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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고린도전서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

1. 성경 (고전7:25~40)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5)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6)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7)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8)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29)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1)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2)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3)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4)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5)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6)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7)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8)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39)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40)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25. 처녀에 대하여는" ; 바울은 지금 이미 제 7장 초두에서 거론하였던 결혼 문제의 논의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는 이 주제에 대하여 이미 서론적으로 취급하였지만 그러나 간단하고 세밀하게 다루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처녀에 대하여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더 분명히 설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위험과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려는 것처럼, 바울은 항상 조건부로 말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처녀들’을 동정(童貞) 그 자체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은 없으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결혼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고 말씀하신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성경은 남자나 여자나 동시에 창조되었다(창 2 : 21)고 말씀하고 있으므로, 결혼에 대하여는 동일한 용어와 예외가 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독신생활은 어떤 사람에게 강요 되거나 명령하여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가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며, 또 그것이 조금이라도 문제 거리가 되거나 의문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이고 조금의 문제성도 없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고 있는 '그노메' 라는 단어는 권고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판단이나 결정 혹은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더구나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를 조금도 넘어서고 있지 않은 데 비하여, 가톨릭 교도들은 이 귀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잘못을 추론하여 내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는 바울이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5장 32절과 19장 5절 이하 말씀에 포함하시지 않은 말씀은 아무것도 소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를 예상하여, 결혼해야 할 사람이나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분명하게 밝혀주는 율법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결정적인 명령을 그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 바울은 일부 사람들이 바울 자신이 멋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 그의 판단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자신이 단순한 일 개인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신실한 교사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말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그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이 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은혜를 깨닫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영예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를 능가하는 영예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인간에 의하여 창안되고 교회에 소개된.어떤 일은 바울의 이 권고에 대하여 전혀 유사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여 진다. 더구나 여기서 충성 된 자는 진리에 충성을 다한 자, 말하자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양심적인 헌신으로 의무 수행을 다 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그가 분명하고 정직하게 가르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지식을 갖춘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진리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면 교사로서의 좋은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  비록 내가 바울의 이 귀절을 에라스무스(Erasmus) 와 벌계이트 역(Vulgate)으로부터 다르게 번역하였을지라도, 나의 의미는 그 둘의 것과 동일하다. 그들은 바울의 말을 같은 것이 두 번 되풀이되었다는 그런 방법으로 분리하고 있다. 한편. 나는· 한 문장으로만 만들고., 또 그렇게 하는 데에 권위를 부여하는데,  왜냐하면 그 구별이 다만 콜론(:) 하나에 의하여 분리된 것으로, 그것을 한 문장으로만드는고대의 믿을만한 사본을 나는 따르기 때문이다. 그 뜻은 다음과 갈다.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항상 성도들을 억압하는 환난들(propter necessitatem)을 생각할 때, 나는 최선의 해결책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며,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참 은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환난들' (necessitatem)을, 믿는 사람들이 의심할 여지없이 큰 환난을 받았던 특별히 사도 바울 당시와 그 시대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믿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현세에서 부딪쳐야 하는 많은 어려움을 그가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들을 모든 시대에 다 해당하는 것으로 확대하며 또 이것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다. 즉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여러 모양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또 그들이 결혼으로 말미암아 가장 불행한 것 같이 보이는 그런 상황에 처하는 많은 어려움의 폭풍에 노출되게 된다.   ‘이것이 좋으니' 라는 귀절은 ‘결혼하지 않는 것,’ 또는 ‘결혼을 삼가하는 것' 을 의미하고 있다.
