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로마서 4:1~13)
사람이 어떠한 일을 한 후 삯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을 은혜로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왜냐하면 받을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어떤 사람을 그 누가 살려주었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저히 자기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행하므로 써 그 행함에 대한 대가로 의로 여김을 받았다고 하면 그것을 당연시 하게 되며 전혀 은혜로 여기지 않게 될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율법을 행함으로써 의로 여김을 받고 구원에 이른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에 결연히 그것이 아님을 로마서를 통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설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여러분 의롭다는 말은 사람에게 결코 적용될수 없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아주 잘 나타내어 주고 있습니다. 잠시 성경을 보겠습니다
“성경을 읽는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밭의 채소를 헤아리면서 까지 십일조를 드리면서 보다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예수님께서는 질책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자라면,
무엇인가 행하고 그 대가로 의로 여긴바 되지 않음을 아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데반 집사를 기억 합니까 사도행전7장에 보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돌로 처 죽임을 당하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 하는 모습을 봅니다 당시의 바울은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 표를 던졌고 스데반 집사가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 하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당시의 사울의 눈과 마음이 되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습니까?
스데반 집사와 같은 눈과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누가복음 18장9절로부터 14절에 언급된 바리새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혹시 멸시의 눈으로 증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데반 집사 처럼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바리새인이 불의 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더 의롭다고 말씀 하셨지 바리새인이 부의 하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과 연결하여 보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잇습니다.
즉 믿음과 행함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여기에 성경을 잘아는 것을 합하여 지,정,의 곧 신앙의 3요소라 합니다.
여기서 잠시 신앙의 삼요소를 설명하면
지는 지적인 요소를 말 하는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정은 정적인 요소로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남을
체험하는 믿음을 말 합니다
의는 의지적 요소인데 행하는 것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기도를 통해서 체험 하였으면 세상에 나아가서 하나님 말씀데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여러분은 신앙의 삼요소인 지,정,의를 꼭 실천 하시기 바랍니다
당시의 유대교를 믿는 자는 모두 율법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보면 베드로까지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백안시하는 율법주의자들의 노선을 밟은 것을 보고 바울사도가 강하게 면박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강하게 설파하는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화를 들면서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늘날 회교, 유대교,기독교의 3대 종교에서 추앙 받는 인물입니다 그야말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고 생각 하십니까? 우리 잠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성경을 봅시다 창세기 15장 1절로부터 6절입니다
성경을 읽는다
75세에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한 가나안에 이르지만 기근으로 사람이 살 수가 없었어요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바로왕이 사래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자기의 아내로 삼고자 합니다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이 말씀을 미루어 보면 11장 말미 30절에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에서 알 수 있지만 사래는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나이 였다고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습니다
15장에 들어서는 “이후에” 즉 세월이 지난후에 하나님이 환상중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방패가 되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무자하므로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겠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아내가 나이가 들어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아브라함의 후사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뭐라고 말씀 하십니까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 말씀에 아브라함은 아멘을 화답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볼까요 90세가 다되어서 경수가 끊긴 할머니에게 자식이 잉태 될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믿어 지겠습니까 현대 의학과 과학으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12장 1절로 3절의 말씀을 기억하여 아멘으로 화답한 것이라 믿어 집니다. 하나님은 발 바랄 수 없는 환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의로 여긴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창세게의 아브라함의 의를 비유로 들어서 아주 명쾌하게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신다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 23절의 말씀에서 질책하시면서 하신 말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를 깊게 묵상 해봐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중 바리새인은 불의한 사람이라고 매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지금도 말씀 하고 계심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