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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vin선생주석/마태복음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마17:23)

1. 성경 (마17:22~27)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2)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3)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4)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5)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6)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27)

 

2. 묵상 (Calvin선생주석 + 박윤선박사 주석)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  그의 죽음의 시간이 가까와 오면 을수록 그리스도께서는 이에 관한 슬픔이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더 자주 제자들에게、경고의 말씀을 해 주셨다. 본문의 말씀은 앞에서 논한 기적을 행하신 직후에 해 주신 것이었다. 마가는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조용히 쉬시기 위해 그 곳을 떠나셨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은 다가오는 유월절에 회생되실 예정을 하고 계셨으므로 이 엄숙한 제사드리는 날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것을 작정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이 사실에 관하여 수 차 경고를 받았었지만 이 말씀을 한 번도 듣지 못한 것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추상적 관념은 그들이 극히 밝은 빛 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그들의 마음을 다른 데로 이끌어가고 어둡게 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나라는 즐겁고 기쁠 것이라고 상상했으며 이 나라가 선포되면 즉시 모든 사람들이 큰 환호로 이를 영접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이 나라를 적대할 것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 그릇된 생각이 마음 속에 확고하여 이에 반대되는 말씀은 무엇이건 배격했다.  마가는 주님께서 의미하신 바를 사도들이 알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 그처럼 공개적이고 명백하게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이 가진 공허한 망상이 그들의 마음에 휘장을 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무지한 자들이 되고 있지 않았던가? 그들이 감히 더 묻지 않았던 이유는 주님을 향한 공손한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슬픔에 사로잡혀 말을 하지 못했음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생각해 낸 불합리한 마음에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그들의 우유부단한 마음은 전혀 칭찬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이 감정은 당황 중에 있는 그들의 의심과 그들이 지닌 그릇된 슬픔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학교로부터 도망쳐 나가지 않게 된 것은 그들이 진리에 대한 어떤 선명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잠재적인 경건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그들의 아음 속에는 신앙의 발단과 진리에 대한 약간의 이해는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그들의 열심은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이 가진 맹목적인 신앙과는 달랐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본질과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회복의 성격을 아는 데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고, 때문에 그들은 명확한 지식보다는 경건에 대한 의욕을 더욱 갖고자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볼 때 그들에 대하여 무엇을 칭찬할 것이며 무엇을 책망할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핑계할 수 없는 것이기는 했지만, 주님의 십자가와 그 치욕에 대한 선명하고 분명한 선언이 그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사실에 관하여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이같은 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 배척을 당하고 정죄되신다는 사실이 그의 영광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은혜가 이방인들 때문에 상실되어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욱 불합리한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갑자기 사로잡았던 십자가에 관한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 부활의 소망에서 얻게 되는 위안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관한 말씀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부활까지의 만 삼일이 언급되어야 그의 죽으심과 무덤이 우리를 복된 승리와,새로운 생명으로 이끌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박윤선박사 주석]

마 17:22,23

   여기서 다시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자기의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일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 이유는, 이 사실을 미리 말씀해 두어야 그 일이 이루어 질 때에  제자들이 너무 놀라지 않게 되고 또 조만간 믿음을 가지게 됴겠기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하여 그가 이렇게 미리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으니(막9:32), 그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시므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줄은 아직 알지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성경을 잘 알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심히 근심하더라.- 제자들이 근심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께서 이 세상의 권세를 가지시고 왕국을 세우실 줄 알았다.

 

  마 17:25

  관세와 정세 - '관세'는 소유세요, '정세'는 인구세이다.

 

  마 17:26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성전세를 면할만하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것이다.

 

  마 17:27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남들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고 당영히 쓸  권리도 양보할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다.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이것은 물론 이적이다. 이 이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연계의 천태만상과 그 동정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신 것이 확실하다. 그는 한 세겔의 돈을 입에 먹은 고기를 아셨다. 또 그 뿐 아니라 그는 그것을 베드로의 낚시에 첫번에 걸리게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옛날에 보물이 고기 뱃속에서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헤로도터스(Herodotus)가 말하기를, "폴리크라테스(Polycrates)의 가락지가 고기 뱃속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였다.(Herodotus lV. 42) 그러면 고기 입에 한 세겔 돈이 물리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고기를 아신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가지신 전지하신 성품이시고, 그 고기가 베드로의 낚시에 첫째로 잡힐 것을 보장하신 것은, 고기들도 주관하시는 그의 (예수님)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시다.그러나 비평가들은 이  말씀에  대하여  몇가지  그릇된  설명을  던진다.

 

(1)파울루스(Paulus)는 이 기록에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27절)이란 말을 억지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곧. 베드로가 그 잡은 고기를 가지고 팔기 위하여 이(베드로의  입)을  열어 "사시오! 사시오"하면 그 고기가 팔려서 한 세겔 돈이 수입되리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귀절의 문구를 너무도 무시하는 그릇된 해석이다. "입을  열면'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아노익사스 토스토마 아우투라고 한다. 이것은 '그것의 입을 열면'이란 말이니 곧, 고기의 입을 열면이란 말이다. 파울루스는, 여기 "그것의란 말을 억지로 내어버리고 이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2) 스트라우스(Strauss)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고기가 낚시를 물어채기  위하여 입을 열 때에 그 본래 물고 있던 한세겔 돈은 떨어졌을 터인데, 어떻게 마태의  이 기록은 그 돈이 그 고기 입에 있었다고 하는가? 이것은 모순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기의 생활과 습관을 너무 간단하게 추측한 말이다. 우리는 베드로가  잡은 고기가 얼마나 큰지도 모르며 그 입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도 모른다. 이  돈을 입에 물었던 고기가 낚시를 물 때에는, 그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증할 자  누구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