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vin선생주석/골로새서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1. 성경 (골3:12~17)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2)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3)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4)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6)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7)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12~13. 그러므로 너희는~~~ 옷입고" ;  바울은 옛사람이 가진 것들을 말한 다음 이제는 새 사람이 가진 것을 말하고 있다. 만일 너희가 긍훌과 자비 등을 행한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바울은 말한다. 왜냐하면 긍훌과 자비 등등은 새롭게 된 상징과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권면은 새롭게 된다는 것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그는 옷 입는다는 말을 은유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바울이 맨 처음으로 말하는 긍훌은 속에서부터 간절히 열망함과 더불어 일어나는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두 번째의 자비는 우리 스스로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나는 '크레스토테타'란 의미로 본다. 바울은 이 말에다 검손을 추가한다. 왜냐하면 교만을 버리고 스스로 겸손하게 되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한다면 어느 누구도 온유한 자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온유는 자비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 말로 보는 것과 말하는 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내적 성품에 속한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악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 가운데 빠지는 일이 있으므로 우리의 온유를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끝으로 바울은 오래 참음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가 피차 관대하게 대하고 또 어떤 잘못이 있는 경우에는 용서해야 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예로 들어 자기의 교훈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용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매우 빈번하고 심하게 그리스도를 대적했기 때문에 결코 그의 긍홀을 받을 수가 없는 처지였음에도 공훌함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자비를 우리의 이웃에게 베풀어 그들이 무슨 잘못을 우리에게 행하였던지 용서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마땅히 싸워야 될 자라 할지라도 끝까지 추적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새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란 말을 여기서는 택하신을 따로 떼어 놓다란 의미로 본다. 이 말씀을 의역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자비 운동 등을 할 것을 조건으로 너희를 자기에게로 택하시고 너희를 성결케 하시며, 사랑으로 너희를 용납하신다. 이러한 덕을 갖지 않은 자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사랑하시는 자라고 뽑 내는 것과 자신을 믿는 자들 중 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헛 것이니라고 하겠다.
 
"14. 이 모든 것 위에" ;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칼빈 사역)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이 모든 것 위에"라고 번역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위에' 나 '보다 더'는 약한 것 같다. 이 모든 것보다 먼저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에피' 란 말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취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지금까지 사랑에서부터 나온다고 열거했던 모든 것들을 지금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 모든 것, 즉 자비, 온유, 용서할 마음 자세를 위해서 그들 가운데 사랑을 가지라고 하는 권면의 좋은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들이 사랑을 가져야만 그러한 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말과 같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 이 모든 것들을 구하는 것은 공연한 허사일 뿐이다.  바울은 사랑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가리켜 '온전하게 매는 띠' 라고 부른다. 이 말은 모든 덕이 사랑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로 우리의 모든 생활과 행위의 규범이기 되기 때문에 이것에 따라서 다스려지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은 다 그릇된 것들이다. 아름다운 생활과 행위란 그밖의 다른 방도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사랑을 가리켜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우리의 생활이 사랑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생활은 잘 어거될 수가 없고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들은 모두 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은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잘못 인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들은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이다. 그런데 온전한 것은 의로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의롭게 된다'  고 말한다.  이 말에 대한 답변은 두가지가 있다. 즉 바울은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되는가를 논하고 있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 속에서 온전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랑이 우리들 가운데서 강하게 되어야 다른 것들도 우리 생활 속에서 좋은 상태로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이 귀절을 바르게 해석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 의라고 말할 때 교황주의자들이 이것으로 우리는 사랑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주장을 한다면 이것은 헛된 것이요, 어린 아이와 같이 유치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완전한 사랑은 어디에서 '발견되는가?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만이 의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어 진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율법을 범한 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 의도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서 의를 빌어 와야만 된다. 완전한 사랑은 오직 믿음의 의가 있는 곳에만 있고 다른 아 무곳에도 없다
 
