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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계시록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

1. 성경 (계3:7 ~ 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7)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8)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9)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0)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13)

 

2. 묵상 (호크마주석)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다. 그곳은 서머나와 루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 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이 잦아 피해가 많았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 작은 아테네'로 불렸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기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B. C. 159-138) 아시아가 이 슬람 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이다(Lenski, Johnson). 한편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단지 암미아 (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룬 듯하다. 이 교회의 성장 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 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하기오스, 호알레디노스'(*)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자, 진실한 자'를 의미한다. '호 하기오스'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나(사1:4; 5:19,24; 10:17,20; 12:6; 렘51:5; 겔39:7; 호11:9; 합3:3)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의 신성과 메시야성을 나타내고 있다(막1:24; 요6:39; 행2:27; 13:35; 히7:26)또한 '호 알레디노스'는 두 가지 의미 를 지닌다. (1)온전하며 충성된 자.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한 충성으로 메시야적 직무를 수행하신 완전한 분이심을 시사한다(Hort) (2)'진실하사'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 나(사65:16)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참된 메시야로서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는 분이시므로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하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언급되었다 (Mounce, Ladd).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 - 본 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22:15-25을 반영한다. 이사야서에서 국고를 맡고 있는 셉나 대신에 엘 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다윗의 집 전체를 관리하는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다윗의 열쇠'는 다윗의 집 즉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서 하나님 나라의 특성인 영생의 수 여권을 시사한다(Ladd, Beasley- Murray).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을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열쇠를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와 들어갈 수 없는 자를 결정하신다(Johnson). 한편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에 대한 해석으로 당시 빌라델비아의 정황을 반영한다. 당시 빌라델비아에 많이 거주 하였던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다윗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 살던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다윗의 열쇠를 가진이'라고 계시한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선민의식에 대한 반론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천국의 주권을 가진 메시야이심을 강조 함으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위로하신 것이다(1:18; 마28:18; 엡1:22; 히3:6).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 '열린 문'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남북으로 로마와 소아시아의 수도 에베소를 연결하는 빌라델비아의 지리적위치 때문에 이를 '선교의 문'으로 해석한다(Ramsay, Swete, Alford, Clarke, Charles, Holtzmann). (2)혹자는 '그리스도의 문'이나, '기도나 순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집접 나아가는 길'로 해석한다(Kiddle, Moffatt). (3)혹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문'으로 해석한다(Ladd, Zahn, Rist, Beckwith). 이 가운 데서 세번째의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12절과 본서의 종말론적(終末論的) 성격으로 볼 때 그리 스도께서 열어주신 구원의 문을 닫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칭찬하신 내용이다. '적은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크 란 에케이스 뒤나민'(*)은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로 그 지역에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 등의 외적 능력이 변변치 못함을 나타낸다. 한편 '지키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에테레사스'(*)는 반의적인 강조 표현으로 문자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켰다'를 의미한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유대인들이 가하는 시련과 온갖 유혹 가운데서도(9절) 진리의 편에 굳게 서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 았음을 시사한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 - 빌라델비아 교회가 처한 문제는 외적인 황제 숭배나 핍박같은 것도 아니었고 부도덕하게 혼합주의로 이끌어가는 이세벨주의나 니골라당 같은 내적 문제도 아니었다. 그들이 처한 위기는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핍박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은 혈통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나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정함으로 사단을 추종하는 자들 즉 '사단의 회'가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유대인이 혈통과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이면적(裏面的)인 것임을 망각하였다(롬2:28,29).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 -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들이 자신들에게 찾아와 굴복한다고 믿고 있다(사45:14; 60:14).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믿는 바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내면적인 유대인이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와 굴복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에 대해서 혹자는 유대인들의 회심이라고 해석하나(롬 9-11장, Ladd) 문맥상 본문은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부인하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심을 나타낸다(Johnson, Mounce). 그리스도께서는 예수의 메시야성을 부인한 혈통적 유대인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셔서, 이면적이고 영적인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굴복케 하심으로 메시야이신 당신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드러내신다.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 - '나의 인내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인 내함으로 그리스도의 마지막 재림을 기다리라'는 명령으로 해석한다(눅21:19; 히10:36, Lohmeyer, Vincent, Zahn).