 
"27. 네가 아내에게 매었느냐" ;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를 설명하면서 그러나 바울은 결혼으로 이미 결합한 사람들이 그 결혼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독신생활의 유익점이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울의 권고에 영향을 받은 어떤 사람이 독신 생활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또 그 자신의 필요성과 소명감을 생각함이 없이 결혼을 소홀하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미 설명한 말씀을 수정한 것이다· 다른 한편, 그는 이 말씀에 의하여 결혼의 유대를 끊지 말아야 한다고 금할 뿐 아니라, 또한 일반적으로 결혼 생활에 찾아 드는 권태를 몰아내어, 모든 사람들이 아내와 더불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계속하도록 하고 있는 것 이다.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 전체 문맥으로 보아서 이 귀절의 둘째 부분인 이 내용은 개인적인 상황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일생 동안 독신으로 지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자유롭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의 사슬에 메이려고 굳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유를 가볍게 던져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  어떤 사람이 그 자신이 과연 아내에게 메였는지 고의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려는 (이것은 그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것으로 이 마지막 문장을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있으므로, 바울은 이 의심을 제거하고 있다. 즉 그는 홀아비들에게도 결혼할 자유를 허락하였으며, 또 결혼하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로되'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곤란한 일들이 그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결혼할 수 있는 것이다.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  이것이 그가 이미 말한 것을 덧붙이거나 혹은 단순히 한 예증이 되든지 간에, 우리는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결혼할 수 있는 자유가 부여되고 있다는 의심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을 즉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첨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허물인 것 같고, 더 비난할 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거나 혹은 최소한 남편이 죽은 후 두번째로 결혼하는 것보다 정조대(貞操帶)를 잃는 (옛 사람들이 말해 오듯이) 더 치욕스런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논증은 이렇게 될 것이다.
'만일 처녀가 결혼하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과부들의 경우는 더 나은 사건인 것이다.  나 자신은 그가 같은 입장에 .그들 두경우를 모두 다음과 같이 두는 것이라고 오히려 생각하고 있다.

 

즉  ‘처녀는 결혼하여도 된다.  또한 과부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떤 불명예의 모욕은 고대 사회에 있어서는 재혼과 관련을 가지며,  이런 사실에서 볼 때 그들은 또한 일생을 통하여 한번 결혼으로 만족하였던 부인들에게 순결의 화환을 수여하곤 하였으며, 또한 명예는 한번 이상 결혼한 사람들에게  나쁜 인식을 주기도 하였다. 더구나 잘 알려진 버리어리우스(Val~riµs)의 격언이 있는데, 그것은 ‘재혼에 대한 강한 욕망이 일어 날 때는 자제력 (intemperantia) 이 합법적으로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결혼에 대한 자유에 관한 한 처녀나 과부에 대한 구별을 두지 않았다.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 바울이 그의 권고에 있어서 독신 생활에 호감을 갖게되는 이유를 자주 되풀이하고 있으므로,. 그가 그것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인도하는 것 때문에 한 가지를 다른 한 가지 보다 더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분명하여졌다. 그는 결혼 생활에 있어서 많은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고통을 피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정혼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육신의 고난' 이나 혹은 '내 육신의 것'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 , 결혼한 사람들이 피할수 없는 책임과 고난은 세상적인 일들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육신은 여기서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낀다'는 것은 그들을 생각하게 된다 거나 혹은 결혼에 따르는 고통으로부터 그들을 들어 올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가  ‘나는 너희들의 연약함에 대하여 당연한 관심을 기울이며, 너희들의 생애가 고통으로 파멸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너희들이 결혼을 갈망하기를 원치 않는 이유는 너희들이 모든 그것의 억압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바울이 결혼을 필요 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추론하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고 있는 그 고통들은 그것의 타락으로부터인 것처럼 결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들은 원죄 자체로부터 그렇게 맺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29. 때가 단축하여 진 고로(駐 2)" ;  다시 한번 바울은, 육체적인 만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전혀 생각치 않고, 사람들이 결혼하게 될 때 그들의 음욕스러운 열정을 절제하도록 하기 위하여, 결혼의 처리를 뭔가 신성한 것으로 논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는 사람들이 그 고삐를 열정에 내쏟아서 결혼이 세속적인 방법으로 되어버리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결혼은 모순을 위한 치료제이다. 결혼은 자제에 의해 잘 다스려지는 한  신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서로 정숙하게 함께 살려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이 지상 생활에 도움을 연기하여 다른 물질을 이용하듯이 그런 동일한 방법으로 결혼을 한다면,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하늘나라 일을 생각하도록 승화시킨다면, 이것은 이루어진다. 