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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

1. 성경 (요 10:19 ~ 30)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19)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0)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21)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2)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3)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5)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6)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7)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8)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29)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0)

 

2. 묵상 (Calvin선생의 주석 요약분)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 그리스도의 설교는 그에게 몇 명의 제자를 구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에 대적하는 원수들도 있었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서 지금까지 교회의 한 몸에 속해 있던 것처럼 보이던 무리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한가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나서자 그들은 서로 이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순수한 것이었다면 그리스도는 그들의 공감하는 바를 둘로 나누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가장 튼튼한 사랑의 띠이며 그의 직분은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복음의 광채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하면서 거짓된 가면을 쓰고 있던 많은 위선자들의 위선을 폭로해 버렸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이들의 위선과 죄악은 교회가 분쟁으로 나뉘고 논쟁이 난무하게 되는 원인이다. 그러나 평화를 깨뜨리고 혼란을 야기시키는 자들은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우리를 분리주의자라고 부른다. 우리는 교회가 내부 분열로 찟기어 있는 것을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 그러나 몇 몇 신자가 경건치 않은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그들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경우도 있다. 거기 남아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에 공감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일이다. 그러므로 분리에 관해서 유의해야 할 점은 하나님과 그의 순전한 교훈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냐 하는 것이다.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 그들은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비난으로 그리스도를 중상모략하여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듣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막기위해 경건치 않은 자들은 그들의 눈을 감고 맹렬한 분노를 터트려 거만하게 그리스도를 헐뜯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같은 분노를 느끼게 했고 그리함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한 마디도 조용히 들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이를 중상모략하는 자들을 막아낼 만한 힘을 그 자체 안에 가지고 있다. 믿는 사람들이 “이는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고 말할 때 그들의 뜻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사실 그 자체를 놓고 판단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 주고 변호해주는 한 가지 사실은 경건치 않은 자들이 복음에 빛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 ; 다시 말해서 “쇄신” 또는 “갱신”의 절기였다 더럽혀진 성전이 유다 마카비우스의 명령에 따라 다시 정화되었다. 그리고 나서 이 새로운 봉헌은 연례적인 절기로 지키기로 작정되었고 안디오커스의 폭정을 종결시켜 주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기념일로 지키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평상시와 같이 성전에 나타나셧다. 그의 말씀이 큰 무리 중에서 더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 사도 요한은 이를 성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성전에 붙은 별관 이었으며 성전 자체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갈대아인들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던 솔로몬이 건설했던 옛날 행각을 말하고 있지 않고,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오자 마자 옛날 행각의 모형을 따라 중건하고 같은 이름으로 불렀던 그 행각을 말하고 있다. 그 후에 헤롯이 새 성전을 건축했다.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밝히 자유롭게 확실하게 자신을 선포하라고 요구할때 그들은 더 이상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일을 그만두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이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명백한 것이엇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귀를 틀어막은체 주님의 가르침의 내용이 모호하다고 송사했던 것이다. 이제 이 이야기는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악한 자들의 간계와 중상모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같은 일이 주님에게 있엇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들이닥칠 때 눌라서는 안될 것이며 이러한 일에 대비하여 스스로 경계해야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주님께서는 자기가그리스도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에게 하시는 것 같이 그들에게 가르치지도 않으신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의 완악함을 책망하고 계신다. 그것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일을 통하여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그것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도다” ;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목표하는 바에 유의하여야겠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교회로 자부하고 잇었기 때문에 그들이 믿지 아니함이 복음의 힘을 약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주님께서는 믿음이 특별한 은사라고 확언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알려하면 ,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갈4:9) 먼저 하나님께 알려진 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하나님은 자기가 택한 자들을 헛되이 부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양은 그들의 믿음에 의하여 증명되기 때문이다.  과연 믿는 자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목자장의 손에 다스림을 받으며 처음의 난폭함을 버리고 온유하게 인도함을 받기 때문에 양이라고 불린다. 비록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경청하지 않늗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자기가 아는 그리고 주님 자신에게 알려진 양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경건하게 주님을 섬기는 교사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이들은 온 세상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확신 가운데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은 믿음의 가장 가치있는 열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근거 위에서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 근거는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신실하게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듯이 주님께서는 양들이 아버지의 권능에 의하여 안전하게 보호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귀절은 모든 택한 자들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 만큼이나 확실한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귀절이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았을 수 없느니라”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은 결코 원수들이 노략질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장중에 보호하시며 그의 절대적인 능력으로 지키시기 때문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데” ;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본질의 연합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와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와 일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의 능력에 의해서 확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