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주석/사사기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사사기16:28)

은기철 2025. 1. 8. 08:02

1. 성경 (사사기16:26 ~ 31)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6)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7)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8)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29)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0)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31)

 

2. 묵상 (박윤선박사 주석)
삿 16:26-30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28절) 삼손이 다곤 신당을 무너뜨려 거기 모였던 블레셋  사람들 3천명 이상을 죽게 하였다. 이번에도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삼손의 최후의 기도를 들으신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실수로 범죄한 신자를 일시 동안 벌하시지만 그의 진노가 끝나면 다시금 그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미 7:8-10에 말하기를,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 라고 하였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 (30절  끝)이 말씀은 삼손이 죽으면서도 그의 사명(블레셋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실시하는 사명)을 다하였다는 사사기 저자의 평가이다. 이것은 은근히 삼손의 최후 역사를 좋게 여기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삼손이 임종시에 기도한 것은 여호와를    믿고  회개하면서 실행한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곤고한 중에서 회개 하도록 하여 끝까지 구원하신다. 애 3:19-39을 자세히 읽으라.

 

  삿 16:31
  삼손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그의 시체를 운반 하여다가 장사 하였다.  블레셋의 고위층 관리들이 다곤 신당의 무너짐과 함께 거의 다 죽임이 되었으니  만큼,  삼손의 가족들이 그의 시체를 운반할 때에 방해하는 자는 없었다.

 

3. 호크마주석 

=====16:26
이 집을 버린 기둥을 찾아서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 본절로 볼 때 삼손은 이전부터 이 집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는 잠깐의 휴식 시간을 통해 옆에 있던 소년으로 하여금 그 건물전체 또는 지붕을 바치고 있는 기둥을 찾아서그것에 의지할 수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의지하게'에 해당되는'솨안'(* )은 '조용히 쉬게 하다'라는 뜻이다(Living Bible). 즉 삼손은 피곤한체하면서 버팀 기둥에로 자연스럽게 접근해 간 것이다.

=====16:27
그 집에는...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 여기서 본서 기자는 당시 그건물의 구조를 대충 묘사해 보임으로써 삼손이 행한 이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있다. 즉 당시 팔레스타인의 가옥의 형태는 대개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단층의 가옥일 때는 거실위에 평평한 지붕이 있다. 그리고 2층 이상의 가옥일 때는 거실은 2층에, 아래층은 하인들의 방과 창고로 되어 있다. 반면 그보다 더 큰 회당의 경우에는 지붕이 넓어서 3천명 이상이 올라갈 수도 있었으며 지붕은 대개 목재로 된 두 개의 버팀대로 받쳐져 있었다. 따라서 이 버팀대를 빼버릴 경우에 지붕의 가운데 부분은 파괴되어 위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죽음을 면하기가 어렵다. 삼손이 단번에 수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수 있었던 것(29, 30절)도 바로 그같은 가옥 구조 덕분이었다.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삼손은 '엔학고레'(15:19)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한번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본절에 기록된 삼손의 기도는 그가 사용한 하나님의 명칭 세 가지와 더불어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 주(* , 아도나이):이것은 삼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주장하시는 분은 곧 주되신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슬로 맨 블레셋이 주(主)가 될 수없으며 자신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주'이심을 보여 준다. (2) 여호와(* ,예호와):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뿐이심을 말하는 삼손의고백을 발견할 수 있다. (3) 하나님(* , 하엘로힘) : 여기서 관사 '하'(* )가 붙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의 신임을 나타낸다. 이로 볼때 삼손은 이 싸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열방의 신들과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숭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를 생각하옵소서 - 여기서 '생각하다'에 해당하는 '자카르'(* )는 '기억해내기 위해 표를 해두다'는 뜻이다. 즉 삼손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종'으로 구별해 주신 것(13:2-5) 에 의거, 다시금 자기를 권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하나님의 권능의 장중(掌中)에 다시 한번 사로잡히기를 소원하는 삼손의 심경을잘 나타내 준다.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 이러한 삼손의 기도는 마치 자신을 불구로 만든 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븍수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삼손이 정말로 그러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그것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롬12:19 ; 히 10:20)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기서의 강조점은 '원수'인 블레셋에게 있다. 즉 삼손의 기도는 자신의 두 눈을 위해서 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고통을 준 원수들인 블레셋족에 대하여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대한 삼손의 민족적 정신을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6:29
삼손의 장렬한 최후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 삼손은 이처럼 다시 하나님께서 주신 완력으로 그 건물의 버팀대를 두 팔로 하나씩 끌어 안고 밀기 시작했다. 기도 후에 잇따른 이러한 즉각적인 행동 개시는 확신에 찬 믿음의 발로이다.