이제, 그는 인간 생활의 짧음에 그의 논증의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여기서의 이 생활은 짧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여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모든 사람들이 입술로는 이 지혜를 말하고 있으나, 참되고 성실하게 이것을 그 마음 속에 새기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나의 최초의 번역에서 나는 파리 사본을 따랐는데, 후에 발견한 것처럼, 내가 참고한 많은 것에서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먀토로이폰' 이라는 구(句)를 그 다음의 내용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그 역본이 더 믿을 만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 뜻을_더 분명히 하기 위하여 ,‘왜냐하면'을 삽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으며, 이것은 어떤 고대 사본들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가 어떤 일을 신중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과거보다 미래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며 바울은 앞으로 때가 단축하여진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없는자 같이 하며" ; . 이 현실 생활을 풍요하게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잘못 사용함으로 그것들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 이유를 알기 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망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바로 그런 일들이 우리를 얽어매는 쇠사슬이 된다. 우리의 마비 상태에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아주 정확하게 세월의 짧음을 우리가 돌이켜 보게 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그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것처럼 사용하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자신을 이 세상에서 이방 나그네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물질을 그것이 타인의 것인 것처럼 사용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오직 하루를 위하여 그 물건을 버린것처람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 요점을 간추리면,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이 땅 위의 일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서는 안되며,  또, 이 땅 위의 것들로 만족하여서도 안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느 순간에라도 이 세상을 떠날 사람들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는' 이라는 말에 바울은 사태가 악화되어가는 때를 의미하고, ‘기쁜'이라는 말로써 상황이 호전되어 가는 때를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결과에 의하면 원인을설명하는 것은 이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소유물을 다 버리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완전히 물질에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  불변사 '크로메노이 ; 사용' 는 처음 구(句)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복합어인 '카타크로메노이 ; 충분한 사용' 는 두번째 구에서 사용되고 있 다. 그러 나 전치사 ,'카타' 는 . 일반적으로 나쁜」사미를 지니고 있거나’ 혹은 최소한 강렬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온 물질을 사용합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 여정에 물건을 감추거나 그 사용을 지연시키지 말고, 그 목표를향하여 우리가 찰 진행하여 가도록, 물질을 온건하고 훈련된 방법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을 압시하고 있다. •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같이니라. 바울은 이 런 표현으로써 이 세상의 허무 를 적철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불변하고 견고한 것은 아무것 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오로지 표면일 분이며 또한 외형적인 모습일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극장의 무대에 어떤 압시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막이 내리는 순간, 그들의 모습이 그 사이에 나타나고, 청중들의 주의를 끌던 것은 곧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에라스무스(Erasmus)가 왜 ‘상태' (habitus)라는 단어를 사 용하였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그가 분명히 바울의 교훈을 모호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형적(figura)은 물질(substantia)과 는 무언의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32. 너희가 염려 없기틀 원하노라 " ; 그는 이미 우리에게 권고는 하였지 만, 그러나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던 문제에 되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전 과 갈이, 그는 독신생활을 추천하기 시작하며, 그리고나서 각 사람이 적합 한 경우를 택하도록 개개인에게 자유를 주고 있다. 다론 한면, 독신생활 의 추천을 되풀이하는 좋은 이유를 가졌었는데 그 이유는 결혼에 대한 책임 들이 빛에서 떠나 있음을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결혼의 책임 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는 은혜를 그와 갈이 던쳐버리전 않았을 것 이다. 그리고 결혼하려는 사람둘에게도 미리 결혼에 따르는 고통들을 알려 주는 것이 큰 유익이 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만일 그들이 예상 하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치더라도 그들이 절망하지 않을 것이기 대문이다. 우리는 그런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그들은 순 수한 행복을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소망이 현실화되지 않았을 때, 그 가벼 운 불운이 그들을 여압하기에 충분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엇을 기대해야 할 것인가를 곧 깨닫도록 하여, 모든 것을 받아둘일 준비를 갖추 도록 하여야 한다. 그 뜻은 이렇다. '결혼은 그 결혼에 따르는 많은 문제접 둘을 가쳐온다. 나는 여러분이 그 번거로움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며, 또 그런 문제들을 갖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고통에 대하여 이미 말하였고, 이제는 염려나 혹은 걱정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이것들 사이에 어떤 차이접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 한 질문이 대두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고봉은 슬픈 사건둘이나 그 환경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대면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나 상대방의 죽음, 또 성져의 까다로 웅에서 가쳐오는 싸움이나 작은 불화들(법률가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처럽), 자녀들의 나쁜 행실, 4가족들의 교육의 어려움'등과 그와 비슷한 많은 일들 이다. 