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사6:9~1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9)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0)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1)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2)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13)
2. 받은은혜
3. 묵상 (Calvin선생주석)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 이 말씀 역시 그 환상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즉 이사야가 그의 진로에서 쉽게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그 환상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 가졌던 그 고집과 반역을 참는다는 것, 그것도 일 년이나 이 년 동안이 아니라 육십 년 이상이나 참아야 했던 것은 넘기 어려운 장애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와 같은 완강 함에 대처할 수 있는 구리벽과 같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사야가 설득력을 거의 나타내지 못하게 될 완고한 사람들과 상관하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경고할 뿐만 아니라 보통 때에는 전혀 없던 일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가 마음을 약하게 먹고 낙심한다거나 사람들의 반항에 굴복하지 말 것을 경고하신다. 오히려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마음으로 나아가며 이러한 성격의 시험을 초월하라고 경고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과에 대하여 미리 그에게 적절한 경고를 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너는 가르쳐도 실로 어떤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한 일을 후회하지 말라. 내가 그 일을 너에게 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르치는 일에 유익이 없다고 해서 그 일을 그만두지 말라. 나에게 순종만 하라. 그리고 너의 수고에 대한 모든 결과는 나에게 맡겨라. 이 모든 사실을 미리 너에게 알린다. 그 결과가 마치 이상하고 예상하지 않았던 그것처럼 너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뿐만 아니라 마치 그는 고의적으로 그들을 비웃기나 하는 것처럼 그들의 맹목적인 고집을 공공연하게 책망하라는 명을 받고 있다. 나의 수고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는 상관이 없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인정만 받는다면 충분하다. 나의 설교가 너희에게는 사망을 가져다 준다 한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는 향기로운 냄새다(고후 2 : 15, 16).
"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분하게 하며(강략케 하며칼빈.사역4)~~~~~~" ; 이 말씀 가운데서 앞에서 한 말씀이 더욱 충분하게 표현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르치는 수고가 성과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하는 교훈에 의하여 더욱 심한 무감각과 고집이 생겨 마침내는 멸망을 당하게 될 만큼 그가 그 백성의 눈을 멀게 할 것을 미리 이사야에게 알려 주시기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이해력을 잃은 그 백성은 멸망할 것이며 구원의 방편은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 선지자의 수고가 유대인들에게는 죽음과 파멸을 가져다 주지만 자기에게는 받으실 만한 제
물이라고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진실로 괄목할 만한 선언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 가운데서 이사야는 장차 :그리스도의 다스림 아래서 성취될 사실을 예고해 줄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영구히 유용한 아주 쓸모 있는 교훈을 그 안에 담기 때문이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스럽게 수고하게 될 사람들은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이와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다. 우리들 역시 우리가 예상하는 이상으로 이를 경험한다. 이는 크리스도의 종 모두가 얻는 경험이다. 그러므로 순전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심히넘기 어려운 장애물이지만 우리는 더 큰 참을성을 가지고 이를 참고 당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족시킬 뿐만 아니라 ,말씀의 사역자들에 의한 그 교훈이 쓸데없는 것이며 손상을 주는 것처럼 사단이 속임으로써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그 교훈을 싫어하도록 강력하게 충동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욱 완고하게 되고 멸망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에도 복음에 의한 교훈을 욕하는 자들은 그 교훈을 전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는 세상이 더 나빠진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결과야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직무가 받음직 한 것이라고 우리를 확신시키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명령을 순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고가 성과 없는 것 같고 사람들은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며 더욱 반항하는 자들이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제안으로 그 무엇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얻지 못할 빼 십히 슬피테야 합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에서 그의 말씀에 효력율 주시모록 기도해야 한다. 성파가 극히 지율 때에 대한 재망의 일부는 우리들 스스모가 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직무를 포기하거나 무기를 던져 미려도 안된다. 진리를 반아들인 귀가 없고 세상은 눈도, 감각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진리는 우리의 입술에 의해서 언제나 전파되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율 위하여 성실하게 수고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봉사가 하나님께시 반으심직한 것으로 만족하여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소리가 세상으로 하여금 핑계탤 수 없게 할 때에 그 음성은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로부터 사람들의 완악한 마읍에서 매일 생겨나는 그 심한 공격에 대항하여 든든한 마음을 갖기 위하여 경건한 교사들을 위한 심히 좋고 가치 있는 위로가 나온다. 이는 그 공격 때문에 방해를 당하는 대신에 요동이 없는 확고한 마음으로 그들이 의무를 이행하는 데 참율성을 갖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그것을 들을 때 온 세상이 무서워 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틴 유익도 없이 사람들의 귀에 무의미하게 둘러진다는 사실 또한 일반적인 범파다. 그러므로 약한 사람들은 이렇게 되지 않도록 본문에 나타난 이 선언으로 마음을 강하게 갖도록 하자. 우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사납게 대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진리를 배격하고도 형벌을 받지 않는지 하나의 의심도 생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경얼감을 일으킬 목적으로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다음 사실로써 부축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이사야는 그가 무리는 생명의 씨앗이 사망의 열매를 맺는 조건 밑에서 가르치는 직무를 받았으며, 이 이야기는 일단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바로 뒤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게 장차 입할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예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사야가 아무에게나 분벌없이 보내진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보냈다는 상황에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지시불변화사 П37(히네 : 보라) 는 강조적이다. 그리고 여호와폐서 자기를 위하여 특별히 대하신 그 백성이 말씀을 듣지 않고극히 밝은 빛 가운데서도 눈을 감았읍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들을 향하여 말할 때 우리
들이 마치 귀먹은 자들을 향하여 말하는 자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귀가막히고 눈이 감기며 마음이 둔해지게 하려고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듣기에 아주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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