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주석/창세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은기철 2025. 5. 23. 08:04

1. 성경 (창2:1 ~ 17)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1)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3)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4)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5)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6)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9)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0)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1)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2)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3)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4)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7)

 

2. 묵상

 "1,2,3" -  여기 "안식"한다는 말(* =솨바드)이 두 번 나온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안식"에대하여 말씀하신다. 이 "안식"은, 하나님께서 아무 동작도 하시지 않음을 의미하지않는다. 그것은, (1) 다만 창조의 역사(役事)를 더 계속하시지 않음을 가리키고, (2)창조된 모든 것을 유지(維持)하심과 기뻐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사실에 근거하여, 사람들의 안식하는 제도도 나오게 되었다.사람의 안식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을 목적한다. 그 날에 사람이 일하지 않는 것도 그 목적 때문이고, 무 동작 상태(無動作狀態)를 경건(敬虔)으로 여김이 아니다.  안식의 제도가 고대 바벨론에도 있었으므로 창세기의 안식 제도도 바벨론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바벨론의 소위 안식일이란 것은 매달 15일을말함인데, 사람들이 그 날에 사업을 쉬게 된 이유는, 신(神)들의 진노를 진정시키기위함이었다. 그들의 관념에 비해 그 날은 좋지 못한 날이었던고로 그 날에 쉬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안식 제도는 구약의 안식 제도와 정반대 된다. 구약의 안식제도는이레 되는 날이며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날이었다. 그러므로 히브리인의 안식 제도가 바벨론 풍속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 여기이른바 "대략"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톨레도드(*  )인데, 이것을 "계보"(系譜), 혹은 "출생"으로 번역하는 학자들이 있다(W.H. Green). 그러나 이것을 "역사"(歷史)란 말로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Leupold). 이 아래 나오는 말씀들(5-25)은, 천지 창조된 뒤에 땅 위에서 되어진 역사를 말한다. 이 귀절부터 나오는 말씀은, 위에 벌써 말한 창조 기사(創造記事)(1:1-2:3)와 다른별개의 문서가 아니다. 이것은, 위에 나온 말씀을 기록한 저자가 창조에 대하여 또 다른 각도로 말하는 것 뿐이다.

 

"5,6" -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초목이 아직도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 얼른 볼 때 이 말씀은, 1:1-12의 말씀과 충돌되는 것 같다. 거기서는 벌써 창조 제 삼일에 초목이 창조되었다고 하였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창조되기 전(7절 참조)에는 초목이 창조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 이른바 "초목"이란 것은 "들 초목"(*  )가리키나니, 사람이 지배하므로만 자라날 수있는 특수한 초목을 가리킨다. "밭에...채소"란 말(*  )도 그와 같이 해석되어야 한다.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바벨론의 길가메쉬 시문학(詩文學)에는 사람이 진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이 있다(Cuniform Texts form Babylonian Tablets in the British Museum VI.5).그러나 위의 바벨론 신화(神話)는 인류 중의 첫 사람을 지음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인류 중 첫 사람 창조에 대한 설화는 바벨론 신화에 확실성 있게   나타나지 않았다(Obbink, Het Bijbelsch Paradijsverhaal en de Babylonische Bronnen, bldz. 79). 그뿐 아니라, 이 귀절의 "흙"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 아팔(* )은 진흙(* =코멜, 혹은 * =티트)이란 말과 아주 다르다. 아팔(*     )은 실상 티끌을 의미하는 바, 인체(人體)를 성립시키는 땅의 원소(元素)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바벨론 신화와 성격을 달리 한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었다 함은, 사람에게 호흡을 주신 것을 의미한다. 1:26에서는, 사람의 영혼("하나님의 형상")을 창조하신데 대하여 말하고 여기서는 그 육신을 창조하신데 대하여 말한다. "생령"아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네페쉬 카야(*  )니, 산 영혼을 의미하는바 생명있는 자를 가리킨다. 이 말은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도 사용된 바 있다. 1:24의 "생물"이란 말이 역시 네페쉬 카야(*  )에서 번역된 말이다.

 

"9.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 루터(Luther)는,이 "생명 나무"를 문자 그대로 사람의 생명을 늘 건강케, 또는 늘 젊어 있게 만들어주는 나무라고 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라고 하셨으면 그대로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며, 모든 의심을 물리쳤다(Luther's Commentary on Gensis I, pp.46-47). 우리는, 루터의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 만능주의를 좋게 본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하여는, 우리로서 마땅히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그러나 하나님께서 하필 물질에 속하는 나무 열매로써 우리를 영생케 하도록 말씀하셨을까 의문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에게만 죽지 아니하심이 있다고 말씀하신다(딤전 6:16).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케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시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필 사람이 물질(나무 열매)에 의하여 영생의 소망을  가지도록말씀하셨을 리는 없다. 칼빈(Calvin)은, "생명 나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아담은 이때까지 무죄상태에 있었는데,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도록 하는 경고가  필요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 열매를 먹을 때마다 자기의 받은 생명의 근원(하나님)을기억함이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칼빈(Calvin)은 위와 같이 해석하는 동시에, 어거스틴(Augustine) 의 해석을 좋게 여겼다. 곧, "생명나무"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실제에 있었던 과수(果樹)였다는 해석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으로 사람을 시험하시기 위한 시련수(試鍊樹)였다. 그 때에 사람은 아직 범죄하지 않았으나, 시련을 통과하기 전이었다. 그에게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선(善)을 파수하는 생활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하나님께서 에덴 동사의 어떤 과수로써 사람에게 시련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10,11,12,13" - 이 귀절들은 에덴 동산의 위치에 대하여 말한다. 여기 "유브라데"와 "힛데겔" 두 강은 성경 다른 데도 관설되었으니 만큼, 그 흐르던 지역(地域)이 알려진다. "유브라데"는 후대의 바벨론에도 그대로 있고, "힛데겔"은 단 10:4에 관설되었는데 티그리스(Tigris)강을 말함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손"강과 "기혼"강에 대한 것인데, 학자들의 의견이 구구하다.


