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고전10:14 ~ 22)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4)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5)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6)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7)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8)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19)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0)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1)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22)
2. 묵상 (Calvin 선생 주석)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피하라." ; 바울은 이제 직선적인 교훈이 그들을 냉담하게 할 것 갈아, 잠깐 동안 떠났던 주제로 다시 돌아오고 있으며, 그는 우리가 읽고 있는 일반적인 권면을 삽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가 이미 시 작하였던, 즉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의 종교의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는 논제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 그가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상숭배' 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는 확실히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대단히 무지하거나 어리석어서 그들이 우상에게 마음을 모두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불신자들의 모임에 자주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또 우상숭배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어떤 의식에 그들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대단히 냐쁜 전례가 되므로, 그는 그들의 이 오만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여기서 우상숭배에 대하여 말할 때, 그는 외형적인 우상숭배에 대하야 말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혹은 만일 당신이 좋아한다면, ·우상 숭배에 대한 공적인 선언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무릎을 꿇는 경배나 또 다른 경배의 방법으로 경배를 받으시지만 근본적이고 참된 하나님 경외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의 경우, 동일한 원리가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이 된다.
바울이 사실상 바로 그란 행위를 정죄하고, 또한 그 정죄함은 당연한데도 그들의 마음의 문제에 관한 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외형적안 행위에 대한 급급한 변명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날에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내적인 경배를 받아야 하실 분이시며, 또한 우리의 외적 헌신도 받으셔야 할 분이시므로 인간이 우상에게 의적인 경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경의를 박탈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하려고 하면,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경의를 우상에게 드리는 그 행위 자체는 결코 숨길 수가 없다.
"15.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 바울이 그의 논증은 성만찬의 신비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므로, 그는 그들이 이 신비의 위대성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하기 위한 야간의 위로를 그들에게 주기 위하여 이 작은 서언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나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나는 초학자(beginners)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성찬의 능력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불신자들과 한몸이 되기 위하여 그들과 교제한댜는 것은 얼마나 치욕스런 일인가 !' 그러나 그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생각이 부족함을 정죄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후에도 죄악인 일에 그들 자신을 어리석게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부인은 없었다. .
"16. 우리가~~~~~ 축복의 잔" ; 그리스도의 최고의 성만찬은 빵과 포도주의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는데, 바울은 두번째 요소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 신비의 축복이 되도록 의도되었으므로, 포 도주를 ‘축복의 잔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는 ‘축복' 을 ‘감사', 호아해하무 ‘축복하다' 는 동사를 ‘감사를 드리는’으로 설명하는사람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때때로 그런 뜻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채택한 그 문맥에서는 결코 그런 의미가 될 수 없다. 에라스무스의 전치사 삽입은 대단히 불가피하다. 그러나 나의 해석은 쉽고 직선적이다.
그러므로 ‘축복의 잔'은 이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그것을 보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의 지시에 일치할 때, 믿는 사람들이 이 성례에서 그의 죽음을 함께 기념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반면 가톨릭교도들의 경우 헌신은 그 근원을 이교국에 둔 종의 마술 같은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따르는 순수한 의식을 조금도 닮지 않았 다. 물론 우리가 먹는 모든것은 바울이 디모데전서 4장5절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역시 성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 문맥에서 그 축복은 다른 목적, 곧, 하나님의 은사를 순결하게 사용하고, 그들에게 은사를 주시고 또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분을 영화롭게 하여드릴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성만찬의 ‘신비한 축복'의 목적은 그 포도주가 이미 평범한 포도주가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보증 되었을 때, 우리의 영적 양식이 된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축복 받은 잔을 "코이노니아", 곧 , 그리스도의 피로 연합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엄밀하게 무엇인가?' 라고 어떤 사람은 질문할 것이다. 논쟁에 끼어들지 마라, 그러면 모든 것이 아주 분명하여질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한몸이 되기 위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결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또한 그런 종류의 결속이 적절하게 "코아노니아", 혹은, 온천교라고 불리우는것도'사실이다(?). 나도 역시 빵에 대하여 동일한 것을 말하려고 한다.
