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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골로새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골2:8)

1. 성경 (골2:6~8)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6)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7)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8)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6. 그러므로~~~~~~" ;  바울은 칭찬에다 권면을 덧붙이기를 교인들이 한 번그리스도를 받아들였지만 계속해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유익이 없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거짓 사도들이 속임수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고 있으므로 바울은 두번씩이나 예언하여 교인들로 하여금자기들이 배운 바 대로, 고리고 자기들이 받아들이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들 속에서 바울은 교인들에게 에바브라가 전하여줌으로 그들이 받아들였던 교훈을 견고하게 붙잡을 것과 모든 다른 교훈과신앙에서 자신들을 지킬 것을 훈계하고 있다. 이사야도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30 : 21)고 했다. 참으로 우리는 복음 진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 모든 거짓된 것들을 막아내는 두터운 벽으로 삼는 방도로나아가야 한다.이제 바울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믿음의 굳은 것을 세 가지로 비유한다.첫째로 말씀 안에서 '행하라' 바울은 그들이 배운 복음의 순수한 교훈을순전한 길에 비교하여 수구든지 그 길을 잘 지키면 질수할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을 권면하기를 곁길로 벗어나지 아니하려면 처음에 배웠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둘째는 나무에서 취한 비유이다. 나무가 모든 바람과 폭풍이 불어와도 견고하게 지탱하기 위해 그 뿌리를 깊게 내리뻗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깊고도 철저하게 견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사단의 음모에도 자기의 올바른 지위를 넘어뜨리지 아니하지만, 반면에 그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내리지 않는 사람은 뿌리없는 나무가 한 줄기 처음 부는 바람에도 넘어지둣이 온갖 교리의 바람에 쉽사리 넘어가 버린다.세째는 기초에서 비유를 취했다.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지지 않은 집은곧 무너져 파괴되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어떤것에 의지하거나, 또는 적어도 그리스도 위에 견고하게 서지 않은 사람은그 믿음이 나약하고 경솔하기 때문에 그 믿음의 집이 위태로운 것이다.사도의 말씀 속에서 두 가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사람들의 견고함은 요지부동이요, 또 그들의 길은 전혀 주저함이나 실수할 위험이 없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믿음은 크게 칭찬할 만하다는 것과 둘째로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될때까지 그리스보 안에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붙들지않는 자는 다만 곁길에서 방황하고 불안에 떨게 될뿐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7. 그 안에~~~~ 굳게 서서" ;  바울은 이제 길이나 뿌리나 기초와 같은 비유적인 것을 사용하지 않고 믿음의 확고함과 견고함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알려진 믿음 안에서 견고하고도 안전하게 걷기 위해 서 이미 과거에 훌륭한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이다. -
 
"넘치게 하라." ;  바울은 교인들이 단순히 흔들리지 않고 서 있기만 바라지 않고 매일 점점 더 자라가기를 바란다. '감사함을' 이라고 한 것은 그들이 항상 믿음 자체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기억해서 교만해지지 말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은사 안에서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복음의 빛 뿐만 아니라 다른 하나님의 은사를 박탈 당하는 이유는 대개가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8.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여기서 철학을 정죄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이 이 말씀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으로는 바울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이해력으로 현명하게 되기를 바랄 때 고안해 내는 모든 것, 즉 이성의 허울 좋은 핑계와 분명한 가능성이 없지 않은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들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거짓된 지혜관으로 포로가 되는 것을 반대하는 데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철학은 도무지 설득력이 있는 변론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 속에 훌륭하고 보탬이 될 만한 느낌이 스며들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다 자신의 무엇을 더 보태려고하는 교요한 수단은 모든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그러므로 철학이 그리스도와 뒤섞이는 한 신령한 교훈은 부패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철학이라는 말 속에서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나오는 모든 거짓된 교훈들을 그 이유야 어뗘하든지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도록 하자. 곧이어 나오는 '헛된 속임수 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철학을 조심하라 이는 단지 헛된 속임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말은 동격으로 부가된 것이다.
 
"주의하라" ;  바울은 또 다시 교인들에게 독소에 관해서 경고하고 그들에게 해독제를 주어서 막아낼 수 있도록 한다. 우리가 말한 이 해독제는 마귀의 모든 속임수들을 물리칠 수 있는 보편적인 치료약이지만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에게는 특별한 사용법이었으므로 여기에서 언급되었다. 바울은 "누가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매우 적절한 말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바울은 교인들을 격동시켜서 빼앗을 수가 없으면 은밀한 방법으로 교인들을 탈취해 가는 약탈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나의 양무리로 만들어 순수한 복음의 교훈으로 그 무리의 방패를 삼는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양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하나가 될 때라는 것을 의미하며 거짓 사도들을, 우리를 무리에서 탈취해 가는 약탈자로 비유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의 양무리 속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러분들은 그의 무리 속에 머물러 있는가?  복음의 순수함에서 손 끝만큼도 벗어나지 않고 있는가(doctrinae) ?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자신의 선한 목자의 직분을 완수하사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오직 그의 음성을 듣기만하면 낯선 자들의 음성을 대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이 이 귀절을 설명해 준다
 
"사람의 유전~~~~~~좇음이라~~~~" ;  바울은 보다 정확하게 자기는 철학이라는 것을 찬성할 수가 없다고 하며 이와 동시에 철학의 헛됨을 두 가지 이유로 밝혀준다. 즉 철학은 그리스도에 의하지 않고 사람의 성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요, 또 철학은 세상의 초등학문들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상의 초등학문과 사람의 유전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사람의 머리 속에서 그려내진 것은 무엇이든지 성부에 의해서 우리의 유일하신 교사로 임명되사 그의 복음의 순수함 안에 우리를 머물도록 해주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철학은 사람들의 유전 중 가장 사소한 것만으로도 더렵혀지고 만다. 바울은 또 세상의 초등학문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에 있는(우리는 그리스도의 법을 따름으로써 영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교훈들은 그리스도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은 이러한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로 인해서 방해를 받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기에게로 직접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불렀는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것은 의식들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곧이어 그 실례의 하나로 할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바울이 의식을 이러한 이름으로 불렀는가는 흔히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문은 어린 아이와 같이 기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숙한 교훈으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을 비유한 것 사람들은 적합한 의미로 해석하기를 외면적인 것은 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부패하기가 쉬워서 하나님의 나라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갈라디아서 4장 3절의 경우와 같이 전자의 해석을 취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