(2)혹자는 '인내로써 죄많은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한다(살후3:5; 히12:3, Johnson, Charles, Ladd, Alford, Moffatt).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 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 - '시험의 때'에 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혹자는 빌라델비아 지역에서 교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개인이 혹은 교회 공동체가 겪는 고통으로 해석한다(Payne).

(2)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Mo-unce, Johnso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시험의 때'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면하게 하리 니'와 상관 관계를 형성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면하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레소에크'(*)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요17:15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 '...중에서 밖으로')가 사용된 것은 환난 가운데서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현재 처하고 있는 고통에서 보호받게 될 것을 말한다고 해석한다(Charles).

(2)혹자는 약1:27의 용례를 들어 전치사 '에크'를 '아포'(*, '...로부터')의 의미로 보아 환난에서 떠나 보호를 받는 것으로 해석 한다.

 

따라서 이는 장차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환난 그 자체에서 제외된다는 입장으로 해석한다(Moffatt, Rist).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험의 때'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Johnson).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단의 역사로 인한 고난은 받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는 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장차 온 세상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 - 본문은 앞서 언급된 '시험의 때'에 대한 보충문이다. 본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교회를 대적한 비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6:10; 8:13; 11:10; 13:8,14; 17:8). 그러기에 본절의 '시험할 때'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 모두가 당하는 일반적인 환난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의 때 를 가리킨다.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 - 본문은 본서의 중심 사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1)심판의 측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악한 자들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목적으로 한다(마24:48-51; 살후1:7-9). 이는 에베소 (2:5), 버가모(2:16) 및 사데 교회(3절)에 임하신 모습이다. (2)축복의 측면. 본문에서는 심판의 경고가 아닌 충성된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향한 축복의 재림의 약속을 나타낸다(2:16; 22:7,12,20, Johnson).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 '굳게 잡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는 현재 명령형 시제로 이제까지 빌라델비아 교회가 지켜온 믿음을 더욱 지속적으로 공고히 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편 '면류관'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경기장에서 선수가 상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히12:1-4)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지속적으로 영적 무장을 통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인내의 말씀을 지켜 승리해야 함을 시사한다('면류관'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 - 본문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성전기둥'을 비유로 하고 있다. 당시 빌라델비아는 잦은 지진으로 건물들이 폐허가 되었으나 파괴된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전의 돌 기둥뿐이었다 (Ramsay, Johnson). 지진과 폐허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신전 기둥을 본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 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은 승리자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하고 요동치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렘1:18; 딤전3:15, Charles, Mounce, Ladd).

 

"내가...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 본문은 빌라델비아 교인들 중 승리자에게 주어진 두번째 약속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 종류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름을 부여받는 것은 당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있어서 친숙한 것이었다. 빌라델비아는 지진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을 때 티베리우스 (Tiberius)의 도움으로 재건된 후 '네오가이사랴'(Neocaesarea)라는 이름을 부여받았고 후에 베스파시안 (Vespasian) 황제의 성을 따라 '플라비아'(Flavia)로 개명되었다(A.D. 70-79). 이러한 경험을 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름을 부여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1)하나님의 이름." ;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졌다(민6:27).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나타낸다(22:4, Ladd, Morris, Johnson).

 

"(2)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 ; - 하나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소유함을 시사한 다(Mounce, Ladd,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것으로(빌3:20) 그때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주할 것임을 암시한다.

 

"(3)나의 새 이름." ; - 그리스도의 새이름이 주어진다는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 곧 다른 모든 권세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력과 인격 그리고 성품을 나타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이긴자들에게 주어짐을 의미한다(19:12, Mounce, Morris, Beasley Murray, Ladd).  다른 하나는 구속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음을 나타낸다(사62:6; 65:15, Johnson).

 

"13.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 2:7절 주석을 참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