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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요8:37)

1. 성경 (요8:31~38)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1)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2)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4)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5)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6)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7)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8)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본임)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 만약 어느 누구든 끝까지 전진하지 않는다면 그가 시작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그리스도는 여기서 그들에게 경고하신다. 이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의 가르침을 맛본 자들에게 믿음 안에 거해 있을 것을 경고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굳게 뿌리박고 그 안에 계속 거하는 자들은 참으로 그의 제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뜻하는 바는 참다운 제자가 아니며 또 그렇게 취급받을 자격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자라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음을 거짓 고백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만두거나 최소한 중도에 그만두는데 반해서 참 신자들은 결승점까지 견디어 나간다. 주님은 이것으로서 참 제자와 위선자를 구별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의 제자로 여기시게 하려면 우리는 끝까지 견디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얻은 자들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우리 중에 어느 누가 복음서 연구에 얼마만큼의 진보를 이룩했다 할지라도 그가 알 것은 그에게 새로운 부가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인내에 대해서 수여하시는 상급은 그들을 주님 자신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단순히 전자에게 또 하난의 선물을 더해 주신다. 그리하여 아무도 상급으로 그 무엇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신 분은 복음의 광채를 흐리게 하는 무지의 구름을 매일같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내어 쫓아 주시는 분이시다. 진리가 우리에게 완전히 계시도록 우리는 진실하고 진지하게 진리를 힘써 구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에게 시종일관하여 가르치신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처음에 주님은 말하자면 조그만 섬광으로 그들을 비추시지만 마지막에는 완전한 빛을 쏟아 주신다. 이와 같이 신자들은 완전히 확증을 받을 때까지 어느 면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면에서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의 지식은 이처럼 작고 희미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 효력이 없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이 자유는 우리를 사단의 죄와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면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의 노예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다음에 우리는 해방받는 방법을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본성의 지배를 받는 한 죄의 노예가 되어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우리를 중생케 할 때 우리를 자유하게 해 주신다. 이리하여 우리는 사단의 올무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의를 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 믿음으로부터 임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자유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미 해방은 받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 여전히 탄식하며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이들은 거룩한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여김을 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게 한 양자 됨과 언약의 유익은 무엇이었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에게 생소한 자유를 축복으로 제시했을 때 모독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여러 군주들에 의해서 그렇게 자주 압박을 당하고 또 그 당시에도 로마 제국에 예속되어 호된 노예의 고역으로 탄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노예 된 사실을 부인했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자랑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던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변명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 적국의 부당한 지배가 그들이 누리는 정당한 권리로써의 계속 자유를 방해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다. 즉 첫째로 양자의 권리가 오직 중보자에게만 기초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자유함은 어째서인가? 온 인류에게 공통된 속박이 구속자의 특유한 은혜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면제된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보다 쉽게 용납할 만한 또 하나의 오류가 있었다. 그것은 완전히 타락했으면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간주되기를 원했다는 것과 아브라함의 정당한 자손이 되는 것이 오직 성령의 중생케 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생각지 않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특수한 은사들을 육적인 기원에 돌리는 것과 또 하나님께서 본성을 고치기 위하여 수여하시는 그 치유법들을 본성에 돌리는 것은 거의 모든 시대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죄악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 주님은 그들이 죄의 종임을 증명하신다. 그들이 육신의 소욕에 노예가 되어 계속적으로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경험으로는 죄를 깨닫지 못하면서도 겸손하기를 배우며 교만을 버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누구든지 묻혀있는 죄악이 크면 클수록 그는 더욱 크고 과장되게 자유의지를 찬양한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초래하는 죄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강조하시는 은혜와 죄된 본성의 이러한 비교점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종은 ~~~~” ; 주님은 관습 및 사법상의 비유를 들어 부언하신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은 일시적인 거짓의 탈을 쓰고 있을 뿐이다.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 주님은 이 말씀에서 뜻하시는 바는 ‘자유에 대한 권리가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노예이며 오직 그의 은혜로서만 해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실 때 그 성품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그의 몸에 결합되며 그의 지체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전에 말한 바 주님께서 서명 날인한 석방증서를 통해서 우리를 해방시키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노라” ; 나는 주님께서 이 말씀을 양보해서 하신 말씀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동시에 주님은 그런 무가치한 문벌만 자랑하는 그 어리석음을 비웃으신다.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그들이 단순한 살인자들이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 그의 진리를 미워함으로 인해서 그러한 분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 ; 이제 주님은 반대 논법을 이용해서 그들이 주님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까닭에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요 마귀의 자녀라고 추론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