"15.  그리스도의 평강(하나님의 평가-칼빈 사역)" ;  바울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세워주신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한 것은 장차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평강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실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매우 훌륭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씨름하는 자들 가운데서 다른 모든 사람들을 쓰러뜨린 사람이 변류관을 차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평강은 자주 우리를 논쟁, 불화, 싸움, 은밀한 원한들을 갖게하는 모든 육적인 성품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부패한 성품들에 매이지 말라고 명한다. 그러나 그것을 제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 구제 책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승리를 얻을 것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육적인 성품이 제지를 받음으로 어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 마음을' 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육체적인 욕망이 성령을 거스르 는 동안에는 항상 큰 갈등을 느끼기 때문이다.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 이 말씀은 평강의 성질이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의 법 아래서 우리 가운데 이룩해 주신 연합임을 말해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조화를 이루며 잘 수가 있다. 바울은 한 몸으로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 의 의미는 우리들이 한 몸의 지체들로 서로 연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조 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뜻이다. 바울의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 것에 대해서 나는 지나간 은혜들을 아름다운 것들로 기억하라는 의미로 보지 않 는다. 아래함을 없애기 위해서 나는 사랑하는 자가 되라 고 해석한다. 러나 나는 우리들 마음이 감사로 가득차게 되면 우리들 가운데서 점차 성 숙된 사랑을 나누는 자리로 나아가는 데 실패함이 없으리라는 것을 인정 한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바울은 복음의 교훈 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맹렬하게 사랑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며 평민들이 성 경을 읽는 것보다 더 무서운 해독은 없다고 미친듯이 떠벌이는 자들이 오 늘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추론해 낼 수가 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지위에 있는 남자와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울은 그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맛만 보아야 한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그들 속 에 거하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안정된 거처를 가져 야 한다는 것이다. 또 더 넓게 말하자면 그들은 날마다 점점 더 장성하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수없이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의 욕망이나 헛된 호 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잘못 사용되기도 하고 타락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 은 모든 지혜로라는 말을 덧붙여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 을 받아야 하고 또 지혜롭게 되어야 할 것을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 지혜를 간략하게 정의하기를 골로새 교인들이 피 차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가르침'은 여기서 유익한 교훈이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로마서 12 장 7절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나 디 모데서의 모든 성경은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님후3:16)라는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을 참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훈이 단순히 무 엇이 옳으며 어떠한 덕이 칭송을 받는가 하는 것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한 다면 그 교훈 자체는 냉담하고 감정을 약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 교훈 을 확증하고 박차를 가하는 방편으로 권면해야 할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 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개인들에게만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 성숙한 가르침과 권면을 필요로 함을 의미하고 있다
 
"시와 찬미" ;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러한 특별한 것들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의 모든 말들은 신앙을 더욱 높여주는 데로 나아가야 할 것을 말 하고 있다. 심지어 기쁨을 누릴 때도 목표를 잃어서는 안된다. 이 말을 의 역하면 익살스럽고 천박한 농담과 우스개 소리를 좋아하는 불신자들의 어 리석음에서 떠나라. 너희의 말은 진실을 말할 뿐만 아니라 즐겁고 유쾌하 며 유익한 말을 하도록 하라. 저희의 더러운 말 대신 혹은 저희의 거짓 겸 손과 고상함 대신 찬송을 하라. 찬송은 너희를 올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미와 노래를 부르게 하리라 이다. 또 바울은 이 세 마디의 말 속에 모든 종류의 노래를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 다. 시는 어떠한 악기의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이요, 찬미는 적절한 찬송 의 노래로서 단지 입으로만 하든지 혹은 다른 방도로 하든지 다 포함된다. 신령한 노래는 단순한 찬송만이 아니라 권면과 다른 주제들을 포함하 또 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래가 영적이기를 바라고 천박하고 무가 치한 장난으로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바울의 논의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감사함으로(은혜로칼빈 사역)" ;  이 말을 크리소스톰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하지만 나는 단순한 의미로 본다. 이 말은 또 4장 6절에서도 나온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이 말은 곧 받아들이기에 적합하게 하고 듣는 사람을 유익하고 즐겁게 할 때에 익살과 헛된 소리와 비슷한 것들을 대적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마음에~~~~~~~ 찬양하고" ;  이 말은 감정과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와 같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노래를 해야 만 단지 입으로 말하는 표면적인 소리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바울이 모든 사람은 자기 혼자서 은밀히 노래를 하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준비된 마음은 혀로 노래함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17. 또 무엇을 하든지~~~~" ; 우리는 이미 이 말씀을 해석했다. 이미 앞에 나온 에베소서와 그 말까지도 거의 같다(3).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부분들을 말했으므로 단지 몇몇 소수의 교훈들만을 취급했다. 그 나 머지 교훈을 일일이 다 말하자면 너무나 길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요약하는 방법으로 결론내리기를 우리의 생활이 규모가 있으려면 우리가 무 슨 말을 하거나 행하든지간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해 지배를 받 아야 하고 그 목표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말 속에 서 두 가지 것을 생각할 수가 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그리스도를 부름으 로써 출발해야 한다는 것과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름 으로부터 우리의 감사의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나온다. 바울은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선한 것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려야 함을 가 르치고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