걱정아란 결혼식에서 찰못된 것, 농담, 그라고 결혼한 사람들이 마음 을 쓰는 잡다한 일들, 즐거운 상황에 대한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걱 정 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아서 그들의 모든 생 각과 노력 을 하나님 을 위 하여 헌신하는 데 바치기를 바운이 원하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그는 득 신생활이 그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태서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자유를누리기를원하고있는것이다. 그는모든경우에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항상 다 그와 같다는 것은 아니다; 독신 생~온 오칙 하나님의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하여, 우리는 사재 들이나 수도승 또 수녀들의 경우, 현재의 그들의 하는 일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있다.、 이런 것에 덧붙여 우리는 또한 자기i것대로 결혼 에 얽매이지 않고 방종한 생활을 하려고, 또 자신의 악행을 갑추기 위하여 결혼을 하치 않는 구역질나는 음행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 댜 하나님에 대한 헌~J이있을 수 없는 곳에는정욕이 불타고있는 것이다. 그러나바울이 여기서 분명하 밝히고 있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 유롭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이다 .. 믿는 사람둘온 이 자유롤'찰;선용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파멸을 위해서 이 자유를 남용하고 있다.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  ‘세상 일'을 '우리는 이 세상의 현재 생활에 속하는 일들로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 세상온 이 지 구 위의 생활 환경을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기서가 모든결혼한 사람은, 그둘이 오로지 세상 일만을 생각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 밖에 있다고 여축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나 는 여기서 사도 바울은그들이 생각하는 일부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C그것은 마치 그들이 한 눈으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그러면서 찰 조정하여 다 아내를바라보는 것과 갈다. 다시 결혼은 믿는 사람들의 마 론 한 눈으로는 음 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무거운 점과 갈아시그들은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길로 발을 옮길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악들이 결혼 그  자체에 속한 것이 아니타, 인간의 최로부터 온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 도록 하자 이것이 땅끝까지 타락하게 된 제롬(Jerome)의 오술(誤述)의 이 유이다.
 
왜냐하면 그는 결혼이 찰뭇된 것이타고 증거하기 위하여, 이런 모든 것들을 수집하였다. 어떤 사람이 농업이나 상업, 또 다른 생활, 수단둘을, 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이타고정최한다면, 아무리 그런 것들이 이 세 상의 많은 타락으로 에우1싸여 있을지라도, 그의 그런 넌센스를 옷읍으루 받 아 넘기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므로우리논 결혼 속에 어떤 악이 들어있 다면, 그것은 다몬 근원에서 온것이타는 사실에 주의하여야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떤 남자가 그의 이내와 함께 산다고 하여도 하나님께로 부터 떠나 지 않을 것이며, 그사람은 순수한 상태 구대로 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도 를 더럽히지 않은 것이며, 또그의 아내는 모든 선한-일에 그위..,.조력자가 될 것이고, 이것은 참으로·여자가 창조함을 받은 그 목적인것이다? 그러나어떤 사람은_·말할 것이다• C만일 죄로 정최받은 걱정들이-계속겨l 혼에 수반되고 있다면, 그태도 결혼한 사람들이 깨끗한 양십으로)한나님을 찾고 그에게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제』가지 종 류의 걱정이 있다고 말하겠다. (1) 사람들이 전실이 부족한 ,;상태로 태려났 기 때문에 그들 안어1 악과 불경건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마태복음 6장25철에서 말씀하고있다. (2) 약간의 팔요가 있으며,·,하나님윷 노하계 하지 않으며, 말하자면 가장(家長)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돌보아 야 한다. 그리고하나님께서는-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 는 나무토막 갈은 촌재가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3) 세번째 것은 다론 두 개와 결합되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런 일들에 관련되게 될 때, 그것 둘은 참으로 우리의 '관십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우리논 너·무 지나치게 마음을 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자연적 성향(性向)이 어떤 일 에 대한 한계를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그런 염려들 자체가 악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arae,a(아락시아),."9"''.l 철제가 없이 지나치기 때문에 나쁜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 -~에서 우리 를 정죄하는 그런 죄들을 발견하기를 원할 분만 아니타, ,대체로 그는 우리 가 모든 어지러운것들로부터 자유로와저서, '우리의.1...:전 'llt음이<하나님께 향 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나누이며" ; . 이 말들에 대하여 그와같은 다른 견너들이저!~어나-고있 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인 헬라어 역본은 벌게이트(Vulgate) 역본과 갈지 않다. 그래서 그 차이점은 잘못이나 부주의로인정될프누가없는데, 때때로 이것이 한철자나 한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헬라어 여 본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다음과겨갈이 받아들인다. '결혼한 사람은 이 제상 일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하논 문제에 마음을 쓰게 된 다. 결혼한 여자와처녀는 ‘분리'되고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하나님과 그 이의의 일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누이다’라는 말을 ‘다르 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그것이 이렇게 된 것과 갈이, 즉 ‘결혼한 여챠와 처녀 사이에는 큰 차이접이 있다. 그 하나는·오칙 하나님의 일에만 관십을 거울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다론· 일들 때문에 이리처리로 분명히 끌려다니게된다.' .그라나 이 해석은 '그 말의올바론의미와 대단히 찰일치하지 않고 있으므로 더구나다른` 역본의 뜻이 다져철하고 무리가 덜 되므로―그리고 그 역본이 또한 어떤 헬라어 시본:-(社3)에서도 발견되었 다-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이해하 여야 한다. 즉 결혼한 사람은 일부는:하나님께,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는 아 내에게 자신을 ·주어 야 하므로 그의 관십 이 분산된다. 그래서 그 、사람온 건적 으로 완전히 헌신하지 못한다. 
