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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사사기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사사기20:6)

1. 성경 (사사기20:1 ~ 16)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1)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 명이었으며 (2)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 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말하라 하니 (3)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내 첩과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4)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내가 묵고 있던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그를 죽게 한지라 (5) 내가 내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냈나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하니라  (7)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이르되 우리가 한 사람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말며 한 사람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말고 (8) 우리가 이제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를 뽑아서 그들을 치되 (9)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10)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1)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2)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3)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4)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15)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16)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삿 20:1,2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는 이스라엘 온 땅의 남쪽 끔에서부터 북쪽 끝까지를 가리키고, 

 "길르앗 땅"- 은 요단강 동편, 곧 두 지파반(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영토를 대표한다.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 이 것은 그 때에 "미스바"에 성막이  있었음을 가리키지 않고 그저 그들이 그곳에서 여호와의 인도를 받기 위하여  모였다는  뜻이다. "미스바"는  베냐민  지파  영토의  서쪽  변경(邊境)에  있는데  현재의  네비  삼윌(Nebi-samwil)이란 지방이다.    이 때는 레위인의 한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 전국에서 대표자들과 군사들이 모인 원인은, 그 때 이스라엘에 통치 기관(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실정  아래서는 민중의 움직임이 이성(理性) 잃은 폭도들처럼 되기 쉽다. 그러나 이 때에    이스라엘 대중은 뜨거운 정의감(正義感)으로 모였으니 만큼 일치 단결하여 한 사람처럼  움직였던 것은 사실이다(11절)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 이것은 그 때에 군인 될 만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미스바 총회에 참석했다는 말이다.


  삿 20:3-9

  미스바에 모여있던 회중은 풍문(風聞)을 따라가기 원치 않고 확실한 증언을 듣고자 하였으니, 그것은 법의 질서대로 취한 행동이다. 사건의 당사자인 레위인이 자기의 당한 일을 그 모인 회중에게 말하기는 하였으나 그 가장 악한 부분(곧, 그 비류들이  그에게 남색하기를 강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대중은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비류들을 징계하기로 결의하였다.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 (9절) 이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10분의  1을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군량(軍糧)을 운반해 오도록 한것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하도록 하였다.


  삿 20:12-15

 이스라엘 지파들이 이 때에 먼저 할 일은, 베냐민 지파에게 공포(公布)하여 기브아의 비류들을 넘겨 달라고 한 것이다. 이일도 그들이 바로 한 것이다. 그것은 전면  전쟁을 피하고 흉악한 범죄에 관련된 자들만 처벌하려는 것이다. 그 때에 베냐민 지파가 협력하였더라면 전쟁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일에  협력하지 않고 도리어 전쟁으로 맞서려고 군대를 동원시켰다. 그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결국 비류들이 저지른 흉악한 죄(19:22-26)를 옹호함이요, 베냐민 지파 전체가 그  비류들과 같은 자들임을 드러낸 것이다.

 

3. 20장 이후의 대강 (호크마주석에서 발췌)

앞서 레위인의 전갈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19:29, 30)이 미스바에서 총회로 모이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레위인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보고 받은 그들은 기브아를 칠 것을 결의한다(1-11절). 이 회의에선 세부적인 지침이 함께 가결되었는데 다음 네 가지이다.


(1) 기브아의 비류들을 징계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8절),

(2) 전체 백성 중 10분의 1을 군사로 모집하여 그들에게 군량미를 공급토록 할 것(10절),

(3) 딸을 베냐민 자손의 아내로 주지 아니할 것(21:1),

(4) 하나님의 총회에 나오지 아니한 지파를 멸할 것(21:5) 등이다.

 

그리고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의 성읍을 공격하기전, 베냐민 지파에게 비류들을 넘겨달라는 최후 통첩을 보내나 베냐민지파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군사를 일으키니 내전(內戰)은 불가피 해진다(12-16절). 자세히 묻고 기브아 성읍을 치기로 결의하는 장면이 나온다(1-11절). 그리고 공격을 하기 전에 비류들을 넘겨 달라고 최후 통첩을 보내었으나 베냐민 지파가 이를 거절하고 도리어 군사들을 모아 이스라엘 연맹군에게 먼저 전쟁을 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12-16절) 그리고 다음으로 두번째 부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슷적인 엄청난 우세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에게 연일 연패하는 장면이 가록되어 있다(17-25절). 본서 기자는 이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패배 원인이 무엇인가를 암시해 줌으로써 전체의 주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에서는 연일 연패하던 이스라엘 연맹군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화목제를 드림으로(26-28절) 베냐민 지파에게 크게 승리하는 장면이 다루어져 있다(29-48절). 이때 림몬 바위에 숨은 600명 이외에는 모든 베냐민 사람들이 죽임당하였는바 자칫 잘못하면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지도 모를 심각한 위기가 발생한다(21장).

