구름에 반영되어 형성되었다. 이것도 그 천사가 대리한 하나님의 구원 계약의 신실성을 상징한다. 4:3 해석 참조.
"그 얼굴은 해 같고" ; .- 마 13:43 참조. 천계(天界)의 실존들은 의롭고 성결하여 이렇게 빛나는 얼굴을 가진다.
"그 발은 불 기둥 같으며" ; .- 출 14:19, 24참조. 이것은 그의 대현(代現)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우용을 상징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 귀절은 천사의 위대와 영광을 가리키는 동시에 그의 지위와 사명의 위대성을 상징한다"고 하였다(Alles spreekt in dit vers van des engels grootheid en schitering, en wijst daarmede tevens op de grootheid en beteekenis van zijne positie, en van zijn werk).
<호크마주석>
["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 - 본절은 여섯째 나팔 재앙과 일곱째 나팔 재앙 사이의 환상이다. '힘센 다른 천사'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Clarke, Hendriksen, Vincent, Welhausen, Scott, Kraft). 왜냐하면 이 천사가 가진 구름, 무지개, 해, 불기둥 등의 위엄과 영광이 1:15, 16과 11:12에서 표현된 예수의 형상과 비슷하고, 성경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구름으로 옷입으신 분'(시 104:3) 혹은 '머리에 무지개가 있으신 분'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4:3).
(2) 혹자는 '가브리엘'일 것이라고 주장한다(Charles). 그것은 '힘센'(* , 이스퀴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가바르'(* , '강력한')를 단 8:16에 나오는 가브리엘 (* )과 연결시킨 추측이다.
(3) 혹자는 지금까지 요한이 언급한 천사와는 다른, 단지 새로이 등장하는 천사라고 주장한다(Lenski, Ford, Mounce, Morris, Ladd).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첫번째 주장의 경우 본절의 천사는 신적인 지위를 부여받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며 그리스도도 본장에서 결코 천사로 불린적이 없기에 받아들이기 힘들며
또한 두번째 주장의 경우 '가바르'가 가브리엘에게 사용되었다고 해서 본절의 힘센 천사와 연결되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인정하기 어렵다.
한편 '구름, 무지개, 해, 불기둥'과 같은 표현은 힘센 천사의 천상적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며 약속된 재앙이 실현될 것을 나타낸다(Ladd). 이와 같은 천사의 모습은 자신이 전할 메시지. 즉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을 반드시 성취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상기시키고 확신시키기에 합당하다(10:7, Farrer, Mounce).]
"2. 펴 놓인 작은 책" ; .- 혹설에, 이것은 다른 책이 아니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던 심판 책(5:1)을 다시 환상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작은 책"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앞으로 11장 이하의 예언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 천사가 이 책을 환상으로 가지고 사도에게 임한 이유는, 그로 하여금 그것을 예언해야 될 사명을 인식케 하려는 까닭이다(11절 참조).
" "바다"와 "땅"" ;- 은, 땅 위세계의 전부를 가리키는 표현이다(출 20:4, 11; 시 69:35, 98:4, 7). 그 천사의 전하는 말(혹은 사도 요한이 받아서 전달할 11장 이하의 예언)이 이렇게 전 세계에 관계를 가진다.
"3 ~4절 . 사자의 부르짖는 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 여기 "부르짖는"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뮤카타이(* )라고 하는데 사자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보통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벧전 5:8). 스웨테(H.B. Swete)는 말하되, "이 말 뜻은 그 음성의 양이 심히 클 뿐 아니라, 그 어조(語調)가 매우 간절하여 듣는 자들의 주의와 경외를 일으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 .- 이것은 헬라 원어의 뜻을 완전히 나타내지 못한번역이다. 헬라 원어로 엘랄레산 하이 헵타이 브론 타이타스 헤아우톤 포-나스( )인데 이것을 바로 번역하면, "일곱 우뢰들이 각기 제 소리들로 말하더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이 일곱 우뢰가 각기 특색 있는 음조로 말하였다는 것이다. 시29편에"여호와의 소리"란 말이 일곱번 사용되었는데, 계시록의 이 엇구는 그것과 관련된 듯하다. 그런데 이 우뢰소리처럼 들리는 하나님의 계시의 실례는, 요 12:28, 29에도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적 우뢰소리가 아니고 초자연적 우뢰소리인데, 곧, 심판성을 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내용으로 가진 것이다(8:5). 그런데 이 일곱 우뢰의 내용은요한 자신만 이해하고, 기록하지는 않았으니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생각할 것은, 기록되지 못한 일곱 우뢰 계시가 사도 요한에게 무슨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될 듯하다.
