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요17:6~13)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6)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7)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8)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9)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0)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1)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2)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3)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본)
”6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아버지께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하고 있는데 곧 그들을 위해 죽음을 당하실 바로 그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구하고 있다. 그의 간구의 첫번째 내용은 그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불러 들이는데 있어서 성실성과 근면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수고가 열매를 맺고 효과를 발휘한 것은 오직 선택자들 가운데서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낸 그의 전도는 모두에게 공통적이었으며 그는 완고한 자들 가운데서 마저 그의 영광을 계속 주장하셨다. 그렇다면 그가 그것을 오직 소수에게만 나타내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오직 선택자들만 성령의 내면적 가르침을 통해 혜택을 입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참 의미에서 효과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에 조명을 받은 자들만 그렇다는 점을 알아야겠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원인을 하나님의 선택으로 말씀하시고 있다. 곧 저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고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제시하는 이유로서 그는 그들이 그에게 허용되었다는 차이점만을 들고 있다. 여기서 신앙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정에서 발원하며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은 아닌 만큼 그것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선택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속한다는 점을 밝히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유기자들을 신앙이나 무슨 공로가 아니라 순수한 은혜로 구별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수에 들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확실성 여부를 알아 보고자 할 경우 우리가 준을 돌려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다. 곧 하나님의 예정 그 자체로서는 감추어져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 이것은 셋째 단계이다. 첫째는 자유로운 선택, 둘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은사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받아 주셔야 믿음을 통해서 우리 안으로 들여 보냄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유기자들에게서는 빠져 나가지만 선택자들에게는 뿌리를 박기 마련이므로 그들은 이것을 지키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7 지금 저희는~~~~~알았나이다” ;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되 우리의 신앙이 그의 육신의 모습을 보는 단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령한 능력을 파악하는 단계까지 들어가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의 뜻은 신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이 천상적이요 신령한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을 붙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줄곧 흔들릴 수 밖에 없다.
”8 저희들은 이것을 받고~~~~~~” ; 그들이 그가 가르친 교의를 받아 들였다는 말씀으로써 그는 이 지식의 형태를 표현하시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교의를 인간적이라거나 지상적인 기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치 못하게 하는 뜻에서 하나님이 이것의 창시자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이것ㅇ이 바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라는 말씀의 뜻이다.
“참으로 아오며~~~~~~” ; 이것은 앞에서 나온 내용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셨으며 그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말은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바로 앞절의 내용과 같다. 요약하지면 신아ㅏㅇ은 직접 그리스도르ㅡㄹ 바라 보되 그에 대해서 지상적인 것이나 모욕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의 신령한 능력에 휩쓸린 나머지 자신 안에 완전히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앞에서는 ‘알다’라는 말이 나왔지만 여기서는 ‘믿다’라는 말이 나오는 점에 대해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여기서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모두 아버지의 뜻과 일치한다는 점을 기도를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잇다. 곧 그는 아버지께서 기꺼이 사랑하는 자들 만을 아버지의 것으로 추천하고 있다. 그가 세ㅔㅔ상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버지의 손에서 받은 자신의 양무리에 대해서만 간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도 바로 뒤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하는 기도를 통해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기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안내자와 교사로 삼아야 할텐데 이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나는 여기에 대해 우리가 모두를 위해 하는 기도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자들에게 국한된다고 대답한다. 우리는 선택자들과 유기자들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아니 온갖 사람이 구원 받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온 인류를 기도 속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원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그의 원수들을 멸하실 것을 기도하ㅏ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차이점은 이것이다. 곧 우리는 우리가 알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고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자들 모두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버림받은 자들로 아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기도를 우리가 본받을 수 없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신앙과 사랑의 견지에서 기도하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성소에 들어 가셔서 그의 눈 앞에 아버지의 은밀한 심판은 우리가 신앙을 통해 지상에서 살고 있는 한 우리에게서 감추어져 있다.
“10 내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 상반절은 아버지께서 틀립없이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그의 내용은 “나는 당신께서 당신의 사람으로 인전하신 사람 외에는 누구도 당신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는 당신에게서 구별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거절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하반절에서는 선택자들이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또한 자신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을 보살필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 그는 그가 제자들을 위해서 그처럼 열심히 기도하는 또 다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안주했던 그의 육체적 임재를 곧 박탈당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 가운데서 살고 계셨을 때는 암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그들을 자신의 날개 아래 소중히 들이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떠나시기 직전이었으므로 아버지께서 그의 보호로 이들을 감싸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제자들에게 그들의 공포에 대한 대비책으로써 그가 그들을 부탁드리는 하나님 자신을 의지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을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육체적으로 그의 백성을 떠나시면서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 더욱 더 관심을 기울이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아닐 수 없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 전체 기도의 목적은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의 육체적 부재 때문에 그들의 상태가 더 약화되는 것이 아닌 만큼 낙심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분간 그들의 수호자가 되도록 하는 뜻에서 보냄을 받으셨는데 그는 이 사명을 다 수행하셨으므로 이제 그들을 아버지의 손에 돌려드려 이후로는 그들이 그의 관리와 능력 밑에서 보존 되도록 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육체적 임재를 박탈당했을 때 그것이 그들에게 전혀 손해가 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수호하기로 받아 들이셧으며 그의 이 수호의 능력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유일한 종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의미는 그들이 지금 멸망한다는 것은 잇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요 그의 떠나심에 의해 하나니므이 능력이 불식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 ; 그는 마치 “당신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을 나는 성실하게 시행했으며 내 손에 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멸망하지 않도록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께서는 나에게 위임하셨던 것을 받고 계시니 그것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것은 이제 당신 소관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이다” ; 곧 유다가 넘어진 것은 성경을 성취하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유다에게 이 필연성니 미리 예언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넘어짐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전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어떤 사건이 예언 속에 들어 있다 해서 그 잘못의 책임을 그 예언에 돌릴 수 없다는 말이다. 예언자들은 사실 그들이 언급되지 않았어도 일어나고야 말 사건을 두고 경고해 왔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원인은 그 사건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유다의 파멸의 원인을 성경에 돌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13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제자들에 대해서 그처럼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기도한 것은 그들의 장래 상태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의적인 도움에 의존한 ㄴ경향이 짙다. 따라서 이러한 도움이 굴러 올 경우에는 정신없이 거기에 덤벼들며 그것을 죽어도 놓지 않으려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에게 말이 필요햇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의심을 제거하려는 뜻에서 그렇게 하셨을 뿐이다. “내가 세상에서 말합니다”하는 말씀은 그들이 듣는데서 그들의 마음이 평온하게 되도록 하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요컨데 그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손에 놓여지게 되었으므로 이미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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