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골로새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3:3)

1. 성경 (골로새서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1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2)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3)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4)  
 
2. 묵상 (Calvin선생주석)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주장하고 있는 그러한 열매없는 행위는 그것이 비록 그들을 완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된 행위와는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면 인간적인 생각들을 쉽게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고상하고 탁월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우리의 마음을 민첩하게 움직이게 되고, 인간적인 것들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하늘에 있는 생명을 생각해 보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가 ?  골로새 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초보적인 것에 묶어 두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교훈은 교인들로 하여금 더욱 더 의식들을 멸시함에 이르게 한다. 바울은 이 귀절에서 이미 그들에게 준 교훈을 확고하게 붙잡도록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참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인간들의 관습이 지니고 있는 헛된 그림자가 소멸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 있었다. 동시에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자기를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인가'?  너희가 그 중 어떤 것들을 행하게 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게으르게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스로 더 나은 것들을 행하라 고 명함으로써 어떤 경우의 헛된 말이라도 제거한다. 요컨대  바울은 그들이 무가치한 유희로 경건한 자들의 정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그들에게 적지않은 악평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1. 그러므로 너희가~~~~~~살리심을 받았으면~~~~~" ;  승천은 부활과 동행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면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하늘로 들리움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자기와 더불어 끌어올리실 수가 있다. 우리들은 실제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위엣 것을 구하고 있으므로 이 땅에 매어 있지가 않다. Cogitate(너희 마음을 쏟다)란 말은 차라리 배려, 그리고 집중을 의미한다. 즉 '너희 모든 생각을 이것에 집중시키라'. '이것에 너희의 능력과 힘을 기울이라' 와 같은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가 오직 하늘의 것만을 생각해야 한다면 땅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란 얼마나 쓸데없는 짓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를 곧장 하늘로 오르게 해 주시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참되고 거룩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를 경배하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그와 더불어 거하도록 하는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우편은 하늘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충만해 있다. 바울은 여기서 이 말로써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여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그의 엄위가 우리를 움직여 전적으로 그에게 경배를 드리도록 해 주신다고 믿게 한다
 
"2. 위엣~~~~~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잠시 후에 말하겠지만 바울은 땅에 속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더러운 정욕이나 재물이나 전토나 집이나 또는 이 현실 생활 가운데 있는 다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것들은 우리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바울은 의식들에 대한 그의 논쟁을 계속하면서 그 의식들을 우리는 땅엣 것에 굴복하게 하고 마는 몇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승천하신 곳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이 의식들은 우리를 끌어 내린다고 한다. 이 말은 그가 조금 전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식들이 폐지되었다고 하는 말의 결론이요, 해석이다. 이 말씀을 의역하면 의식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죽은 바 되었고 너희도 또한 의식들에게 죽은 바 되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로 올리웠으니 너희는 위엣 것들만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땅엣 것들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다. 나는 달리 생각하는 자들을 논박하지는 않겠지만, 바울은 우선 하늘엣 것을 하찮은 문제로 여기는 유전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그는 확실히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내게는 보이는데, 우리가 후에 볼 수 있겠지만 그는 한 걸음 앞선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 먼저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지 않는 사람은 그와 더불어 다시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활에서부터 죽음을, 즉 결론에서부터 조건을 이끌어내는 논법을 사용해서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죽어야만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 수가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왜 우리에게 위엣 것들을 구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은 거룩한 자들의 생명이 위엣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금 왜 땅엣 것들을 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그것들은 세상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죽음은 내가 말한 부활보다 앞선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다 너희 가운데서 볼 수 있도록 하라는 말과 같다. 만일 우리가 십자가와 여러 재난들의 불명예 속에 묻힌 우리의 생명이 죽은 바와 진배없는 것이라고 투덜거리거나 불평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비밀에 싸여 있지만 밝히 드러날 그날을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의 기다림이 불안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안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라고 한 전치사를 주의 하도록 하자. 이 말들은 우리의 기다리는 것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은 위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신 것을 부인하지도 않으시고 그가 보호하심에 있어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더 더욱 안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 올바른 생명의 근원과 함께 거하는 것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디를 보든지간에 우리는 아무 곳에서도 생명을 볼 수가 없다면 깨우침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 이미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의 생명이 단지 세상이 보기에 감취었다고 하지 않고 우리들의 감각으로 볼 때에도 감취었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에워싸여 있으므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는 우리의 소망은 참되고 필연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의 생명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한 것은 놀라우신 위로이다. 이와 동시에 바울은 앞 날에 대한 변절된 감정은 그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거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닫혀졌다면, 그가 나타나 실 때까지는 감취어져 있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