 

아무튼 이러한 본장은 당시의 혼란스런 이스라엘 시대 상을 반증해 주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아직까지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고 지파간의 유대가 분명한 사사시대 초기에 이미 이스라엘에는 심각한 도덕적 붕괴 조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반증하는 대표적인 예로 대제사장 비느하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는 이미 모세 시대부터 활동했던 사람으로서(출 6:25) 숱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으나 본장을 보면 한낱 허수아비 제사장에 불과했었음을 알 수 있다(27, 28절). 즉 본서 2:7에는 "백성이...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대제사장 비느하스 시대에 이미 이스라엘 중에 망령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로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큰 일(2:7)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었으나 그의 무책임함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의 행악에 대해 범민족적인 분노를 나타내었으나(10, 11절) 그들 모두가 그 같은 죄악에 대하여 공동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미스비야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의 총회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살펴보면 한번도 기브아의 범죄를 우리의 범죄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베냐민) 범죄로 다루고 있다(6, 9, 10, 12).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이 재판관이나 된 양 베냐민 지파를 향하여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쩜이뇨...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12, 13절)고 거만하게 선포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전민족적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고 함부로 형제를 정죄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행악이 전민족적인 문제로 부각되었을 때 함부로 남을 정죄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기 보다는 그것을 통한 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1. 미스바 총회의 결의(20:1-16)
 앞서 레위인의 전갈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20:29, 30)이 미스바에서 총회로 모이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레위인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보고받은 그들은 기브아를 칠 것을 결의한다(1-11절). 이 회의에선 세부적인 지침이 함께 가결되었는데 다음 네 가지이다.
(1) 기브아의 비류들을 징계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8절),

(2) 전체 백성 중 10분의 1을 군사로 모집하여 그들에게 군량미를 공급하도록 할 것(10절),

(3)딸을 베냐민 자손의 아내로 아니할 것(21:1),

(4) 하나님의 총회에 나오지 아니한 지파를 멸할 것(21:5)든이다. 그리고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아 성읍을 공격하기 전, 베냐민 지파에게 비류들을 넘겨달라는 최후 통첩을 보내나 베냐민 지파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군사를 일으키니 내전(內戰)은 불가피해진다(12-16절).


 한편 이상과 같은 사항들을 살펴볼 때 이스라엘 연맹군은 처음부터 베냐민 지파를 완전히 멸할 생각은 생각은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는 21:3에서 그들이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라고 탄식한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형제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타인의 죄에 대해 지나치게 분노하고 스스로 심판관인 양 기브아 사람을 함부로 정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 지파를 거의 전멸시키는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이제 이와 관련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실수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총회는 단지 레위인 한 사람의 증언만을 듣고 한 지파를 징계하기로 결정하는 중차대한 실수를 범했다. 즉 그들은 레위인의 보고를 신중히 사실(査實)해 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베냐민 지파에 대해 문제 해결의 여지나 회개의 요유조차 주지 않은 채 기브아 성읍을 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성경에서는 어떤 죄를 심판함에 있어서 반드시 두 세 사람의 증인을 요구하고 있다(마 18:16), 그리고 성경에서는 우선적으로 징계하기 이전에 조용히 권고하여 회개토록 힘써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요일 5:16, 17).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 총회는 한 지파의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은 총회에 베냐민 지파가 고의적으로 이스라엘 총회에 참석하기를 거부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이 베냐민 지파에 사전(事前) 통고없이 40만의 군대를 미스바에 집결시키므로서 베냐민 지파를 분개케 했고(1-3절) 이로써 베냐민 지파로 하여금 회개하기 보다는 대적하여 싸우도록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브아 성읍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베냐민 지파 자체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했다.


 한편 이스라엘 연맹군이 일방적으로 베냐민 지파를 응징하려 한 것(1-11절)이나 베냐민 자체내의 악한 세력들을 비호하려고 한 것(12-16절)은 당시 지파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으므로 반영해 준다. 이는 동일한 조상에게서 비롯된 혈연 공동체일 뿐 아니라 한 분 하나님 안에서 결속된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이 견지해야 할 자세가 아님은 두말 할 나위없다. 바로 여기에 전민족이 회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둘 다 미처 이를 깨닫지 못하였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2. 이스라엘 연맹군의 패배(20:17-28)
 드디어 싸움에 나선 이스라엘 연맹군이 숫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베냐민 지파에게 연일 연패하는 장면이다(17-25절). 그리하여 온 백성이 가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제단을 쌓는 장면이다(26-28절). 이처럼 베냐민의 26,700(15절) 보다 무려 15베에 달하는 엄청난 숫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연맹군이 패한 원인으로서는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이스라엘 연맹군이 베냐민 지파를 형제로 여기지 않고 마치 이방인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1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하고 여호와께 물었을 때 그들은 마치 1:1에서 가나안을 정복할 때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형제의 죄에 대해 아파하며 함께 통분히 여기는 그라스도인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 기브아 사람들을 징벌하심으로 그들을 회개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연맹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결코 이방인처럼 영원히 심판치 않으시며 다만 징계하심으로 당신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의 죄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으로 권면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2) 이스라엘 연맹군이 전쟁에 임하기 전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제단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기브아 비류들이 극악한 죄를 범한 것(19:22-26)에 대하여 연대 의식과 공동 책임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저들을 그 같은 죄와 전혀 상관 없는양 자신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에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연전 연패(蓮戰蓮敗)를 통한 경고를 주셨다.