 (1) 옛날 유대인 학자들과기독교 학자들은 "기혼" 강을 나일강이라 하고 "비손"강을 간지스강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나일강을 멀리 애굽 남쪽에서 발원되었고, 간지스강은 히말라야산에서발원한 사실이다. 어떻게 이 강들이 유브라데스와 힛데겔과 동일한 자리에서 발원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 홍수 재앙으로 인하여 에덴 동산의지형이 변동되었기 때문에 강들의 근원도 달라졌다고 한다.


 (2) 아드리안 릴란드(Adriaan Reland)는 말하기를, "비손"은 코카서스(Kaukasus)의 동쪽에서 서쪽우로 흘러 흑해에 들어간 파시스(Phasis)강을 말함이고, 정금 산출로 유명한 하윌라는 콜키스란 땅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기흔"강은 가스비해로 흘러 들어간 아락세스(Araxes)강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3) 델리취(F. Delitzsch)는, 그의 저서 "에덴 동산은 어디에 있었는가 ?"(Wo lag das Paradies ?)란 책에서 말하기를, "비손"과 "기혼"은 바벨론에 있는 두 운하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 두 운하중 하나는 팔라코파스(Pallakopas) 운하요, 다른 하나는 샤트-엔-닐(Sjatt-en-nil) 운하라고 한다.


 (4) 알데스(G. Ch. Aalders)는, 에덴 동산이 어딘지를 알기 어렵다고 하였다(De, Goddelikjke Openbaring In De Eerste Drie Hoofdstukken Van Genesis,1932, pp. 434-448).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 이 귀절에 에덴의 비옥한 사실이라든지, 혹은 최초 인간의 향락에 대한 말씀은 전연 없고(Hellmut Frey, Das Buch der Anfange), 인간의 원래의 생활 처지가 경성하여 일할 것임을 가르친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첫째 선물이었다.

 

 "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이 말씀을 보아도 에덴 동산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은 매우 건전하다. 모든 다른 나라들의 신화들은 육욕주의(Sensualism)로 흐르지만, 성경의 이 기록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순종을 강조한다. 이것은 종교 윤리적(宗敎倫理的)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고상하다.


 이 부분(16-17)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만 상대하셨던 행위 계약을 말해준다.

 

(1)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단 한 가지 계명만을 주시고, 아담이 그것을 어길 때에 죽음(死亡)에 이르도록 규정하셨다.

 

(2) 그가 이렇게 하신 것은, 아직 복잡한 계율(戒律)이 발표되기 전 원시 시대(原始時代)에 있어서, 그 한가지 계율로써도 모든 계율을 지키는 여부(與否)를 아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약 2:10). 예수님도, 대부분의 계명을 지킨 부자 청년에게 대하여 그의 한 가지 부족한 것으로써 문제를 삼으셨다(막 10:17-22).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한 가지에 있어서 부족한 것도 모든 계명들을 다 지키지 못한 것과 같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한 가지 계율로써 시험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의 원리를 처음부터 진리대로 취급하신 증표이다.

 

(3)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단 한 개의 순종을 요구하신 사실은, 아담을 장차 말세(末世)에 오실 둘째 아담의 표상(表象)으로 생각 하신 증표이다(롬 5:14). 아담이 단 한 개의 순종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처럼,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의 한 가지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생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롬 5:14 하반-19).


 (4)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게 된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기다리시지도 않고 오래 참으심도 없이 사망의 벌을 내리셨다. 우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아담더러 회개하면 용서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알아야 된다. 그것은 17절에 말씀한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이, 계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행위 계약(行爲契約)의 말씀이다(호 6:7). 이 점에 있어서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계명은 그 사건의 본질(本質)로 보아 계약인 것이다. 곧, 아담이 순종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도록 하는 계약인 것이다"라고 하였다(Er light den in opgesloten, dat het gebod aan Adam gegeven, in het wegen der zaak een verbond was, omdat het, evenals dat van God met Israel, bedoelde, om Adam in den weg van gehoorzaamheid het eeuwige leven te schenken. - Gereformeerde II, p. 607). 행위 계약의 제도 아래에서는, 회개하므로 회복되는 법이 없다. 회개는 은혜 계약(恩惠契約)에만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