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주석/창세기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창세기9:17)

은기철 2025. 6. 12. 22:28

1. 성경 (창세기9:8 ~ 1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9)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0)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한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 하리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2)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3)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4)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5)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6)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7)

 

2. 묵상(Calvin선생주석)

"8. 하나님이~~~~~일러 갈아사대" ; 홍수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공포들로 위협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리고 하늘에 먹구름이 덮을 때마다  홍수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려고 이 세상이 다시는 침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로 이 걱정의 근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만약 우리가 불신을 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의 경향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이런 증가가 노아에게도 필요하지 않았다고는 단언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보기드문 그리고 도저하 그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는 진앙으로 고취된 사람이며 심지어는 기적에 대하여까지 그는 유례가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끈질기게 버티어 가는 힘은 그다지 대단치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런 가장 슬프고 무시무시한 복수는 그의 신앙을 동요시키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소나기가 계속해서 쏟아지므로 이 땅을 대 홍수로 위협할 때마다 이 거룩한 사람이 의지하고 있는 이 장벽에 이 금이 가고 사이에 장애물이 이 끼게 되는 것이다. 

 

이제 비록 그의 아들들이 그 자신보다 더 이런 화신이 필요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는 여호와께서 특별히 그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위에 따르는 귀절 그와 함께 한 아들에게' 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와 같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노아의 아들들과 언약을 하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라고 명령하고 계시는데 어떠냐는 말이다. 정말로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 말하자면 그 언약의 계약자인 노아와 함께 참여하여 하위의 자리에서 그와 함께 협력하게 되었던 것 때문인 것이다. 더우기 노아의 모든 후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한 가족에게만 화증을 주는 개인적인 언약(a private cove-
nant)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공통(common) 언약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이 세상의 끝날까지 넘치고 효능을 발하게 될 언약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현재에는 불신의 풍조가 노아 시대보다 못지 않게 넘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마치 수천 개의 빗장과 장대가 되어불신의 물을 제재해야 되는 것이 특별히 필요하다. 그래서 물들이 터져나와 우리를 멸망시키지 않게 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약속에 의지하면서 마지막 날을  기다리자. 그 마지막 날에는 소멸시키는 불이 하늘과 땅을 정결하게 할 것이다.

 