 (3) 베냐민 지파의 막강한 전투력도 이스라엘 연맹군의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즉 베냐민 사람들은 언청난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곧 멸망이라는 위기 의식 속에서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용맹함이 뛰어났기에(16절) 초반에는 계속해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상과 같이 연패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 회개하고 '모든 해결책이 오직 여호와께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승리의 응답을 받는다(26-28절). 이와 같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겸허한 마음을 지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와 위로가 주어지는 법이다(시 107:9 ; 약 2:5).
 
   3. 연맹군의 승리와 그 결과(20:29-48)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승리의 확신을 얻은 이스라엘 연맹군(26-28절)이 마침내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고 승리하는 장면이다. 이전에 보여 주던 양상과는 달리 이스라엘 연맹군은 숫적인 우세에 자만하지 않고 신중하게 베냐민과 접견했으며 마치 여호수아의 아이 성 함락 때와 유사한 전술(수 8:3-28)을 폄으로써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29-45절). 그 결과 베냐민 사람 2만 5촌 명이 죽임을 당했으며 베냐민의 온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백성들이 불타고 칼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베냐민 사람 중에는 단지 6백명만이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숨어 살아났다(46-48절).


 이런 엄청난 전쟁 피해는 기브아의 죄악을 징벌하겠다던 촤초의 의도와는 너무나 벗어난 것이었다. 비록 하나님께서 기브아의 사람들을 징벌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연맹군에게 승리를 허락하시긴 했지만(28절) 이스라엘 연맹군은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한 결과 자기 동족을 진멸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또한 베냐민 지파도 자체내의 악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지파적 자존심과 배타심에 젖어 과도한 전쟁을 벌인 결과 이렇게 비참한 참상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는 사도 바울의 언설은 참으로 절실한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연맹군이 싸움의 참 대상을 바로 파악했더라면 이러한 참상은 없었을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는 베냐민 지파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상의 결과 이스라엘 열 두지파 중에 하나인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가 도래하였으니 이는 곧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의 붕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이스라엘 연맹군은 크게 후회하며 시급한 해결책을 꾀하였는데 이는 곧 다음 장의 내용을 이룬다. 결국 이러한 본문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그 어떠한 개인이나 인간 집단도 죄 문제의 해결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인간의 죄를 판단하시고 징계하실 분은 여호와이시니 우리에게 있어선 다음과 같은 자세가 요구될 뿐이다. 첫째,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조금도 용납치 아니하는 경계의 자세이다(엡 4:25-27). 둘째,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이를 정죄하기에 앞서 권면하고 용서하는 사랑의 자세이다(살전 5:14).

 

 화해의 원리 - 본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총회로 모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들은 단순히 기브아 비류들의 죄악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회의를 연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어야만 했다. 즉 미스바 총회는 기브아의 죄를 성토(聲討)하는 데 골몰하지 않고 회개와 화목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전심 전력해야 했다. 이것이 본장 전체 배경에 깔려 있는 핵심으로써 화해인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사사기는 시작부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2:1). 그러나 우리가 주지하다시피 사사기서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으며 계속해서 불화(不和)를 조장시켜 왔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본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이스라엘을 깨우치사 저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게 함으로써 다시금 양자간에 화해의 장(場)을 마련하고 계신다(26절).


 이처럼 인간의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강권적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즉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이 진노와 심판의 자리에서 도저히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해의 제물로 삼으시사 인간을 당신과 화목케 하셨다는 것이다(롬 5:8-10 ; 고후 5:9 ; 골 1:20-22).

 

사실 이스라엘의 범죄 - 하나님의 징계 - 이스라엘의 회개 -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거듭된 악순환의 역사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이 끝내 멸망당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에게 화해의 장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 문제가 해결되고 그리하여 다시금 화해의 관계가 회복될 때에는 나머지 인간과 인간, 공동체와 개인 간의 모든 불화도 자연히 해결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화해한 새로운 자는 이제 새로운 피조물이며(고후 5:17)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는 역꾼이니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롬 8:28). 따라서 혹 우리 가운데 문제가 발생하거든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없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대개 십중 팔구는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없을 터이니 그러한 때엔 시급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