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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요한복음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요20:8)

1. 성경 (요20 : 1~ 10)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2)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3)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4)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5)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6)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7)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8)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9)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10)

 

2. 묵상 (Calvin선생 주석 요약본)
”1 안식 후 첫날” ;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제일가는 신조요 그것이 없이는 영생의 소망도 없어지므로 복음서 기자들은 이 점을 입증하는 문제에 있어서 더욱더 적극적이다. 사도 요한은 더 중요한 증인들을 제시하지 않고,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히나님께서는 세상에 약하고 어리석으며 멸시받는 자들을 선택해서 육신의 지혜와 권력 그리고 영광을 뒤엎으신다(고전1:27)”라는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  요한이 여기서 고의적으로 자기의 나머지 동료들을 생략한 것은 오직 자기와 베드로만 무덤에 가 보았기 때문이다.

 

“3 베드로와 ~~~~가 나가서” ;  어느 정도의 신앙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이 당분간 재속에 묻힌 불같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은 선택자들을 상대로 은밀하게 일하시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우리가 보는 열매가 맺혀진 것은 숨은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해야겠다.  그들에게 있던 이 신앙심이 비록 많은 미신과 혼합되어 있었다 해도 내가 이것을, 물론 부정확한 표현이지만,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은 오직 복음의 가르침에 의해 생성된 것이요, 그것의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씨앗에서 마침내 무덤을 떠나 그리스도의 하늘의 영광을 따라 승천하는 참되고 진실한 신앙이 나왔다. 성경은 초보적인 신앙을 말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태어나시고 우리는 또 그분 안에서 태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모르고 있는 한 어린아이의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들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배안의 아기처럼 양육해 주신다. 이전 단계에서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았으며 어느 정도 진전을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에 그들은 매우 연약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다시 출생되어 재형성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의 교우들을 상대로 말한 그대로이다(갈4:19). 베드로는 천천히 달려갔지만 무덤에는 먼저 달려갔다. 여기서 우리는 처음에 눈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중에 부여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사실 처음에는 더없이 열성적이지만 정작 결전의 마당에 들어서면 넘어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게으르고 나태하게 여겨졌던 사람들이 정작 위험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 용감하게 나서는 사람이 있다.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 이 세마포는 말하자면 허물과도 같았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그의 몸이 이 옷을 벗고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8 보고 믿더라” ;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것을 여러번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들었지만 그것을 모두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새로운 광경을 보고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때 그들에게 신앙에 대한 순수하고 명백한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를 보고서야 믿고 있노라고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

 

”10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 본질적인 신앙은 보는 것만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육적인 마비 상태에서 좀 더 충분히 깨어나기 전에는 자신을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으셨다. 물론 그들이 서둘러서 무덤으로 달려간 것은 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가리워진 것은 그들이 그를 너무 미신적으로 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