 
"34. 시집가지 않은 자와 쳐녀(駐:·4)는~~~~~"  바울은 지금까지· 남자들에 내 하여 생각하였는데, 이제는여자들에대하여 되풀이하고있다• 말하자면처녀 둘과 과부둘은 그들의 전 마음과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데;'~ 어서 이 세상 일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모두가 그렇다 는 것온 아니고, 만일 그둘이 그들의 마음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기회가 있 다는 것이다. 바울이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려 하되’라고 말할 때 참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그런 순결성온 하나님을 향하여 홀이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나는. 그것에 머 관십이 집중되기를 바란다. 육신에 관한 한, 우리논 수녀가 수도승, 그리고 소위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가톨릭 성칙자 나부랭이들의 자기 헌신의 어떤 낙인 갈은 것을 알고 있다. 그둘의 독신생활이 상상케 하는 것 이 더 혐오스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육신의 순결 문재를 떠나서 순결에 대한 명성 때문에 높이 촌경을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블결한 정욕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극소수인가 ! 바울의 이 문장으로부터, 우 리는 순결이란 그것이 영혼과 육신에 다갈이 그것을 유지할 때에타야 하나 님을 기쁘시계 하여 드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는 극기(克己)의 노태 를 항상 부르는사람들은, 그들이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것이라는 사 실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태야만 우리에 대한칼을가는데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 그러나 오늘날 극기에 대하여 오히려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은공공공연하고 철면피하계도 창녀들을 이용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 람들 눈에는 가장 촌경받을 생활을 하고 있는 것같이 보일지라도,·만일 그 들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그리고 모든 부정에서· 순결하게 자신을·지키 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  바울의 온건함에 주 의를 기울이자. 아무리 그가 결혼의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어려음들을 잘 알고 있었을지타도, 그리고 다론 한편 독신생활의 유익을 잘 알고-있었을지 타도, 그는 그것을 만호하계 주장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그는 독신생활을 추천하면서도 그의 독자들이 그것을 아주 높게 평가함으로 감명을 받아서, 그는 자신이 그것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러므로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라고 그리스도에 대한(마 19 : 10) 제자들의 대답으. 로 즉시 자신둘에게 말할까 염려되어서, 바울은 분명하게 우리를 이해시 키고 있다. 즉 그는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지적은 하였지만,』 그는 이 결혼의 제약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적용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 여기서 두 가지 주의할 사실이 있다•

 

첫째는 왜 우리가-독신생활을 하여 야 하는가의 목적이다. 독신생활 그 자체를 위하여서는, 또-;이, 상태가 더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밀접히 연합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어떤 것도 두지 않기 위해서이다. 곧 그리스도인 이 고의 전 생애를 통하여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둘째로는 이것-:-곧 어떤 구속이 사람둘의 마을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그 결과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 댜 이 두 가지의 관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찰봇이 이루어졌는가는 아주 찰 알려진 사실이다. 분명히 두번째 원리에 관한 한, 모은 성직자들이 결혼해서 안 된다는 독신생활에 대한 법을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울보다 더 주재 넘는 사람들이다. 갈은 문제가 영원한 극기 생활을 맹세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우수한 사람들이 이 올무로 말미암아 영원한 파멸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성령께서 바울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면 , 가톨릭 교도들은 하나님과 다투는 죄책을 면치 못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일에 대하여 가톨릭 교도들이 사람들의 양심을 얽어맨다면 말이다. 