=====16:30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 자기 한 몸을 던져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이러한 삼손의 살신 성인(殺身成仁)의 정신은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라고말한 에스더의 정신과 연결이 된다. 그리고 또 이러한 죽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모형이 된다. 한편 이와 관련 우리는 삼손의 죽음을 자살로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전사(戰死)였다. 즉 삼손은 최후의 장렬한 죽음으로써 블레셋의 신다곤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 것이다(Keil).

=====16:31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 삼손은 독자(獨子)였다(13:2, 3). 때문에 여기서 '그의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라 함은 이스라엘 동포나 삼손의 부족들을가리키는 것이다(Cundall). 한편 고대에는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그들의 왕이나 지도자가 죽은 뒤 그시신을 처치하는 태도나 방법에 따라 생전의 업적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손을 당대의 지도자로 예우를 다하기 위하여 가사(Gaza)의 무너진 블레셋 신전으로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갔음을 보게 된다. 한편 본절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아무런 방해없이 무너진 선전에서 블레셋인들의 시신들과 섞여 있는 삼손의 시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아마 당시 그 주변의 블레셋인들은 어떤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에 모두 도망가 버린 것 같다.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들어 쓰신 자이자 기간이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3:7-11 강해, 이스라엘의 구원자 사사 참조. 한편 이상으로 파란 만장(波瀾萬丈)한 삼손의 생애는 모두 끝난다.

 

4. 사사 삼손에 관한 말씀을 마치며 (호크마 주석에서 발췌)

극한 환난 중에 빠져 있던 삼손이 하나님께 회개하므로 권능을 회복, 블레셋인들을 멸하고 장열한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감동적 장면이다.  즉 들릴라와 공모하여 삼손을 무력화(無力化)시키고 그를 사로잡은 블레셋인들(4-22절).  그러자 원수의 조롱을  받
으며 온갖 굴욕 가운데 처해 있던 삼손은 하나님께 통렬히 회개하고 도우심을  간구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을 얻은 삼손은 다곤 신전을 무너뜨림으로써 그곳에 모인 블레셋인들을 압사(壓死)시키고 자신도 더불어 장열한 죽음을 맞이한다(28-31
절). 이처럼 본문에는 블레셋인과 삼손의 죽음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두 죽음은  전혀 상반된 성격을 띤다.  그중 블레셋인의 죽음은 악인의 죽음의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시 73:12)라고 했으나 이 시의 후반부(19절)를 보면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猝地)에 황폐되었는가"라고 기록하고 있어 악인의 번영이 얼마나 일순간적이며 그들의  파멸이
얼마나 임박한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삼손은 죽음은 사단의 권세하에서 해방된 성도들의 일반적인 죽음이다.  일찍이 시편 기자는 노래하기를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여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시73:14)라고 했다.  이러한 탄식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일스록 더욱 자주  있어  왔는데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고 하면서 죄의 고통을 탄식했다.  그러나 성도들의 격국운  영적 싸움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복된  죽음이다(히  11:13-16).  


그러기에 삼손도 깍인 머리카락이 다 자라는 날까지 원수의 조롱과 후욕(后縟) 속에서 지내는 동안 지난 날의 허물과 불충을 통절히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다시  덧입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함으로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삼손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숙고해 보게 된다.
 (1) 고난 속에서 성장한 삼손의 신앙은 단순한 개인적인 보복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장면을 이루는 업적을 이루었다. 

(2)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 

(3) 다곤 신전을 무너뜨린  삼손의 역사에서 사단의 왕국을 파괴하고 암흑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견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삼손의 이야기 전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 시대에 하나님을 진정한 주권자로 따르지 못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징계하시며 인도하시며 구원하고 계시는가를 발견하게 된다.