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마19:13 ~ 15)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4)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15)
2. 묵상 (Calvin선생주석)
이 이야기는 매우 유용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의욕을 갖고 신앙에 움직여 자발적으로 찾아온 자들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가 필요함을 깨달을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영접하신다는 사실을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주님의 축복을 구하는 철이 아직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데려 왔을 때 주님은 그들을 친절과 사랑으로 영접하셨으며 엄숙한 축복의 의식으로 그들을 아버지께 성별시키셨다. 우리는 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왔던 자들의 목적을 알아야 하겠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부어주실 성신의 능력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들이 마음 속으로 확신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자기 자녀들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어린이들이 그 은혜 중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구하고 있었음에 의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역시 (한굴 개역 성경에는 이 말이 명기되어 있지 않음; 훈정역. 눅 18 : 15 참고)라는 부사를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주님께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성인(成人)들을 돕고 계시는 것을 안았을 때 그들은 자기 어린이들을 위해 주님이 안수를 해주시기만 하면 성령의 어떤 은사를 반드시 받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안수는---성겅의 다른 구절을 해설할 때 말한 바와 같이-----유대인들 중에 옛날부터 있었던 잘 알려진 축복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엄숙한 의식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도록 그들이 요망한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복을 내리는 법이므로 (히 7:7) 그들은 지극히 늪온 선지자가 가진 권한과 존귀를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것이다.
"13. 제자들이 꾸짖거늘~~~" ; 예수님의 머리 위에 면류관이 씌워져 있었더라면 제자를은 사실을 사실때로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직무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어린이들을 영접하시는 것은 그의 위엄을 고려할 때, 옳지 않은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들의 과오에도 변명은 있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선지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가 어린이들과 무슨 관계가 있으시단 말인가? 그러나 이 사실은 그들이 육신의 생각대로 그리스도를 평가하여 잘못 판단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제자들은 계속적으로 주님에께서 그의 참된 자질을 빼앗고 다른 자격을 드리고 있다. 이 다른 자격이란 그에게 존귀를 드리는 것처럼 보여지나 전혀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닌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공적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제시하는 실로 많은 미신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것 이외의 그를 생각해서는 안되며, 아버지께서 그에게 맡기신 역할(personam) 이외의 것을 그의 역할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황의 치리 하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볼 수가 있다. 그들은 한 조각의 떡덩이 앞에 엎드리는 것으로 그리스도께 큰 존귀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앞에서 이 행위는 구역질 나는 가증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중보자의 직무를 가지시는 것이 그에게 존귀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무수한 중보적 후원자들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중보자의 영광을 빼앗고 있다.
"14.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 주님은 자신이 어린이들을 영접하고 싶으심을 증거하셨고 그들을 팔로 안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 게 안수하심으로써 축복하시기까지 하셨다. 이 사실을 볼 때 ·주님의 은혜는 이 연령의 사람들에게까지 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아담의 후손 전부가 사망의 형벌 아래 갇히게 된 경우에 구원자가 구원을 시키신 자들을 재외하면,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멸망을 밭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사실온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구속의 은혜로부터 이 연령의 사람들을 배제한다는 것은 매우 잔인한 처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세례파 사람들을 향하여 이 변명을 내세우는 것은 사려없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이 세례의 신비로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유아세례를 부인한다. 우리는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세례는 값없이 주시는 사죄와 양자됨의 서약이며, 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자기 아들의 피로 씻어주실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례는 회개와 새 생명에 대한 표라고 그들이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쉬운 해명이 있다. 어린이들은 그들의 연령에 따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새로와진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되면 그들 속에 숨기어 있는 이 신생의 능력은 증가되며 볼 수 있도록 현저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양자됨의 후사가 되는 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인들에게 있어서 이는 그러하다고 우리는 증언한다. 그러나 이 원칙이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된다면 본문 말씀은 거짓된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 안수는 경솔하거나 공연한 어떤 것의 상징은 아니었으며, 그리스도는 텅빈 공중을 향하여 기도를 쏟아 놓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어린이들을 하나님께 엄숙하게 바치셨던 것은 그들에계 정결을 끼쳐주신 것이었다. 주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너로 받아들여지기를 위한 것외에 무슨 목적 이었겠는가? 이 사실들을 볼 때 이 어린이들은 구원의 소망을 갖고 성령에 의하여 새로와져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가 그들을 안으신 것은 그들을 자기의 양들로 인정하신다는 증거였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 어린이들이 세례가 상징하고 있는 영적 은사들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다면 그들에게서 외적 표징을 빼앗아버리는 것은 합당치 않다. 주님께서 가슴에 안고 양육하신 이 양들을 그들의 우리로부터 몰아내고 찾아오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셨던. 그들을 별도의 사람들로 여겨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버리는 행위는 신앙심이 없는 오만한 행위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이 말씀으로 주님은 어린이들과 그들을 닮은 자들을 한 군데 포함시키고 계신다. 재세례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다. 오히려 어린이들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본문의 경우에 있어서 주님은 자기 제자들이 악의와 교만을 버리고 어린이의 본성을 덧입으라고 귄면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마가와 누가는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한굴 개역 성경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갈이 받둘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로 되어 있음)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이린 아이가 되라"(고전 14 : 20)는 바울사도의 권면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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