물론 성령께서 이미 배척하였던 바로 그를 올무로 매시려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신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롯한 즐로 생각 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  이제 바울은 자녀를 둔 부모들에 · 대하여 설명하고 있댜 독신 생활에 대한 찬양을 들으면서, 또 결혼에 관계되는 여러 어려움 을 들으면서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그런 불행에 몰아 넣는 것이 과연 인 간적인 일인가에 -=-회의를 품게 되며, 그럴1 경우 그들은 그 자녀들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녀들에 대하여 더 많 이 염려하게 될수록, 더 기뻐하며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그들 온 보호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가 이 어려움을 제거할 수 있기 위하여 바 울은 자신에게 아주 적철한 방법으로 자신의 관십을 돌보는 것이 그들의 칙 무타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한 것에 대하여 계속 구별을 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독신생활을 추천하지만, 다론 한편으 로는 결혼할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그보다도 머 그는 결혼이란 자제할 수 없는 정욕에 대한 치유색으로생각하며, 또 그것을부정하는 것은 찰봇이 필 것이다• 이 철의 첫 부분에서 바울은 말을 시집보내논 문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딸에게 독신생활을 시키는 것이 져철한 일이 못된다는 결론을 내린 아버지들이 말을 시칩보내는 것은 최 짓는 일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가 '아스케-모내 인 ; 부적 당하게 픽 는 것'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인성(人性)의 적철성에五대한 선명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것은 각 사 람의 본성에 따르는 특성이다• 철학자들이철제의 일면이’라고 보는 일반적 인 적절합이있으며, 모론자람들은이 속에 포합이 된다;• 또한게게인에게 알맞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떤 사람에게 알맞는 것이타도, 다론 사람에게는 아주 부적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시세로가 말한 것처 럽) 어떤 형태의 성품(quam personam)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를 깨달아 야 한다• 독신생활은.어떤사람에게는 져합할 것이다. 그러나 그1사람은 자 신을 다른 사람의 표준으로 삼아서 는 안l 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그렇지 못한지 그·가능성 여부를 알아보지도 않 고 어떤 ~f람의'본을 다르려고'하-여서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원 숭이둘이 흉내내는 것 같으며, 또우우리는 분명히 그둘운 모방하도록 태어나 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아버겨가 딸의 열정을 중시하고, 그 딸이 독신생활 에 부적합하다고 결정하였을 때는 딸을 시집보내도 된다. 바울은 ‘혼기'(婚期)라는 말을 혼인이 가능한 연령으로 보고 있다. 법률 가들은 이 것 을 ·12,....,,20세 까지 로 한정 하고 있 다. 바울은 겸 하여 , 부모들이 이 병세(病勢)가 결혼을 요구할 때인,, 그 정열적이고 위험한 연령에 그 치유책 을 적철하게 사용하여야 할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동정할 것인가를 지적 하고 있다. 、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 나는 아귀철을소녀들의 연약 합에 대한 압시로 받이들인다. 말하자면, 만일 그녀가 극기의 온사를 받지 못하였다면, 그런 상황하에서 그 여자는 결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름(Jero~e)온 ‘최 짓는 것이 아니니' 라는 말을, 결혼을 나쁜 견해로 보 는 기회를 붙잡은 것처럼 붙잡고 늘어진다• 그리고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블명예스러운 것처럼 결혼을 경멸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유치한 것 이다1바울은 그것아 아버지들의 비난을 덜어주도록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그태서 그둘이 딸을 결혼의 고통에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냉혹한 일이타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37.그러나그 마음을 굳게 하고" ;  이제 우리는 이 철의 둘째 부분을 살 펴보게 되었다.-여기서 바울은 결혼을 삼가할 수 있는 은사를 받은 소녀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딸의 마음이 .. 혼들리지 않는 것을 보 는 아버지들에 대하여:상찬하고있다. 그러나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요구하 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의 첫번째 규정온 강한 의지이다. 