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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주석/사사기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삿6:40)

1. 성경 (사사기 6:33 ~ 40)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3)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34)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35)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6)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7)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8)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39)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40)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삿 6:33-35

  미디안과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에 기드온은 구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구원 운동은 영적으로 올바른 순서를 취하였으니, 곧 이스라엘의 육신 구원 운동보다 먼저 자기 가정에 종교 개혁을 가져온 것이다(25-32).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러 가기 전에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 것과 같다(출 4:24-26).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 (34절) 여기 "기드온에게 강림"이란 말은 기드온을 옷 입혔다는 뜻인데, 곧 성령이 기드온을  완전히 점령하셨다는 뜻이다. 대상 12:18; 대하 24:20; 눅 24:49 참조.


   모여서 그를 좇고... 모여서 그를 좇고 - (34,35) 여기 이른 바 "모여서"란 말은 "전쟁에 불려움"(called to battle)을 가리킨다.(Burney). 이 때에 전쟁에 불려운 자들은 다 기드온의 보낸 사자들을 좇아 그에게로 집합 되었다. 우상주의가  팽창하던 그 때에 이같이 순조롭게 하나님의 종을 중심하여 모이게 된 것은, 기드온에게 충만히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강단을  맡은 종들이 먼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말씀을 선포할 때에 뭇심령은 그리로 모여든다.


  삿 6:36-39

  기드온이 다시 하나님께 표적을 구하였는데 그것은 아직 그의 믿음이 약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장점도 알려진다. 그것은, 그가 그 전쟁에  하나님만 믿고 나서겠다는 결심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 청원은 의심이 아니고 그의 육적 심리의 연약을 고치기 위하여 초자연적 표적을 요구함이다. 이렇게 더 잘 믿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간섭으로써 그의 믿음을 견고케 해 주신다.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  (37절)  "이슬"은  성경에서  생기와  위안을  주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능력을   상징한다(Delitzsch). 이 때에 기드온의 기도대로 이슬이 양털에만 흠뻑 내리고 그 주위의  땅에는 전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이스라엘에게만 주시고 그  때 다른 나라에는 주시지 않을 것을 상징한다.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 (39절) 곧, 이스라엘은  약하고 힘도 없는데 주위의 다른 나라들은 강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행사였다. 사실상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 때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고(3:9, 15, 4:3, 6:7), 그는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기드온의 표적을 구한 기도는 잘못일까?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의 기원은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아보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2) 표적을 보고자 하는 그의 기원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 그의 기원이  허망(虛妄)이 아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기적으로 응답해 주신  사실이  증명한다. 이와 같은 기적적 역사는 사람마다 기대할 것이 아니다.

 

(4) 그의 기원의 목적은 하나님의 존재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받은 사명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얻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계시 시대(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일어나던 시대)에는 신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신 일이 있었다. 그가 히스기야왕에게 나타내신 기적도 그와 같은 것이었다(사 38:7-8).   이적은 비교적 드물다. 특별히 교회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다.

 

만일 이적이 흔하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생긴다.

(1) 사람의  뜻대로  이적이 얼마든지 나타난다면 그것은 이적이 아니고 상칙(常則)이 됨.

 

(2) 이적이 흔하게 되면 인간의 고난이 적어질 터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이 아님. 죄 많은 이 세상에 고난이 적으면 공의(公醫)의 법에 맞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이적으로 인하여 고난이  적어지면 신자의 신앙 인격이 연단 받을 기회가 별로 없게 된다.

 

(3) 게으른 인간들은 무슨 일이나 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여 욕심으로 구하게 됨. 욕심과 허영으로  기도하는 것은 응답을 받지 못 할 뿐 아니라(약 4:3), 마귀가 틈 탄다. 하나님의 기적은  결단코 인간의 게으름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진실인데 그 진실은 노력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은 영적 이적을 많이 행하시기 원하신다. 영적 이적은 그가  말씀을  가지고 성령으로 은밀히 사람들의 심령 속에 역사하여 그 심령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몸보다 영혼을 더 사랑하시는 참되고 영원하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