더구나, 나는 ‘우리가 같은 빵을 함께 나누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한 몸이 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즉시로 바울이 추가하고 있는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그의 육체가 되고, 그의 뼈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우리 사이에 실존하는 "코이노니아", 혹은 친교의 근원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자면 서로 연합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결합하고 있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바울은 우상으로 더불어 연합하여 그들이 더럽혀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라는 사실을 그것으로부터 분명히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믿는 사람들 사이 의 영적 연합을 제의한(sed de spirituali Christi et fidelium unione), 단순한 인간의 친교를 여기서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귀철의 문맥으로부터 우리는 "코이노니아 ; 천교" 나 피의 연합은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가 그 안에’ 살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의 몸 안에 접붙이셨을 때 ,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동맹 (societatem) 되었다는 것을결론 지을 수 있다. 물론 이제, 나는 친교로서의 잔에 대한 언급이 말의 상징이라는 것에 동의 한다. 그러나 그 상징이 전달하는 진리가 파멸되지 않는 한에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만일 그 실체 자체가 또한 나타내고 있는 한, 그리고 입이 포도주를 맛보는 것과 같이 영혼이 피로서의 친교를 얻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도들은 그들의 경우에 있어서, 축복의 잔이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의 친교라고 말합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갈기갈기 찢기고 불구가 된 형태의 성 만찬을지키기때문이다_만일 ‘성만찬'의 이름이 이상한 의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많은 인간 창안의 모자이크이며, 또한 주님께서 제정하 신 가장미미한 혼적을 간신히 보유하고 있澄 분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만찬의 바론 용법에 .-따르더라도, 이 한 가지 일이 성례의 철반인 찬에 처 측된다는것은 모든 사람들아 부인하고 있다. 우리가 때는 떡은 초대교회에서 구리스도의냐공 안에서 그들의 연합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아주 분명하게_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개개인의 큰 덩이에서 떠올 각각 며H던것이 관례였다는 사실이 ’이것으로부터 나타난다. 이 관례가 오랫동안 지커졌다는 것은 사도들 이후. 3세기 안에 교회에서 유명했던 사람들에 관한 증거에서도 도한 분명하여진다• 그 미신 후에 아무 도 손수 갑히 떡에 손을 대지 못하고, 1사재만아 떡을 입에 디대는 그런 결과 를 가전 날이 왔다.
"17. 떡이~~~~~.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합이라." ; 나는 이미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우리가 다론 사람을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또한 개발하여야 한다는 것을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그는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사 실에 비추어 볼때, 우리 모두는그거룩한일치의상칭에 참여하는일에 합 께 하는 것이다• 성만찬에 대한 그의·언급의 두번째 부분인 여기에서, 바울 온성례에서 오칙 다른요소를말하고있으며, 또성경에 대하여 제유법(提哈 法)을 사용하며, 그리고 모든 성만찬을 ‘떠올 때는 일’로 묘사하는 것은 아 주 일상적인 것이다. 나의 독자들은 경험없는 사람들이 소수의 강력한 사기 푼둘의. 불쾌한 제변에 의하여 괴롭힘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으로 부터 겅-고를,J받아~~ 하며 , 바울이 터 만을 언급한 이 후의 결과에 대 하여 그는 성례를 반만 행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려 하였다 •. I'I노 t" i• ’ '" I i _ .,' If .' ·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 바울은 우리를 어떤 결합(sqcie tas)의 형태로 하나님께 동여 매는 것이 모든 종교 의식의 본질이타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론 보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자신을 적 철하게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아무도 회생 제물을 드리논 제사에 참여할f누 없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물론 사제들에 대해서만 꼭·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물에서 남은 것을 먹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아다·~ 이것으 로부터 희생동동물의 고기를 먹는 모든 사람은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의 성전이라고 생각하셨고, 모든 의식들이 시행되는 귀하고 성별된·제단에 .참 여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육신을 따라단"이라는귀철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이스라엘 사람과그 리스도인의 의식들을 비교하려고. 또 우리의 성만찬의 효과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더 높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하여 삽입되었다고.,:;._보일之것이다. 