즉 ‘만일 어떤·사 람이 이것에 대하여 마음을 충분히· 작정하였다면' 그러나 어러분은 이것을 수도승의 결삼과 갈은 그런 종류의 것 ,· 다시 . 말하면 충동적 으로 자모의 생애 를 복종시키는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그들의 맹세가 그렇다). 그러나 바울은 이 확고한』 결십을 설명하는 데 특별한 접을 나타내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때때로어떤결정을너무 성급하게 하고, 그리고 다음날 그결정에 대하여 곧 후회률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철에서:바울은 필요성을 갖처 않는-사람들에 대하여 섣명하고 있 다.:,왜냐하면 그들이:어떤 일을 생각하게 될1사에 많은 사람들은 이성적이 기보다는 와고집으로 -흐르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결혼 울 하는 것이 그들의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의 문제에 주의~ 기울이지도 않 은채 그들이 결혼을·포가하는 것인가를 우리는,여기서 살퍼보고 있다. 그러 나 그들은, ‘이것이 대가 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에 그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그둘이 적절한 선택을 하고, 결정을 서둘지 않기를 원하 고 있으며, 그들에게 주신 은혜의 방법엔 따르기를 원하고 있다. 그는 다음 귀철에서 구둘이-';:i.들, 자신의.J의지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올 갖기를 그가 원하었을 때에 이 불가피한 배제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가 이렇게말하는 것과 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 자신이 그런 은 사를 받았는지 확신하기 도전에 마음을 결정 하기 를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항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하고 치명적입 일이기 때문이 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런 규약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 맹세는 정죄될 수가 없다 .• 나는 여기 대해서 이 렇게 해답한다. II우리는 미태에 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극기 생활에 관한 한, 우리 생애 전체를 얽어매는 그런 결 정을 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허용되는 한도내에서의 은사를 활용하도 록 하자.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를 준비를 갖추 고, 그에 게 우리 자신을 복종하도록 하자.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  바울은 아버지들이 그들의 걱정을 덜기 전에 또 그들의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 여러 면으로 충분히 생각하도록 하는문제를머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이 말을 첨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때때로 그둘은 그둘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지식의 부족 때문에 결혼을 거절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욕적인 상태 그대로 남아있으 며, 또 타락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이 런 관계로, 아버지들은 그들 자신위 신중에 이 딸의 미숙합과 병져인 욕망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딸을 위한 최선 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여야 한다. 이제 이 귀철은 아버지의 권위가 논의의 여지가없다는대 대한 그 권위를 강조하는 데 도움울 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 권위는 그 기원을 자연의 일반 법 칙 (ex communi naturae iure)에 두고 있 기 때 문이 다.
 
만일 자녀 들이 부 모의 허락없이 벌로 중요하지 않은 다몬 일들을 하도록 허락받지 않았다면~ 그들 자신의 결혼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그들에게 주어전 것은 오히터 분명 히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그것을 가로막는 신중한 규정은 시 민법 (civili lege)과, 또 무엇 보다도 하나님 의 율법 (Lege Dei)에 의 하여 제정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황의 부정칙이 더욱 형오스러운 이유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경의 때문에 교황은 자 녀들을 부모를 복종하는 멍에에서 마구 풀어놓는 그런 오만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아유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말하기 를, ‘이것은 성례의 촌임성 때문이다 (나는 성례를 결혼 반대의 이유로 삼 는 그들의 무지를 무시한다). 그러나 어떤 영예와 촌엄성이 성례에 있는 것 은 사실이다.