그는 남들이 알지 못하게 홀로 그 일곱 우뢰계시를 알고 있었으니, 그의 가슴은 확신으로 뛰고 영열(靈熱)로 뜨거웠을 것이다. 모든 복음 전도자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식지 않는, 내적 보류(內的保留)의 영은(靈恩)을 가져야 한다. 고후 12:4 참조.
[<일곱 우뢰에 대한 호크마 주석>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 - 그 외침은 일곱 우뢰가 응답할 만큼 강한 촉구의 음성이었다. '일곱 우뢰'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이 혀타 브론타이'(* )는 정관사 '하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일반적 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을 말하려 한 것이라 추측되나(Mounce, Ladd)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시 29:3-9의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 본문은 하나님의 계시 활동과 연관되어 여호와 의 신비스런 사역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진 묘사인 듯하다.]
"5~6절. 천사가...세세토록 살아 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 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 .- "천사"는 가까워진 대심판(大審判)을 예고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지적한다. 이런 대주재께서는, 대심판을 하실 수 있고 하시지 않을 리도 없는데, 과연 이제 멀지 않아 하시기 시작하신다는 것이 이 부분의 사상이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되, "그 천사가 저렇게 하나님의 만물 창조의 업적을 지적한 이유는, 그의 대심판이 그 지으신 만물에 미치지 않음이 없을 것을 암시하려는 까닭이다"라고 했다(Evenwel moet ook deze breede omschrijving dienen om aan te geven, dat de geheel wereld, in volle uitgestrektheid, en vaar vollen inhoud betrokken is bij hetgeen nu gezegd zal worden en dat nu de alles aangrijpende en alles veranderende, catastrophe intreden zal.-Openbaring, p. 218).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 .- 이것은 헬라 원어로 크로노스 우케티 에스타이(* )라고 한다. 그 문자적 번역은 우리 한역(韓驛)의 각주(脚註)와 같이,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이다. 이 문구의 의미는, 성도의 피를 신원(伸寃)해 주실 종말적 심판이 박도(迫到)하게 되었다는 것이니, 6:11의 말씀과 관련되어 있다. 로마여(Lohmeyer)는 이 문구를 단 12:7에 대조시켜 말하기를, "거기(단 12:7)에서 적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하여 말한 것 같이, 여기서는 일곱째 나팔을 볼 때에 그 나라가 임할 시간에 대하여 관설한다"(意譯)고 하였다(* Wird Wohl durch die betonte Beziehung auf Dan, 12:7 sicher Gestellt; Wie es sich dort um das Reich des Antichrist handelt, so wird auch hier gesagt dass die stunde dieses Reiches mit der 7 Posaune beginnt.-Offenbarung, p. 85). 적그리스도 나라의 출현은, 천국의 완성적 실현의 전주곡(前奏曲)이니 만큼, 성도의 피의 신원(구원 완성)이 이르려면, 먼저 적그리스도 나라가 이른다고 할만하다.
"7. 하나님의 비밀이...이루리라" ; .- 여기 "하나님의 비밀"(* )이란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리킨다. 복음을 왜 "비밀"이라고 하는가? 복음은 성령을 받지 않은 자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믿지 못하기 때문에 비밀이라는 명칭을 가진다. 그 뿐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 심판 때에 완전히 실현되기 전에는 누구에게나 아직 비밀과 같다.
"8 ~ 10절 . 입에는 꿀 같이 다나...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 .- 겔 2:8, 3:1-3; 렘 15:16 참조.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 작은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고로, 그것을 받은 예언자는, 거기 포함된 복음의 기쁜 맛을 누린다(Greijdanus). 그것이 달고 기쁜 체험이다. 그런데 그것이 배에서 쓰다 함은 무슨 의미인가?
(1) 예언자가 그것을 섭취한 후 그대로 예언하려면 여러가지 곤난이 있다는 뜻이라 하고,
(2) 그 예언의 내용에는 적그리스도의 재앙도(13장) 포함되었으므로 성도들의 수난(受難)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근심이 커서 고통거리가 되었다는 말이라고 한다.
"11.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 "예언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일은 성령님의 만전적 영감(萬全的靈感)을 받지 않고는 못할 일이다.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일은 성질상 하나님의 완전성으로 역사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다. 다시 예언하여야 된다는 말은, 앞으로 일곱째 나팔 불 때 나타날 일들(7절) 곧, 11:15부터 계시될 새 예언을 말해야 된다는 의미이다(Charles).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이 새 예언이, 11:1 이하의 모든 말씀을 전해야 알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예언의 사명을 받은 자는, 그것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있다. 그는 하나님의 포로(捕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