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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계시록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2:15)

1. 성경 (계2: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2)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3)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4)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5)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7)

 

2. 묵상 (호크마주석)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 '버가모'는 서머나 북쪽 약 100km되는 곳에 위치한 수도로 주전 130년 경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은 에베소와 서머나가 상업적으로 아시아의 중심 역할을 한 반면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아시아의 중심부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의학교가 있었으며 장서 20여 만권을 소장한 도서관이 있었으며 책을 만드는 종이인 양피지의 생산지였다. 종교적으로 치료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아에스쿨라피우스'(Asclepius)라 불리는 뱀신과 주신인 '제우스'(Zeus), 그리고 아테네 신전 지도자 '디오니소스'(Dionysos) 등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지였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  - 본문은 버가모 교인들에게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1:16의 반복이다. '검'은 권위와 능력을 가진 심판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버가모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과 니골라당을 대적하여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16절, Mounce, Lenski).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  - '네가 어디 사는 것'은 단순히 버가모 교인들이 버가모에 살고 있는 것을 안다는 의미보다 버가모 교인들이 지금 처하여 있는 어려움을 안다는 의미이다. 버가모가 황제 숭배와 온갖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고난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심으로 위로하신다. 한편 '사단의 위'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버가모 지역의 대표적인 우상 신전 중 특별히 제우스 제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Deissmann). (2)혹자는 버가모 도시 자체가 언덕처럼 생겨서 평원 위로 솟아오른 모습이 하나의 제단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본다(Wood). (3)혹자는 버가모가 이방신과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Johnson, Mounce, Alford). 세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사실상 버가모는 황제 숭배를 비롯한 모든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 '굳게 잡아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라테이스'(*)는 '크라테오'(*, '붙잡다')의 현재 능동태 시상으로 '계속해서 굳게 잡았음을 의미한다(25절; 3:11). 따라서 이것은 여러 가지 우상과 황제 숭배의 강요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에는 고난과 순교 가운데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은 한 사람 안디바를 제시한다. '안디바'(*, 안티파스)는 '모든 것에 대적하는 자'란 의미로 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뉜다.
(1)이름의 의미 자체가 밝히는 것처럼 어느 개인이 아닌 당시 순교자 전체에 대한 지칭이다. (2)당시 버가모에서 최초의 순교자든지 아니면 위대한 어떤 순교자를 지칭한다. 두 가지 추측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터툴리안은 '안디바'가 버가모 교회의 명성 높은 감독으로 황제 숭배 거절로 인해 불에 타 순교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Moffatt).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 본문은 버가모 교회가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으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지만 반면 부분적으로는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6절). '발람'은 어원적으로 '백성을 정복하라'는 의미의 '니골라당'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6절 주석 참조).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  - 분문은 버가모 교인들이 따랐던 발람의 교훈에 대한 설명이다. 발람의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이방사람들 잡혼(雜婚)을 하게 하고 우상 숭배하는 일에 타협케 한 것을 가리킨다(민22-25장; 31:8,16). 발람은 발락의 청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정면으로 저주하지는 않았으나 모압 여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유혹하게 하여 음행케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 수만명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게 하였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벧후2:15; 유1:11), 혹은 유대 역사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다. 이처럼 당시 버가모도 특히 우상 숭배가 많은 지역이었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형식으로 세상과 타협하였다. 따라서 본문은 버가모 교인들이 우상 숭배에 동참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혼합화된 현상은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Bousset, Plummer, Johnson, Charles, Kiddle).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  - '이와 같이'는 앞절에서 언급된 발람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언급되는 '니골라당의 교훈'과 '발람의 교훈'이 동일한 것임을 암시한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  - 본절은 발람의 교훈과 동일한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져있는 버가모 교인들에 대한 권면과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생겨날 일에 대한 경고이다. 그 권면은 '회개하라'는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회복할 것을 의미한다. 만약 회개하여 신앙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심판이 임하게 된다.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에서 '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르코마이'(*)는 미래적인 현재 중간태 시상으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임하고 있다는 현재성과 김급함을 나타낸다(5절; 3:11; 11:14; 22:7,12,20, Johnson). 한편 '내입의 검'은 '심판의 말씀'을 의미한다(19:15). 마치 하나님이 발람의 추종자들을 칼로 심판하셨던 것처럼 (민31:8) 우상이나 황제 숭배와 타협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심판하실 것임을 시사한다(엡6:17; 히4:12).


"17절". 본절은 권면을 듣고 그대로 행함으로 신앙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어진 약속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  - '감추었던 만나'는 후손들을 위해 언약궤 안에 두었던 만나 항아리가(출16:32-34; 히9:4)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될 때에 예레미야 혹은 천사에 의해 감추어졌다가 장차 메시야 왕국에서 공개 된다는 유대 전설을 반영한 것으로(마카비하2:4-6; 바룩29:8) 이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만나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지할 삶의 능력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Swete). (2)혹자는 '감추었던'이란 말은 이 세상에 없고 하늘에만 있다는 의미로 보아 하늘에서만 먹는 양식으로 해석한다(Meyer). (3)혹자는 '감추었던 만나'는 신령하고 참된 양식으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를 통해 주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Greijdanus, Charles, Johnson, 요6:33,39,48).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즉 '감추어진 만나'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마찬가지로(7절) 하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나라에서 주실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Beasley-Murray).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 승리한 버가모 교인들에게 두번째로 주어질 것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이다. 여기서 '흰'것과 '새'것은 장차 천국에서 맞게 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서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1:14; 3:4,5,18; 4:4; 6:2,11;  7:9,13,14; 19:11,14; 20:11; 21:1,2,5 Trench, Charles, Plummer). 이 '흰 돌'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1)혹자는 '흰 돌'을 이방의 미신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황제 숭배 사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해석한다(Moffatt). (2)혹자는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것처럼 하늘에서 내린 흰
돌로 본다(Rist). (3)혹자는 당시의 풍습에서처럼 재앙을 막기 위해 사용한 흰 돌에다 알 수 없는 이름을 새겨 넣은 것으로 본다(Holtz- mann). (4)혹자는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들이 사용한 무죄 표시의 흰 돌로 해석한다(Clarke, Bengel). (5)혹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인 보석으로 본다(Trench). (6)혹자는 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우승의 기념으로 새겨 주었던 흰 돌로 본다(Zahn).(7)혹자는 연회장에서 초대의 표시로 사용한 흰 돌로 본다(Plumptre, Johnson). 이 가운데서 여섯번째와 일곱번째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흰 돌'은 하나님 나라에서 신앙의 정절을 지킨 승리자에게 주는 상급이며,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케하는 상급이다. 한편 '새 이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해석한다(Kiddle, Lohmeyer, Rist). (2)혹자는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상태에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Beasley-Murra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Johnson). 즉 세상에 감추어져 있으나 장차 드러나게 될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든지(3:12; 14:1), 아니면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이름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