 
나는 모든 백성들에게 공통적인 예철의 표준과, 또 하나님의 영원한 질서 이 두가지에 대하여, 젊은이들이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반항할 수 있는 자유가 언제 그들에게 주어졌는가를 묻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례라고 그들이 변명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결혼시키는 데 있어서, 부모의 권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자. 만일 부모들이 그것 을 남용하지 만 않는다면 말이 다• 왜 냐하면 그것 을 막기 위하여 시민법이 또한·그것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불팔요 한 것이 있다고 요구한 것은, 한 부모들의 결정은 자녀들에게 최선이 되는 것에 의한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양자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것이 올바른 인도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인도 를 받아야하고, 한편부모들은자녀들의 뜻에 뭔가 반대되는 곳으로 그들을 몰아넣지 말고, 부모 자신들의 권위를 자녀들의 유익을 도모하는 그런 방향 모색 에 사용하여 야 한다•
 
"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 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  이것은 전체 귀철의 두 부분에 대한 결론이다. 짧은 및마디로써 바울은 달을 시집보내는 것이 부모의 비난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딸을 시집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찰하는 일이타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여기서 독신생활을 결혼하는 것보다 더 우위에 두지 말라. 그것은 조금 전에 우리 가 살펴본 대로 예의적인 사람에게만 오로지 해당되는 일이다. 딸이 결혼을 자재할 힘이 없는데도, 아버지가 그 딸을 여지로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솔하계 행동하는것이다. 참으로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찬인한 폭 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한 전체적인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독신생활은 결혼하는 것보다 낫다• 그 이유는 독신생활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며, 또 따라서 하나님께 봉사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2) 그 러 나 만일 본인이 결혼하기 를 원한다면, 그가 결혼하지 못하도록 강권을 발 동하여서는 안 된다. (3) 더우기 결혼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합 울 위하여 허락해 주신 치유책이므로, 극기의 온사를 받지 못한 모든 사람 은 결혼을 하여 야 한다. 건전한 판단력 을 가전 사람이 라면 누구나 결혼의 가 르침에 대한 사도 바울의 전체 내용이 이 세 가지 문장에 요약되고 있다는 나 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둥안에 매여 있다가(법으로)" ; 이미 앞에서 말 한 내용이 남자나 여자 모두에계 동일하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여성이라는 수줍음 대문에 여성이 덜 자유스러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는 또한 그들에게· 특별한 안내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재 그는 부인들 역 시 남자들처럼, 그 첫번째 남편이 죽은 후, 재혼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 다. 우리는 이미 재혼을 열망하는 부인둘은 자제력 부족의 낙인이 찍혔다는 것과, 한 남편으로 만족한 부인둘에게 ‘순결의 화환' 이 수여되는데 반하여, 그것은 뭔가 그둘에게 모욕이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더구나 이 초기의 견 해는 일찌기 그리스도인둘 사이에서 많은 근거를 얻었다.
 
왜냐하면 재혼이 그들에게 선언된 축복을 가지지 못하였고, 또 어떤 종교 회의에서는 성직자 들이 재혼하는 것을 금하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그런 종류의 독 탄을 정최하고 있으며, 또 그는 만일 자신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과부들도 결혼할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어떤 장벽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조금도 차이가 없으며, 우리가 아내는 ‘법으로’ 혹은. '법에 의하 여' 매여 있다고 말하는 그런 의미는 분명히 아니다• 법으로 확고하계 남편 과 이내의 결합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못 박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여져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율법의 권위와 그 법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요구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제 바운은 이 대조로부터 이렇게 논증하고있 다. 즉 아내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은 그에게 매여 있을지라도, 남편이 죽 은 후에는 자유이다. 그가 해방이 된 후에, 그녀는 i그가 원한다면 결혼할 수 있다.' 망자다' 라는 동사가 ‘죽는다’ 는 뜻으로 사용될 때 , 그 말은 영 혼을 의 미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뜻한다. 성경에서 그 단어가· 계속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서 그것은분명하여진다. 그러므로성급한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이 우 리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후에 감성이나 이해력을 박탈당한다. 다론 말로 하 떤 생명을 박탈당한다는 것울 증명하기 위하여 그들이 이 짧은 말에 대하여 궤변을 부릴 때, 그들은 다만 그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  사람들은 바울이 겸하여서, 그들이 불신자의의 결혼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한다든가, 혹은 그들과의 교제를 좋아하지 말라 는 것을 바울이 경고하기 위하여 이 말을 덧붙인 것으로 아주 당연하계 생 각한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나는 이 말씀이 그보다도 더한 뜻, 곧 그들이 이 재혼을 경건하계,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받 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결혼은 경건하계 출발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 ;  그 이 유는 과부로 지내는 것 그 자체가 덕이기 때문에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지 내는 것아 덜 번거롭고, 세상적인 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내 뜻에는'이라는 말을 더 첨가한 것은, 바울이 그의 견해에 대하여 어 떤 의십이 있다는 것을 그 귀철을 통하여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 온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하여 결정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 다. 죽 그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즉시로 덧붙이고 있으며, 그 성령께서 완전하고 순전한 권위는 충분히 주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내 생각에는’이라고 말함으로써 반어적인 주의력을 집중시 키고 있다. 왜냐하면 거짓 사도들이 권위를 자신들에게 월권적으로 부여.하 려고, 하나님의 성령에 대하여 자만스런 말로 되풀이하여 강조하고 있기 때 문이며, 동시에 바울을 멀시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이 소유한 것 만큼· 자기 자신도 성령을 소유하였다는 것이 자신에게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