그는 그것 을 이 렇 게 말하고 있 을지 도 모른다. 즉 "만일 옛 상칭 (figuris) 속에 , 또 초기의 훈련의 그런 기초들 속에 그렇게도 많은 능력이 있었다면, 우리 논,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히 그렇게도 풍요하계 계시하신 우리의 성찬 속에 서 더 큰 능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말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로 ,전환한」사람들로부터 율법에 복종하였던 유대인들을 구별하기 위한 것임을 다만一바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 해하는 것은 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또 하나의 대조가 계속 이루어지는데, 이를테면 만일 하나님의 제문 들이 그에 게 예 배하는 자들을 성 별한다면, 다른 한편 우상들에 게 소드려 진 재 물들은 부정을 가져온다 .. 하나님께서, 다만 하나님 한·분만이.-홀로 성별케 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다른 신들은 부정하게 한다. 다시 -만일 믿는 사람들 이 신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천교하고 또 그와 결합하게 된다연, 볼·신자들 온 그들의 미신적인 실행으로 인하여 그들의 우상들과의 교제에 들어가게 된 댜 그러나 이것을 취급하기 전에 사도 바울은 반대가 제기될 문제에 칙떤 할 가능성 (per a11thypophoram) 이 있다.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 얼핏 보기 에 사도 바울의 논증이 사설이 아니거나, 혹은우상이 、어떤 실체와 또 어떤 능력을가진 것으르만들 고 있는것처럼 격보인다. 그리고 이 귀철들에 관한 예의가 쉽게 o~~ 수二 二있는데 ~그것은, -"같아계신 노하나님과 우장들·사이에 어떤 비교가 있는 것인 가? 하나님은 성례라는 방법을 롱하여 ‘우리를'그에게 연합시키시고 있다. 그렇다! 그러나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우상들에게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수 있으며, 그와 같온 일을 할 수 있는능력아 있겠는가?-또 당신은 우상을 어 떤 실촌이라고~정각하며, 토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문제이다 •. i':『
바울은-우상 그 자체에 대하여 ‘쟁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상 에게 재물을 드리는 사람들야마음 자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대 답하고 있다.· d.것은 그가 합축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정의 근원이었다.~ 그러므로 그돈 우상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또한 이방인들 이 엄숙한 헌신 의식에 빠침으로써 다만 오핵하고 있을 분이며, 또 하나님 의 피조물들은 r그런 무..,.익한 일들로 인하여 타락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 다. 그러나이의식들이 미f신으로 가득찬 어떤 것을 목표하고 있는 까닭에, 그래서 정최되었으며,?호 그1모든 과정들이 악하기 때문에, 그것들과 실재 로 연합하는 사람둘온 타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 우리가 그의 대답을더 찰이해하 도록 돕기 :위하여 부장져민 요구들이이런식으로 보충되었다. 즉 “나는 우 상을어떤 것이리타고|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그것이 어떤 능력을·가졌다 고 말하는 것도구아나다. 나는 이방인들이 재사를 드리는 것은 귀신에게 재 사하는것이.31:,--하나님께 네사하는 껏온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 그것이 바로 그둘이 사악하고 불경건한 마신에 그 근원운 두고 있는것이라고'내가 생각하는:이유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일의 위에 승은 그 동기에 주의를니기 울여야한다.
그러므로 그들과 관계를 맺고있는 사람들은, 그가 그들이 하 는 것과 갈은 동일한사악한종교에 참여하고 있다는자실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_7J-i이미'c..시쳇작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만일 우리가 합께 해야할 분이 오직` 하나님o]_었다면, 그 런 것들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법최하는 인간과 관계 되었을 때는, 우상의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둘은 자신을.우상의 ·숭배자 로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들'(daemones)을 이 문맥에서 이방인들의 상상적인 신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후자가 일반적으로. 이런'방 법으로 그둘에 대하여 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귀신들을 의미할 때 신인 (神人)들과 같은 더 작은 신들을 의미하였으며, 또 그 단어는 그들을 위한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플라토(Plato)는 분명히 그것을 많온 천재들과 천사들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 의미는 바울이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 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한 우상 숭배의 표칭이 있는 어떤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십각한 죄인가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 르 그가 하고자 한 것은, 그 속에 포함된 하나님께 대한 무관십을 경시하려 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명예를 나타내는 술어문 최고 성직단의 죄를 감추는 데 사용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선 지자는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그런 일들은 마귀(diahf?lis)에게 제사-~ 리는 것임에 를림없다는 사실(신 ·32 :-17)을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다.