'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 비록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호의가 동물들에게까지 미쳤다고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이 직접 인간들에게 하신 약속이 헛되지 않고 있으니 곧 믿음의 수단으로 이런 은덕을 감지할 수가 있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지금도 헛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짐승들과 함께 공통으로 하늘과 공기를 즐기며 향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똑같이 생명을 주는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지시하고 계시니 그것은 일반적인 특권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계시는 부성애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세 가지의 특별히 구별된 단계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첫째는 하나님이 현재와 관련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처럼 노아와 그의 가족과 언약을 맺고 계시며 그렇게 하여 그들 자신의 힘으로도 홍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둘째로 그분은 그 언약을 후손들에게 이전시키고 계시는 데 계속적인 계승으로서 그 효과가 다른 세대들에까지도 연장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후에 태어난 자들까지도 신앙으로 이 언약을 누릴 수 있게 하시고 또한 그들이 노아의 아들들에게 약속된 것과 똑같은 것이 그들 자신에게도 약속되었다고 결론을 지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세째로 하나님은 야수적인 동물들에게도 호의를 베푸실 것이며 그래서 그들을 이 언약 외 효력이 그들에게 지각과 지성을 분배해 주지 않고 오직 그들 자체의 일생에만 국한되게 하신다고 선언하신다. 이 사실에서 세례파의 무지를 배척 할 수가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어린 유아들에게까지도 일반적으로 공통적이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
아이들이 현재의 신앙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 정말로 하나님 구원을 수 천 세대에까지 약속하실 때에 마치 조상들은 하나님과 그들의 자손들 사이에 중간적인 땅들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다(말하자면). 그
물의 입무는 자기들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에게서 받은 약속을 직접 전달해 주는 것인데도 그러한 위치를 그 무지한 자들은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에서 그들의 생명을 거두어 들인만큼(재냐하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언약을 덜시하거나 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 한 가지의 배은망덕외 소령으로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던 비록 이것이 지상적인 약속이긴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믿옵이 생활로 실천되어서 특별한 신하십으로 확실한 거치가 그들이 하늘에서 함께 모일 때까지 이 지상에서 그들에게 마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12.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  약속에 다시 증거가 부가되고 있다. 이 증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하심이 나타나고 있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우리들이 믿는 신앙을 확신시켜 주는 목적을 위하여서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을 사용하시는 것도 개의치 않으신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비록 다음 장에서 우리가 더 충분하게 토의하고 가겠지만 그러나 모세의 이 말에서 우리가 간략하게 주장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말씀에서 증거들을 절단사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말로 나는 가톨릭교도들이 자랑하고 다니는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강건하게 하는 것으로 삼기 위해서인 것을 의미한다. 그들 가톨릭교도들은 그들의 마술적인 주문으로 물과 떡과 술과 기름에다 요술을 거는 자들이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거룩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 대로 그분은 그 당시 오직 확신을 위 정례가 이 요구되고 하여 그런 중거를 부가해서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말씀에서 시 트집을 잡아 생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것이 있는 것을 중지시키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것은 그것의 위력을 더 잘 보존하려고 하는 음성적인 표이지 그것의 본성에서 타락시키려는 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성례를 행하는 것은 모두가 헛되고 우스팡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순전히 사단의 기만책을 쓰면서 혼란시키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또한 추리해 볼 수 있는 것은 태초에서부터 신앙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하여 마련하는 것이 이상한 의식의 자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그 언약에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약속에는 반드시 믿음이 응답해야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앙이 그런 자질구레한 부수적인 것으로 유지가 되어야 할까 하고 회의를 품은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맨 처음에 우리의 마음의 막대한 무지와 우둔성을 생각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마땅히 드려야 할 찬양을 성령의 은밀한 능력의 역사에 돌리지 않은 자들이다. 믿음을 시직하고 그것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자신이 보기에 좋으신 그런 도구를 가지고 수행하신다. 그분의 능력으로 어느 것을 택하여 하시든지 그것은 그분의 자유이시다.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 이 말씀에서 저명한 신학자들이 다음의 사실을 부인하도록 유도를 받고 있으니, 그들은 홍수 전에는 무지개가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다. 그것은 경솔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하는 말은 무지개가 그 당시에 생긴 것이라고 단정해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 말해서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지개가 그때에 비로소 생긴 것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그 무지개 위에다 표를 새겨 주었다고 했으니 그것이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보다 확실하게 나타나게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말한 대로 어떤 표들은 자연적인 것이며 어떤 표들은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한 사실을 이 말로 인하여 더욱 기억에 생생하게 상기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성경에 이런 제 2부류에 속한 증거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 증거에 대한 예증들이 모두가 회귀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공통적이고 항구적인 용도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이 지상적인 요소를 채용하셔서 기꺼이 인간의 마음을 높은 곳으로 들어 올리는 탈 기구로 이용하신 것과 같이 나도 생각하기를 그건에 존재했던 하늘나라의 무지개가 여기서 하나의 표와 서약으로 집약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무지개에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의 성질에서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 반대의 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지개 자체가 비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본문 말씀의 의미를 이렇게 생각해 보자. '비가 너를 위협할 때마다 이 무지개를 보아라. 그것은 비록 이 땅 위에 물이 넘치게 할 상징처럼 보이지만
다시 청명한 날을 주겠다는 약속을 너에게 줄 것이다. 그러므로 맑고 청명한 하늘보다 너에게 더욱 더 큰 확신을 안겨줄 무지개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무지개에 관하여 철학자들과 논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그 색깔은 자연적인 원인에서 생기는 결과인데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그분의 창조물에 대하여 지니고 계시는 권리와 권위를 박탈 시키려고 시도하는 자들인 그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15. 내가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 모세는 아주 빈번하게 하나님을 직접 화자로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교훈하기를 그 '말씀'이 주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증거들이 모두 그 말씀으로 인하여 평가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만법을 따라서 말씀하시면서 이르시기를 그분이 무지개를 볼 때에 자신이 하신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말하는 이 방법은 인간들의 신앙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분의 무지개를 펼칠 때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아니 하심을 상기하게 하신 것이다.

 

"18. 노아의 아들들~~~~~~" ;  모세는 노아의 아들들을 여기서 상술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다음의 역사들을 거쳐가려는 때이어서가 아니라 또한 '땅에 번성하라는 약속의 위력을 보다 충분히 예증해 주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소수에서 이 짧은 기간에 그토록 엄청난 무리가 출생하여 번성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한 가족과 그리고 아주 작은 가족이 그토록 많이 그리고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민족들로 성장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효과적인 것이었는가를 실감나게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