선지 서의 귀철에서, 바울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헬라어 역본에는 ‘마귀 들' (oatµ6끄a : 다이 모니 아) 이 라는 단어 가 있 으며 , 또 성 경 은 그 단어를7 일 반적우르 그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교도의 언어를 흉내내는 것보다 그 악이 얼마나 더 십각하다는것을 지적하기 위하여 바울이 그의 말들을선 지자에게서 빌려온 것은 얼마나 적철한 일이며, 또 바로 그 일이,.가장 무 서운 일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기를 그가 원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 온 또한 얼마나 져철한 일인가 ! ·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상 숭배자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에 바울이 기울이고 있는 관십에 대하여 앞에서 내가 말한 것과 서로 상치되는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마귀들을 섭기려는 뜻을 가전 것 이 아니 라, 그들 자신이 창안하여 낸 상상적 인 신들이 기 때 문이디다.
나는 이 둘사이에 상치되는 접이 없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들의 생각에 있어 매우 무익하게 되어 하나님 한 분에게만이 아니라 오히려 피조물들에 계 경배를 드리계 되었을 때, 그들은 사단의 종으로서의 형벌을 충분히 받 도록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중간 입장에 서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망대(桃望臺)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갈아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는 순간, 사단은 즉각 그들의 경배의 대상 으로 자신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가…윌치 아니하노라. 만일 ‘귀신'이라는 용어가 중립적인 촌재 를 나타냈다면, 사실상 우상 숭배자들을 맹렬하고 업하게 책망하는 때에. 이 문장이 얼마나 무의미하게 되고 말것인가! 그는그의 소망에 대한 이유 를 밝히고 있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아무도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섭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든 거룩한 의식에 있어서 천교의 약속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이 모든 신성 모독에 작별을 고한 후, 오저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과 피의 거룩한 축제로 우리를 인도하신 후의 일이 라는 것을 기여하도록 하자. 하나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하나를 버려 야 한다. 오,! I사람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금지된 미신적 의식 을 행함으로쩌 자신둘을 타락시키기에 주저합이 없는 사람둘은 3중으로 비 참한 운명의 사람들이 아닌가 ! 그들이 이렇계 행동하기 때문에, 그둘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부터 자신들을 철연시키는 책임을 져야 하며, 그리스도 의 구원의 식탁으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 그는 그의 교훈을 이미 제시하였으며, 이제 그는 가장 극악한 최의 일종(一種)인 하나님을 대 저하는 일에 대하여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경시하거나, 혹은 하찮온 결과에 대한 찰못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는 더욱 걱 렬하게 말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 교인둘은 마치 그들 중의 누구도 비판받을 수 없는 것처럼, 숨을 피난처에 대한 구실을 찾고 있으며 그들의 추축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하나i 과 합께 전쟁을 수행한다고 말하고 있는 바울은 아주 옳다.
왜냐하면 하나 닙온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알려주신 모든 일에 우리가 찰 순종할 것 올 우리에게 요구하시며, 그 이상의 것을 결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아 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둘이 결과에 대한 고통도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할지도 모론다고 생각하면서, 그 논쟁을 피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공 개적으로 하나님께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선지자둘이 악 을 선하다 하며 혹암으로 광명 을 삼는 자들을 처 주하는(사 5 : 20)이 유이 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바울은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위 협한 일인가를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이 파멸하는 결과 없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둘이 말하듯이 어떤 인간도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 님과 싸우는 사람은 다만 스스로 파멀을 자초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율 적으로 대적하기를 두려위한다면, 우리는 뚜렷한 최, 곧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어떤 일에 대하여 변명하기를 두 려워하여야 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문제의 일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 인몰이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럽, 하늘로 기어 오르는 것과 갈을 분이기 때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